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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97화 (197/251)

197화- 이혈세혈(以血洗血)(3)

팽우산이 펼친 혼원벽력파의 기운은 실로 대단했다. 네 사람의 장로가 각기 펼친, 그것도 같은 초식으로 대응한 장로도 있었음에도 모두의 기운을 삼켜 파해한데다 기운의 여파는 그들 모두를 죽음에 내몰았다.

온몸이 마치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 도흔의 흔적이 전신에 새겨져있었고, 온몸의 뼈마디가 모두 부서진 듯 뒤틀려있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갔는지 짐작이 갔다.

"장로들을…… 방패막이 삼아 피해를…… 줄인 것인가……?"

팽우산은 시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한 장로의 시체를 걷어내자 그 아래 깔려있던 팽태성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온몸에 도흔이 가득하여 피와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긴 했으나 숨이 붙어있었다.

팽우산의 말처럼 혼원벽력파의 기운이 모두를 삼킬 때 팽태성은 장로의 뒤에 숨었고, 그 덕에 직접적으로 휩쓸리진 않았으나 그의 상태 역시 위중해 보였다.

"살려…… 살려다오…… 너의 명예…… 너의 가족의 명예……모두 내가 되 살려주…… 커헉……."

팽우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그 모습은 지켜보던 모든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팽우산은 그런 팽태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의 도가 팽태성의 양손 양다리의 힘줄을 끊어 놓았고, 어느새 그의 목을 향해있었다.

"살려……."

"넌 모든 것이…… 쉬운가 보구나……. 모두를 속이고 성인군자인 척 살며 자신과 어울리지…… 않은 그 자리를 차지하고도…… 아직까지도 더 욕심이 나는 것이냐?"

번쩍-

팽우산은 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미 장로들이 모두 죽은 상황이라 팽반우가 데려온 은호단도 팽우산을 향해 무기를 뽑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스걱-

파아악-

"커헉……."

팽우산의 도가 달빛 아래 휘둘러지자 피분수가 솟았고, 피를 뒤집어 쓴 팽우산은 자신의 도 아래 아직도 죽지 않은 채 꿈틀거리는 팽태성을 보며 혀를 찼다.

"끈질긴…… 생명이로구나.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출혈과 상처인데……"

팽우산의 말이 끝나자 동시에 팽태성의 숨이 끊어졌다. 그러자 팽가의 무인들은 모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허물이 많은 가주였으나 팽가의 가주가 죽은 일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방조한 죄인이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나자 팽우산은 허탈한 듯 하늘을 보았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제 당신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소. 내 손으로 이렇게…… 마무리 할 기회가…… 생긴 것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로 가문의…… 죄인이 되었고 이제…… 죽음으로 그 죄를 갚고 그대에게 ……가겠소."

팽우산은 자신으로 인해 죽어버린 평범하고 착했던 아내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던 그는 한쪽에 엎드려있는 팽기찬을 향해 걸어갔다. 팽우산이 다가오자 모두 기겁을 하며 피했지만 팽기찬만은 그를 피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콰직-

팽우산은 자신이 들고 있던 도를 바닥에 꽂고는 팽기찬을 보았다.

"강기를…… 다룰 수 있느냐?"

"전 아직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팽기찬은 팽우산이 묻는 이유를 알아채고는 바로 답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룬 팽우산은 죽기를 원했고, 그 상대로 자신을 택한 것이었다.

"현재 팽가에 많은 수가 외부로 파견 나가있어 실력자들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그쪽들이…… 해주시겠소?"

팽우산은 갑자기 어느 한쪽을 보며 말했다. 갑작스런 팽우산의 행동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팽우산이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검성……? 그리고 이 공자?"

팽기찬은 팽우산이 바라본 방향의 인물들을 확인하고는 놀라 소리쳤고, 그의 말에 팽가의 모두가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통 인물이…… 아니란 것은 알았지만…… 검성이었다니……."

놀란 것은 팽우산도 마찬가지였다. 팽우산은 싸우는 내내 검성과 이윤후의 기척을 눈치 채고 있었다. 처음에는 초고수의 기운에 경계했지만 자신에 대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최대한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죽으려하는가?"

팽우산은 자신을 향해 하대하는 젊은 검성의 모습에 정말 검성인지 의심스러웠지만, 검성에게 느껴지는 잘 갈무리된 기운과 자신조차 범접하지 못할 벽이 느껴져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라면…… 이 몸을 쉽게 벨 수…… 있겠군요."

팽우산은 사술에 의해 원치 않은 모습으로 복수의 기회를 얻었으나, 자신은 존재해서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복수를 한 후 다시 영원히 잠들길 원했다. 하늘이 그를 돕는지 팽가는 많은 수가 파견 나가 비어있는 상황이나 다름없었고 복수를 완성할 수 있었다.

평소의 팽가라면 팽우산이 아무리 독강시의 신체에 이전의 무공을 쓸 수 있다 해도 상대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이나, 내가 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답해주겠느냐?"

팽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팽우산으로서는 독강시로서 더 연명할 수 있다고 한들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이유가 없었고, 사유가 있었다하나 팽가의 가주와 장로들을 죽인 죄는 정말로 척살령이 떨어질 일이었다.

"네가 만독곡에서 가장 먼저 강령술을 성공한 독강시로 아는데 맞느냐?"

"맞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 저와 같은 독강시 들이 여럿 있었고…… 그 중 제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게 언제인지 기억하느냐?"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삼 년 전…… 제가 깨어나고 다시 ……일 년이 넘어서야…… 두 번째 강령술이 성공했고…… 그 후 재차 성공하였습니다……."

팽우산은 검성이 어떠한 이유로 묻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자신이 아는 대로 기억을 짜내 답했다.

"혹시 만독곡이 새로 개발한 무색무취의 독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검성의 물음에 팽우산은 잠시 머뭇거리며 고민하다 답하였다.

"독강시의…… 독혈을 정제하여…… 새로운 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팽우산의 대답에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흑월도존의 중독에 관한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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