218화-검의 간격(間隔)(2)
무림에서 자신이 유리한 간격을 선점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검과 검의 대결에서도 검의 길이 1촌(=3.03cm)차이만으로도 생사가 갈리는 것이 무림이었다.
그만큼 간격의 대결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윤후는 환영신마를 상대로 간격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제길... 검의 변화가 너무 심하여 도저히 뿌리치고 접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검의 속도 역시 점점 더 빠르게 쫓아오고 있어...’
환영신마는 계속해서 이윤후와의 거리를 좁혀 품 안으로 파고들어 자신이 자랑하는 금나수와 권장술로 이윤후를 압박할 셈이었지만 점차 이윤후가 그 거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이윤후의 검이 만변(萬變)하여 모두 피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자신의 환영신보에 점차 따라오는 이윤후의 검이 너무 매서워 파고들기가 어려웠다.
‘사부란 놈은 검을 거둔 채 나를 농락하더니 제자란 녀석은 검으로 나를 농락하는군...’
환영신마는 거리를 벌린 채 상황을 살피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냥 도망을 가야하나부터 그냥 팔 하나 정도 내어주고 그냥 들어가 이윤후의 가슴팍을 갈라버릴까 고민도 하고 있었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로 저 녀석을 베어버리기엔 이후 벌어질 일을 생각해야 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무엇보다 저놈의 제자를 다치거나 죽였을 때 저놈의 개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환영신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온힘을 다해 이윤후를 상대해도 버거운 마당에 검성이 이후에 어떻게 나올 지까지 생각해야했기에 더욱 어려웠다.
이윤후를 쉽게 제압하고 빠져나가려했던 그의 생각은 이미 틀어진 상황이었다. 쉽게 상대할 것 같아 조금 농락하려했으나 그 과정에서 이윤후는 성장을 하며 환영신보의 허실을 파악하고 속도마저 쫓아와버려서 지금은 그가 상대하기 버겁다고 느낄 정도였다.
파밧-
“이런... 쉴 틈을 주지 않는군.”
잠시 숨을 돌리려했던 환영신마는 도리어 공세를 취하는 이윤후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탄지공을 쏘며 물러섰다.
하지만 이윤후는 탄지공을 손쉽게 튕겨내며 반대로 거리를 좁혀오며 급소만 노려 검을 찔러 들어왔다.
이윤후의 검은 어느새 자신과의 싸움에 적응하여 환영신마를 거리 밖으로 밀어 낼 때는 베기를, 그리고 자신의 거리 밖으로 밀어내고는 철저하게 찌르기 위주의 공격으로 환영신마를 공격하였다.
몇 번의 부딪침에서 베기를 사용한 이윤후의 공격에서 환영신마가 금나수를 시전하며 휘감아오기를 수 차례해왔기에 이윤후는 어느새 베기보단 찌르기 위주의 공격으로 형식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거리를 잡아내지 못한 환영신마는 계속하여 피하기 급급했고 차라리 생사를 건 싸움이었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파고들어 공격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기에 환영신마에겐 더욱 어려운 대결이 되고 있었다.
‘신마가 고민이 너무 많군.’
두 사람을 지켜보던 검성은 환영신마가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며 이윤후를 상대하고 있음은 눈치 채고 있었다. 사실 검성은 이윤후가 환영신마의 상대가 되기에 부족하다 여겼기에 그가 이윤후를 상대하며 살생까지는 하지 않도록 검성이 채워둔 족쇄나 다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윤후에게 그런 것은 필요 없어 보였다.
환영신마가 이 대결 이후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이윤후를 죽이지 않고 상대해야한다는 것은 환영신마에게 거대한 족쇄가 되어 있었고 실력발휘에도 큰 제약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이 없다. 일격에 녀석의 전의를 상실시키리라.’
환영신마는 의미 없는 공격이 거듭되는 와중에 자신만 지쳐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결국 살을 내어주고 뼈를 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윤후는 그런 환영신마의 기도가 달라짐을 느끼고 검을 거두어 조금 물러섰고 숨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워낙 환영신마의 신형이 빨랐기에 이윤후도 쉬지 않고 공격을 몰아치고 방어하다보니 체력 소모가 심하였다.
‘다음 부딪침에 끝이 날 모양이군. 신마가 결국 결단을 내렸군.’
검성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에 흥미로운 듯 눈길을 주었다.
“애송이를 상대로 내가 너무 시간을 끌었던 거 같구나. 확실히 네가 독고진 그 녀석을 이겼다기에 조금은 기대했지만 이건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신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간을 끌려는 듯 이윤후를 향해 말을 건네었고 그도 환영신마가 그런 의도임은 알았지만 무엇을 하고자하는 지 궁금하였기에 응해주었다.
“신마의 싸움으로 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듯 합니다. 사부님이 굳이 저를 이곳으로 불러 당신과 싸우게 한 이유도 알 것 같고요.”
“크흠... 이거 나를 자신의 제자를 키우는데 사용하다니 네 사부는 음흉하구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충분히 쉬십시오. 굳이 시간을 끌려고 말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이윤후에게 의도를 들키자 환영신마는 조금은 당황한 듯 표정을 보였다. 그간 이윤후와 백여 합 가까이 순식간에 교환하며 내력소모가 극심했고 체력 소모 또한 컸기에 마지막 한수를 위해 시간을 조금 끌려한 것을 이윤후가 알자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아마 다음 부딪침이 신마와 저의 마지막이 되겠지요. 저 역시 잠깐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니 숨을 돌리고 해도 좋습니다.”
