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팽가의 위기
“만독곡은 사실상 전력의 팔 할을 잃었다고 봐야 해서 더는 전진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초검보의 있던 전력이 그 정도였습니까?”
은한의 말에 이윤후가 물었다.
“검성과 이 공자가 워낙 가볍게 정리하신 탓에... 제가 말을 하기도 민망하긴 하지만 무림맹과 형산파는 그것을 당해내지 못해 이렇게 형산에 박혀있었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만독곡이 원래 규모 자체가 큰 곳이 아니었고 그들의 이번 무림 진출은 독강시가 주력이었는데 그 주력을 두 분께서 박살 내주신 덕에...만독곡은 힘을 잃었다 봐야겠죠.”
은한의 말처럼 만독곡은 규모가 커서 사패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워낙 악행이 심하고 그들이 독강시를 다루면서 그 위험도 때문에 사패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럼 만독곡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도 될까?”
“혈수독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 무림으로 나온 독강시들은 초검보에서 모두 제거되었고 그들의 본거지에 나머지 수가 있으니 그것을 재차 끌고 나오지 않는 이상은 위협은 사라졌다 봐야겠죠.”
“그럼 편하게 팽가에 가도 되겠군. 팽가의 녀석들에게 정보를 좀 얻어오너라.”
“네. 그럼 팽가가 벌써 세가로 돌아갔는지 알아보고 정보를 좀 얻어 오겠습니다. 먼저 떠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은한은 검성과 이윤후가 먼저 사라질까봐 말을 하곤 방을 나섰다. 그런 은한의 모습에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
하북 팽가(河北 彭家).
오대세가 중 하나로 한때 도의 정점(頂點)을 보려거든 팽가의 도객을 만나 겨루어보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법으로 인정받은 무가였다. 하지만 인재들로 넘쳐났던 팽가에 그들의 독문무공인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와 혼원벽력도법(混元霹靂刀法)을 극성으로 익히는 인재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팽가에 대한 평가는 하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대세가 중 가장 본가와 분가의 규모가 컸고 많은 수를 자랑했기에 팽가를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팽가는 현재 무림맹이 정상화되면서 많은 수를 무림맹이 있는 서안으로 보내 무림맹 내에서의 팽가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불마사와 싸우는 쪽과 만독곡과 싸우는 쪽에도 많은 수의 팽가의 무인들을 파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팽가는 무림맹에서 오대세가 중 가장 많은 영향력과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팽가의 현재 상황에 발목을 잡을 일이 될 거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콰과광-
늦은 저녁 팽가의 거대한 정문이 박살나며 소란이 일었고 이에 모든 팽가의 식솔들이 소란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입구로 모여들었다.
"어떤 놈이 감히 팽가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현재 팽가의 무력집단은 거의 파견되고 남은 것은 진무단(震武團)하나였는데 진무단의 부단주인 팽무선이 가장 먼저 입구로 도착하여 소란을 일으킨 자를 맞이했다.
팽무선은 도착하고 팽가의 정문이 박살나고 입구를 지키던 문지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란을 일으킨 자를 보았는데 그를 보고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팽우산? 말도 안 되는... 그는 죽었는데... 내 눈으로 분명..."
팽무선은 독강시가 되어버린 팽우산을 알아보고 굳어버렸고 그가 팽우산을 바로 알아본 이유는 그가 바로 팽우산을 척살하기 위해 꾸려졌던 척살조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군. 아... 너는 본 적이 있는 얼굴...이야. 나의 아내를 인질로...잡았던 그 놈이구나..."
팽우산도 팽무선을 알아보고는 녹색빛이 도는 눈이 번쩍였다. 팽우산이 죽을 당시 삼십 중반이었고 자신의 아내를 인질로 잡은 팽가의 어린 무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팽무선이었다. 죽을 그 당시 모습인 팽우산과 그 당시 스물이 겨우 넘었던 팽무선은 이제는 동년배로 보였다.
"이런... 포위하고 움직임을 억제해라! 방심해서는 안 된다."
팽무선은 어느새 모여든 진무단을 확인하고 바로 명령을 내렸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이도 있었지만 부단장인 팽무선의 명령에 다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팽우산을 포위해갔다.
"세가의 죄인이다. 손속에 정을 두지 마라. 반드시 죽여야 한다."
팽무선의 외침에 진무단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고 팽가의 정문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적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진무단의 무인들도 팽우산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살려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크크... 세가의 죄인...? 우습군. 아직도... 나를 이렇게 능멸...하려는구나? 감히!"
팽무선의 말에 광인처럼 웃던 팽우산은 순간 눈빛이 바뀌며 뭉툭하고 낡은 대도를 들어 포위해오던 진무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앙-
갑작스레 달려든 팽우산의 행동에 진무단은 놀랐지만 수십의 진무단 인원의 우위가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팽우산이 튀어나오자 동시에 팽우산을 향해 달려들어 베려했다.
촤자자작-
"크아악!"
"커헉!"
팽우산의 배후와 사방을 잡으며 노려갔던 진무단의 인원들이 팽우산이 휘두른 일도에 모두 떨어져나갔고 팽우산의 한수에 진무단의 절반에 가까운 무인들이 쓰러졌다.
“복호기세(伏虎起勢)?”
팽무선은 팽우산의 일합에 쓰러져나간 진무단원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팽우산이 쓴 초식은 팽가에서 도를 잡으면 가장 먼저 배우는 초식 중 하나인 복호기세였다는 사실이었다.
