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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85화 (185/251)

185화- 각오(覺悟)(2)

회의가 끝이 나고 현명은 곧장 진무각으로 향해 천뢰탄을 지급받았다. 현명은 바로 가길 원했지만 현보진인은 마지막으로 하루 그에게 생각을 정리하라며 시간을 주었다.

자신의 사제가 죽으러 가겠다는데 말리지 못하는 현보진인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할 시간만큼은 주고 싶었다.

그리고 혹여나 하룻밤사이 그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보진인의 기대와 달리 현명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날이 밝아오자 현명은 현보진인을 찾아왔다.

“바로 떠나려 합니다.”

내어놓은 다과를 앞에 두고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 있다가 침묵을 깬 이는 현명이었다.

“꼭 가야하겠느냐?”

“장문인... 아니 사형께서 저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잘 압니다. 배경이 없는 제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형 덕이었죠. 천애고아였던 제가 곤륜에게 그리고 사형에게 받은 은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이렇게나마 갚도록 해주십시오.”

현명의 말에 현보진인은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넌 지금 스스로 죽으러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너를 정말이지 말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정말 무력하구나.”

현보진인의 말에 현명은 어울리지 않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는 제가 원해서 가는 것입니다. 혹시나 저의 행동이 곤륜에게 나중에 큰 해가 될까 두렵지만 사형만은 저라는 사람을 기억해주십시오.”

현명의 우직한 말에 현보진인은 그런 그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미련한 놈... 너의 행동이 어찌 우리에게 해가 된단 말이냐?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단 말이냐...”

현보진인은 현명이 어떠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림에 금기시 되어 있는 천뢰탄의 사용으로 인해 곤륜의 명예에 해가 될까 걱정하는 것임을.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따로 마중이 필요치 않으니 장문인에게만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가겠습니다.”

“나를 원망해다오. 아명아.”

“기억하고 계십니까?”

현명은 현보진인의 입에서 자신의 아명(兒名)이 나오자 반가운 듯 미소를 보였다. 자신도 잊고 있었던 이름을 듣자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너를 기억하마.”

“감사합니다.”

현보진인의 말에 현명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잊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떼었다. 현명이 떠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린 현보진인은 이내 다시 보았지만 이미 현명은 떠난 후였다.

***

현보진인에게 이별을 고한 현명은 바로 천뢰탄을 챙겨 하산하기 시작했다. 제법 큰 크기일거라 생각했던 천뢰탄의 크기는 예상외로 어른의 주먹만 한 크기여서 품안에 갈무리하기 어렵지 않았다.

두 개의 천무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아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일설에 의하면 천무탄 하나가 십장의 거리를 초토화시킨다고 들었으니 잘 활용한다면 불마사의 무승들을 일거에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대로 되어야 할 텐데...”

현명은 자신의 품 안의 천무탄을 만지작거리며 빠르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진법으로 차단되어 있었지만 곤륜의 제자에게 진을 빠져나가는 법은 당연히 어렵지 않았다.

‘바로 앞에 진지를 차려 놓았구나.’

진을 벗어나 산의 초입으로 내려서자 넓은 평지에 불마사의 진지로 보이는 천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머물고 있다 보니 파원종의 무승들도 진을 치고 산을 오르는 입구들을 막아서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차라리 잘되었다. 혹여나 흩어져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차라리 이렇게 모여 있다면 이것을 사용하기 어렵지 않을 터...’

현명은 품 안의 천뢰탄을 자신도 모르게 만지작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입구를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면 바로 발각되었겠지만 파원종의 무승들도 오랜 기간 이렇게 진 앞을 지키며 아무도 나오지 않자 경계를 풀고 있었다.

‘하늘이 우릴 버리시진 않으셨구나.’

현명은 숨을 고르고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파밧-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오른 그는 파원종의 진지를 가로질러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제서야 침입을 눈치 챈 무승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침입자다.”

“곤륜의 도사 놈이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녀석들은 도대체 무엇을 한거야?”

갑작스레 진지 한가운데로 난입한 현명의 모습에 무승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그를 포위했고 이미 현명에게 몇몇이 달려들어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늙은 도사 놈이 미친 것이냐? 혼자 이곳에 나타나다니?”

두 사람의 무승이 현명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차마 승려에게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들은 일반의 승려와는 달랐다.

힘을 추구하고 강함이 최고의 진리인 불마사에서, 특히 파원종의 무승들은 더욱 특별한 승려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따로 관리되어 수련하고 지옥 같은 수련을 마쳐야 파원종의 승려가 되었다.

그 수련과정에서 열에 일곱은 죽고 둘은 불구가 되고 단 한명이 파원종의 무승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수련과정이 혹독했고 불마사에서 파원종의 무승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죄를 묻지 않았고 오직 활불에게 대적치 않으면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그렇기에 불마사에서 파원종의 힘은 강력했고 다른 종파들의 견제를 엄청나게 받았다.

파바박-

“크헉...”

현명은 두 사람의 합공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그들은 포위하고 있던 파원종의 무승은 그런 현명을 보며 비웃으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하하~ 도사 놈이 간도 크구나. 다른 도사 놈들은 산에 처박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네 놈은 왜 산을 나와서 이런 꼴을 당하느냐?”