“사양하지 않으마. 네 말대로 다음 일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긴 싸움을 끝내도록 하자.”
환영신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답했다. 이윤후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이제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파고들어 팔 하나쯤은 내어주고 녀석의 목을 거두고 전력을 다해 빠져나간다. 아무리 북해설응이 있다고 한들 여기서 불마사의 진영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 나의 발이라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쉬고 움직인다.’
환영신마는 찬찬히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일을 진행시켜보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보였다. 어차피 자신이 이윤후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면 검성은 자신을 쫓지 못하고 이윤후를 돌볼 것이 분명했기에 죽이기보단 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살려두어야겠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환영신마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동안 이윤후는 만상오행공을 운용하며 자연지기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짧은 시간의 휴식이었지만 만물의 기운을 운용하는 만상오행공을 잠시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소모된 내력회복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윤후는 환영신마와의 일전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곱씹어보고 있었고 특히 그와 치열하게 했던 거리싸움에 대한 복기를 계속 해나가고 있었다.
검성과 약선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두 사람 모두 이윤후에게 철저하게 주지시켰던 부분이 상대의 거리와 자신의 거리 파악을 우선해야한다고 배웠다.
생사가 걸린 이런 대결에서 거리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되었고 간격을 지배하는 법을 실전을 통해 터득하고 있었다.
“크흠!”
일정시간이 흐르고 환영신마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고 그것이 다 쉬었다는 신호인 듯 하여 이윤후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윤후는 일정수준 이상의 내력이 만상오행공 운용으로 회복되어 몸에 힘이 넘쳤고 체력적으로도 충분한 회복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말없이 두 사람은 준비에 들어갔고 이윤후의 눈빛이 매섭게 환영신마를 주시하고 있었다.
‘노마는 이 싸움을 빠르게 끝내려 할 것이다. 처음부터 경계하고 조심하여야한다.’
이윤후는 환영신마가 길게 끌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체력적으로도 환영신마가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휴식을 취하기 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이 흐르고 먼저 움직인 쪽은 환영신마였다.
파밧-
지면을 박차고 이윤후에게 달려드는 동시에 환영신보를 펼친 환영신마는 수 갈래의 환영을 생성하며 이윤후를 포위해갔다. 수많은 환영 속에 실체가 환영체사이로 자유로이 움직이는 환영신마였기에 이윤후는 섣불리 공격하기 보단 접근해오는 것만 뿌리치며 신중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놈이 너무 철저하게 접근을 막는구나.’
환영신마는 계속하여 이윤후의 빈틈을 노리고 접근을 시도했지만 이윤후가 거리를 유지한 채 접근을 허용하지 않자 조금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더 이윤후는 그가 검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있었다.
탄지공을 사용하여 시야를 끌고 수많은 환영체를 동시에 사방으로 현혹시키며 이윤후에게 접근하려했지만 계속 실체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빠르게 공격해오며 자신을 밀어내자 슬슬 인내심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팔 하나를 결국 내어주어야 하나...’
환영신마는 이미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몇 번 뚫어보려 시도해보았고 결국 실패하자 결심했던 데로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심을 마친 환영신마의 행동은 빨랐다. 바로 환영신보를 운용해 환영체를 배로 만들어 이윤후의 시선을 빼앗았고 환영들 사이로 오가며 공격을 하며 이윤후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자신의 별호가 환영신마가 된 환영신보는 내력소모가 극심한 보법이었다. 그렇기에 환영신마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순간에만 환영신보를 사용해왔는데 이윤후가 자신의 거리 안에 환영신마의 접근을 허용치 않고 있었기에 내력소모를 각오하고 계속 쓸 수 밖에 없었다.
파바바밧-
빠르게 움직이는 환영 속에 공방전이 이어졌고 환영신마는 환영을 거둬들인 채 박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서운 환영신마의 권장술이 이어졌고 이윤후가 검을 휘둘러 베려하면 금나수가 귀신같이 파고들어왔고 그런 손길을 떨쳐내고 거리를 벌려 찌르기로 밀어내려하자 환영신마는 회피하며 거리를 좁혀 급소만 골라 노려왔다.
이윤후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환영신마의 모습에 조금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금세 다시 적응한 이윤후가 공방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환영신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체력적으로 지치기 시작한 환영신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고 반대로 이윤후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오히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크흑...”
잠시 뒤로 밀리던 환영신마가 갑작스레 태세 변환하여 주먹을 내뻗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이윤후의 얼굴 목 명치 복부 옆구리 등 동시에 노리며 몰아쳤고 이윤후는 순간적인 그의 공세를 다 막아내지 못한 채 몸을 비틀어 어깨와 가슴에 타격을 당하고 격중당해 뒤로 밀렸다.
자신이 기세를 잡았다 여겨 공세를 몰아치던 차에 갑작스러운 반격에 이윤후는 제대로 대처 못했고 그의 어깨와 가슴팍엔 옷이 찢겨져나가 혈룡피갑의 영향으로 붉게 불로 지져진 듯한 혈왕인이 깊게 남아있었다.
이윤후는 기세를 잡고 재차 접근해오는 환영신마를 바라보고는 기회라 여기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미 그의 양팔은 환영신마의 금나수로 인해 엉망이었지만 이윤후는 고통을 참아낸 채 다가오는 환영신마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