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결전의 준비
형산파(衡山派).
호남성 형산에 자리 잡은 문파로 호남성 일대에서 가장 위세가 좋은 대문파였다. 무림인들이 정파의 으뜸으로 꼽는 구파일방에 끼지 못함을 형산파의 인물들은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늘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무림맹의 전대 맹주였던 우금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배척하자 가장 먼저 우금에게 협력해 무림맹에서 지위를 인정받았던 문파이기도 했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평가는 좋지 못하긴 했지만 형산파의 위세가 구파일방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고 가진 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현재 무림맹도 형산파가 이전 우금에게 협력한 일을 무마시켜주고 새로운 무림맹에서도 알맞은 지위를 약속했고 형산파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 무림맹이 형산파의 이전 과실을 덮어주었다 하나 여전히 무림의 인식은 형산파에 곱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형산파는 만독곡의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무림맹에 협력하고 있었다.
***
형산파의 규모는 현재에 와서 더욱 커졌는데 호남성 지주들의 지원으로 인해 자금적으로 풍족했고 많은 제자들과 세력 확장에 힘쓰고 있었다.
현재 무림맹을 비롯해 많은 수의 여타문파의 지원인원이 와있음에도 모두 지낼 수 있을 정도의 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만독곡에 의해 점창파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문파들이 줄줄이 무너졌고 해남검파마저 무너지면서 방어선이 이곳 점창파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로 인해 형산파의 외부인원들까지 모두 소집된 상태였고 무림맹의 지원도 이곳에 모두 집중되어있는 상황이었다.
검성과 이윤후는 형산파에 합류한 이후 형산파에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었고 검성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모두의 사기를 오르게 하였다.
형산파는 검성에게 따로 별관 하나를 통째로 내주려했으나 검성이 그냥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숙소를 원해서 별관 방 하나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간 평안하셨어요? 검성 어르신.”
검성이 방에 자리 잡고 쉰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청년은 넉살 좋게 검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내었다.
그를 보자 검성도 미소를 보이며 반겼다.
“오랜만이구나. 너야말로 잘 지낸 것이냐?”
방을 찾은 청년은 남장을 하고 있는 은한이었다. 천통자가 형산파에 미리 가있다고 했던 은한이 검성이 도착하자마자 그를 찾아 온 것이었다.
“네. 이렇게 다시 빨리 만나게 될지 몰랐는데 기쁘네요.”
은한은 솔직하게 심정을 드러내었다. 은한은 검성과 동행한 그 이후 다시 비천회로 불려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모용연을 만나고 여장까지 한 것이 그의 어머니인 비천회주가 알면서 잔소리를 듣고 임무를 받지 못한 채 유배당하듯 있어야했다.
하지만 무림 상황이 급변하면서 검성에게 붙일 비천의 사람이 마땅히 없었고 기회라 여긴 은한이 나서면서 이렇게 다시 무림으로 나올 수 있었다.
“뇌절검룡이시죠? 전 은한이라고해요. 천통자와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은한은 검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옆에 서있던 이윤후를 향해 예를 취했다. 이윤후도 이미 은한에 대해 들었기에 그녀가 여자라는 것과 비천의 소속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네.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찾아오실 거라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검성이 이곳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서 다들 검성만 목 빠지게 기다렸답니다.”
“상황이 어려우냐?”
은한은 젊고 잘생긴 얼굴로 노인네 말투를 하는 검성이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독을 쓰는 자들과의 싸움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다들 겁을 먹고 나서지도 않고 먹는 것과 마실 물에 대한 공포심도 극심하여 난리도 아니랍니다.”
은한의 말에 검성과 이윤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은한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독을 쓰는 자들과의 싸움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인지하였다.
“만독곡의 독에 당한 문파와 사람들이 많다보니 다들 경계심이 엄청납니다. 이곳에서도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들도 적지 않고요.”
“그럴만도 하지. 독에 당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래서야 다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정신이 피폐해지겠군.”
“네. 형산파도 그래서 특별히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긴 한데 특히 수원지 오염을 걱정하여 수원지 쪽과 경로에 무사들이 교대로 순찰하고 있어요.”
“그런다고 작정하고 오염시키면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다들 더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듯 해요. 형산파 내에도 만독곡의 첩자가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어서 문파마다 자신들이 공수한 음식만 먹기도 하고...”
은한은 말하면서도 씁쓸한 듯 표정이 어두웠다.
“독강시들과 만독곡은 어디에 있느냐?”
“형산 아래 이십리 떨어진 곳에 초검보라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곳이 멸문되고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버티고 있어요.”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이렇게 모두 형산파에 박혀서 떨고만 있는 건가요?”
은한의 이야기를 들은 이윤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초검보에 현재 독강시가 삼십여구 넘게 있고 무공을 사용하는 초월체가 해남검파의 엄상, 구룡도문의 문신호, 점창파의 속가제자였던 예수오까지 있어요. 초월체는 독강시 중에 인지능력이 있는 강시들을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팽가의 독강시도 있다고 들었는데?”
검성이 묻자 은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여긴 데려오지 않은 듯 해요. 제가 이곳에 오고 파악한 바로는 처음부터 팽우산의 초월체는 여기 없었어요.”
