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검의 간격(間隔)(1)
‘윤후에게 신마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나?’
검성은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며 이윤후가 환영신마의 속도와 노련함에 대응하지 못하자 안타까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검성은 이윤후가 검수로써 근접전의 초고수인 환영신마와 겨루며 경험을 갖추길 바랬으나 전혀 대응하지 못하자 자신이 실수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환영신마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한 것도 아닌 환영을 이용한 속도를 조절하며 현혹하는 것에 이윤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환영신마가 한차례 공격을 성공하고 위협을 준 것만으로 이윤후는 그에게 속아 비뢰광망을 펼치며 내력을 소모했고 거친 숨을 몰아쉰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멈추어야하나?’
검성은 이윤후의 패배를 인정하고 환영신마를 보내 주어야하나 생각하다 이윤후가 다시 검을 잡고 마음을 가다듬는 듯 하자 더 맡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부에 비해 형편없구나? 모습을 감춘 것만으로 겁을 먹고 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환영신마는 이윤후를 바라보며 크게 비웃었고 이윤후는 자신을 비웃는 것은 참을 수 있었으나 검성까지 그가 거론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의 속도가 빠르긴 하나 쫓아가지 못할 속도는 아니다. 그의 환영에 현혹되어 시선을 자꾸 빼앗기는 탓이 크다. 허실을 가려야한다.’
이윤후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를 비웃는 것은 이 싸움이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이윤후는 검을 환영신마에게 겨누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고 그 모습을 보자 검성은 이윤후를 믿고 맡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애송이가 입만 살았구나. 지옥을 보여주마.”
환영신마는 검성을 살짝 쳐다보았으나 막을 생각이 없는듯해 보이자 기세가 꺾이지 않은 이윤후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슥-
환영신마가 지면을 박차고 움직이자 또 다시 그의 신형이 몇 갈래로 갈라지며 환영체가 만들어지며 이윤후의 눈을 현혹시키기 시작했다.
파박-
파바밧-
환영 속에 본체를 이동시키며 이윤후에게 근접한 환영신마는 이윤후의 배후로 진입해 공격을 감행했으나 이번엔 이윤후가 손쉽게 막아내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기 너무 가까운 거리였기에 이윤후는 검을 거둔 채 권장술로 환영신마에게 대항했고 자신의 공격이 손쉽게 막히자 약간 당황한 환영신마는 몇 합을 교환하고 바로 이윤후를 떨쳐내며 거리를 벌려 떨어졌다.
“어떻게 본체를 쉽게 알아 본 것이지?”
자신의 속도에 따라오지 못하던 이윤후가 갑자기 속도를 따라온 것은 물론이고 환영체의 허실까지 파악하고 대응하자 환영신마는 당황하며 물었다.
“보였다기 보단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설명하기 어렵군요.”
이윤후는 환영신마의 속도를 습관적으로 눈으로 쫓으려다가 낭패를 당했으나 이후 대응법을 금세 찾았다. 바로 만상오행공의 운용이었는데 만상오행공을 익힌 영향으로 감각이 날카로워져있어 주위 모든 기물들의 반응을 느낄 수 있는 이윤후였지만 그것에 대한 인식이 너무 자유로웠던 탓에 그것을 싸움에 응용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환영신마에게 등을 타격 당했을 때도 스스로 느끼진 못했지만 결국 배후를 잡힌 것을 느꼈던 것도 만상오행공의 영향이었고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환영신마의 모습을 눈으로 쫓지 않고 기척을 느끼며 쫓으며 좋은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응만 할 수 있었을 뿐 제대로 환영신마의 움직임을 쫓아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까 한 말은 취소해야겠군. 네 사부에 비해 형편없다는 말은 취소하마. 이젠 제대로 상대해주마.”
환영신마는 말을 하곤 품에서 얇고 붉은 가죽으로 된 장갑을 꺼내어 양손에 꼈고 보통 기물이 아닌 것을 알아챈 이윤후는 조금은 경계하며 눈길을 주었다.
“혈룡피갑(血龍皮甲)이라는 것이다. 혈룡갑사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지.”
이윤후가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자 환영신마는 말해주었다. 무림에 활동할 당시 환영신마는 따로 무기를 쓰지 않았기에 당대 유명한 무기 장인이었던 자에게 검과 도와 같은 무기를 맨손으로 잡아도 멀쩡할 장갑을 의뢰했고 장인은 혈룡갑사의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그에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그의 신물이 되었다.
환영신마라고도 불렸지만 그의 또 다른 별호는 혈수마공(血手魔公)이라고도 불렸고 그것은 혈룡피갑을 낀 그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림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했기에 혈룡피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나 이번엔 챙겨 나온 그였다.
검성과 싸움을 대비하여 사용하려했던 환영신마였지만 검성과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했기에 사용할 수도 없었지만 이윤후를 상대로 꺼낸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무기를 맨손으로 잡아내는 데도 도움을 주지만 이것을 끼고 공격을 하면 혈왕인(血王印)이라는 흔적이 남아 나를 혈수마공이라 불렀다. 이제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게다.”
환영신마는 혈룡피갑을 낀 두 손을 펼쳐 보여주며 말했고 그의 말처럼 그가 혈룡피갑을 끼고 타격을 하면 불로 지진 듯한 핏빛 화인(火印)이 남았는데 그것을 무림인들은 혈왕인이라 불렀다.
사삭-
파바밧-
환영신마는 동시에 이윤후를 향해 달려들었고 찰나의 순간에 이윤후의 품으로 파고든 그는 공세를 취했다.
