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분란(紛亂)(1)
“이 일로 인해 생길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그러니 그대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내 말을 못이기는 척 따라와 주시오.”
“맹주...”
강유의 단호하고 결연한 말에 혜원대사도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그럼 모든 것을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화산에 대한 동태를 살피고 그에 대한 조사도 얼른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검성과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소천개는 반대하던 혜원대사가 상황에 수긍하자 일을 바로 마무리 지으려했다. 애초에 검성이 내놓은 제안을 무림맹에서 안받을 수가 없었고 그래도 결국 강유가 나서준 덕에 조용히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검성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결국 약선과 서문세가도 나설 것이고 내부를 추스르는 중이라 이번 일에 참여하지 않은 남궁세가도 움직일 겁니다. 혜원대사께서 너무 반대만 안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얼마나 많은 문파들이 이탈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이탈한 문파들과 결국 다퉈야할 것이니...슬픈 일이지요.”
혜원대사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한 듯 보였고 그런 노승을 현우자가 곁으로 가 위로해주었다.
“모두 잘 될 것입니다. 일단 며칠 지켜봅시다. 검성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없으면 내부적으로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현우자의 말처럼 현재 종남파에 모여 있는 무림인들은 모두 검성이 이곳에 합류한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면 변절자들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폭풍 전야겠군요... 두렵습니다.”
혜원대사는 진심으로 말했다. 혜원대사도 검성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결국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배신을 할 자 역시 정파인들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적으로 돌아섰을 때 처단하는 상황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
종남파에 모인 무인들은 검성이 합류한다는 소식을 기다렸지만 들리지 않았고 활불 사마군이 주었던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두 초조해져갔다.
사마군이 준 일주일의 유예기간 중 사일이 흘렀을 때 처음으로 종남파에서 이탈한 자들이 생겨났다.
[군룡세가가 밤 사이 종남파를 떠났다.]
[팽가도 종남파를 떠났다.]
날이 밝아오자 종남파에 모인 무림맹의 인원들은 초상집이 되었다. 이탈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는 건 모두가 짐작했지만 실제로 이탈이 시작되자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림과 무당이 나서서 내부 단속에 나섰지만 그 다음 날엔 더욱 많은 문파들이 이탈했다.
[구양세가, 염천문, 오월검보 그리고 월성문이 종남을 빠져나갔다.]
날이 지날수록 종남파에 모여있는 자들의 이탈은 가속화 되었고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많은 수의 문파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소림과 무당, 종남에서 모두를 설득하고 종용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사마군이 약속한 일주일 중 하루가 남았을 때는 이미 절반 이상의 문파가 빠져나간 후였다.
종남파 대회의실
“이제 이 사태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미 이탈한 문파의 수가 현재 남은 수를 뛰어넘었습니다. 돌아간 문파들은 하나같이 봉문을 자처하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누구의 출입도 받아주지 않고 있어요.”
당가의 가주 당우범은 모두를 향해 답답한 듯 말을 토해내었다. 이미 종남파에 남은 무림맹의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고 그나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이탈은 팽가 외엔 없다는 게 위안이었다.
하지만 중소방파들 대부분이 빠져나가면서 현재 남은 문파들도 언제 이탈할지 모르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당 가주의 말처럼 현재 이탈한 문파들은 하나같이 불마사에 대한 항복 선언을 하고 봉문을 한 상황입니다. 현재 이곳에 남은 인원만으로 불마사의 정예들과 싸우는 것은 무리입니다.”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석이 당우범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도 이미 팽가의 이탈로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팽가는 현재 다른 문파와 달리 세가의 가주가 갑작스럽게 죽어 상중(喪中)이라는 핑계를 대며 모두 철수한 모양새긴 했지만 현 무림상황에서 팽가의 행동은 불마사에게 항복을 하는 모양새였다.
“이제 불마사가 약속한 일주일이 내일이면 끝이 납니다. 당장 내일부터 결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절반이 넘는 이들이 이탈이라니 그것도 무림의 위기에 제 한 몸 자기 문파만 살겠다고 빠져나가는 꼴이라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곤륜의 현보진인은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는 침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희도 이제 현실적인 일을 논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목소리를 낸 방향을 보았는데 그곳엔 화산의 장문인 관운경이 있었다. 그가 말하자 상석의 맹주인 강유와 무당의 현월자, 현우자 그리고 소림의 혜원대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관 장문인 무슨 말이시오? 현실적인 일이라니?”
현우자가 관운경에게 물었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무림맹의 상황으로 불마사와 싸워 이겨낼 수 있습니까?”
관운경의 힘이 실린 목소리에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결과를 예상하듯 지금 무림맹의 인원으로 싸운다면 참패 할 것이 뻔했다.
“관 장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요? 본론을 말하시오.”
관운경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질문에 화가 난 당우범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이미 사천당가의 본가가 무너지고 후퇴한 지금 안 그래도 지금의 상황에 짜증만 났던 그로서는 관운경의 뜬구름 잡는 문답에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
“흐음... 당 가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본론을 이야기하지요. 이미 이곳에 모였던 무림인들 중 종남파를 떠난 문파의 수가 크고 작은 문파 모두를 합쳐 사십이 넘습니다. 이곳에 남은 문파의 수는 사십이 채 안 되지요. 그들이 빠져나가기 전 모두 힘을 합쳤어도 불마사와의 일전을 장담하지 못할 것인데 이렇게 사분오열(四分五裂) 된 지금은 더욱 그들과 맞서기 힘듭니다.”