팽우산은 멈추지 않고 겁을 먹고 거리를 벌려 떨어진 나머지 진무단원들을 하나씩 베어갔고 그가 진무단의 전원을 쓰러뜨리는데 반각의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겁을 집어먹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은 팽우산에게 손쉬웠으며 독강시가 되면서 강인한 몸 상태가 되었기에 그의 단순 초식에 실리는 힘은 그의 전성기 몸 상태 이상이었다.
“이럴 수가... 진무단이 이리 손쉽게...?”
팽무선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는 자신들의 수하만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소란으로 인해 팽가의 식솔들이 모두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팽무선은 더욱 난감했다.
현재 팽가에 고수들은 모두 무림맹의 파견으로 인해 팽가는 비어있는 상황이었는데 하나 남은 무력집단인 진무단이 이렇게 맥없이 쓰러진 것은 큰 위기였다.
‘죽이진 않았는가?’
팽무선은 진무단의 인원 중에 죽은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심 안심을 했지만 복수를 위해 찾아왔을 팽우산에게 자신은 직접적인 원한 당사자였기에 자신의 목숨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팽가의 핏줄일 것인데 어찌 이렇게 팽가에 찾아와 소란을 피운단 말이요?”
팽무선은 이렇게 된 것 더욱 뻔뻔해지기로 작정을 했다. 이미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되고 있는 만큼 팽우산의 존재를 감추긴 힘들었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생각했다.
“뻔뻔하구나... 네 속셈은 뻔하지...만 내가 너의 농간에 속아줄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파밧-
팽우산은 도를 치켜들며 지면을 박차고 팽무선을 향해 달려들었고 팽무선 또한 그런 팽우산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마찬가지로 팽우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팽우산이 이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가 안 될 것인데 이미 독강시가 되었다는 소식을 팽무선도 들었기에 더욱 자신이 상대가 안 될 것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일부로 팽우산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했고 자신의 의도대로 흥분한 팽우산이 먼저 움직이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쐐액-
팽무선의 예상대로 팽우산은 자신을 얕보고 초식을 배제한 채 도를 휘두른 채 공격해왔고 팽무선은 이를 이용해 내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최고의 초식을 펼칠 생각이었다.
“웅패군산(雄覇群山)!”
촤자자작-
팽무선의 혼신을 다한 일도에 날카롭고 매서운 기운이 발산되어 팽우산의 도와 부딪쳐갔고 그저 휘두름 뿐인 팽우산의 도를 삼키고 그의 전신을 찢어발기리라 팽무선은 확신했다.
하지만 팽무선의 기대는 바로 깨어졌다.
쩌정-
콰과광-
“크하악!”
팽우산의 뭉툭하고 이빨이 다나가 있던 볼품없는 도와 부딪친 팽무선의 명도가 부서졌고 팽무선의 맹렬했던 도기는 팽우산이 일으킨 도풍에 삼켜 사라지고 말았다.
부딪침의 충격은 고스란히 팽무선의 몫이었고 충격으로 볼품없이 땅에 뒹굴었던 팽무선의 몰골은 봉두난발에 흙투성이였다.
“너를 시작으로 팽가의 본가의 인물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안 돼... 커헉!”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팽우산을 보고 놀란 팽무선은 팽우산의 도가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자 저항하려다 그대로 도에 베어져 절명하였다.
진무단의 누구도 죽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팽우산의 도는 팽무선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팽우산은 쓰러진 팽무선의 시신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모두 겁을 집어 먹은 채 자신을 주시하는 팽가의 식솔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팽우산이 팽가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찾아왔다. 팽가의 본가 모두를 죽일 것이다!”
내력이 실린 팽우산의 외침이 팽가를 울렸고 내공이 약한 이들은 귀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비틀거렸다.
팽우산은 주위를 한차례 더 둘러보곤 전진하기 시작했고 겁을 집어 먹은 이들은 팽우산을 막지 못한 채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이미 팽무선과의 대화에서 팽우산이란 사실을 들은 이들이었기에 저항조차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팽우산에 대해 잘 모르는 팽가의 사람들도 많았지만 워낙 팽가에서 그의 존재를 지워버렸기에 팽우산이 독강시가 되면서 그의 존재가 다시 알려져 현재는 팽가의 모두가 팽우산과 본가의 그리고 분가와 본가 간의 알력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무단이 쓰러진 만큼 팽가에 팽우산에게 저항할 무인들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팽우산은 거침없이 팽가를 헤집었고 그의 발걸음은 팽가의 가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혜풍당(惠風堂).
팽가의 가주의 거처로 팽가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혜풍당은 팽가의 무인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다.
이미 팽우산이 세가로 찾아온 것을 알고 남아있던 팽가의 정예들은 팽가의 가주인 팽목균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버러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군.”
혜풍당에 도착한 팽우산은 겹겹이 모여 있는 팽가의 무인들을 보고 어눌한 말투로 비웃었다. 독강시가 되어 정신이 돌아온 팽우산은 정신적 금제를 당하진 않았지만 언어적으로는 생전과 같이 말이 쉽게 되진 않았기에 더듬거리고 있었다.
“팽자성, 팽윤, 팽임기...”
팽우산은 혜풍당을 지키기 위해 모여 있는 자들 중에 자신을 척살하기 위해 찾아왔던 자들을 확인하고 하나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름이 불린 자들의 낯빛은 크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팽명, 팽후진... 너희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구나.”
팽우산은 쓴웃음을 보이며 이름 부른 모두를 한 번씩 쳐다보며 눈을 마주쳤고 눈을 마주치고 이름이 불린 자들은 하나같이 팽우산의 눈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