촤작-
환영신마의 주먹과 장법이 교차되었고 이윤후는 가까스로 그것들을 피하며 검을 휘두르며 환영신마를 자신에게서 떼어내어 검의 거리를 유지하려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를수록 환영신마는 점점 깊숙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좁은 거리에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이윤후는 재차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검을 휘두르길 반복했다.
두 사람의 간격이 워낙 가까웠으나 이윤후는 그 좁은 간격 속에서 용케도 환영신마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고 그 와중에 검을 필사적으로 휘둘러 환영신마와 거리를 벌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림없다.”
파바바박-
“크흑...이런!”
환영신마는 이윤후가 검을 휘두르자 어느새 다시 품에 파고들어 금나수(禽拿手)를 펼쳐 이윤후의 검을 쥔 손을 휘감았고 화끈한 감각에 놀란 이윤후는 좌장(左掌)을 뻗어 그를 떼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드디어 빈틈을 보였구나?”
환영신마는 자신의 공격이 통한 것이 만족스러운 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사실 그는 계속 이윤후의 빈틈을 노려왔으나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고 자칫 억지로 파고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정도로 이윤후가 경계하고 있었기에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윤후도 검성과 환영신마의 싸움을 늦게 도착하여 보지 못했지만 천통자를 통해 들었었고 그가 근접하여 금나수를 비롯한 전투를 해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에 대한 대처를 하며 싸우고 있었다.
최대한 이윤후는 동작을 작게 하며 환영신마가 금나수를 펼치지 못하도록 해왔으나 결국 검을 휘두르며 동작이 커지자 그 빈틈을 환영신마가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이윤후의 검을 쥔 손을 망가뜨린 것이었다.
뚜욱- 뚝-
이윤후의 검을 쥔 손은 어느새 피로 물들어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찢겨져나가 있었다. 마치 뱀이 오른 손을 휘감은 듯 붉은 자국이 남은 그의 팔은 피로 적셔져 있었다.
파바바밧-
고통에 찡그리던 이윤후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탄지공(탄지공)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피로 물든 팔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야했다.
파바바방-
이윤후는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탄지공을 튕겨내었고 바로 환영신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비뢰섬(飛雷閃)!”
촤자작-
이윤후의 검이 번쩍이자 한줄기 뇌광이 환영신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환영신마는 가볍게 검기를 피해내며 자신을 향해 날아든 이윤후를 향해 쌍장을 내질렀다.
강맹한 기운이 환영신마의 양손에서 발산되자 이윤후는 재차 내력을 끌어올리며 검을 내질렀다.
“비뢰낙일(飛雷落日)!”
촤좌자자작-
환영신마의 쌍장에 대항하여 이윤후는 검을 양단하여 내리찍으며 비뢰낙일을 펼쳤고 그의 검에서 폭사되는 뇌정의 기운이 환영신마의 쌍장의 기운과 부딪쳐갔다.
콰과과광-
두 기운이 부딪치자 굉음이 울렸고 지축이 흔들리며 산이 진동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울렸다.
채재쟁- 채앵-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해 분진이 자욱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회심의 일격을 나눈 이후 바로 재차 부딪치고 있음이 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부딪침은 피어난 분진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되었고 시야가 트였을 때는 두 사람 모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전신에 피가 튀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윤후는 검을 쥔 오른 팔 외에도 왼팔 역시 금나수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의 옷은 찢어 발겨져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환영신마 역시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검흔으로 인해 옷은 거의 베어져 있었고 베어진 옷자락 사이로 핏물이 베여 그 역시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여유 있게 이윤후를 상대하던 환영신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두워진 낯빛으로 시종일관 이윤후와의 거리를 좁혀가며 공세를 취하는 환영신마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게 느껴졌다.
도리어 이윤후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검을 바로 잡아 내지르며 환영신마와의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고 있었고 환영신마가 계속해서 몰아붙이며 이윤후와의 거리를 좁히려했지만 철저하게 검을 휘두르며 환영신마를 검의 거리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검성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윤후가 근접전투에 감을 잡은 듯 하군. 저렇게 철저히 신마를 검의 거리 밖으로 내몰며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다니 놀랍군.’
검성은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특히 이윤후가 보여주는 실력에 감탄했는데 조금 전까지 환영신마의 속도와 잔상에 속아 쫓아가지 못하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재 대결은 이윤후가 주도하고 있었다.
‘오성(悟性)이 뛰어난 아이라는 것은 진즉 알았지만 실전에 대한 체득도 이렇게 빠를 줄은...’
검성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환영신마의 강함은 직접 부딪쳐본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검성 역시 이윤후가 환영신마의 상대로 부족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근접전에 대한 경험을 익혔으면 하는 마음에 붙인 대결이었는데 이렇게 환영신마를 상대로 잘 견뎌낼 줄은 검성도 생각하지 못했다.
검성이 가장 놀란 부분은 이윤후가 검의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환영신마를 그 거리 밖으로 밀어내며 줄다리기를 계속 하는 모습이었다.
환영신마는 무기를 든 상대와 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이윤후처럼 자신의 무기의 간격을 지키며 싸우는 자들을 상대로 파고들어 이제껏 모두 승리를 거두어온 백전노장이었다. 환영신마가 자랑하는 환영신보로 잔상과 실체를 번갈아 오가며 상대가 아무리 무기의 거리 밖으로 밀어내려 해도 파고들어 상대가 무기를 휘두를 수 없을 만큼 압박하여 승리하는 것을 즐겨온 환영신마였다.
그런 환영신마가 이윤후를 상대로 계속 검의 간격 밖으로 밀려나며 자신이 자랑하는 근접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검성이 지켜보기에도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