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이윤후의 진심
“언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화풍곡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어요.”
“모든 것을?”
약선의 말에 검성은 조금 놀라며 물었다. 약선이 말하는 모든 것은 아마 십인회를 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라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네. 제자에게도 너무 짐이기도 하고 이미 검성, 당신이 돌아와 세력을 만든 마당에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렇군. 하지만 이미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조직인데 가영이 해산하고 싶다고 그게 해산이 될까? 누군가 욕심을 낼 텐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일단 언니의 뜻은 그렇다고 했어요. 자신의 어린 제자에게 너무 가혹한 짐을 오래 지게 했다고 후회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도후는 화풍곡에서 제명당한 것으로 아는데 화풍곡에서 그녀를 받아준 건가?”
“도후의 무공은 욕심이 날만 하니까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기도하고 그리고 언니가 환영신마의 기습을 받은 것을 알고 직접 무림에 나왔던 화풍곡이니까요. 애초에 화풍곡과 갈등도 당신으로 생긴 갈등이었으니까 해결도 쉽지 않을까요.”
“흠... 가영에겐 잘 된 일이군. 그 유형지라는 아이에게도 말이야.”
약선의 말에 검성은 멋쩍은 듯 표정을 보였다. 도후는 화풍곡의 명을 어기고 자신을 따라 무림행을 따라다녔고 검성은 당시 그녀의 도움을 크게 받았었다.
위험했던 순간 도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도 여러 번이었고 그녀가 없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들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화풍곡의 귀곡(歸谷)명령을 거부한 채 자신을 따라나섰던 것이었고 그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긴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효인이는 안 보이는군?”
검성이 불현 듯 생각 난 듯 물었지만 사실 이전부터 묻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검성은 과거 서문효인을 보고 귀여워했고 자신의 아이에 대한 생각을 품게 했던 아이였기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효인이는 지금 세가에 없어요. 안 그래도 효인이가 자주 당신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세가에 당신이 온 것을 알면 많이 아쉬워하겠어요.”
“나중에 볼 수 있겠지.”
검성은 다소 아쉬운 듯한 표정을 보였는데 그런 검성을 보며 약선도 조금 놀랐다. 최근 무언가에 욕심을 내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검성이었기에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
초검보.
만독곡의 진군에 무너졌던 초검보는 여전히 흉가의 모습이었다. 만독곡이 전진기지로 삼고 장악한 탓에 아직도 독향과 함께 정리가 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초검보에 한 인물이 나타났고 뒤이어 여러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검성을 뵙습니다.”
먼저 나타난 이는 검성이었고 뒤이어 나타난 이들은 의천문의 기명현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그간 상황은?”
“문주님과 소문주께서 독강시들을 다수 정리해주신 덕에 만독곡이 장악하고 있던 곳은 모두 다시 회수된 상황입니다. 만독곡도 더 이상 무림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비천에 부탁했던 일이 있었는데 혹시 그 일에 관한 것은 들은 것이 없나?”
“은한 이라는 자를 보았는데 직접 보고를 하겠다했습니다.”
“은한은 오지 않았나?”
“소문주와 같이 올 겁니다. 저희는 먼저 이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빼액-
기명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백아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낮게 날던 백아의 등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리며 검성 앞에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이윤후와 은한이었고 은한은 여전히 남장의 모습이었다.
“검성을 뵙습니다.”
“내가 부탁했던 일은?”
“네. 모두 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검성께서 은위대를 통해 넘겨주신 아이들은 모두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잘했군. 아이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했겠구나.”
검성의 말에 은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아이들은 그냥 납치를 당한 것이 아니었나?”
“네... 만독곡에서도 아이들을 납치하면 관에 소식이 들어가고하니 납치가 아닌 매매(賣買)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모들은 전부 아이들을 팔았고요. 물론... 아이들이 만독곡으로 가면 죽는 다는 것을 모르고 판 부모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아이들을 매매할 정도로 이쪽 지역의 사정이 어려운가? 아이의 수가 적지 않았는데...”
“사정이 어려운 하층민들은 계속 어려우니까요. 보통 팔려가는 아이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면 굶지는 않으니 오히려 자신들과 배를 곪느니 좋은 집으로 가길 빌며 팔아버린 거죠. 물론 모든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지만요... 아이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은한은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이들을 돌려받은 집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다시 팔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화가 치밀었지만 사정을 듣고는 그들을 욕하지도 못했다.
“모두의 사정을 우리가 알 수는 없는 일이지. 다른 일은?”
“검성께서 요청하신 저를 의천문에 두는 것은 회주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부로 전 의천문의 소속으로 비천과는 연이 끊어졌습니다.”
“연이 끊어졌다면 아예 의천문의 소속이 되었다는 말이냐?”
검성이 조금은 놀라 물었다. 은한을 의천문의 소속으로 보내달라고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예 보내 줄 것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네. 이 부분은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은한이 다른 사람들도 많았기에 말을 아꼈고 검성도 비천회주가 은한을 아예 비천과 연을 끊게 한 이유를 짐작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은한은 비천회주의 딸이기에 나중에 비천 내의 후계구도에서 벌어질 싸움에 은한이 휘말리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의도였을 거라 짐작했다.
