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독강시가 된 팽우산
검성은 자신의 의식의 흐름이 점점 보통 사람들과는 어긋나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것들이 편하다고 느꼈지만 검성도 변화하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성격도 점점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지고 모든 일에 초연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윤후에게 알려줄 때까지 만이라도...”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바뀌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제자인 이윤후에 대한 애증은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검성은 혹여나 이 마음마저 달라질까 매일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검성이 늘 해오던 자연에서 오행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을 멈춘 것도 몸과 정신의 변화를 눈치 채면서 부터였다.
“내가 선계(仙界)로 떠날 일이 진짜 생길지 모르지만 모든 준비는 마쳐야겠지.”
검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의 달을 보며 말했다. 어두운 하늘에 고고하게 떠있는 달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짐을 느꼈다.
검성은 천통자에게 신선의 반열에 든 무림인들의 기록을 찾아봐달라 했었고 천통자가 그에 대한 것을 가져왔을 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곤 검성도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선의 반열에 든 자들은 모두 무당과 곤륜 등 도사들이 많았지만 검성처럼 도사가 아니더라도 도교의 가르침에 심취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경지에 이르고 인간의 궤를 벗어나 한 결같이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기에 검성도 언젠가 그들처럼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천문을 만든 이유도 전혀 개입할 생각이 없었던 무림의 일에 개입하여 이윤후를 단련시키는 이유도 자신이 혹여나 떠난 이후를 걱정해서였다.
***
검성의 의천문이 만독곡을 상대하기 위해 남쪽으로 갈 것이라는 낭보가 전해지면서 무림맹을 비롯한 무림이 크게 기뻐하였다.
무림맹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긴 채 모든 전력을 불마사와의 일전을 위해 집중 할 수 있게 되었고 남쪽에 위치한 많은 문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만독곡이 독강시를 필두에 세워 문파들을 무너뜨리고 진군하는 탓에 검성의 지원 소식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소식이 전해지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해남검파(海南劍派)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무림은 큰 슬픔에 빠져야했다. 해남검파를 무너뜨린 만독곡의 필두엔 전대 문주였지만 독강시로 화한 엄상이 있었다는 것은 무림에 더욱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가지게 했다.
의천문(義天門).
의천문은 남행(南行)이 결정되면서 기명현을 비롯한 의천문의 인원들은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삼일이나 자리를 비웠던 천통자가 나타나 계면쩍은 얼굴로 자신 앞에서 웃자 검성은 그를 바라봐 주지도 않은 채 서책을 읽고 있었다.
“크흠... 일이 조금 생겨 조금 늦었습니다. 사실 일찍 올 수도 있었지만 해남검파가 만독곡의 공세에 무너지면서 거기에 대한 정보를 다시 취합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모두 파악하였느냐?”
“네. 드러난 수가 전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단 드러난 수는 모두 파악했습니다.”
검성이 자신을 보고 묻자 미소를 지으며 천통자는 서책 하나를 검성에게 건네었다.
“일단 강령술로 무공을 사용하는 독강시는 총 다섯으로 파악됩니다. 이미 알고 계신 해남검파의 문주였던 엄상과 사파의 구룡도문의 호법이었던 문신호, 하북 팽가의 팽우산 그리고...”
“팽가의 인물이 독강시면 팽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겠군.”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조금 난감한 듯 표정을 보였다.
“이게 팽가에 조금 민감한 부분인데... 검성께는 말해도 되겠죠?”
천통자는 자신이 말하려는 부분이 팽가에선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는 문제라 괜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검성을 믿고 입을 열었다.
“무림세가들이 본가(本家)와 분가(分家)사이 차이를 두는 것은 아시지요?”
“그래. 오대세가를 비롯해 나름 세력이 있는 곳이라면 분가를 두고 있고 본가에서만 절기들을 잇게 하고 분가는 사실상 수하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곳들이 많지. 그것 때문에 무림에서도 많은 분란이 있기도 했고 말이야.”
검성은 팽우산이 팽가의 분가 인물임을 천통자의 질문에서 눈치 채었고 대충 상황도 알 것 같았다. 본가와 분가의 차별은 무림에서 당연시되는 문제였고 세가의 절기를 본가가 아닌 분가에 이어주는 곳은 없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분가에 뛰어난 재능의 인물들이 태어난 경우 비극이 초래되었고 오대세가뿐 아니라 세력이 제법 있는 곳도 이런 문제는 늘 생겨왔었다.
“팽우산이 분가의 인물이었나보군?”
“네. 팽우산은 분가의 인물인데 문제는 팽가에서 태어난 최고의 기재였다는게 문제였습니다.”
“안 봐도 무슨 일이 있었을지 알거 같군.”
“네. 뭐 역사가 반복되듯이 생기는 문제인데 하지만 팽우산은 정말 역대급 기재였던 게 본가에만 전해지는 혼원벽력도법(混元霹靂刀法)을 보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體化) 시킬 정도였으니까요.”
“팽가의 혼원벽력도법이라면 나도 겨루어본 적이 있지. 패도적이고 뇌기를 기본으로 하는지라 내가 사용하는 검과 비슷하여 기억에 남아있다. 형(形)과 식(式)이 단순해보이긴 하나 내력은 운용이나 세세한 변화까지 한번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도법이 아닐 텐데 정말로 뛰어난 재능이었나보군.”
“네. 하지만 그런 뛰어난 재능이 분가에 있다면 본가에서는 곱게 보지는 않죠. 자신도 본가의 도법을 훔치는 것이 큰 죄임을 알았기에 숨기고 살았지만 본가의 장로하나가 팽우산의 재능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핑계로 비무를 하게했고 뭐 결과는... 예상하시겠지만 팽우산의 승리였습니다.”
