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84화 (184/251)

184화- 각오(覺悟)(1)

무림은 남궁세가와 사왕련과의 일전으로 잠잠해진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싸움에 휘말려야 했다.

불마사의 중원 진출 그리고 만독곡의 북진(北進).

불마사의 진출은 갑작스러웠다. 무림맹이 불마사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서장에서 직접 움직인 것이 아니라 무림맹은 더욱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불마사는 사천성 융주를 그들의 거점으로 삼고 무림맹이 눈치 채지 못하게 실력자들을 계속 소수로 융주로 이동시켜왔고 이미 융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불마사는 무림맹의 눈을 차단하며 일을 더욱 수월하게 진행하였다.

제일 먼저 희생 된 곳은 아미파였다. 불마사가 있는 서장과 근거리에 있는 문파였기에 아미파 역시 언제 벌어질지 모를 싸움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기습은 막기 힘들었다.

사천성과 섬서성 일대의 문파들은 무림맹의 명에 따라 주력을 이미 불마사가 전진 할 수 있는 위치에 집결한 상태였는데 그로 인해 아미파는 더욱 쉽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고수들이 빠져나가 있는 상황이었고 아미파에 남은 이들은 이번 싸움에 배제되었던 인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미파가 무너짐과 동시에 서장의 불마사 본대가 직접 움직인 곤륜산에서의 전투에서 곤륜파가 가까스로 그들을 막아내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림맹이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능했던 방어였다. 반대로 아미파를 희생시킨 성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만독곡의 북진은 더욱 참혹했다. 만독곡의 독강시(毒僵尸) 행렬에 점창파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만독곡이 그동안 다뤘던 독강시들과 다른 새로운 유형의 독강시들은 도검을 튕겨냈고 그들의 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무인들이 독에 중독되어 쓰러져나갔다.

만독곡의 하독술에 점창파는 버텨내지 못했다.

불마사와 만독곡이 움직이고 단 삼일 만에 아미파와 점창파 등 크고 작은 문파들이 쓰러졌다.

무림맹과 정파들은 가까스로 그들의 행보를 늦추는 데 힘을 쏟아야했다.

***

곤륜산(崑崙山)

구파의 하나로 주나라 무왕 시절부터 이어져온 역사 깊은 곤륜파의 본산. 곤륜산은 현재 곳곳에 피를 뿌리고 있었다.

불마사의 공격으로 인해 곤륜산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싸움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자 고립된 곤륜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곤륜파(崑崙派) 대회의실.

“저희가 곤륜산에 고립된 지 벌써 일주일입니다. 도대체 무림맹의 지원은 언제 도착하는 겁니까?”

사십대로 보이는 한 도사가 상석의 도사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듯 물었다. 그는 곤륜삼웅(崑崙三雄) 중 맏이인 청해(靑海)였다.

청해성 일대에서 곤륜의 영향력이 컸는데 워낙 중앙에서 떨어진 지역이다 보니 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았는데 산적들이나 무뢰배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곤륜파에서 치안관리를 잘해주고 있었다.

그중 곤륜파의 삼웅이라 불리는 도사들이 청해성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는데 무공이 뛰어나고 협의가 뛰어나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곤륜삼웅이라 불렸다.

“무림맹에서 지원이 온다고 이야기한지 이미 일주일이 다되어 갑니다. 현재 곤륜의 제자들도 지쳐 우리가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장문인께서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청해의 말에 의견을 보탠 이는 현진으로 곤륜파의 장문인 현보진인의 사제였다. 현진의 말에 회의장의 모두는 최상석에 앉아있는 현보진인에게 눈이 향했다.

현보진인은 자신의 옆의 도사와 귀엣말을 나누고는 이내 입을 떼었다.

“현재 전 무림이 불마사와 만독곡의 행패로 힘이든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일전에 이야기했지만 불마사가 융주를 미리 선점하여 아미파를 무너뜨리면서 불마사의 진격은 두 갈래로 나뉜 상황이라 무림맹에서도 양쪽 그리고 만독곡을 상대하여 남쪽으로 지원해야하는 상태라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한다.”

“그럼 저희 쪽으로 보내 준다고 하던 지원은 없는 겁니까?”

현보진인의 말에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고 현진 도사가 다시금 물었다.

“아니다. 무림맹에서 무당파와 화산파를 주축으로 지원을 보냈다고 한다.”

현보진인의 말에 다들 안색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무당과 화산의 지원이라면 보여주는 식의 지원이 아닌 제대로 된 지원이 온다고 다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무림맹의 지원을 받지 못해 남궁세가의 꼴이 나 멸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장문인의 말은 내심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산과 무당에서 오는 지원이 아직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현보진인의 표정이 좋지 못한 채 말했다. 다들 지원 온다는 소식에만 기뻐했지만 이미 몇몇 눈치 빠른 도사들은 거리를 감안했을 때 지원이 빨리 도착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빨라도 열흘은 걸릴 거라 하는구나.”

