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이윤후 대(對) 독고진(2)
스슥-
이번에 먼저 움직인 쪽은 이윤후였다. 왼발을 밀듯이 쭉 밀어 넣음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그와 동시에 검을 쳐들었다.
파지직-
뇌정이 이윤후의 검을 휘감았다.
“비뢰낙일(飛雷落日)!”
촤자자작-
이윤후의 검을 휘감았던 뇌정의 기운이 폭사했다. 그렇게 내려친 검기는 낙뢰가 되어 독고진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과광-
검기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분진을 일으켰다.
이윤후는 자신의 공격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분진으로 시야가 가려진 사이로 달려들었다.
채쟁-
채재쟁-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는데 분진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두 사람의 검과 도가 부딪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내 분진이 가라앉고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독고진은 도에 기운이 집중하고 있었다.
“참월(斬月)!”
독고진은 외침과 함께 도를 내리쳤다. 빠르지 않은 베기였다.
이윤후는 독고진의 검을 되받아칠까 검을 쳐들었으나 곧 등골이 오싹한 감각을 느끼고는 재빨리 검을 회수한 채 회피했다.
그 순간.
콰과과과과쾅-
독고진의 도에서 맹렬한 기운이 발산되며 도기가 뻗어갔다.
이윤후가 도기를 피해버리자 도기는 건물의 외벽을 박살내고야 사라졌다.
단순한 베기로 보였던 공격에 엄청난 기운이 발현되자 이윤후는 물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라고 있었다.
특히 이윤후는 독고진의 베기에 맞대응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단순한 베기로 판단하고 막았다면 도기에 의해 몸이 두동강 났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쐐액-
이윤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독고진은 연계를 이어나갔다.
그의 도가 휘둘러질 때 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공성이 들렸고 단순한 베기에 응집된 도기가 발산되었다. 그렇기에 이윤후는 검을 부딪치기 보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며 반격을 시작했다.
이윤후의 검은 날카롭게 독고진의 급소를 노리며 파고들었고 둘은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수십여 합이 흘러도 결판이 나지 않았고 어느새 어둠이 사라지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촤작-
독고진의 도가 횡으로 베다가 급격히 방향을 바꾸어 이윤후가 회피한 방향으로 다시 베어갔다.
갑작스러운 도의 변화에 이윤후는 미쳐 피하지 못하고 검을 들어 막으려했다.
촤아앙-
“크헉...”
엄청난 내력이 실린 독고진의 도를 그대로 받아버린 이윤후는 그대로 튕겨나가며 밀려났고 쓰러지진 않았으나 그 충격으로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든 이들이 탄성을 내질렀고 약선과 남궁나연은 특히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파밧-
승기를 잡은 듯 독고진의 눈빛이 달라지며 이윤후에게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곧바로 도를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무월참(無月斬)!”
촤자자작-
독고진이 도를 내려치자 묵빛 도기가 폭사되어 이윤후를 덮쳐갔다.
콰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울리며 독고진이 펼친 무월참의 도기에 이윤후가 막지 못하고 격중당하는 모습에 모두 놀라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독고진도 승리를 확신한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쐐액-
쩌정-
“크헉...”
한줄기의 검기가 독고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방심하고 있었던 독고진은 놀라 도를 쳐올렸으나 도신과 도병(도의 손잡이)사이에 검기가 격중당하면서 그의 도가 부서졌고, 그 충격으로 뒤로 쭈욱 밀려났다.
독고진의 무월참에 치명상을 입었을 거라 생각했던 이윤후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옷이 넝마가 되어있기는 했지만 큰 부상은 피한 듯 싶었다.
“어떻게...? 분명 무월참을 막아내기 힘들어보였는데...?”
독고진은 자신이 펼친 무월참에 이윤후가 두 동강 났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것도 놀라운데 반격까지 한 것이 믿을 수 없었다는 듯 물었다.
놀란 것은 독고진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독고진의 생각처럼 이윤후가 패했다고 생각했던 무인들은 이윤후의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저 사람이 침착하게 지켜본다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어르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분명 이 소협이 위험해보였는데...?”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실 남궁나연은 이윤후가 잘못된 줄 알고 뛰쳐나가려고까지 했으나 자신의 아버지인 남궁인에게 붙들려 울고 있었다가 이윤후가 멀쩡한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것이...”
