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압도적인 무력(武力)(2)
이윤후가 사라진 엄상의 시신을 향해 예를 취하고 검성을 보았다. 검성은 아직도 두 사람의 합공을 피해내고 있었다.
“검성은 아마도 이 공자의 싸움이 끝나길 기다리셨던 거 같아요.”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은한의 말에 이윤후는 그녀를 보았다.
“제 생각이지만 검성은 일부로 끝을 내지 않고 이 공자의 싸움이 끝나길 기다린 거 같다고요. 아마 자신의 싸움을 이 공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아... 그 이야기였군요. 저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상대한 상대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이라면 사부님께서 어렵지 않게 제압하셨을 테니까요.”
이윤후도 은한의 말에 동의했다.
“어찌되었던 이제 곧 끝이 나겠네요.”
은한은 검성이 이제 손쉽게 제압하리라 생각했다. 형산파와 무림맹이 수십 일에 걸쳐 해내지 못했던 일을 단 둘이서 이렇게 쉽게 해내는 걸 보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미 수십 합이 오고갔지만 검성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 두 사람은 할 수 있는 모든 절기를 펼쳐 보이고 있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미 그들도 검성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음을 알았다.
콰과과과-
문신호의 도에 강맹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고 검성이 계쏙 피하자 참지 못하고 큰 기술을 사용하려는 듯 했다. 그것을 알아챈 예수오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검성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성이 이미 끝을 내고자 마음먹은 후라 그들의 발악은 통할 리가 없었다.
촤아악-
“크헉....”
검성이 가볍게 휘두른 일검에 검을 휘둘러 오던 예수오의 팔이 어깻죽지부터 잘려나갔고 이어 검성은 검을 치켜들었다.
“망자를 이렇게 기만한 자들을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 이만 눈을 감아라.”
촤자작-
검성이 검이 내려쳐지자 그대로 예수오의 몸이 양단되었고 엄상과 마찬가지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예수오를 베고 문신호를 바라본 검성은 자신을 향해 기를 잔뜩 모은 도를 휘둘러오는 그를 보았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군.”
검성은 낮게 읊조리곤 휘둘러오는 도에 검을 부딪쳐갔다.
쩌정-
콰광-
검성의 검이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문신호의 내력이 실린 도를 쉽게 쳐내었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문신호가 받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느릿느릿했던 검성의 검을 문신호는 자신의 내력 실린 도로 검과 함께 검성을 양단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만한 그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커헉!”
결과를 믿을 수 없던 문신호가 힘겹게 내뱉은 말도 다 내뱉지 못한 채 어느새 다가온 검성이 그의 목을 쳤고 독혈이 솟구치며 그 역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만독곡의 수하들이 도망치려했지만 이윤후가 이미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다수를 베어버리고 대장으로 보였던 곱추노인 하나만 살려서 사로잡아 검성에게 데려왔다.
“이자가 이곳의 수장인 듯 합니다.”
“살려... 날 살려주시오.”
이윤후가 곱추노인의 목에 검을 대자 그는 놀라 외쳤다.
“이자가 누군지 아느냐?”
검성은 은한에게 물었다.
“만독곡의 장로 중 하나인 혈수독마(血手毒魔)라 불렸던 마은일거에요.”
혈수독마는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 은한을 노려보았다가 검성의 그녀를 가리자 이내 눈을 피했다.
혈수독마는 그가 이전 무림에 활동했을 때 얻은 별호로 그가 익혔던 혈수독공의 영향으로 그의 손이 핏빛이었기 때문이었다. 혈수독공은 여러 독을 정제하여 끓인 독수에 삼백일에 걸쳐 하루 두 번씩 손을 담가 단련하는 기공이었고 성공적으로 무공을 마친다면 자신의 손에 스치는 것만으로 상대를 중독 시켜 죽음에 이르는 독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익힌 자답게 그는 무림에서 기행과 살육을 일삼았고 당시 그의 악행을 참지 못한 무림맹에서 그를 처단하기 위해 척살조를 꾸리면서 그는 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던 인물이었다.
“무림맹의 추격을 피해 만독곡으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요직을 꿰차고 무림에 복수를 하려한 듯 해요.”
모든 무림의 소식을 수집하는 비천의 소속답게 은한은 이미 그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혈수독마도 자신을 기억하는 이가 이제 무림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은한이 줄줄이 말하자 놀라고 있었다.
“저는 혈수독마라는 자가 아닙니다. 저도 어릴 적 만독곡에 끌려가 이 몸이 될 때까지 부림을 당했고 죽을 자리에 내세워진 불쌍한 몸입니다... 살려주십시오.”
혈수독마는 자신의 정보를 읊고 있는 이가 비천의 소속임을 모르니 어떻게든 속여 구명하려했지만 검성과 이윤후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었다.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이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중요하지 않고 말이야.”
“제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혈수독마는 검성의 말에 바로 태세전환하며 검성을 올려다보았다. 검성이 자신을 살려줄 수도 있다고 일말의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무림맹에서 자신에 대한 현상금과 척살령도 내려진 만큼 정체가 드러나면 어떻게 될지는 뻔 한 일이었다.
“만독곡의 독강시 전체의 수와 무공을 쓰는 독강시의 수가 몇이냐?”
“그것이... 헉!”