현명의 몰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췌해져가고 있었다. 이미 파원종의 무승들에게 포위 당해있던 터라 반경이 좁아진 탓에 피해내던 공격은 점점 힘에 부쳤고 강맹한 그들의 공세에 그의 온몸은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최대한 많이 모일 때까지 참아야 한다...’

현명은 이미 적지 않은 인원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 수가 아직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알았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며 참아내고 있었다. 점점 많은 파원종의 무승들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모두를 끌어내기엔 상대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 강했다.

퍼버벅-

“크헉...”

현명은 가슴에 일장을 적중당한 채 주저앉았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해내었다. 연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에도 무승들은 쓰러진 현명을 보고 즐기려는 듯 마무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늙은 도사를 어떻게 할까?”

현명과 싸웠던 무승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가죽을 벗겨 곤륜산의 입구에 걸어놓자.”

“아니야. 발가벗겨 목줄을 채워 이곳을 지키는 개로 삼으면 어때? 우리 잔반 처리도 시키고 말이야?”

모두 현명을 조롱하는 말을 쏟아내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파원종의 무승들도 곤륜파가 진 안에 숨은 뒤 일주일 넘게 두문불출하자 자기들끼리도 좀이 쑤셨던 상황이었고 지원이 오기 전까지 진을 뚫을 재주가 없었기에 더욱 환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곤륜의 현명이 나타나 자기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자 자기들끼리 웃고 즐기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현명은 이때다 싶어 한 손에 천뢰탄을 잡아들었고 다른 한 손에 화섭자의 죽통을 잡아들었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현명의 행동을 주시하는 이는 없었기에 현명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품 안의 천뢰탄 두 알을 꺼내어 바닥에 놓고 화섭자 죽통을 열어 힘껏 불었다. 화섭자의 불꽃이 일자 바로 천뢰탄의 심지에 불이 붙였고 그제서야 현명을 발견한 무승 하나가 소리쳤다.

“저 놈 수상한 짓을...?”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미 천뢰탄의 심지에 불이 붙었고 두 알의 천뢰탄의 심지가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약이다. 피해라!”

“늦었다. 이놈들!! 다 같이 여기서 죽자.”

현명은 한 알의 천뢰탄을 잡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던졌고 남은 하나는 직접 들고서 다른 쪽 사람 많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콰광-

콰과광-

두 차례의 굉음(轟音)이 지축을 흔들었고 작디작았던 천뢰탄이 일으킨 폭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직접적인 폭발이 일어난 두 곳은 땅이 깊게 패어져 있었고 자욱해진 흙먼지가 사라지자 처참한 현장이 드러났다. 폭발에 휩싸인 수십의 승려들의 시신이 폭사로 인해 온전하지 못했고 그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가까스로 천뢰탄의 폭발 거리에서 벗어나 있던 승려들도 폭발음에 노출되어 귀에서 피가 흐르는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피탄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는 자들, 팔 다리를 잃은 자들로 살아남은 대부분도 멀쩡한 이가 없었다.

단 천뢰탄 두 알로 불마사의 정예라는 파원종의 승려를 일거에 소탕하게 되었고 시신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현명이었지만 그의 희생은 차후 곤륜파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콰과광-

산 아래 폭발은 곤륜산 위의 곤륜파에서도 들릴 정도로 강하고 위력적이었다.

“장문인...”

현명이 하산 한 이후 하염없이 산 아래만을 바라보고 있는 현보진인에게 청해는 걱정스러운 듯 불렀다.

“계율각주께서... 성공을 하셨을까요?”

“그 녀석이 성공을 하였다면 우리 곤륜은 살 것이고 실패를 하였다면... 모두 준비를 해야겠지.”

현보진인은 담담하고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현보진인도 청해도 현명이 성공하였을 것이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산 아래의 폭발이 산 위까지 이렇게 큰 진동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천뢰탄의 위력을 짐작 할 수 있게 했고 천뢰탄이 불발탄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 거사는 성공하였다고 봐야했다.

“청해야.”

“네. 장문인. 하명하십시오.”

“산을 내려갈 것이다 모두에게 준비하라 말하거라.”

“네. 안 그래도 모두 이미 준비를 마친 채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현명의 시신이라도... 그의 흔적 하나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살아남았을 자들을 처리하여야 한다. 모두에게 하산을 알려라.”

“넵. 장문인. 바로 하산하겠습니다.”

이미 현명이 천뢰탄을 가지고 하산한 이후 곤륜의 모든 이들은 출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명을 홀로 사지에 몰아넣고 편히 있을 자는 곤륜에 없었다.

혹여나 천뢰탄이 불발할 것을 대비해 현명을 구하러 가기 위해 다들 모여 있었고 성공한다면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하산 할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네 녀석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지켜봐다오. 곤륜은 오늘을 기점으로 달라 질 것이다.”

현보진인은 스스로 가슴에 새기려는 듯 말을 내뱉었고 그의 눈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장문인이 되고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제자들을 키워내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조금 더 강했다면 이번의 치욕은 없었을 것이라 현보진인은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강해질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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