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두 번째 제자
소주 의천문(義天門).
무림과 불마사와의 일전을 앞둔 폭풍전야의 상황에서도 소주만은 평화로웠다. 검성과 제자 이윤후가 만독곡을 멸문시킨 것이 알려지면서 의천문에 축하사절과 감사인사를 하기 위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만독곡에 당했던 문파가 워낙 많기도 했고 관에서도 골치였던 만독곡이었기에 황실에서도 하사품을 내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의천문 검성의 거처.
검성이 도착하고 하루가 지났을 때 천통자가 문에 돌아왔고 은한과 함께 검성을 만나 뵙길 청했다.
“무슨 일이지? 넌 다른 볼일은 다 처리하고 온 건가?”
검성은 천통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잠시 본회에서 복귀령이 떨어져 다녀왔습니다.”
“난 또 무슨 심각한 일이 또 생기나 했더니 별 일은 아니었나 보구나.”
검성은 천통자가 자신의 옆에서 모든 정보를 보고하고 의천문의 일을 즐기고 있었기에 웬만한 일로는 자리를 비웠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 그런가했는데 비천에 복귀했다가 돌아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보다 사안이 심각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별일이 아닌 건 아니고... 차후에 좀 더 정보가 모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은 보고하기에 정보가 너무 적어서요.”
천통자의 말에 검성의 눈빛이 바뀌었고 천통자는 움찔했으나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리려했다.
‘뭔가 숨기고 있군.’
검성은 천통자가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알았지만 천통자를 그래도 신뢰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일부로 속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내가 너를 믿고 있음을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 역시 본회에 속해있는 몸이지만 검성이 맡겨주신 직책과 소임을 잘 수행하고 검성의 믿음을 보답하려 하고 있습니다.”
검성의 한마디가 주는 의미를 잘 알았던 천통자는 놀라서 변명하듯 말했고 검성의 얼굴에 미소가 걸치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부로 숨기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가 아직 정확치 않아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기다리마.”
검성의 한마디에 천통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웃음을 알고는 머리를 긁었다.
‘이거 내가 검성의 사람이 다된 것인가... 검성이 날 믿고 기다린다는 말에 이렇게 기쁘다니...’
무림에서 그는 잡학이 능한 무당의 파문제자로 꾸며진 신분이었지만 그가 잡학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머리가 비상했던 천통자는 운이 좋게도 비천의 장로의 눈에 들어 비천에 몸을 담았다.
그 후 그는 자신이 그렇게 바랐던 공부를 원 없이 할 수 있었고 비천의 방대한 지식과 문서들을 공부하며 자신의 배움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가 비천 내부에서 출세를 하고자 했던 이유도 더 많은 문서와 정보를 알고 싶은 그의 욕심에 있었다. 하지만 검성을 만나고 의천문의 일을 하면서 그는 이렇게 의천문의 일을 하면서 검성의 인정을 받고 이윤후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꽤 괜찮을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는 왜 그리 안절부절 하고 있느냐?”
검성은 은한이 자신을 보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물었다.
“이야기 드릴 것이... 있는데 이게 제가 이야기를 드리기가 애매해서요.”
“무엇이기에? 그리고 넌 비천에서 아예 쫓겨났다면서 왜 아직 남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
검성은 은한이 아직도 어설픈 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 이게 버릇이 되다보니.”
“이제 비천을 떠나게 되었으니 너도 여자로서의 삶을 살거라. 대외적으로는 너도 나의 제자인 것으로 하지.”
“제자요? 제가요?”
은한은 검성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싫으냐? 너와 인연도 있고 네가 이곳에서 자리 잡으려면 그 정도 자리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분합니다. 검성의 제자라 알려지면 전 무림의 주목을 받을 텐데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않느냐? 네가 좀 자유롭게 무림의 일에 관여하기도 좋을 테고 어차피 넌 이제 의천문에 속한 몸이니 내말을 듣거라.”
“회주도 좋아하실 겁니다. 회주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대를 회에서 내쫓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받아들이시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성...아니 사부님.”
천통자의 말에 은한은 더는 거부하지 못하고 검성의 말을 받아들였다. 은한은 바로 검성에게 구배지례를 올리고 제자로서의 예를 다했다.
“연이는 일어나거라. 그리고 윤후 넌 사매(師妹)가 생겼는데 어떠하냐?”
“저는 좋습니다. 저는 형만 있어서 제가 막내였는데 이제 동생이 생긴 것이니 말입니다.”
검성의 물음에 이윤후는 웃으며 답했다. 천통자는 혹여나 검성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윤후가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윤후의 기분이 좋아보이자 안심했다.
은한이 비천을 떠난 인물이긴 하나 회주의 딸이기도 했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연이 넌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말해보아라.”
검성은 은한의 본명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진명을 부르고 있었고 은정연도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것이 어색했으나 적응해야했기에 따로 말을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림맹에서 연통이 왔습니다.”
“무림맹에서? 보나마나 뻔한 내용이겠구나.”
“네. 뻔한 내용이긴 한데 검성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개방의 방주이신 소천개가 저에게 요청을 해왔습니다.”
은정연은 조금 곤란한 듯 말을 꺼냈다. 소천개는 자신이 비천 소속임을 아는 무림인들 중 하나로 어떠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요청을 해왔는지는 알았지만 검성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엔 자신의 영향력이 적었다.
