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계망(計網)에 빠진 무림맹
만독곡의 붕괴(崩壞).
사패의 한 곳으로 오랜 기간 무림을 괴롭혔던 한 축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무림은 기뻐했다. 만독곡주가 그간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행한 만행이 알려지면서 그 사실에 모두가 분노했고 검성이 그런 만독곡주를 처단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무림에 기쁜 소식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불마사의 본격적인 진군에 종남파가 있는 종남산에 모든 힘을 집중했던 무림맹은 그 사이 공동파가 불마사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불마사의 전력이 종남파와 대치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불마사의 활불이 단독으로 공동파에 나타나 공동파를 모두 멸문지화에 빠뜨렸다. 공동파의 살아남은 자들은 활불의 무위를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했고 그를 이전 활불의 현신이라고 칭하며 두려워했다.
전대 활불이 무림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었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활불의 현신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공동파 역시 전대 활불의 혈겁 때 큰 피해를 보았던 곳이기에 그 말의 의미는 무림에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런 활불이 무림에 선전포고를 하며 그것으로 인해 무림은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전대 활불의 유지(遺旨)를 이어받은 이대 활불로 무림에 고(考) 한다. 나는 진천문의 후계자였던 사마군이라 한다. 진천문은 무림의 놈들이 고의적으로 봉황금시라는 있지도 않은 것을 뒤집어씌워 멸문시킨 문파로 나는 진천문의 복수를 위해 무림을 불마사의 기치아래 무릎 꿇릴 것이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나를 쫓아오던 도사놈들과 거지놈들 그리고 명문대파라고 불리던 놈들을 기억한다. 곤륜 무당 개방 화산 그리고 종남파 그들 외에 다른 곳은 항복을 하고 불마사의 기치 아래 무릎을 꿇는다면 살려줄 것이다. 기한은 일주일. 이후 불마사는 종남을 시작으로 무림의 모든 것을 파괴 할 것이다.”
자신을 활불이라 밝힌 사마군의 선전포고에 무림은 그의 말에 대한 사실여부와 그가 언급한 문파들 외는 살려준다는 것에 의해 혼란이 야기되었는데 언급된 문파와 언급되지 않은 문파간의 입장차가 존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봉황금시 사건이 거짓이라고 제기되면서 그 당시 무림맹에서 진천문의 일에 관여한 문파가 누구이냐의 책임여부까지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무림은 무림맹 결속 자체에서 균열이가고 있었다.
종남파(終南派).
구파일방의 한 곳으로 무림맹이 있는 서안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많은 발전을 이루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문파였다. 대대로 무림맹의 권력과 가까웠고 현재 무림맹에서도 중요 요직에는 많은 종남파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무림맹의 마지막 방어선이 종남파에 집중되면서 종남파는 무림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고 종남파도 모든 제자들에게 본산 복귀를 명하며 마지막 일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종남파의 대회의실.
무림맹의 인물들과 종남파의 장문인 그리고 장로들이 참여해 긴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공동파가 무너지고 모두의 동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활불의 선언... 그것으로 인해 더욱 말입니다.”
말을 꺼낸 이는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석이었다.
“흐음... 그건 그렇고 검성에게 진천문의 일을 물어본다는 것은 어찌되었습니까? 정말 검성께서 진천문의 무공을 보완해주신 것이 맞습니까?”
이번에 나선 이는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우범이었다. 그는 사천당가가 위험해지자 본가를 버리고 전원 후퇴하면서 현재 당가의 고수 대부분과 함께 종남파에 머물고 있었다.
“검성이 만독곡으로 떠난 뒤 현재 연락이 닿고 있지 않아 정확히 묻진 못했으나... 무림맹의 당시 기록과 당사자들을 추궁한 결과 봉황금시 사건 자체가 거짓인 듯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희 개방도 그 일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요.”
당우범의 물음에 개방의 방주인 소천개가 답했다. 소천개 역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 논란이 되고 개방이 언급되자 바로 홍아를 통해 알아보았고 개방이 이번 일에 개입되어있음을 알고 크게 절망했다.
“개방의 정보를 보면 진천문은 환우삼성(寰宇三聖) 중 일인인 비뢰검제(飛雷劍帝)의 친우가 세운 문파로 무공 자체도 비슷하였던 거 같습니다. 검성이 기연으로 비뢰검제의 무공을 얻으며 우연히 방문한 진천문의 무공이 자신의 무공과 비슷한 것을 알고 진천문의 무공을 보완해주었고 그로 인해 당시 진천문주의 실력이 급상승하며 세력도 커졌던 거 같습니다.”
“그 다음은 뻔 한 일이군요. 알려진 대로 진천문의 세력이 커지자 그들을 시기했던 자들이 봉황금시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진천문이 환우삼성의 비급을 독점하고 무림을 기만한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그에 놀아난 모두가 진천문을 멸문시키고 있지도 않은 환우삼성의 비급을 찾아 진천문을 괴롭힌 것이군요.”
소천개의 말을 받은 이는 화산의 장문인 관운경이었다. 화산도 사마군에게 언급된 문파였기에 그도 모든 사실을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천개와 관운경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모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문파의 주도로 벌어진 일이긴 하나 무림맹이 진천문의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고 그 일로 인해 현재의 무림이 큰 위기를 자초했다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검성의 확인까지도 필요 없는 일이군요. 도대체 이일을 어쩔 것이요.”
