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96화 (196/251)

196화- 이혈세혈(以血洗血)(2)

팽우산을 막아선 노인과 어느새 자신의 배후와 양 옆을 포위한 노인들은 팽우산도 잘 아는 인물들이었다. 팽가엔 많은 수의 장로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장로회라는 이름으로 팽가의 전반적인 운영에 개입하고 있었다.

현재는 많은 인원들이 무림맹에 차출되어 있었지만 세가에 네 명의 장로가 남아있었는데, 그들 모두 나타난 것이었다. 그중 팽우산이 이름을 부른 팽반우는 그와 인연이 있는 장로였다.

"살아있었군…….고작 그런…… 상처에 죽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팽반우를 바라보며 팽우산은 예전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팽반우는 팽태성과 짜고 그를 비무를 통해 죽이려했던 그 장로였다.

"하늘이 도운 것이겠지.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구나. 너를 이렇게 내손으로 처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말이다."

팽반우는 팽우산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을 만지작거렸다. 팽반우가 만지작거리는 가슴엔 대각선으로 길게 도흔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팽우산이 남겨준 것이었다. 그 상처로 출혈이 심해 죽을 고비를 넘겼던 팽반우는 거의 일 년을 몸을 추슬러야했고, 그대로 팽가에서 잊혀진 존재가 될 뻔했었다.

팽가의 장로가 이십 고작 넘은 팽우산에게 죽을 고비까지 갔으니 팽가에서 그의 평판은 바닥을 쳤다. 그나마 팽태성이 변호를 해주었기에 장로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겨우 복귀할 수 있었다.

"크크…… 누가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너를 꼭 내 손으로 …… 처리하고 싶었건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이 너무 기쁘구나."

"크하하! 무기도 이미 없는 네가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성싶으냐? 독강시의 약점은 이미 파악해두었다. 머리와 목을 분리하면 된다더군. 강기에 베어지고 말이야. 여기 넷이 누구인지 모르느냐? 팽가의 장로들이다."

팽반우는 팽우산의 몰골을 보며 크게 비웃었다. 이미 볼품없던 낡은 대도가 방금 부딪침으로 부서져 도병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얕보지 마시오. 모두 한꺼번에 덤벼 저 녀석을 처리해야 하오."

팽태성은 장로들의 등장에 안심하며 다시 목소리가 커졌고 그런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온화하고 인자했던 가주는 온데간데없었다.

'저게 본성이었단 말인가……. 형님에 대한 몇몇 소문이 안 좋긴 했지만 모두 오해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팽기찬은 팽태성의 본성을 제대로 마주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주가 된 팽태성은 비록 강한 문주는 아니었지만, 많은 세력을 아우르고 통합하며 팽가의 힘을 더욱 탄탄히 운영하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혼원벽력도법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팽태성이 가주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장로들과 팽가의 인물들도 팽태성을 인정하고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이제 알 수가 있었다.

타다다닷-

그때 갑자기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의 무인들이 혜풍당을 크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에 팽기찬을 비롯한 팽가의 무인들은 지원이 온 것으로 알고 기뻐했으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시 경계하였다.

포위한 무인들은 팽가의 무인들이 확실했으나 처음 보는 이들이었고, 자신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주. 은호대(隱虎隊)의 무인 팔십도 데려왔으니 진정하시오. 저들이 모든 사실을 들은 자들을 처리해 줄 것이오."

팽반우의 말에 팽태성은 미소를 지었고, 팽기찬을 비롯한 팽가의 무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불길했던 생각이 적중했다는 걸 깨닫고는 무기를 들고 경계하였다. 자신을 포위한 무인들은 역시나 평범한 팽가의 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은호대는 팽태성과 팽반우가 비밀리에 키워오던 사조직에 가까운 무력집단이었고, 그들은 팽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뒤가 구렸던 팽태성과 팽반우는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로 생각했고, 팽태성은 자기 사람들을 팽가의 모든 돈줄을 관리하는 자리에 앉혔다.

팽태성은 그렇게 팽가의 돈을 비밀리에 빼내어 은호대와 같은 몇 개의 무력집단을 키워서 지금까지 자신을 반대하던 인물들을 제거하고 돈으로 회유하며 권력을 유지해왔다. 대외적인 팽태성의 모습이 워낙 좋았기에 팽태성의 비리를 잡은 자들조차 공론화시키기 전에 물증을 잡아야했고, 그 물증을 잡으려다 대부분 발각되어 죽어갔다.

그렇게 팽태성의 권력은 삼십 년이 넘게 유지되었다. 그간 팽반우를 비롯한 물욕에 환장한 인물들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밖은 이미 통제하였으니 이곳만 정리하고 저놈만 처리하면 됩니다."

팽반우의 말에 팽태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난감했던 상황이 한 번에 역전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계속 시간을 끌었던 이유도 팽반우를 비롯한 장로들을 소집하고, 은호대를 팽가에 불러들일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팽우산. 저 녀석의 처리가 우선입니다. 방심하지 마세요."

"가주. 저희가 누구인지 잊지 마십시오. 저놈이 팽가의 절기를 훔쳐 배웠다 하나, 저희는 팽가의 절기를 정식으로 모두 익힌 자들입니다. 저놈과는 격이 다르지요."

팽반우는 도를 들어 팽우산을 향해 걸어 나갔고 상황을 지켜보던 팽우산은 크게 웃었다.

"크하하…… 너무 여전하여…… 웃음이 멈추지…… 않는군. 너희가…… 변한 것이 없어…… 내 마음이 무겁지 않음이야……."

