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흑월도존의 상태
“내게 물을 것이 있는 게로구나?”
약선은 천통자가 용무가 끝이 났는데도 안 나가고 자신을 바라보며 버티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네... 그것이 본회(本會)에서 흑월도존의 상태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라고 명이 내려와서...”
흑월도존이 깊은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나 그의 제자 독고진을 구하고 다시 쓰러진 것은 이미 전 무림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아는 것은 천통자 앞에 두 사람뿐이었다.
무림은 흑월도존의 일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없이 그저 제자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스승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독고진에 대한 연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무림맹이 개방을 동원하여 소식을 차단하곤 있지만 이미 퍼진 말은 주어 담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정파인들에게 협객으로 추앙받기까지 한 흑월도존의 명성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었다.
“너도 입장이 곤란 할 수 있겠구나. 너에게는 말 해주어도 되겠지.”
약선은 말을 하고는 검성의 눈치를 살폈고 검성이 아무 말 없자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보았다시피 흑월도존은 자신이 중독 된 것을 알고 치료할 방법이 없자 체내의 모든 힘을 독의 억제를 위해 영면을 택했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조차 독을 억제하는데 쓰려고 함이었지.”
“네. 그건 저도 몸을 직접 살폈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도존이 스스로 금제를 풀었으니 독이 체내에 퍼진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온 몸에 독이 퍼져 정말 위험했지만 사혈요법으로 죽은 피와 독을 빼내어 간신히 생명은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약선은 도존의 전신에 침을 꽂아 사혈과 독을 직접 뽑아내었고 워낙 많은 피를 뽑아내어야 했던 탓에 약선도 도존의 생명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놔두면 죽음 밖에 없었기에 그동안 생각으로만 했었던 사혈침술을 처음 사람에게 행했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침을 통해 전신에서 뽑아낸 사혈은 그야말로 독수(毒水)들이었고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도존이 위험하긴 했으나 잘 버텨주었기에 치료의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도존이 중독된 독은 체내에서 독이 피와 만나면 독수로 화(化)하면서 체내의 모든 피가 독수가 되어 절명하는 독이었으나 피와 함께 독성분 또한 다수 흘려버리면서 독기가 약해졌고 검성이 오행상생의 술로 도존의 기운을 북돋아주자 독의 기운이 더욱 약화된 상태였다.
약선의 설명을 들은 천통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체내의... 피를 전부 독으로 바꾸는 독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피를 뽑아 치료를...? 그것이 가능한 치료법입니까?”
“나도 생각만 했던 사혈침술이라 실제로 사람에게 행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침을 찔러 죽은피를 뽑아낸다곤 하나 도존처럼 몸 전체에 독이 그것도 피 전체가 독수로 변한 상태의 사람을 나도 어느 정도까지 피를 뽑아내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약선은 그 당시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뜨곤 다시 입을 열었다.
“도존같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고강한 무공을 지니지 않았다면 견디지 못했겠지 그리고 이 사람의 오행상생의 술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야. 그렇기에 또 다시 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니다.”
“그럼... 심각하군요. 만독곡의 하독술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도존의 치료를 통해 이번 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으니 난 이제 서문세가의 사람들과 해독약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생각이다.”
“뭔가 깨달으신 것이 있으신 것이군요.”
약선의 말에 천통자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아직 거창하게 말 할 정도는 아니다. 해독약을 만드는데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고...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볼 생각이다.”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쪽에서도 모든 것을 지원 할 것입니다.”
천통자는 약선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 주자 내심 고맙기도 했다. 이제 불마사와 만독곡은 머지않아 움직일 것이 분명한데 불마사보다 어떻게 보면 만독곡 쪽이 더 까다로울 수가 있었다.
하독술이란게 대비를 한다한들 철저하게 방어가 힘든데 무색무취의 절독은 더욱 그랬다.
“현재 본회에서도 도존을 중독 시킨 독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자료를 전부 약선께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조직의 방대한 정보력이라면 애령이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겠군.”
검성도 듣고만 있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검성의 말처럼 몇 백 년의 세월을 걸쳐 모아온 비천의 방대한 정보와 자료들 중 분명 약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분명히 있을 수도 있었다.
“성수신의(聖手神醫)와 만나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는 왜?”
“제가 알아본 바로는 사왕련에서 성수신의에게 도존의 상태를 제일 처음 맡겼다하더군요. 그와 이야기를 해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그래. 그를 데려올 수 있겠느냐?”
“이미 비천에서 데리고 있습니다.”
“그럼 그를 서문세가로 데려오너라. 네가 가져온다하던 자료와 같이 말이야.”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약선의 대답에 천통자는 신이나 바로 답했다. 비천에서도 만독곡의 독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골치였는데 약선이 나서준다면 해결방안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비천에서 내입지가 점점 탄탄해지겠군.’
천통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검성과 엮이면서 비천에서는 천통자의 보고만 들어오길 매번 재촉하는 상황이었는데 만독곡의 절독까지 이렇게 해결하는데 기여를 하게 되면 비천에서 출세는 맡아놓은 당상이었다.