결국 의중파악도 검성에게 직접 물어야했고 그렇기에 사실대로 말하고 검성의 의중을 파악하기로 마음먹은 은정연이었다.
“검성께서도 아시겠지만 불마사의 활불이 무림에 선언한 이후 무림은 양분(兩分)되고 있습니다.”
“활불이라는 사마군이란 아이가 복수대상으로 말했던 문파들 외에 항복 문파들은 살려주겠다는 그것 말이냐?”
은정연이 아닌 천통자가 거들고 나섰고 검성 또한 이미 의천문에 도착하자마자 보고를 받았기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네. 무림맹에서는 활불의 선전포고에 들어간 문파와 아닌 문파 간의 입장 차이가 있어 분란이 있는 듯 합니다.”
“우습구나. 마치 남궁세가의 지원을 놓고 분열하던 무림맹과 다르지 않아. 어찌 변하는 것이 없을까?”
검성은 말하며 허탈한 듯 웃었고 그의 말에 천통자도 은정연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성의 말처럼 정파는 남궁세가의 지원을 놓고도 지척에 있는 문파들과 아닌 문파들 간의 입장 차로 인해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는데 지금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마군과 사마령 두 아이의 무림에 대한 원한이 깊어 보이던데 무림의 모든 문파를 궤멸시키고 발아래 두려 할 텐데 항복하면 무사히 두겠다는 말을 믿는 문파가 있단 말이냐?”
“사람들은 위기가 오면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니까요. 활불이 단신으로 공동파를 멸문시키면서 그의 무서움을 모든 무림이 알았고 그 후 선전포고가 이어졌으니... 그 선언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문파들은 항복을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렇게 자리를 보전하고 목숨을 구하고 싶을 테고요.”
천통자는 무림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다들 공명정대하고 의와 협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 같은 정파들이 자신의 문파와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스스로 무릎 꿇는 이 상황은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어리석군. 여전히 말이야.”
“불마사의 작전을 담당하는 사마령이라는 여인의 지모가 보통은 아닌 듯 합니다. 이미 무림의 몇몇 사건에 그녀가 깊이 개입돼있음은 알았지만 이번 일도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공동파를 단신으로 무너뜨린 활불을 무림에 알리고 이어진 선전포고 그리고 정파의 분열까지요. 모두 그녀의 계획일 겁니다.”
천통자는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이미 실패한 일이었지만 환영신마가 도후를 일부러 죽이도록 하여 화풍곡의 분노를 사왕련으로 돌려 정사간의 분란을 일으키려했던 것도 그녀의 지모임을 확인했었다.
“무림맹은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검성은 은정연을 보며 물었다.
“직접적인 참여를 최우선으로 바라고 있고 불가능하다면 이전처럼 이름이라도 빌려줄 것을 청해 달라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양해해달라고 했고요.”
“이름을 빌려 달라? 내가 무림맹으로 간다는 정도만 소문을 내도 현재 분란이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마 진천문의 봉황금시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검성께서 연관되어 있으니 그들도 검성에게 대놓고 요청하기 힘들어서 그렇겠죠. 현재 세인들도 모두 진천문의 멸문 내막을 알게 되면서 검성이 무림맹을 버리는 것이 아닌 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통자의 말처럼 활불의 선언으로 인해 진천문 멸화에 관련되었던 봉황금시 사건이 꾸며진 일이었고 거의 모든 무림인들이 거짓 소문이었던 환우삼성의 무공에 눈이 멀어 진천문의 멸문에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아마 무림맹의 수뇌부는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전력이탈을 막고자 검성의 이름이라도 빌렸으면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현재 누구 하나라도 이탈하여 불마사에 항복한다면 다음은 우후죽순 이탈 할 테니까요.”
“여전히 정파의 결속이 엉망인가보군.”
“우금의 무림맹과 전 무림간의 관계를 끊어 놓은 게 단기간에 회복되진 않겠죠. 결국 우금을 뒤에서 조종한 것도 불마사이니 그들이 원하는 그림인 셈이죠.”
천통자는 전대 무림맹주였던 우금을 떠올리며 분노가 치솟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무림맹주가 된 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 명문대파들을 무림맹의 요직에서 축출했고 그 반발로 인해 많은 문파들은 무림맹과 결속이 약해져있었다.
남궁인이 임시맹주로서 노력했고 현재 강유가 맹주가 되면서 각 문파들에 자리를 내어주며 달래는 식으로 봉합되었지만 여전히 정파들은 무림 전체를 보기보단 자신들의 문파 자기 한 몸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너는 당연히 내가 무림맹을 도왔으면 하겠지?”
“물론입니다. 검성께서 이름만 빌려주신다면 뭐 당장은 정파들이 이탈하지 않겠지만 결국 결전이 벌어진다면 발을 빼는 자들이 생길게 분명합니다.”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바로 답했고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검성이 지금까지 결국 모든 일에 참여한 것은 이윤후를 위함임을 천통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검성이 정말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천통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현 활불이 전대 활불만큼 실력을 가졌다면 현 무림에 누구도 그와 대적할 자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래도 검성이라면...’
천통자는 활불의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은 현 무림에 검성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무조건 그를 설득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