“아쉽군. 팽가 최고 기재라하기에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은한은 검성이 현재 상황이 대수롭지 않은 듯 팽우산이 없음을 아쉬워하자 놀라워하면서도 내심 안도했다. 검성이 그만큼 현 상황에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월보에 그냥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일부로 그러는 건가?”
“네. 검성께서도 눈치 채셨겠지만 일부로 공격들어오지 않고 지척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는 듯 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척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형산파를 비롯 이곳에 있는 모두가 먹는 것고 마시는 것에 큰 공포를 느끼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악랄하군요. 사람의 마음을...”
은한의 말에 이윤후는 크게 노하여 말했다.
“그럼 초검보를 먼저 치워버려야겠군.”
“바로 나서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걸 치워버리지 않고서야 다들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 거 같으니 말이야. 뭐 사실 그들을 치워버린다고 독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형산파에 말해 인원을 추려볼가요?”
“아니. 나와 윤후 둘이 갈거야.”
“네? 독강시가 삼십구에 초월체가 셋이나 있는데 위험하지 않을가요? 검성이야 걱정하는게 우습지만 제자분은...”
은한은 검성의 말에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미 형산파에서 검성이 초월보 토벌에 동참할 수 있도록 물어봐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한 것이었는데 검성이 먼저 나서주자 일이 편하게 가나했지만 두 사람만 간다는 말에 놀란 것이었다.
“윤후도 왠만한 독은 통하지 않을게야. 약선이 수련 내내 각종 영약을 먹인 탓에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상태니 괜찮을거야. 독에 중독된다고 해도 내가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야...”
검성의 말에 은한은 이윤후를 바라보았고 검성은 둘째치고 이윤후도 이 일에 대한 공포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어보이는게 그사부에 그제자라는 생각이 든 은한이었다.
“그럼 언제 초검보러 가실 생각이신지?”
“밤에 바로 가도록 하지. 이곳 사람들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빨리 처리하는게 좋을 거같고 말이야. 하고자 마음 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싶기도 하고.”
“그럼 형산파와 무림맹의 책임자에게 그렇게 말해두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먼저 오면서 의천문의 소속이라고 말을 해뒀는데 괜찮겠죠?”
“이기회에 너도 천통자처럼 우리 문파에 와서 일 좀 돕도록 해. 사람이 필요하니 말이야.”
“저도 그러면 좋지만... 위에서...”
“그건 내가 이야기해주지. 네가 괜찮다면 말이야.”
검성은 이미 은한이 비천회주의 딸임을 알고 있었기에 나서주었다.
“저는 좋아요. 비천에 머무는 것은 너무 따분해서 말이에요.”
“그래. 그럼 이번 일을 마치고 의천문으로 오도록 해. 네 윗선에는 내가 요구한다고 말하고 말이야.”
“네. 그렇게 할게요.”
은한은 생각지 못한 일에 기분이 좋아 배시시 웃기 시작했고 그런 은한의 모습에 검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네 정인을 남궁세가에서 봤었다.”
검성의 말에 웃던 은한이 흠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 들어서 알고 있어요. 괜찮던가요?”
“그래. 천무단의 단장이 되었더구나. 나름 출세길이 열린 듯 하더군.”
“그렇군요...”
은한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끝이난 인연인데 미련을 가지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녀석 남궁세가에서 날 찾아왔었다.”
“네? 무엇때문에요?”
“너에 대해 묻더구나.”
“저를요?”
은한은 검성의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용연이 찾는 다는 것은 낙양에서 보았던 자신의 여장 모습일테고 본래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란걸 알았다.
“너에 대해 기억을 한 듯 하더군. 낙양에서 보았던 너에 대해 물으러 왔었다. 그리고 자신의 예전 정혼자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더구나. 너를 그아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해.”
“저는 그사람에게 죽은 사람인걸요. 알고 그럴 리가 없어요. 그저...”
은한은 검성의 말에 눈물을 보였다. 아직도 모용연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녀로서는 모용연이 그렇게까지 해주었다는 것에 가슴이 시려왔다.
“나중에 의천문으로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하더구나.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너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이야.”
“저를 의천문에 부른 이유도 그때문이군요.”
은한은 검성이 자신을 의천문에 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검성은 은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기회라고 생각하고 은한을 의천문에 부른 것이었다.
“그래. 네가 결국 비천에 메여 살 것이 아니라면 네가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는 사내와 사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검성은 진심으로 물었다. 검성도 평생을 사랑했던 임소려와 함께하지 못했기에 은한이 자신을 붙잡고 속마음을 털어놓던 그날부터 둘을 이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선택은 강요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네가 우리에게 와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것도 진심이니 일단 의천문으로 와 고민해보거라.”
“네... 일단 그럼 검성의 뜻을 형산파와 무림맹에 전하고 올게요.”
은한은 조금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검성과 이윤후에게 예를 취하고는 방을 나섰다.
“너도 이야기 들었겠지만 저녁에 싸움이 있을 것이니 대비를 하여라. 내가 일러준 것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하여야한다.”
“네. 저도 방에 돌아가 준비하겠습니다.”
검성의 말에 이윤후도 바로 답하고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두 사람이 나서자 검성은 자리에 안아 상념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