비천이 남들에게 드러내놓고 무언가를 과시할 수 있는 단체는 아니었지만 비천의 권력은 무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비천의 천주가 바뀔 때마다 많은 분란이 있어왔다.
그렇기에 현재 천주가 취임하면서 천주는 비천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기여가 높은 삼인을 정해 장로회의 투표를 거쳐 선정하기로 했고 현재 바뀐 방식에 가장 유리한 것이 천통자였다.
숨기려 해도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있던 천통자는 검성과 눈을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입을 떼었다.
“흠... 약선께서 서문세가로 가시면 검성은 의천문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너도 일을 마치고 바로 돌아오너라.”
“알겠습니다. 이거 무림은 더욱 바빠지겠군요...”
천통자는 비천에 소식을 빨리 전해야겠다는 마음에 말을 마치고는 얼른 방을 나섰다.
***
“떠나시나요?”
남궁나연은 자신을 만나러 온 이윤후를 앞에 두고 쓸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스승님과 함께 내일 소주로 떠날 예정이라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남궁 소저께서 잘 대해주신 덕에 편안히 지내다 가는군요.”
이윤후의 인사치례 말에 남궁나연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도존과 유 소저는 먼저 떠난 듯 하던데 같이 가신 줄 알았어요.”
남궁나연은 자신이 세가를 잠시 비운 시간에 그들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윤후도 같이 갔다고 생각하여 아쉬워했는데 그건 아니라 안심했었다.
하지만 이윤후도 검성과 모두 떠날 것을 듣고 계속 아쉬워하고 있었다.
“네. 도존의 치료 때문에 서문세가의 사람들과 서문세가로 먼저 이동했습니다. 약선 어르신이 서문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하셔서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유 소저도 남궁세가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 했어요.”
“네. 사실 저희가 뭐 해드린 건 없죠. 모두 이 공자님과 두 분 어르신들이 하신 거죠.”
남궁나연은 이전처럼 이윤후를 소협이라 부르지 못하고 호칭을 공자로 바꾼 상태였다. 현재 이윤후의 위상이 더할 나위 없이 높아져있었기에 그를 소협이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왕련의 사왕과 련주인 독고진을 상대로 승리한 이윤후는 정파 내에서도 사실상 상대를 찾기 힘든 실력자였다.
“유 소저가 아쉬워했겠어요. 아...”
“네?”
“아니에요...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말이 헛나왔어요.”
남궁나연은 이윤후가 떠나는 것이 마음속으로 못내 아쉬웠는데 유인경 또한 이윤후를 연모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윤후와 다시 이별했을지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남궁나연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이윤후는 속으로 그런 남궁나연의 모습이 귀여웠지만 내색치 않았다. 두 여인 모두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이윤후는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윤후는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고 그런 그를 남궁나연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흠... 남궁세가는 무림맹에 힘을 보태기로 이야기되었습니까?”
이윤후는 어색하여 말을 돌리려는 듯 화제를 바꾸었지만 실제로 궁금한 내용이기도 했다. 낮에 무림맹의 인물들이 남궁세가에 방문한 것을 보았기에 물은 것이었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아마도 아버지께서 그렇게 결정하지 않으실까 생각해요. 현재 세가의 상황 상 직접적으로 무림맹을 도울 수는 없겠지만 남궁세가가 무림맹과 협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길 원하시는 거 같아요.”
“그렇군요. 남궁세가에도 나쁘지 않은 소식인 듯 한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남궁세가로서는 손해 볼게 없기 때문이죠. 남궁 소저가 말했듯이 남궁세가는 현재 세가를 재건하는데 모든 힘을 써야하는 입장이라 무림맹에 직접적인 지원이 불가능하죠. 무림맹에 남궁세가가 힘을 보탠다는 소식만 모두에게 전하는 것은 남궁세가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죠.”
이윤후는 남궁나연이 어떠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묻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남궁인이 임시 맹주로 가고 자신의 아버지가 받았던 냉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림맹이 이렇게 제안해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게 분명했다.
“무림맹은 어떻게 보면 남궁세가를 인정해준 것이라 볼 수 있죠. 안휘성 일대가 다시 남궁세가의 영역이 된 만큼 오대세가의 으뜸이었던 남궁세가로 돌아올 것을 믿고 제안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안명선생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남궁나연은 낮에 무림맹이 찾아온 이후 남궁인을 찾아가 무림맹에 다시 협력하기로 한 소식을 조금 따지듯 물었는데 안명이 이윤후와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서 화가 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무림맹의 행태는 마음에 들지 않은 남궁나연이었다.
“무림맹의 맹주인 강유 대협은 무림에서도 많은 이가 칭송하는 호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과 같이 무림맹이 세력들을 편애하고 차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이번 일로 무림맹과 관계를 잘 맺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도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남궁나연이 자신의 아버지가 임시맹주로 무림맹에 있으면서 어떤 치욕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무림맹에 대한 인식이 나빴다. 하지만 그녀도 이윤후의 말처럼 무림맹과 관계를 이번에 잘 터두는 것이 향후 남궁세가에 큰 힘이 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싫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