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압도적인 무력(武力)(1)
은한이 검성의 이야기를 전하자 형산파와 무림맹은 환영의 뜻을 보였다. 사실 양 쪽 다 이미 만독곡과 대치한 며칠 동안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검성과 이윤후는 자정(子正)의 시간이 지나자 형산을 내려와 초월보를 향해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길안내는 백아를 타고 있는 은한이 하고 있었고 은한이 백아에게 방향을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 날고 검성과 이윤후는 그런 백아를 보며 달리고 있었다.
“달이 구름에 가려 시야가 어두우니 안력을 밝히 거라.”
검성은 앞서 달리며 이윤후를 향해 말했다.
“네. 만월이라 밝을 줄 알았는데 구름이 가리는군요.”
이윤후는 구름으로 가려진 만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달리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한곳에 선회(旋回)중인 백아를 발견했고 그 아래가 목적지임을 확인했다.
빼액-
조용한 와중에 백아가 크게 울자 큰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저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요.”
“그래. 형산파 내에 만독곡의 첩자가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백아의 울음소리는 경계의 울음소리였고 하늘에서 바라본 초월보와 그 밖엔 이미 검성과 이윤후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만독곡의 수하들과 독강시들이 있었다.
검성과 이윤후에게도 이미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수십이 넘는 것이 보였고 달리며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작하자.”
검성은 말을 하곤 바로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이윤후도 검성을 따라 속도를 올리며 검을 바로 뽑아 들었다.
“키히히힛~ 천하의 검성과 그의 제자에게 만독곡의 힘을 보여주어라!”
검성과 이윤후가 쏘아져오자 선두에 있던 허리 굽은 곱추노인이 기괴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뒤에 도열하고 있던 독강시들이 튀어나갔다.
“키에엑!”
독강시들 역시 기괴스러운 소리를 내며 먼저 달려온 검성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검성은 검을 뽑아들어 가볍게 내질렀다.
콰직-
검성의 검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저 달려든 독강시의 가슴에 박혔다.
“이런...”
검을 뽑아 재차 휘두르려했던 검성은 검이 박힌 채 뽑아지지 않자 순간 놀라며 검을 쥔 손을 놓아 거리를 벌렸다.
검이 가슴에 박힌 독강시가 몸을 밀어붙이며 검성을 향해 독이 흐르는 손을 휘둘러오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검성은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재미있군. 제법 단단하다고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제대로 상대해주마.”
검성은 상황이 재밌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애검 정천을 꽂은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독강시를 향해 일장을 내뻗었다.
“회풍장(回風掌)!”
쫘자자작-
검성이 가볍게 비틀며 내지른 우장(右掌)에 먼저 달려든 독강시가 마치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어지듯 흙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너무 충격적인 상황에 지켜보던 모두는 물론 인지 능력이 없다고 알려진 독강시들조차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지만 검성의 움직임은 쉬고 있지 않았다.
먼지가 되어 사라진 독강시가 가슴에 꽂고 있던 정천검을 낚아 챈 검성을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촤자자작- 촤작-
검성이 검을 휘두를 때 마다 독강시들이 해체되어 가기 시작했고 도검불침(刀劍不侵)이라고 말하던 독강시의 피부는 검성이 강기를 두른 검은 튕겨내지 못하였다.
이윤후도 그런 검성의 모습을 보고는 바로 검에 강기를 둘러 독강시를 베어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동시에 베어가기 시작하자 삼십 여구의 독강시는 일각의 시간이 걸리지 않아 바닥에 분해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누구도 독강시를 제대로 베어내지도 못했는데 저렇게 쉽게 베어지다니...”
백아에서 내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은한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만독곡이 진출을 시작하고 수많은 전투 속에 독강시의 피해는 단 두구였다. 그것도 점창파의 장문인이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로 자신을 희생시키며 데려간 독강시와 해남검파의 최고수였던 민자성이 베어낸 한구가 전부였다.
독강시의 피부가 도검을 튕겨내었고 검기를 쓰는 실력자들은 독강시를 베어낼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베어낸 후 독강시에서 튀는 독액들에 죽는 이도 많았다. 몸 전체가 독인 독강시들은 베어내서 튀는 피조차 독이었고 어설프게 베면 검날이 부식되고 튄 피에 피부가 상하고 독에 중독되어갔다.
“강기를 이용하면 벨 수 있을 거라 다들 말은 했지만 검성은 그렇다 쳐도 뇌절검룡까지 저렇게 강기를 자유롭게 운용하다니...”
은한은 자신이 눈으로 보는 것을 최대한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누구도 주위에 없었기에 이일은 자신의 입에서만 알려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사람들이 내말을 믿어줄까?”
그녀는 자신이 직접보고도 믿기지 않은 이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한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검성과 이윤후의 돌진에 놀란 것은 지켜보던 은한만이 아니었다. 독강시들을 통솔하던 선두에 있던 곱추노인을 비롯한 통솔자들은 기겁하고 있었다.
독강시를 모두 제거한 검성과 이윤후는 초검보의 정문 앞에 서있는 만독곡의 인물들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그들은 놀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초검보의 대문이 열리는 동시에 검성과 이윤후를 향해 달려드는 세 사람의 신형이 있었다. 검신이 얇은 특이한 검을 가진 노인과 용문(龍紋)이 새겨진 도를 휘두르는 거구의 노인 그리고 백발의 노검객까지.