소식을 전하는 현보진인도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곤륜은 한차례 불마사의 본대와 큰 전투를 치렀고 그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곤륜산의 일대제자들 절반 이상과 장로들 그리고 어린 도사들까지 이미 큰 피해를 입어 곤륜산에 웅크린 지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나마 무림맹에서 불마사의 진격을 대비해 전진하여 각 문파의 고수들을 배치하였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 불마사를 한번 주저앉힐 수는 있었으나 그 피해는 곤륜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곤륜산 일대가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어 자연의 진법으로 불마사가 산에 오르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언제 진법이 파훼될지 알 수가 없었다.

절망적인 소식에 회의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싸울 힘을 잃은 곤륜으로서는 무림맹의 지원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다.

불마사의 종파 중 가장 강력하다는 파원종의 무승(武僧) 고작 일백 명을 대곤륜파가 막지 못해 속수무책이었다.

“저희가 다시 한 번 인원을 추슬러 기습을 감행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소란스러운 와중에 곤륜상웅의 일인인 청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견을 구했다.

“이미 우린 이전의 싸움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청명의 말에 현진이 답했다. 현진은 청명의 스승이었다.

“스승님의 말처럼 저희가 이전의 싸움에 많은 것을 잃긴 했지만 이대로 곤륜산에 숨어있는 다 해도 해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무림맹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도 힘이 들고 오히려 불마사의 지원이 더 빠르면 빠를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청명의 말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다들 인지는 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던 사항이었다.

“현재 불마사 파원종의 무승들이 진법을 파훼하지 못해 곤륜산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그들도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고 무림맹의 지원보다 빠르게 도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저희가 기습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저희가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청명의 말에 다들 일리 있다고 여겼는지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청명의 말처럼 마냥 기다린다고 능사가 아니었고 불마사의 지원이 먼저 온다면 곤륜은 풍전등화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청명의 의견을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보진인이 모두에게 묻자 한쪽에 앉아 듣기만 했던 한 도사가 일어섰다.

“현명. 말 해보시게.”

현보진인은 일어선 도사를 보고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는 장문인 현보진인의 사제로 계율각의 각주인 현명이었다. 말수가 적고 조금은 무서운 인상이라 곤륜파의 제자들도 무서워하고 피하는 인물이었으나 장문인인 현보진인에게는 귀여운 사제였기에 늘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천성이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이었으나 인상이 귀면(鬼面)에 가까운지라 모두 겉만 보고 다가서기를 꺼려했고 동배분은 그런 현명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래 항렬로 갈수록 그를 피하고 무서워했다.

“계율각주인 현명입니다. 청명의 말처럼 저희가 이곳에서 지원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입장인 것은 다들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청명의 말처럼 저희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곤륜에 남아있는 인원들로 기습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통하겠습니까? 이미 저희와 일전을 치루고 남은 파원종의 무승이 일백이 넘는데 그들을 상대할 만한 힘이 현재 곤륜에 없지 않습니까?”

현명의 말에 누군가 답했고 모두가 그 마음과 같았다. 이미 한번 싸워 꺾인 마음은 다시 싸우기를 꺼려했고 그저 본진 속에 숨어 지원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기습을 하는 것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해내겠습니다.”

“현명 네가? 너 혼자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예상치 못한 현명의 말에 현보진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네. 저 혼자 가겠습니다. 진무각(珍武閣)에서 물건 하나만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제의 모습에 현보진인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고 이내 그의 말뜻을 눈치 채었다.

“현명... 자네 설마... 그것을 쓰려는 것인가?”

“네. 장문인. 천뢰탄(天雷彈) 광기자가 맡긴 그것을 쓰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현명의 말에 회의장의 인원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천뢰탄이 무엇인지 모르는 도사들은 그것을 묻기 바빴다.

천뢰탄.

서문세가의 기재라 불렸던 광기자의 역작으로 모든 것을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그는 화약에도 관심을 가졌고 그가 가장 오래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바로 천뢰탄이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만들어낸 천뢰탄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직접 그 위력을 마주한 광기자는 다시는 천뢰탄을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만들어진 천뢰탄의 처리를 두고 그는 고심했는데 당시 마교와의 싸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광기자는 사패와 마교와 가까이 있는 문파들에게 소량의 천뢰탄을 나누어주었다.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인지라 천뢰탄이 곤륜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았기에 천뢰탄에 대해 모르는 도사들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광기자가 천뢰탄을 곤륜에 주었을 때 최후의 순간에 활용해 달라 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장문인. 허락해 주십시오.”

결심을 한 현명의 표정은 결연했다.

“천뢰탄이 진무각에 봉인되다시피 있은 지가 수십 년이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넌 그것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냐?”

“네. 그렇기에 저 혼자 가겠습니다. 장문인 말처럼 만에 하나 천뢰탄이 폭발하지 않는다면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저 혼자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담담하게 말하는 현명의 말에 현보진인의 주름진 피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사제가 죽으러 가겠다고 말하는데 강하게 만류하지 못하는 자신과 문파의 나약함에 피눈물이 흘렀다.

“다시 한 번만 더 물으마. 정말 가겠느냐?”

“네. 장문인 보내주십시오. 곤륜의 도사로써 떳떳한 행동은 아니지만... 저들이 곤륜산 아래 활개 치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현명의 진무각 출입을 허(許)한다.”

현보진인은 허락을 하며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런 자신의 사형을 바라보며 현명 또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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