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정화(淨化)(1)
전대 활불이 벌인 혈사는 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처절한 기록이었다. 서장의 불마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통합된 여러 종파들이 무림으로 진군하는 그 모습은 무림의 큰 재앙이었다.
활불의 무위 앞에 무림맹주는 물론 정파의 절정 고수들이 무릎을 꿇었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불마사가 지나간 자리에 모든 문파가 멸문했고 많은 무공비급을 강탈당했었다.
그렇게 무림을 유린하던 활불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오만했다.
그는 무당산에서 무당의 장문인과 장로들을 홀로 상대했는데 그 싸움에서 무당의 장문인과 장로들은 활불과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각오로 자신들을 희생하여 활불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 치명상으로 인해 활불은 생사의 기로에 섰고 활불이 힘을 잃자 거짓말처럼 불마사는 와해되었다. 여러 종파가 활불의 이름아래 모였던 만큼 결속력이 강하지 못했고 활불이 생사기로에 서자 대업의 코 앞에서 종파간의 내분이 벌어진 것이었다.
각 종파마다 우두머리가 되면 무림정복의 대업을 자신의 이름아래 할 수 있다는 욕심이 모든 일을 그르쳤고 서로 분란을 일으키던 불마사는 활불이 죽고 사기가 오른 무림맹의 공세에 패퇴하여 서장으로 다시 물러나야했다.
천통자가 기록에서 확인한 활불의 강함은 오절 그 이상이었다. 그가 방심하지 않고 무당의 장문인과 장로를 상대했다면 현재 무림은 불마사의 발아래 놓여있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검성께선 강자와 싸우고 싶은 욕구가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활불은 검성의 좋은 상대가 되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천통자는 검성이 늘 고독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것을 자극하는 말을 했고 그만큼 검성이 이번 일에 나서주기를 바랬다.
“활불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전대 활불의 실력은 오절보다 우위였다 생각합니다...”
천통자는 말을 하며 검성을 눈치를 살폈다. 괜히 기분나빠할 수 있는 부분이라 눈치를 보았지만 검성이 따로 내색치 않자 말을 이어나갔다.
“활불은 자신의 힘을 과신하기 위해 거의 모든 문파를 자신 혼자 무너뜨렸습니다. 누구하나 그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죠. 무당에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무당을 얕잡아보다가 당하긴 했지만 그가 제대로 상대했다면 무당도 그가 혼자 쓰러뜨렸을 겁니다. 그런 자의 유지를 잇고 실력을 잇는 활불이라면 분명 검성의 지금 상대가 되는데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흥미가 동하는 듯 한 표정을 보였고 천통자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검성이 이번 일에 무조건 반응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마음이 동하기는 하는군.”
검성은 심드렁한 얼굴로 천통자를 보며 말했고 천통자는 욕이 한바가지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이미 가기로 마음 먹어놓고 나보고 판을 더 깔아라는 건가? 능구렁이 같은 늙으니...’
자신보다 한참 어린 모습으로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검성을 보자니 천통자는 배알이 꼴렸으나 참고 또 참았다.
세인들의 이야기와 달리 검성이 진천문과의 인연으로 불마사 일에 관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미 보고를 들은 상황이었다. 검성과 이윤후에겐 비천의 은위단들이 늘 수십이 따라다니고 있었고 검성과 묵령의 죽음에서 벌어진 대화도 이미 알고 있었다.
‘보고를 듣고 검성이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달라졌음에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여전히 제자바보인 늙은 능구렁이였고 바뀌었다한들 그건 뭐 우리에게는 좋은 결과로 흘러갔으니 좋게 생각해야겠지.’
천통자는 검성의 변화가 조금은 신경 쓰이긴 했다. 의와 협을 중시하는 검성이 진천문의 묵령에게 진천문의 혈사에 관한 모든 내용을 듣고도 그를 죽인 것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있습니다.”
“무엇이지?”
“흑월도존의 회복이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저희 비천에서 만독문의 모든 것을 압수하여 살펴보았는데 도존이 중독된 독의 배합에 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것과 거래를 하자고 하는 건 아닐 테지?”
“그럴리가요...”
검성의 기도가 달라지자 천통자는 화급히 부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찌 검성에게 이런 거래를 제안하겠습니까. 그저 기쁜 소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저희가 검성을 위해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만... 알아 주십시오.”
천통자는 말을 하고 검성의 기분을 살폈고 압박이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독의 배합과 종류를 알았다면 애령이 해독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네. 이미 약선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내용을 전했습니다.”
“잘했군. 수고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만독곡을 정리하신 것도 검성이 하신 일이니 저희야 남은 뒤처리를 한 것뿐인데요.”
검성이 웃으며 말하자 천통자는 다행이라 여기며 답했다.
“그럼 불마사의 일을 이야기해보지. 현재 그쪽으로 붙으려는 세력이 보인다고 했지?”
