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묵령(墨靈)(2)
“이제 도망가는 것은 그만 두었느냐?”
검성은 묵령이 더 이상 도주를 멈춘 채 자신을 향해 도를 치켜들자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애초에 만상오행공을 극한으로 익힌 검성은 주위의 기운을 모두 느끼고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묵령이 아무리 기척을 죽이고 잠행을 한다 해도 검성의 기감에 걸렸고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검성에게는 더욱 주목받아 검성이 직접 찾아 나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독연을 터뜨리고 미리 흔적을 바꾸고 도망가는 것 역시 검성이 이미 묵령의 기질을 파악했기에 아무리 교란을 시키려한들 검성에게 통하지 않은 이유였다.
만상오행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묵령에게는 자신의 모든 기술이 통하지 검성에게 통하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도망은 의미 없다 여겼고 결국 반격을 위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신마는 이곳을 떠난 모양이지?”
검성의 물음에 묵령은 답하지 않았다. 검성은 묵령이 이곳으로 도주하기에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일행들 중 환영신마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신마를 구해 간 것이 묵령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의심이었다.
‘신마는 그럼 불마사로 복귀를 한 모양이군. 이 녀석은 홀로 독고진을 죽이기 위해 숨어든 것이겠고...’
검성은 이 기회에 신마까지 처리를 하려 마음을 먹었지만 없음에 조금은 아쉬웠다. 이미 자신의 앞에 도를 부여잡은 채 떨고 있는 묵령을 상대로 무언가를 하기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너는 중원인 같은데 왜 불마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것이냐?”
“저는...”
검성의 물음에 침묵을 지키던 묵령이 고민을 하며 입을 떼었다. 하지만 말을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묵령의 가문이 모셨던 진천문은 검성의 무공인 비뢰검결의 주인인 우내삼존의 비뢰검제의 가문이었다.
검성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에 묵령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천문의 멸화는 분명 검성의 책임도 있었다. 검성이 진천문이 자신이 배운 무공 비뢰검결과 거의 흡사함을 알고 진천검결을 직접 보완해주었고 그로인해 진천문은 크게 진일보하여 성장세를 거듭했다.
하지만 진천문의 세력이 커감에 따라 주위 세력들의 시기를 받았고 봉황금시를 찾아 우내삼존의 묘를 도굴하여 무공을 얻었다는 누명을 쓰고 결국 멸문을 당한 것이 진천문이었다.
당시 진천문주가 검성이 무공을 보완해주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증명해줄 검성은 이미 잠적한 이후였고 진천문주의 말은 거짓으로 내몰리며 멸문을 당했다.
사마군과 사마령이 환영신마에게 구해지지 않았다면 진천문의 혈족은 멸족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묵령은 검성에게 일정부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자신의 주군의 허락이 필요했다.
자신이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저희가 불마사를 돕고 있는 것은 검성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고민을 거듭하던 묵령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검성이 되물었다.
“더는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현재 불마사의 일은 검성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묵령은 차마 말을 마치지 못했다. 검성의 기운이 묵령을 압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네 놈은 환영신마의 사람이 아니더냐?”
“환영신마는 불마사의... 천존. 제가 모시는 이는 불마사의 지존을 모시는 자입니다.”
“불마사의 지존... 사마령이라고 했나?”
검성은 일전에 천통자가 자신을 향해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진천문의 사마씨들 인가?”
묵령은 검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검성이 그래도 결국 스스로 눈치를 채주자 다행이라 여겼다.
“진천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검성은 깨어난 후 대략적인 무림의 상황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진천문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천통자가 불마사의 지존이 사마령이라고 말해주며 조금 더 조사를 해보겠다 했을 때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설마 진천문의 사마씨족일 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겁니까?”
묵령은 검성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자 되물었다. 이미 사마령도 검성이 진천문의 일을 알았다면 나타나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만큼 진천문의 사람들은 검성이 진천문에 보여준 은혜에 감사하고 있었다.
비록 검성의 호의가 그들의 멸문으로 이어지긴 했었어도 말이다.
하지만 묵령은 사마령과 생각이 달랐다. 검성이 애초에 진천문에 나타나 무공을 보완해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봉황금시의 오해를 받았을 때 나타나주었다면 하고 검성을 원망해왔다.
“진천문은 멸문했습니다.”
“뭣이라? 진천문의 위세가 작지 않았다. 어찌 진천문이 멸문을 한단 말이냐?”
검성은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진천문이 멸문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얻은 기연의 본가이기도 한 진천문은 그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검성이 진천문의 무공을 보완 해주고 진천문은 크게 번성했었습니다. 그전에도 진천문은 무림의 인정을 받던 문파였지만 더욱 강맹해진 진천무결의 힘으로 무림에 더욱 이름을 떨쳤죠. 하지만 갑자기 강해진 진천문을 시기하는 세력들이 생겼고 그들은 갑자기 강해진 진천문의 무공에 대해 헛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
검성은 여기까지만 듣고도 대충 상황을 알 것만 같았다. 이후 묵령의 이야기는 검성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우내삼존의 무공을 탐낸 사파가 진천문을 야습한 것이었으나 그 내부엔 정파의 여러 문파들이 개입되어 있었고 그들의 우내삼존의 무공에 대한 탐욕이 생존자였던 사마군과 사마령을 끝까지 추격하여 괴롭혔다는 것을
“무림인들이란 어쩔 수 없는 자들이구나...”