“비무 중에 혼원벽력도법을 사용한 것이로군?”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가 제법 재밌었던지라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네. 애초에 팽가의 장로는 팽우산을 비무를 통해 망가뜨리려는 속셈이었고 팽우산으로서는 살기위해 모든 수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변형시킨 혼원벽력도법을 사용 할 수밖에 없었죠. 예상치 못한 팽우산의 공격에 장로는 당황하여 큰 부상을 당했고 그날 이후 팽우산은 분가를 도망쳐 무림을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팽가에서 그런 팽우산을 가만히 두지 않았고 척살조를 꾸려 그를 죽이려했습니다.”
“뻔 한 이야기군. 그 당시 팽가의 가주가 누구기에 그런 인재를 그렇게 희생을 시켰지? 분가의 인재를 본가에서 양자로 삼는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팽가에선 그런 생각까지도 못했던 거 같습니다. 당시 팽가의 후계자가 팽우산에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은 세가의 모든 절기를 전수받았지만 팽우산이 익힌 기본적인 팽가의 도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합니다.”
“듣다보니 더욱 아깝군. 그런 자가 팽가에 있었다면 팽가는 더욱 세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을 텐데.”
검성은 무림 세가들이 얼마나 혈연을 중시하는지 알았기에 팽우산을 더욱 인정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독강시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팽가에 의해 죽은 것인가?”
“네. 팽우산은 팽가에서 추적이 들어오자 신분을 숨긴 채 외지 마을에 정착했는데 그저 평범한 약초꾼으로 마을의 처자와 결혼해 살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팽가에서 끝까지 팽우산을 찾았고 팽우산을 죽였다는데 있죠.”
“팽가에서 웬만한 인원을 꾸려서는 잡을 수 없었을 텐데 너희가 모를 정도의 정보였으면 비밀리에 움직였던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고 소수로 움직였기에 저희도 몰랐던 부분이고 문제는 팽가의 척살조가 팽우산의 아내를 인질로 하여 팽우산을 죽였더군요. 아내가 인질로 잡히자 팽우산도 저항을 거부한 채 죽음을 택했다고 합니다. 만독곡이 어찌 팽우산을 알았는지까지는 모르지만 그런 팽우산이 독강시가 되었으니... 보통 일은 아니죠.”
“팽가에서 이 사실을 아는가?”
“네. 이미 알고 팽가에서도 형산파로 인원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처리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 것이겠죠.”
“형산파까지 만독곡이 전진한 것인가?”
“네 이미 해남검파 등 만독곡이 북진하는 곳에 있는 문파들은 궤멸한 상황입니다. 현재 형산파와 대치중이라 하는군요.”
“서둘러야겠군. 형산파까지 무너진다면 이제 지척이야.”
“네. 안 그래도 검성께 최대한 빨리 형산파에 합류를 요청해달라고 말하라 했습니다.”
천통자는 조심스럽게 말하곤 검성의 눈치를 보았다. 검성의 심리가 요새 너무 널뛰고 있었기에 천통자로서는 검성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고역이었다.
“무림맹에서 현재 만독곡을 막아내기 위해 차출한 인원을 불마사 쪽으로 돌리기 위해선 검성이 합류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무림맹에서도 검성께 부탁해왔습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명현이와 의천문의 수하들은 천천히 합류하도록 하고 나와 윤후가 먼저 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무림맹과 형산파에서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천통자는 검성의 대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는 미소 지었다. 며칠 비천의 정보를 취합하느라 의천문에서 자리를 비웠는데 오늘 복귀하자마자 자신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서찰이 쌓여있었다.
그 중 무림맹에서 검성과 의천문이 빠른 합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서찰도 있었다. 검성이 빠른 합류에 동의해주면서 천통자는 무림맹에 으스대면서 검성의 빠른 합류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사이비 점쟁이 취급을 당하면서 무림인들에게 워낙 험한 일을 많이 당했던 천통자였기에 소위 명문대파나 큰 세력이 자신에게 이렇게 굽실거리는 경험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번 동행에 제가 못 갈 거 같은데 괜찮겠죠?”
“어차피 널 데리고 가기도 힘든데 명현이와 함께 오너라.”
검성은 어차피 백아를 타고 먼저 갈 생각이라 천통자를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
“아니요. 전 이곳에 남아 다를 일을 처리해야 될 듯 해서 본회에서 이미 형산파에 검성의 일을 도울 아이를 보내놓았다 합니다. 그 아이를 통해 정보를 알고 싶은 것을 요청하시면 될 듯 합니다.”
천통자의 말을 들은 검성이 조금은 못마땅한 듯 한 표정을 보이자 천통자는 놀라 얼른 입을 떼었다.
“형산파에 가있는 은한도 이미 아시는 얼굴이니 검성을 모시는데 잘 할 겁니다.”
“형산파에 은한이 있느냐?”
검성의 표정이 풀리자 천통자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성이 은한을 잘 대해주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비천도 검성이 아는 얼굴로 천통자를 대신 할 사람을 대체하였다.
검성과 연락이 계속 되어야 무림의 상황을 전할 수 있고 검성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어서 비천에서는 검성을 따라다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네. 은한이 이미 형산파에 도착해 검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 받았습니다. 형산파로 가시면 바로 찾아 갈 겁니다.”
“그래. 그럼 윤후와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그렇게 전해.”
“네. 연락이 닿기도 전에 먼저 가시겠지만요...”
천통자는 검성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얼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빠져나왔고 검성도 바로 이윤후에게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