“네. 그 수가 제법 적지 않습니다. 불마사에서 언급한 문파가 곤륜 무당 화산 개방 종남 다섯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멸문하지 않은 문파들이죠. 곤륜 역시 본산이 무너지긴 했지만 인원들은 모두 살려 후퇴하였기에 세력은 여전하고요.”
“불마사에서 일부로 이미 멸문한 문파들은 언급하지 않고 세력이 강한 구파일방의 세력만 골라 일부로 언급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상 봉황금시 사건에 연류 된 무림 세력은 제가 알기로는 구파일방 과 오대세가의 크고 작은 방파들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반대로 봉황금시만을 욕심내고 진천문의 혈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곳도 있긴 하지만 사마군과 사마령은 그저 모든 무림인들을 향해 복수를 하기 원하는 듯 합니다.”
“그렇겠지. 혈족 모두가 죽었고 하루아침에 세력이 무너지고 자신들은 쫓김을 당하며 지옥을 맛보았다고 했으니 말이야.”
검성은 충분히 사마군과 사마령의 아픔을 공감했다.
“네. 저도 기록을 보니... 뭐 충분히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마군과 사마령이 무림 전체에 대한 복수를 원하지만 굳이 다섯의 문파를 언급하고 나머지는 항복을 종용한 이유는 말씀드렸지만 무림 내부의 분열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균열은 시작되었고요.”
“현재 불마사에 붙으려고 하는 세력들의 수는?”
“언급된 다섯 문파를 제외한 오할의 세력들이 고민을 하는 듯 하고 가장 앞장 서 있는 곳은 군룡세가, 팽가, 구양세가, 염천문, 오월검보 등 세가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뜻을 설득하고 있는 듯 합니다.”
“팽가의 가주는 죽었는데 누가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지?”
검성은 팽우산의 일로 팽가에 가서 가주의 죽음을 직접 보았기에 궁금하여 물었다.
“팽한묵이라고 팽가의 장로입니다. 죽은 팽가주의 사람으로 아마 그의 뜻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군. 자신의 안위만 걱정할 만한 녀석이니 말이야.”
검성은 오대세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팽가의 참여가 조금 놀랍긴 했지만 천통자의 말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 기회에 그들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어때?”
“네? 그게 무슨...? 설마...?”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놀라 물었고 검성의 말의 진의를 파악한 이윤후와 은정연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불마사에 항복을 원하는 문파들을 그냥 항복하도록 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번 기회에 모두 솎아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허울뿐인 정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녀석들을 말이야.”
검성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고 천통자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수가 적지 않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들이 모두 돌아선다면 정파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아무리 검성이 가세한다고 한들 수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내가 합류하여 그들이 잠잠해진다고 한들 그들을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이미 그들은 직접적으로 돌아서지만 않았지 이미 포섭이 완료된 자들일 수도 있을 텐데. 불마사와 대치중에 그들이 내부에서 배신을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나?”
“그것은...?”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말문이 막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검성의 말처럼 이미 그들이 포섭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고 정말 검성의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이 불마사로 넘어가는 것을 둔다면 남은 다른 세력들까지도 흔들릴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들도 솎아내야겠지.”
검성의 차가운 말에 천통자는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검성은 이번 기회에 무림의 정화를 원하는 것인가? 정말로 검성의 말처럼 불마사로 붙을 세력들을 제외한다면 무림을 생각하는 세력들만 남게 되겠지. 아무리 그렇다한들... 많게는 오할 이상의 세력들이 넘어 갈수도 있는 상황인데...’
천통자는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검성의 말도 일리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검성의 말처럼 한다면 희생이 너무 컸다. 불마사를 막아낸다 한들 그 후 무림은 제대로 바로 설 수 있을까도 걱정해야했다.
천통자가 고민하느라 말이 없자 검성은 그런 그를 보며 쓴 웃음을 금치 못했다.
“하나만 더 묻자.”
“네?”
천통자는 고민하다가 검성의 물음에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화산은 믿을 만한가?”
“화산이요? 어떤 것을 물으시는지 모르겠으나... 현 화산의 장문인은 사형제들에 비해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여서 다들 걱정했지만 화산을 다시 일으키는 데는 그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그가 장문인이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새로운 화산의 인재를 키우는 일이었는데 화산의 영약과 비급을 모두 파격적으로 지원하여 현재 화산의 주축들을 키워내었죠. 현재 화산은 다들 평가하기로는 구파일방의 말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소림과 무당 다음이 화산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믿을 만하냐는 것이다.”
검성은 천통자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재차 물었다.
“불마사도 화산을 제거해야 될 문파로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무언가 걸리시는 게 있습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이유 없이 화산에 대해 묻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지만 자신도 화산에 대해 딱히 아는 것은 많지 않았고 수상한 점은 없었다.
“내가 일전에 화산의 한 녀석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석이 마음에 걸리는군.”
“누구를 말씀하십니까?”
“사마천.”
“사마천이면 철혈검이라 불리는 화산의 일대제자 아닙니까? 일대제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무공도 뛰어나 다음 화산의 장문인이 될 거라 예상되는 인물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사마천을 거론하는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