채재쟁-
검성에게 세 사람이 달려들자 이윤후가 끼어들어 얇은 검의 노인을 검성에게서 떼어내 검성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물러섰다.
달려든 세 노인은 은한이 언질을 줬던 만독곡의 독강시 초월체들이었고 이윤후가 자신에게 유도한 얇은 검신의 노인은 해남검파의 전대 문주 엄상이었고 검성에게 붙은 도를 든 자는 구룡도문의 문신호, 검을 든 자는 점창파의 속가제자인 예수오였다.
은한에게 들은 대로 그들은 기존의 독강시들과 달리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고 검성에 붙은 두 사람은 합공을 연계하고 있었다.
이윤후와 엄상은 쾌검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엄상의 얇은 검은 찌르기에 특화되어 엄청난 속도로 이윤후의 급소만을 노리고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이윤후가 상대한 그 누구보다 빨랐기에 고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윤후가 엄상을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엄상이 좌수검(左手劍)을 쓰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미묘한 거리감이 달라 애먹고 있었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제법... 이구나...?”
살짝 거리를 벌린 사이 엄상이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어설픈 발음으로 말하자 이윤후는 놀라 그를 보았다. 인지능력이 있는 독강시라고 은한을 통해 듣긴 했지만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인장께서도 대단하십니다. 제가 무림의 경력이 일천하나 지금까지 이렇게 빠르고 악독하게 급소만 노리는 검은 처음 만나봅니다.”
이윤후는 대화가 가능한지 의심하면서도 답했고 그의 대답에 엄상은 무표정했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과한... 칭찬이군... 내가... 살아있을 때... 만났...다면... 좋았을...뻔. 크흑.”
미소 지으며 어설픈 말을 이어나가던 엄상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고 이윤후는 멀리 떨어져있던 곱추노인이 무언가를 들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죽은 것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더니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잡담이나 할 셈이냐! 눈앞에 모든 것들을 죽여라!”
곱추노인의 외침에 엄상을 비롯한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고 눈의 초점이 사라지며 달려들었다.
파바바밧-
엄상의 검이 이전보다 더 빠르게 춤추기 시작했고 각종 요혈만 노리고 들어오는 검에 이윤후는 막아내기 급급했다. 해남검파의 유성추혼검(流星追魂劍)은 상대하는 자들에게 악독하다고 소릴 들을 만큼 잔인한 쾌검이었는데 엄상은 자유자재로 펼치고 있었다.
엄상의 검이 더욱 매서워지자 이윤후는 방어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판단하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파바바박-
“비뢰광망(飛雷光網)!”
촤자자작-
또 다시 내질러오는 유성추혼검에 이윤후는 비뢰광망을 펼쳐 한 번에 막아내며 자신이 공세를 잡으려했다. 무표정하던 엄상은 자신의 검이 모두 막히자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변했고 이윤후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윤후의 검이 날카롭게 베어가며 엄상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공세를 빼앗기자 엄상이 반대로 공격을 멈춘 채 방어 일변도로 변했다. 정확하게는 이윤후의 매서운 공세에 엄상은 공격을 할 여유가 없어보였다.
엄상처럼 극쾌의 빠르기는 아니었지만 이윤후의 검은 유려하고 변화무쌍했고 진중했다. 이제껏 많은 대결을 경험하면서 이윤후의 검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쓸데없는 움직임이 사라지고 간결해져 있었다.
파박- 촤작-
이윤후의 만변(萬變)의 검을 엄상은 다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고 그의 몸에 검상이 새겨지고 있었다. 앞선 독강시들과 같이 그의 몸도 철갑처럼 강했지만 이윤후의 검은 그것을 베어내기 충분했다.
상대가 공격을 못할 정도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이윤후는 공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매섭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상대였다면 이미 죽어도 이상치 않을 상처를 주었지만 독강시로 화한 엄상의 몸은 고통도 느끼지 않았고 피로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길게 싸움을 끌어가는 것은 불리하다. 단숨에 끝을 내야한다.’
이윤후는 검성을 힐끗 쳐다보고는 얼른 싸움을 마무리하고 검성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치지도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 상대와 길게 싸움을 이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잠깐 할 찰나를 엄상 같은 초고수는 놓치지 않았고 재차 유성추혼검을 사용하며 공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이윤후가 의도한 빈틈이었다.
이윤후는 상대의 유성추혼검의 검로를 이미 몇 번이나 보았기에 피해내기 어렵지 않았다. 뻔하고 같은 곳을 찔러오는 검을 손쉽게 피한 이윤후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내질렀다.
“크헉...”
번쩍이는 검광과 함께 한줄기의 검기가 엄살의 목덜미를 꿰뚫었고 엄상은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츠츠츠츠-
목이 베어져 바닥에 푸르스름한 독혈을 뿜어내던 엄상의 시신은 갑자기 산화되어 흙먼지가 되어 바스러져갔고 기괴스러운 그 모습에 이윤후도 놀랐지만 이미 독강시들도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같은 이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윤후의 예상처럼 독강시는 전투불능이 되면 스스로 산화하도록 만들어져있었고 만독곡은 혹여나 독강시가 다른 이들에게 파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 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엄상이 쓰러진 곳을 잠시 바라보았던 이윤후는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미 죽어서 만독곡에 의해 이용당한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