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98화 (198/251)

198화- 검성의 제안(1)

"내 생각이 맞았군."

검성이 크게 웃자 모두 어리둥절했고, 팽우산도 영문을 몰라 검성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윤후 만이 검성의 의중을 알고 기뻐하고 있었다.

"도존의 체내에서 사혈(사혈)을 빼어낼 때 직접 보았는데 독강시들이 피부에 흐르는 독혈과 똑같아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니 기쁘구나."

"네. 저도 독강시들의 독혈을 보고 사부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약선께 이 사실을 알린다면 해독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요?"

검성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이윤후에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독강시들은 죽으면 흙으로 화해버리니 애령에게 가져갈 수 없고…… 그럼……."

검성은 팽우산을 바라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네가 꼭 지금 죽어야겠느냐? 혹시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나?"

"전…… 정말로 팽가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팽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팽우산은 살아남은 팽가의 무인들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서 도망갈 수는 있을지 모르나 예전과 같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야 할 테고, 지금 몸 상태로는 평범한 삶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언제 육신이 망가질지 모를 일이었다.

"팽가의 일이라면 내가 무마시켜주마. 네가 팽가의 가주를 죽인 것이긴 하나 상황을 듣고 직접 보니 죽을 만한 녀석들이었다. 너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니 네 명예도 원한다면 팽가와 이야기하여 복권시켜주마. 우리 일을 돕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가능합니까?"

팽우산은 검성의 말에 물었다. 어차피 생사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으나, 자신의 이름과 가족이 죽어서까지 팽가의 죄인으로 머무는 것은 바로잡고 싶었다.

"팽기찬이라고 했나?"

"네?! 팽기찬 맞습니다."

검성은 한쪽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팽기찬을 불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팽기찬은 화들짝 놀라 대답하곤 검성의 앞에 섰다.

"팽가는 이제 어찌 되느냐?"

"가주가 죽었으니 장로회가 소집되고, 아마 새로운 가주를 선정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저자의 처분도 논의될 듯합니다."

팽기찬은 조심스럽게 팽우산을 힐끗 보고는 검성을 보고 답했다.

"저자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내가 가졌으면 하는데 팽가에서 반대가 심할까?"

"가주가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곤 하나 팽가의 가주가 본가에서 죽은 사건입니다. 팽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가진 못할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내가 저자를 그냥 데려간 것으로 하지. 저자를 찾고 싶다면 나에게 찾아오라 해라."

"그것이…… 아무리 검성이라고 하나 장로회에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입니다."

팽기찬은 검성의 말에 놀라 말을 하긴 했지만 팽가의 모든 힘을 합친다한들 검성에게 대항할 여력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검성이 저자를 데려가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팽기찬은 팽우산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팽가에 잡혀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성의 말처럼 검성이 데려간다면 팽가에서 반발은 하겠지만, 결국 크게 대응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또한 팽우산이 누명을 쓴 것은 확연했으니, 팽가의 가주였던 팽태성과 팽반우를 비롯한 장로들의 모략이 밝혀진다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럼 내가 이자를 그냥 데려간 것으로 하자. 너에게 허락을 괜히 구하는 게 나중에 너를 곤란하게 할 수도 있을 듯 하니 말이다. 내가 이자를 데려가겠다."

"………."

검성의 말에 팽기찬은 답하지 않았다. 괜히 여기에서 말을 거드는 것은 검성의 말처럼 나중에 괜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었다.

“나와 가겠느냐? 우리가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겠습니다……."

검성의 제안에 팽우산은 바로 답했다. 검성의 말을 듣고 자신이 도움이 되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생에 미련을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탓이었다.

“팽가의 정리는 너에게 맡겨도 되겠느냐?”

검성은 팽기찬을 보고 말했다.

“네. 이미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제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너에게 맡기마. 이자의 처리는…… 내가 무림맹을 통해 팽가에 양해를 구하도록 하지. 만독곡이 쓰는 독의 해독을 위해 꼭 필요한 자이니, 팽가에서도 조금은 양보할 수 있도록 말이야.”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것이 없는 듯합니다. 일단 보고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혹시 팽가에 마차를 빌릴 수 있을까?”

“마차요? 아…… 준비시키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그래야지. 한시가 바쁘니 말이다.”

“그럼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팽기찬은 검성이 마차를 빌리려는 이유가 팽우산 때문임을 알았다. 독강시인 팽우산은 피부에서 독혈이 흐르고 있었기에 말을 탈수가 없었고, 당연히 백아를 태워 이동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검성은 마차를 빌리려고 한 것이었다. 팽기찬이 수하에게 지시하자 오래 걸리지 않아 마차가 준비되었고, 팽가의 입구에 마차가 준비되었다는 말에 검성과 이윤후 그리고 팽우산은 입구로 이동하였다.

***

만독곡의 독강시가 형산파에서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모두 격파된 것이 무림에 알려졌다. 거칠 것이 없던 만독곡의 진군이 멈추면서 남부는 안정화되는 듯했다.