군룡세가의 가주인 담영진이 일어나 소리쳤고 그는 개방과 무당 그리고 화산 등 사마군이 언급한 문파들의 인물을 차례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이미 종남파에 모인 문파들 사이에도 사마군이 언급한 문파와 아닌 문파들의 입장 차가 존재하고 있었고 모이면 모두들 그 이야기들을 하는 탓에 크고 작은 싸움도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수장들의 회의에서조차 그런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자 상석에 앉아있던 무림맹주 강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해원 대사께서 회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 될 것이라 이야기 해주셨지만 난감하군. 위급한 일이 코앞에 닥쳐있건만 다들 책임소재만을 따지다니...’
강유는 이미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소림의 혜원 대사에게 회의에서 누군가는 책임 소재를 따지고 사마군이 언급한 문파와 아닌 문파들 간의 입장 차로 인해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듣고 들어왔지만 그대로 흘러가자 무림에 대한 환멸감이 들었다.
천상검공이라는 칭호를 받고 검만 보고 살아왔던 그였지만 욕심이 많지 않아 세력을 만들지 않고 초야에서 검만 공부한 채 살았다. 검성을 존경하고 검성의 길을 쫓던 그였기에 검성처럼 살고자했지만 무림의 위기에 소림과 무당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 채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그는 무림에 대한 환멸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검성이 정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깊이 개입하려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군. 검성께서도 젊었을 적 이런 자들에 의해 휘둘리셨겠지...’
강유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설전을 벌이며 싸우는 정파의 수장들을 보니 한심함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사마군이 모든 무림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 텐데 그가 말한 문파 외엔 항복하면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은 모습이 한심해보였다.
“담 가주께서는 불마사에 우리가 항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설전이 벌어지자 듣고만 있던 소림의 혜원대사가 일어나 담영진을 보며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봉황금시에 관련된 문파들로 일어난 일이니 그들의 책임은 확실히 물어야 된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담영진은 해원대사의 말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그 모습에 해원대사는 난감함을 표했다.
‘우리...? 이미 다른 수장들과 입을 맞추었다는 소리인가?’
해원대사는 담영진의 발언이 계획된 발언이었음을 눈치 채었다. 이미 알게 모르게 사마군의 선전포고 이후 무림맹은 분열되고 있었고 소림과 무당이 주도하여 무림맹을 견고하게 다시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마군의 한마디에 다시 분열되어 분쟁하고 있었다.
‘정파의 결속이 이리 약해져 있었던가... 검성이 그렇게도 우리들에게 환멸을 느낄만하구나...’
해원대사는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회의장의 모두를 둘러보자 자신의 눈을 피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담영진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임을 알았다. 그 수가 적지 않았기에 더욱 혜원대사는 안타까웠다.
“책임을 묻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거론된 문파들을 불마사에게 받치겠다는 소리입니까?”
곤륜의 장문인 현보진인이 참다못해 나섰고 그도 곤륜산을 버리고 무림맹에 몸을 의탁하여 이곳에 와있었다.
“사마군이 활불이 되었다고 하나 무림인 아닙니까? 그가 원하는 것은 복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면 모두가 공멸(共滅) 할 수 있는 이 싸움을 멈출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팽가의 장로인 팽한묵이 이번에 나섰고 그의 발언에 여럿이 찬동하며 나섰다.
“근본이 무림인인데 새외세력이 된 것도 그 원한이 아닙니까? 그 원한을 풀어준다면 해결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콰광-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현월자가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탁자가 바스러지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정말 그렇게들 생각하시는 겁니까?”
차가운 현월자의 물음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현재 모여 있는 무림맹의 인원들 중에 가장 강자이기도 했고 무당에서도 가장 무에 대한 탐구심이 강해 수많은 무림 인사들과 겨루며 모두의 인정을 받은 무당의 최고수였다.
“정말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현월자는 자신의 물음에 누구도 나서지 않자 재차 물었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것이 저들의 계략임을 모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것입니까? 사마군은 이미 뼛속까지 무림에 원한이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미 무림맹과 개방의 정보로 파악된 것은 사마군이 언급한 문파들 외에 거의 모든 문파들이 봉황금시 사건에 개입 돼 있었습니다. 환우삼성의 무공인데 누구하나 빠졌을 리가 없지요.”
현월자는 팽한묵과 담영진 등을 보며 말했다. 팽가와 담가 역시 이 일에 연관되어 있었고 사마군의 언급에만 들어가지 않았다.
“일부로 전부를 언급하지 않고 몇몇의 문파를 언급하여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계략이 분명한데 어찌 이런 위기 속에 분열을 획책한다는 말이요. 담가의 가주인 담영성 그리고 팽가의 장로인 팽한묵 당신들을 저들이 정말 살려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오?”
현월자가 직접 언급하며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현월자의 눈을 피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세력이 봉황금시 사건에 개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마군은 힘을 가진자요. 이미 그는 선전포고에서 전대 활불의 유지를 이었다고 한 이상 무림에 평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어찌 자신들이 무사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런 분란을 야기하는 것인지 정말 한심하군.”
현월자의 맹렬한 질타에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회의는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되었고 무림맹의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진 채 마감이 되어 모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