“보내주신 약도를 바탕으로 만독곡의 위치를 파악해보았는데 운남성 남쪽 끝에 맹해현이라는 작은 마을에 이름 없는 산 하나가 있는데 그곳인 듯 합니다.”
“마을이 있는 사람의 인적은 없는 것인가?”
“네. 마을 사람들이 그 산을 신성시하여 출입을 안 한다고 한다더군요. 그리고 호기심에 그 산에 갔다가 다수가 실종되고 하여 더욱 출입하지 않고 산 자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의심스럽긴 하군.”
“네. 이미 비천에서도 직접가보고 했는데 산 아래부터 진이 깔려있고 낮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운무(雲霧)가 깔린 것도 진의 영향으로 파악된다 합니다.”
“그럼 그곳이 맞는 듯 하군. 무림맹에 전하도록 해. 만독곡의 마지막 정리도 우리가 하겠다고.”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바로 떠나실 예정이신가요?”
“윤후와 난 바로 이동하도록 하지. 그쪽 일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게 우선이니. 괜히 놔둬봐야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곳이기도 하고.”
“무림맹과 형산파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명현.”
“네. 문주님.”
기명현은 검성이 부르자 다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괜히 너희들까지 갈 필요는 없을 듯 하니 은한을 데리고 문으로 복귀하도록 해. 우린 일을 마치고 문으로 돌아갈 테니.”
“네.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기명현은 바로 답하고 일어나 물러났고 은한도 다시 한 번 검성에게 고개를 숙인 채 기명현과 함께 형산파로 향했다.
“아이들까지 희생시켜 독을 연구하다니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군요.”
이윤후는 검성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검성은 미소를 지었다.
“무림엔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지. 남자의 양기(陽氣)를 빨아들이는 무공을 익혀 남자들과 교접을 하며 살인을 한 여인도 있고 반대로 여자의 음기(陰氣)를 빨아들이는 무공을 익힌 색마도 있단다.”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 무공을 익히면 탈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 무공들은 성격까지 변화시켜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지. 그런 무공을 배우면 결국 끝이 좋지 못하지만 빨리 강해지고 싶은 자들은 그 힘을 거부하지 못하지.”
씁쓸한 듯 말하는 검성은 신투와 권왕을 떠올렸고 그들도 결국 힘을 욕심내어 임소려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신장의 무기를 탐내 자신을 배신하고 임소려와 가족을 죽였기에 생각났다.
그렇게 강했던 그들조차 더 강해지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데 힘을 더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이들이 얼마나 그 열망이 강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너도 더 강해지고 싶고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검성의 물음에 이윤후는 잠시 머뭇거렸다. 묻는 검성의 표정이 슬퍼보였기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생각하고 입을 떼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더요.”
“그러냐? 왜 강해지고 싶으냐? 넌 무림에 뜻이 없다하지 않았느냐?”
예상치 못한 이윤후의 대답에 검성은 재차 물었다. 자신이 억지로 무림에 발을 들이게 한 이윤후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 할 줄은 그도 몰랐다.
“사실 사부님에게 처음 무공을 배울 때는 그저 관직에 올라 출세하라는 아버지의 욕심에 반항하여 글 공부와 거리가 먼 이 길을 택하려했지만... 지금은.”
이윤후는 다시 머뭇거렸고 검성의 눈을 바라보곤 다시 입을 떼었다.
“사부님의 제자라는 자리가 무림에서 어떠한 의미인지 몰랐을 때는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사부님의 등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배워 저 역시 검의 극의(極意)를 깨우치고 모두의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이윤후의 예상치 못한 말에 검성은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으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늘 놓이게 될 이윤후가 걱정되기도 했다.
자신의 제자로서 원치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이윤후를 늘 평가할 것이 분명했기에 피곤한 삶을 살게 될 것을 걱정했다.
“넌 나와 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 남들의 평가와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의천문이라는 울타리를 만든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으셨던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의천문을 만드셨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전 더욱 사부님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전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게 아닌 사부님의 인정을 받고 사부님이 저를 자랑할 수 있는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윤후의 진심어린 말에 검성은 마음이 시큰해짐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글을 배운 녀석답게 말은 잘하는구나. 나의 인정이라면 걱정하지 말아라. 난 네가 강하지 않더라도 늘 너를 인정하고 아끼고 있으니까.”
검성은 이윤후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기특한 제자를 보듬어주었다.
“이번에 만독곡에서 나를 잘 지켜보아라. 비뢰검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여주마.”
“네. 기대하겠습니다.”
실전에서 직접 비뢰검결을 펼쳐 보여준 적은 없었기에 검성은 이번이 기회라 여겼고 이미 비뢰검결 전부를 쓸 수 있는 이윤후지만 직접 보는 것은 다른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참을 애틋하게 이윤후를 쳐다보던 검성은 어느새 내려온 백아가 둘 사이에 끼어들자 백아의 등 뒤로 올랐다.
곧 두 사람은 만독곡이 있는 운남성 맹해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