팽우산은 팽태성과 팽우산의 작태에 속으로 웃음이 났으나, 참고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편협했다. 그렇기에 팽우산은 그들을 죽여도 되겠다 생각했다. 자신으로 인해 팽가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이 나름 신경 쓰였으나 오히려 팽태성을 처리하는 것이 팽가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강해졌다.

한편 그런 모두를 한 쪽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팽가의 사연은 들었지만 직접 마주하니 놀랍군요. 사부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켜보던 이는 검성과 이윤후였다. 그들은 팽우산이 팽가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팽가를 돕기 위해 진즉에 도착해있었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나설 필요까지도 없을 거 같긴 하구나. 팽우산이란 녀석이 혹여나 팽가 전체에 원한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가 상대해야 될 자들은 저 팽가의 가주라는 녀석의 똘마니들일 수도 있겠어.]

전음으로 물어오는 이윤후의 물음에 검성은 전음으로 답했다. 두 사람은 팽우산이 팽가 전체에 복수할 의지가 없어 보여 관망 중이었는데, 오히려 팽가의 가주의 민낯을 보고나니 더욱 팽우산을 막아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은호대인지 은묘대인지 저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피 거라. 팽가의 무인들이 다치는 것은 네가 구해야한다.]

[네. 알겠습니다.]

검성은 순수하게 팽가를 구해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이윤후가 팽가의 위기를 구하게 하여 팽가에 빚을 만들어 두려는 생각이었다.

검성과 이윤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팽반우를 비롯한 팽가의 장로들은 팽우산을 사방에서 포위한 체 합공을 시작하였고, 수준 높은 무인들의 합공인 만큼 팽우산은 이전의 여유는 사라진 채 방어 일변도로 접어들었다.

무엇보다 팽우산의 손에 무기가 없었던 탓이 컸다.

"크하하! 독강시가 되었다하여 기대했건만 형편없구나. 연환패왕진(連環霸王陳)을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하는 구나!"

팽반우와 장로들의 공세에 팽우산은 여유가 없어보였고, 그들이 펼치는 연환패왕진이라는 팽가의 연환공세에 제대로 공격 한 번 못하고 있었다. 장로들 모두 도강을 다루고 있었기에 팽우산으로선 모든 공격을 피해야했고 독강시의 강인한 신체를 믿고 싸울 수도 없었다.

스걱-

네 명의 연환격에 팽우산의 몸엔 상처가 늘어갔다. 강기를 두른 장로들의 공격에 팽우산의 단단한 신체는 베어져 독혈이 솟구치고 있었다.

“녀석의 피를 조심해라. 절독이니 피해야 한다.”

팽우산은 재차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를 보고 한참을 주시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밧-

파박-

방어만 하고 있던 팽우산이 먼저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박투술이었지만 독혈이 튀고 있는 팽우산은 위협적이었다. 거리를 좁히려는 팽우산과 거리를 벌리려는 네 사람의 싸움이 되니 공세를 주도하며 유리해보였던 장로들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콰직-

“크학…….”

팽우산은 자신을 향해 내리쳐온 팽소봉의 도를 쥔 손목을 움켜잡았고, 그대로 힘을 줘 팽소봉의 손을 짓이겨버리자 비명과 함께 그는 도를 놓은 채 물러섰다.

그리고 팽우산은 바로 팽소봉이 놓아버린 도를 잡아 하늘 높이 쳐들었다.

“안 돼! 녀석의 손에 도가……?!”

팽우산의 손에 도가 쥐여지자 팽태성과 팽반우가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외침이었다. 팽우산은 방어를 하며 상대를 방심시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장로 넷의 연합 공격이 매섭긴 했으나 팽우산에겐 회피가 어렵지 않았고, 장로 넷 다 강기를 다루는데 미숙해 공격도 위협적이지 못했다. 그저 팽우산은 그들을 적당히 가지고 놀며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노는 데 실증이 난 팽우산은 그들을 베기로 결정했다.

츠츠츠-

팽우산의 치켜든 도에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팽가가 자랑하는 번개의 기운. 벽력(霹靂)의 힘이었다.

“제대로 펼쳐보는…… 것은 처음이니…… 너희가 상대가…… 되어 다오.”

웅웅웅-

벽력의 기운이 모인 팽우산의 도는 공기마저 진동시키고 있었고, 맹렬한 기운에 팽태성과 팽반우 등 장로들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팽우산은 그들을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바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며 도를 내질렀다.

“혼원벽력파(混元霹靂破)!”

콰과과과-

쩌정-

강맹한 기운을 쏟아낸 팽우산의 도는 박살나며 조각조각 흩어졌다.

“막아! 날 지켜라…… 어서!”

팽태성은 팽우산이 발산한 혼원벽력파의 기운이 덮쳐져오자 발작하듯 장로들의 뒤에 숨으며 소리쳤다. 장로들은 그런 팽태성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동시에 눈을 맞추며 최고의 절기를 쏟아내었다.

“혼원벽력파!”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

촤자자작-

콰과과과-

콰과과광-

강맹한 기운이 부딪쳐 굉음이 일었고, 발산한 기운들의 폭풍에 주위는 부서져갔다.

“크하악…….”

“커헉…….”

부딪쳤던 기운의 폭풍이 팽태성과 장로들을 밀어냈고, 그들을 삼키며 찢어발겨갔다. 팽우산과 같은 초식을 펼친 팽반우의 초식은 형편없이 약할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초식을 모두 합쳐도 팽우산이 펼친 한 개의 초식을 밀어내지 못했다.

기의 폭풍이 사라지고 나서야 모든 것은 잠잠해졌고, 팽태성과 팽반우 그리고 다른 장로 모두 참혹한 상태로 쓰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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