독강시를 모두 해치운 것이 검성과 그의 제자 이윤후라는 것이 알려지자 무림은 더욱 검성과 이윤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만독곡의 전력이 팔 할 이상 무너진 것이 알려지자 무림맹은 불마사와 일전에 온 힘을 다할 수가 있었다.

만독곡은 이후 더 이상 도발도 없었고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다.

서문세가(西門勢家).

하남성에 위치한 서문세가에는 천재와 기재들이 많이 태어나기에 많은 이들이 서문세가와 연을 맺길 원했고, 그것은 황가(皇家)도 다르지 않았다.

당대의 황가는 서문세가의 여식을 며느리로 두고 곁에 서문세가의 인물들을 두었다.

그렇기에 서문세가는 늘 황실과 연이 있었고, 무림의 어느 세력도 서문세가를 가볍게 여기지 못했다. 이런 황가의 인연 말고도 서문세가 자체의 힘도 강력했는데, 워낙 뛰어난 인재들이 태어나다 보니 무림에 이름이 드높았던 고수들 중에도 서문세가의 인물들이 많았다.

그중 한 명이 오절 중 일인인 약선 서문애령이었고, 그녀는 서문세가에서도 제일 기재라 불릴 정도의 천재였다.

서문세가는 다른 세력들의 시기를 받기도 하는 탓에 자연스럽게 다른 세가들에 비해 폐쇄적이었다. 그래서 서문세가에 늘 많은 이들이 찾아왔지만 서문세가의 문턱을 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서문세가의 정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입구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누님. 이렇게까지 나와서 기다려야 합니까?”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환은 자신의 누이인 약선을 바라보며 투정부리듯 말했다.

“환아. 나 혼자 기다려도 되니 너는 들어가거라. 내가 너에게 같이 나와 있자고 한 것도 아닌데, 네가 이렇게 나온 탓에 세가의 식솔들까지 고생하지 않느냐.”

약선은 가주인 서문환을 나무라듯 혼내었다. 덩치 큰 서문환이 중년의 미부로 보이는 약선에게 혼나는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놀랄 일이겠지만, 서문세가의 사람들에겐 자주 보는 일이라 각자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서문애령이 세가로 돌아오자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이 서문환이었고, 그는 그녀가 만독곡의 절독을 해독할 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오늘 오기는 오는 것입니까?”

“오전에 도착할 것 같다고 기별이 왔으니 오겠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니까.”

서문환은 자신의 누이가 새벽부터 검성을 맞이하느라 준비하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옆에서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오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 소리쳤고 약선과 서문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선두에 말을 탄 사내 하나와 마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선두에서 말을 홀로 타고 있는 이는 이윤후였고, 검성은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히이잉-

말과 마차는 서문세가 앞에 멈추어 섰고, 이윤후는 말에서 내려 약선을 향해 걸어가 예를 취했다.

“약선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리고…….”

“내 동생이다. 서문세가의 가주지.”

이윤후가 자신에게 인사하고는 옆에 있던 서문환이 누군지 몰라 인사를 하지 못하자 약선이 바로 소개를 해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식견이 짧아 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의천문의 이윤후라고 합니다.”

이윤후는 이제 자신을 의천문 소속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을 향해 깍듯한 이윤후가 마음에 드는지 서문환은 이윤후의 어깨를 두드려 고개 숙인 그를 일으켜주었다.

“안 그래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네. 무림에 관심이 없는 서문세가에까지 뇌절검룡의 소문이 자자했는데 말이야.”

서문환의 말에 이윤후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칭찬하고 높이는 사람들을 대하는데 어색했다. 그래서인지 천통자가 늘 놀렸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덜컹-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소외되었던 검성은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팽우산이 나오자 모여 있던 서문세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백한 피부는 곳곳이 갈라졌고, 피부에서 녹색의 독혈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괴기스러웠다. 보통 사람이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이긴 했다.

“다들 물러 서거라. 독혈에서 새어 나오는 독향을 맡으면 위험하니…….”

약선은 팽우산을 보고는 서문세가의 사람들을 물렸다. 약선의 명이 떨어지자 다들 물러섰고 약선과 서문환, 그리고 몇 명만이 남아있었다.

피독주(避毒珠)를 지니고 있는 자들이거나 독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자들만 남은 셈이었다.

“팽가의…… 팽우산이라…… 합니다.”

팽우산은 이미 약선을 만나기 위해 서문세가로 간다는 말을 검성에게 들은 터라 약선을 알아보고는 그녀에게 예를 취했다.

“서문애령이라고 해요. 해독약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들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아닙니다……. 더 이상 생에…… 미련이 없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팽가의…… 공으로…… 알려주셨으면……합니다.”

팽우산의 말에 약선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팽우산의 사연을 들은 터라 그가 팽가에 원한이 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원수들에게만 복수를 하고 이렇게 다시 팽가에 공을 넘기려 하는 그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이었으면 팽가 자체를 증오하고 모두에게 복수하려 들었을 것이라 약선은 생각했다.

팽우산의 도움으로 해독약이 만들어진다면 큰 성과가 될 것이고, 만독곡을 상대하는데 한결 수월해질게 분명했다. 이것이 팽가의 공으로 인정된다면 팽가는 무림에서 인정받을 실적을 만드는 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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