모든 이야기를 들은 검성은 무심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았다. 검성이 지금껏 보아왔던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인들 모두가 신념은 달랐지만 공통적인 목적은 강해지는 것이었다.
누가 퍼뜨린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우내삼존의 무공 모두가 진천문에 있다면 누구나 욕심을 낼만한 이야기였다. 아예 없는 소리가 아닌 것도 문제였다.
진천무결의 결점을 보완해준 것은 우내삼존의 일인인 비뢰검제의 무공이었으니까
“내 탓이로구나. 내가 무림에 있었다면 진천문의 혈사는 피할 수 있었을 터... 네가 나를 원망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구나.”
생각을 마친 검성은 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천문의 생존자는 사마령 그 아이 혼자이더냐? 사마군이라는 아이도 살아있고?”
“그것이...”
검성의 물음에 묵령은 대답을 솔직하게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마군이 후대 활불임을 밝힐 수는 없었다.
“네... 두 분 다 환영신마에게 구해져 불마사의 일을 돕고 계십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묵령은 결국 사실을 숨기기로 한 채 둘러댔지만 그런 작은 변화조차 검성은 눈치 채고 있었다.
‘무언가 숨기고 있군. 전대 활불의 명으로 신마가 두 아이를 데려갔다면 분명 의도가 있었을 터... 설마 사마군이란 아이를 제물로 삼은 것인가?’
검성은 묵령의 이야기 속에서 활불이 굳이 사마군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점에서 이미 이상함을 느꼈지만 묵령이 사마령이 지존이라고 말하고는 사마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음에서 이미 사마군이 후대 활불이 아닌 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마령이나 묵령이 이렇게 불마사의 일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일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생각했다.
‘저 녀석을 이제 어찌 한다...’
검성은 눈앞에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장신의 묵령을 찬찬히 살폈다. 검성의 눈빛에 움찔하여 눈을 피한 묵령은 검성이 모든 것을 듣고도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 느끼고 있었다.
‘말로는 자신의 탓이라고는 하지만 표정이나 행동에선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냉혈한으로 보일 정도... 검성은 협의와 정의 그런 것을 대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전혀 다르다.’
누군가의 하수인으로 오래 살아왔던 묵령이었기에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에 대한 평가가 빠른 편이었다. 검성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여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를 기대했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검성은 점점 감정이라는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선인의 반열에 든 순간 검성은 인외(人外)의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검성은 묵령이 원망하듯 진천문의 이야기를 이야기 할 때 처음엔 조금 놀랐으나 크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진천문의 생존자인 사마군과 사마령 외에 문제가 되는 인물이 더 없는지 묵령을 통해 캐내고 싶을 뿐이었다.
묵령도 조금은 눈치를 채었는지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고 더는 알아 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검성은 행동에 나섰다.
“살려주십시오.”
움직이려던 검성은 묵령이 무릎을 꿇은 채 부복하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너를 죽일 것 같으냐?”
검성의 말에 고개 숙인 묵령의 전신은 땀이 흘러 옷이 젖어있었다. 검성의 말 한마디에 묵령은 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나를 죽이려고 한다. 이 사람은 말로만 듣던 이전의 검성이 아니다...’
묵령은 다시 한 번 깨닫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검성께서 조금이라도 진천문의 일에 미안함을 느끼신다면 저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예상치 못한 검성의 대답에 묵령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검성의 표정에 묵령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진천문의 일은 애석하다. 하지만 무림인으로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강자존의 무림에서 약한 것은 죄이다. 결국 지금 너희도 힘을 가지고 무림을 치려는 것이 아닌가?”
“그건...”
검성의 말에 묵령은 선뜻 답하지 못했고 검성은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너를 살려준다고 한들 이미 무림에 한이 깊은 그 아이들이 복수의 뜻을 접진 않을 테고 오히려 네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겠지. 그런데 내가 너를 살려 줄 이유가 있느냐?”
검성의 말에 말문이 막힌 묵령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묵도를 뽑아 들었다.
촤악-
“커헉...”
묵도를 들었던 묵령은 그 순간 목에서 피분수가 일어나며 단발마 비명성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대로 절명한 묵령의 눈은 검성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뜨고 있었고 검성은 다가가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검성은 언제 뽑았는지 정천검을 갈무리했다.
“무림인들의 욕심이 결국 화가되어 무림으로 돌아오는 모양새군.”
검성은 진천문의 후인들이 복수를 위해 불마사의 지존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이제 머지않아 싸움이 시작되겠구나.”
검성은 몸을 돌려 남궁세가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성의 말처럼 사패와 무림맹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