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전혼마공(傳魂魔功)(1)
“북해빙궁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설응무리를 이용하여도 된다고 말이죠.”
이윤후의 담담한 말에 사마천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윤후의 말은 곧 사패의 한 곳인 북해빙궁이 무림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소리와 같았다.
어차피 북해설응의 우두머리가 백아였기에 북해설응의 이용은 어렵지 않았으나 검성과 이윤후는 단지경에게 허락을 구했고 이미 서로 돕기로 약속한 만큼 단지경은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단지경 역시 검성의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였고 무엇보다 검성이 자신의 아우인 조준혁에게 오행상생의 술로 도와준 덕에 그는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여 단지경이 크게 기뻐한 상황이었다.
단지경으로써는 검성과 이윤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이일로 인해 북해빙궁 내에 자신과 검성간의 친우를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빙궁이 어찌 자신들의 최후의 수단인 설응을 너희에게 내어준다 말이냐?”
사마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피를 토하며 말했고 그를 비롯한 남아있는 십여명 모두 사마천처럼 상태가 좋지 못했기에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빙궁과 사부님 그리고 저간에 친교가 있으니까요. 궁주께서 저희 사부님의 요청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이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윤후는 백아가 설응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최대한 숨기며 말했다. 괜히 이것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빙궁에 해가 될까 염려한 배려였다.
“이거 대단하군요.”
누군가 탄성을 지르며 이윤후의 곁으로 왔고 그는 개방의 방주인 소천개였다.
“북해빙궁의 설응을 이용한 전투방식은 듣기만 했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인데 처음 경험한자들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을 정도겠군요.”
소천개와 같이 나타난 이들은 대회의장에 모여 있던 각 문파들의 수장들이었고 검성과 함께 모두 밖으로 나와 이곳으로 오던 도중 하늘을 나는 설응들을 발견하고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검성께서 북해빙궁의 도움을 받아 설응을 이용한 전투를 할 수 있다고 하셨을 때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직접 보니 제 생각이 짧았군요. 다수의 전투에서 대응할 방법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석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사실 자신이 당하는 입장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크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단칼에 설응들을 베어버릴 정도의 무위를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끝인가...’
사마천은 각 문파의 수장들이 나타나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안 그래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웠는데 검성과 무림맹 모두가 나타나자 이제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 체념하고 말았다.
츠츠츠-
“크학!”
살아남은 자들은 무언가에 힘이 짓눌린 듯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졌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 움직이지 못한 채 신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 잡아들여라. 자해를 할지 모르니 바로 몸수색을 하고 조사를 철저히 하도록.”
검성은 기운을 발산하여 사마천을 비롯한 남은 자들을 억압하고 있었고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기운에 짓눌린 그들은 저항의 의지마저 꺾이고 있었다.
검성의 놀라운 무위에 소림의 무승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포박하기 시작했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옷을 거의 벗겨 검성이 말한 혹시나 모를 자해를 방지했다.
“사부님 안의 일은 잘 마무리하셨습니까?”
이윤후는 모든 것이 마무리되자 검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 잘 마무리되었다. 너도 잘 해내었다.”
검성은 이윤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이윤후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검성의 칭찬은 그 어떤 말보다 이윤후를 기쁘게 했다.
“백아도 잘 해내어주었구나. 장난스럽고 여자만 좋아하던 모습만 보다가 저렇게 무리를 이끄는 걸 보니 무리의 대장은 맞구나.”
검성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리를 이끌며 하늘을 유유히 선회하는 백아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어리광이 심한 백아였는데 말이죠.”
검성과 이윤후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고 백아는 상황이 끝이 났음을 알았는지 무리를 철수시키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늘의 위협이 사라지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안심했다. 아무리 검성과 이윤후가 통제하고 있다고 하나 북해빙궁의 영물들인지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끝까지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소천개나 수장들이야 검성과 이윤후가 데리고 있는 설응이 우두머리 설응이란 것을 알아 안심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자들 입장에선 언제 돌변할지 모를 설응은 위협대상이었다.
상황이 끝이 나자 잡아들인 자들을 소림에서 인계하고 있었고 현우자와 소천개는 따로 수장들을 불러 다시 회의장으로 향했다.
***
“설응의 전투가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천통자는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듯 말했다. 일이 마무리되고 종남파에서 마련해준 거처로 온 검성과 이윤후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천통자가 방문했다.
천통자는 검성과 함께 무리의 설응을 타고 이곳으로 같이 도착해있었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요란하게 싸운 덕에 불마사에서도 설응의 존재를 알았을 텐데요.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지. 이곳에 남은 자들의 사기를 고취(鼓吹)시킬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렇긴 하죠. 다들 설응의 전투에 놀라워하면서도 두려워하더군요. 제가 보아도 당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파훼가 쉽지 않아보였으니 다들 겁을 집어먹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장은 우리 편이지만 결국 빙궁의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탓이겠지. 그리고 우리에 대한 경계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렇죠. 의천문은 검성의 존재만으로도 무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빙궁이 자신들의 영물까지 내어준다고 생각한다면 건들일 수 없는 불가침의 존재가 되니까요.”