관운경은 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모두를 살피곤 다시 입을 열었다.
“불마사와 싸워 마지막 무림의 의지를 보이는 것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저희가 이길 확률은 높게 쳐도 일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검성과 약선께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말이죠.”
“관 장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뭡니까? 우리가 항복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요?”
관운경의 말에 당우범이 다시 한 번 신경실적으로 말했고 모두 시선이 관운경으로 향했다.
“그렇습니다.”
“관운경! 네 이놈! 고작 하고자하는 말이 그거였더냐?”
관운경의 대답과 함께 태산파(泰山派)의 장문인 등호림이 불호령을 쏟아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울리지 않은 네놈이 그 자리에 앉아 화산파의 영명(令名)을 더럽히는구나. 아무리 지금 상황이 불리하다 한들 어찌 그 입으로 항복을 입에 담느냐?”
세수 칠십이 다된 등호림이었지만 그의 풍채는 젊은 시절 태산의 대호라 불렸던 만큼 정정해보였다. 등호림과 관운경의 사이는 무림에서 안 좋기로 유명했는데 등호림의 둘째 아들이 화산의 검에 매료되어 화산파의 제자로 들어가 화산파의 대제자가 되어 관운경과 함께 화산칠수의 수좌로 차기 장문인이 유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화산칠수가 하나같이 다 사고로 죽고 가장 막내였던 관운경이 장문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무림은 관운경이 자기 사형들을 모두 사고로 위장해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리까지 돌았다.
그런 소문을 믿는 인물 중 하나가 등호림이었고 관운경이 장문인에 취임하던 자리에 직접 찾아가 난장판을 벌였던 인물이 등호림이었다. 그렇기에 화산과 태산파는 서로 그 후 앙숙이 되었고 제자들이 만나면 싸우기로 유명했다.
“등 장문인은 여전히 정정하시군요. 이제 그 정도로 늙으셨으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뭣이?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인가?”
등호림의 호통에 관운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등호림을 자극했다. 결국 참지 못한 등호림이 자리를 박차고 관운경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자신의 목에 닿은 검으로 인해 행동을 멈추어야했다.
“등 장문인. 자중하시오. 이 자리는 각 대표들이 모여 향후 무림의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개인사를 혼돈하여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등호림의 목에 닿은 검의 주인은 화산의 장로인 구관호였다. 관운경의 뒤에 서있던 그는 등호림이 관운경을 향해 움직이려하자 어느새 다가와 그를 제압해버린 것이었다.
등호림도 한때 무림의 강자였지만 화산의 최고수이자 환우십강의 일인인 구관호를 당해내긴 힘들었다.
콰광-
파스슥-
“모두 정숙하시오.”
현월자가 참지 못하고 원탁을 내리치자 바스러졌고 그의 말 한마디에 구관호도 검을 갈무리하였고 등호림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곳이 어떠한 자리인지 잊지 마시오. 감히 이 자리에서 검을 뽑아들다니 애초에 무기를 휴대하는 것조차 허락한 바가 없을 텐데?”
현월자는 구관호와 관운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을 질책하듯 말했다. 기세 좋게 움직였던 구관호였지만 현월자 앞에선 범 앞의 강아지 마냥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월자는 자신의 무공을 갈고닦기 위해 오랜 시간 비무행을 다녔는데 화산파에 들렀을 때 겨루었던 자가 바로 구관호였다. 구관호의 낙승을 다들 예상하였지만 한참 젊은 현월자가 오십여합을 겨루기도 전에 구관호의 검을 부러뜨리며 승리했고 그 당시 무림에 크게 알려져 안 그래도 떨어진 화산의 평가를 더욱 떨어뜨리게 만든 사건이었다.
“현월자께선 이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구 장로는 제가 위협을 당하자 나선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막대하신다면 저희 또한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겁니다.”
관운경의 말에 현월자는 물론 모여 있는 모두의 인상이 구겨졌다. 차분한 말투로 말했지만 관운경의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문파 중 소림과 무당을 제외하면 화산의 수가 가장 많았고 그들이 떠난다면 지금도 어렵지만 아예 싸울 의지마저 꺾는 일이었다.
현월자의 불같은 성정을 알았기에 그의 사형인 현우자가 미리 나서 그를 붙잡았고 현월자는 현우자에 의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관 장문인께는 사제를 대신해 제가 사과를 드리지요. 화산 역시 이번 일에 잘못이 있으니 이만하고 넘어가 주시지요. 그리고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주시지요. 대략 우리가 항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는데 제가 잘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현우자의 말투는 정중했으나 노기가 섞여있어 모두 현우자가 화가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말은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워 본들 깨질 것이 명약관화한데 굳이 싸워 모두를 희생할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입니다.”
관운경이 재차 의견을 내놓자 회의장의 인물들은 저마다 웅성거리며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무림맹주 강유는 눈을 감았다.
‘어찌 이리 그분의 예상대로 흘러간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