혈수독마는 검성의 질문에 시간을 끌며 어디까지 말해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이윤후의 검이 다시 한 번 그의 목에 닿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기를 머금은 한월검이 그에게 닿자 정신이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가 전신에 전해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현재 수십 년에 걸쳐 만독곡은 총 육십 여구의 독강시를 만들었고 그중 강령술에 성공한 것은 모두 여섯입니다. 둘은 만독곡에서 데려오지 않았고 세구는 방금... 사라졌습니다.”
“여기에서 사라진 독강시 외에 남아있는 것이 있나?”
“만독곡의 곡내에 열구 정도 남았고 모두 이곳에 끌고나왔기에 이제 곡내에 남은 십여구 정도가 전부입니다.”
혈수독마는 모든 것을 술술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검성은 은한을 수시로 바라보며 기존의 정보와 확인하고 있었다.
“말에 거짓은 없는 거 같아요. 저희가 파악한 수와 거의 일치하고 그런데... 강령술에 성공한 독강시 하나는 어디 있는 거죠?”
은한의 말에 모두 혈수독마를 보았고 그는 곤란한 듯 표정을 보였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강령술에 가장 먼저 성공했던 팽가의 팽우산이 저희의 통제를 벗어나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까도 네가 독강시들을 무언가로 통제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검성은 이윤후와 싸웠던 엄상이 이윤후와 대화를 시도하자 혈수독마가 제재를 하는 것을 보았기에 물었다.
“그것이... 강령술을 통해 혼을 불러내어 강시와 하나가 될 때 금제(禁制)를 가해 혼을 구속하여야했는데 가장 처음 썼던 술법이라 허점이 있었고 팽우산이 그렇게 되면서 두 번째 강령술부터 바로 금제를 가해 저희의 말에 복종하게 한 것이라 팽우산에게는 금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명을 크게 거부하지 않고 따랐기에 걱정하지 않았는데 무림에 나오자마자 사라져버려서...”
혈수독마의 말에 검성과 은한은 서로 동시에 보았다.
“팽우산의 인지능력은 어느 정도이지?”
“다른 자들은 강령술을 하고 금제를 걸면서 말이 서툴러지고 했지만 그는 거의 완벽히 혼이 강령된 상태라 죽기 전의 정신과 같습니다.”
“팽우산은 그럼 팽가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혈수독마의 말에 은한은 조금 난감한 듯 말했다.
“그렇겠지. 그가 정상적인 정신 상태라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팽가에 복수하려 들겠지.”
검성도 이미 팽우산의 비화를 들은 상태라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팽가도 현재 무림맹에 많은 수를 지원한 탓에 팽가엔 실력자들이 거의 없을 거 에요. 정말로 팽우산이 팽가로 향했다면 팽가가 위험해요.”
은한은 빨리 비천에 소식을 알려 팽가에 소식을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팽우산의 이전 실력에 독강시화 된 그를 현재 팽가의 수로는 막을 수가 없을게 분명했다.
“팽우산이 독강시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팽가의 무사들이 이곳에 와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에게 전해 세가로 바로 소식을 전하도록 해. 보통 세가에 빠른 소식을 전할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
“네. 그렇네요. 일단 복귀를 해야...”
퍼벅-
“컥!”
은한은 복귀를 위해 혈수독마를 어떻게 할지 시선이 그리로 갔는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윤후가 바로 검의 손잡이로 혈수독마의 목을 쳐 기절시켰다.
“넌 이 아이를 데리고 형산파로 복귀하여라. 난 혹여나 남은 자들이 있나 살피고 돌아갈 테니.”
“네. 이자도 그럼 제가 데리고 가 구금시키겠습니다.”
이윤후는 널브러진 혈수독마를 들쳐 업었다.
“그래. 돌아가 팽가에 소식을 전하고 윤후는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하고 있어라.”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윤후는 검성의 말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는 답했다. 이윤후와 은한이 백아를 타고 복귀하자 검성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초검보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만독곡에 의해 먼저 멸문한 곳이라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곳곳이 부셔져 있었다. 검성은 마치 초검보의 구조를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 어딘가로 향했고 검성이 멈추어선 곳은 창고로 보이는 한 건물 앞이었다.
끼익-
검성이 문을 열자 그 안의 모습을 보고 검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원래 쌀과 음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보이는 곳에 안은 비워져있었고 손발이 제압되고 입에 재갈이 물린 수십의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검성이 분노한 것은 어린 아이 모두가 무언가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는 것에 있었다.
파삭-
검성은 한편에 피워지고 있는 향로를 발로 차 부셔버렸고 아이들은 향로에서 피어난 향에 중독되어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였다.
“환각향(幻覺香)의 일종인가?”
검성은 피어오른 향이 독향은 아니란 것에 안심했으나 아이들이 이미 향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고 아이들을 안아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검성은 만상오행공의 영향으로 뛰어난 기감을 가지고 있었고 초검보 안에 느껴지는 미약한 기운을 느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남은 것이었다. 만독곡의 인물들은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금제되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동남동녀(童男童女)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긴 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이렇게 환각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검성은 아이들을 밖에 모두 눕히고 나서 하나씩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조금씩 기를 흘려보내어 기혈을 트이게 해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하나 둘씩 깨어나기 시작했고 검성도 조금은 안심하여 남은 아이들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나오너라.”
검성의 말에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 여럿이 나타났고 나타난 그들은 검성이 자주 보았던 자들이었다. 바로 비천의 은위단으로 은한을 지키기 위해 따라나섰던 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