천통자는 말을 하면서도 참 무림인들이 한심하다고 여겨졌다. 자신을 도우러 온 검성과 설응의 존재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저 힘을 가진 의천문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불마사의 동태는 어떠하냐? 활불이 준 유예기간이 내일이면 끝이 나는 것으로 아는데?”
“계속 추가보고를 받고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별 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이제 곧 저들도 이곳 쌍황을 알게 될 테니 자신들이 내부에서 흔들려했던 것이 실패하고 사마천이 붙잡혔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그 후 행보가 어떨지는 모르니 계속 살펴야할 듯합니다.”
“애령은 자신의 설응이 조금 전에 돌아갔으니 곧 오겠지만 서문세가와 남궁세가 그리고 팽가까지 돌아오려면 시일이 걸려 최대한 시간을 끌 필요가 있으니 방안을 마련해봐.”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아니요... 제가 해야죠.”
천통자는 대답하고 한참을 궁시렁 거렸고 검성은 그런 천통자가 재미있는 듯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저들이 날이 밝고 바로 공격해올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공동파를 혼자 멸문시킨 활불이 아직은 불마사의 본진에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선언으로 갈라진 무림을 모두에게 보이는 것이 목표이기에 바로 공격 해 오진 않을 겁니다. 물론 활불이 합류하고 난 후면... 모르겠지만요.”
이윤후의 물음에 천통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활불의 평가는 어떠하지? 공동파를 단신으로 무너뜨렸다면 네 짐작처럼 전대 활불에게 격체전공을 받은 후 무공을 수련한 게 맞는 듯 한데 말이야.”
“공동파의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때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고 하더군요. 공동파의 고수들 역시 현재 이곳에 많이 차출되어 있긴 하지만 공동파도 위치 자체가 위험하여 그리 많은 수를 파견하지 않았기에 공동파 본연의 힘은 건재한 채로 싸웠다 봐야하는데 그야말로 처참하게 패했다 합니다.”
“그래도 구파 중 하나인 공동파가 그렇게나 당했습니까?”
이윤후는 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무림의 중심이라고 들어왔기에 천통자의 말이 믿기지 않아 물었다.
“네. 그냥 일방적으로 당했다 합니다. 공동파는 처음부터 활불임을 알고 합공을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공동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의 공격을 단 한 차례도 당해주지 않은 채 모두 제압하는데 단 삼합(三合)이 필요했다 합니다. 모두 죽었고 말이죠.”
천통자는 말하면서도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도 보고를 받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구파중 하나인 공동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합격을 했음에도 스치지도 못했고 활불의 세 차례 공격에 모두 절명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대 활불이 혈천마공(血天魔功)을 극성까지 익히고 전 무림을 자신의 무릎 아래 꿇리기 직전까지 도달했는데 사마군은 전대 활불에게 격체전공을 이어받고 혈천마공을 더욱 손쉽게 극성까지 익힌 듯 합니다.”
“그렇군. 전대 활불은 근데 어찌해서 사마군과 사마령을 구해주고 그들에게 격체전공까지 하며 자신의 대업을 맡긴 것이지?”
검성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고 천통자도 자신도 고민해봤던 부분이라 바로 답하진 못하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떼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었지만 사마군과 사마령이 쫓긴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무림에 원한이 있으니 그들을 선택하고 제안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긴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활불이라는 자가 그것만 감안했다기엔 위험부담이 크지 않았을까? 사마군과 사마령이 힘을 가지고 자신의 대업을 행해주지 않았을 때는? 그리고 알아본 바론 활불은 욕심이 많은 자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죽음을 앞둔 상황이지만 그가 행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무엇이 말입니까?”
“자신의 힘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넘기며 자신의 의지를 넘기는 것은 정말 정파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지. 격체전공이라는 것도 사실 온전하게 힘을 넘겨주기 힘든 수법이야. 잘못하면 양쪽 다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고 어차피 죽을 지경의 활불이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행한 행동은 의심스러운 데가 많은 거 같고 말이야.”
“혹시 다른 것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검성의 말에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생긴 듯 천통자가 되물었고 검성은 답을 해주지 않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너도 무언가 의심 가는 것이 생긴 듯 한데 말해보아라.”
검성은 한참 후 천통자에게 물었다.
‘능구렁이 같으니... 이미 자신은 확신하고 있으면서...’
천통자는 검성이 이미 확신을 가지고 천통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했음을 눈치 채었고 그런 검성의 유도에 자신이 당했음을 조금은 분해하며 입을 열었다.
“검성께서는 혹시 전대 활불이 사마군에게 온전히 내력만 전한 게 아니라 생각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계속 말해보아라.”
“크흠... 검성께서는 이미 확신하고 계셨군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천통자는 조금은 분한 듯 물었다.
“확신까지는 아니고 그저 내가 전대의 활불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았을 때 느꼈을 뿐이다. 나라면 절대 굳이 번거롭게 사마군과 사마령을 데려와 그런 부탁을 하며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번거로운 일을 자처했다면 분명 다른 의도가 있었겠지 하고 말이야.”
“아...!”
천통자는 검성의 이야기를 듣자 더욱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