약선이 입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워낙 수준 높은 대결이다 보니 상황을 파악한 이가 거의 없었기에 약선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윤후가 사왕련주의 도에 격중당한 것으로 보였으나 윤후는 날아드는 도기를 놀랍게도 튕겨내었다.”
“튕겨내다니요? 이 소협은 연이은 공격에 힘들어보였는데 그 강맹한 공격을 튕겨내었단 말입니까?”
이번에 물은 것은 안명이었다, 무공은 높지 않은 그였지만 식견은 높았기에 그조차도 이윤후가 잘못되었다 생각했었다.
이윤후의 자세가 흐트러져있었고 독고진은 이윤후에게 기력을 추스를 틈을 주지 않고 한 공격이었기에 누구도 이윤후가 독고진의 참격에 살아남으리라 예상하기 힘들었다.
“윤후는 지척에서 날아든 참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약선은 이윤후가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공격을 한 것까지 다 보았지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윤후는 토혈(吐血)을 하면서 내력이 흐트러졌고 약선 또한 내력이 흐트러진 상황에서 이윤후가 참격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검성이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는 것을 포기했었다.
이윤후는 날아든 참격을 향해 검을 쳐들어 참격의 방향을 비틀었다.
사실 약선도 어떤 원리로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몰랐기에 설명하기 힘들었고 그저 검성이 창안한 말도 안 되는 만상오행공의 영향일 것이라 짐작만 했다.
이윤후가 검을 들어 참격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지켜보는 무인들은 그 찰나의 순간을 보지 못했기에 그가 참격에 격중되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멀쩡했다.
참격의 여파는 분명 이윤후도 그대로 받아내어야 했지만 적중되지 않은 이상 몸을 보호하는 호신강기의 영향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독고진조차 방심한 그 순간 비뢰섬을 날려 독고진의 목을 노린 것이다.
그 결과 차마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독고진은 묵도가 도신과 도병이 분리되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독고진은 떨어져나간 도신을 바라보며 낭패감을 느껴야했다. 도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도병과 도신의 이음부분이 충격으로 떨어져나간 것이긴 했지만 현재 자신의 손에 들려진 것은 도의 손잡이뿐이었다.
이윤후도 필살의 수법으로 펼친 비뢰섬을 상대가 막아낸 것에 놀랐으나 무엇보다 상대의 무기가 사라지자 어찌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있었다.
웅웅웅-
퍼억-
갑자기 공기를 울리는 소리에 모두 한 곳을 쳐다보았고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독고진의 앞바닥에 꽂혔다.
그것은 온통 붉은빛이 도는 도였고 한때 누군가의 신물(信物)과도 같은 물건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아보았다.
“홍라염도(紅羅炎刀)?”
“도후의 신물이 왜 이곳에?”
갑자기 날아든 홍라염도에 모두 놀라 소리치며 두리번거렸고 독고진은 누가 날렸는지 알았기에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독고진의 시선과 물음이 향한 곳은 검성이었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빌려주마.”
“빌려주겠다면?”
검성의 말에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독고진이 도를 못 쓰게 된 순간 이윤후의 승리를 생각했었는데 검성이 신물인 홍라염도를 상대에게 빌려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 지을 필요 없다. 내 제자가 무기도 없는 상대에게 이겼단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 말이다.”
검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독고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검성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자신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독고진은 터벅터벅 내키지 않은 걸음을 이끌어 땅에 박힌 홍라염도를 잡았다. 그리고는 손에 착 감기는 기분에 살짝 미소를 보이며 도를 뽑아들었다.
웅웅웅-
홍라염도가 뽑히자 공명음이 울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독고진은 홍라염도가 마음에 드는 듯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성은 자신의 제자가 무기도 없는 상대에게 이겼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백아에게 매어져있던 주머니에서 홍라염도를 어느새 가져와 던져준 것이었다.
이윤후도 검성과 마찬가지의 생각이었기에 자신의 스승의 행동에 감사를 하고 있었지만 지켜보던 정파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검성의 행동에 토를 달수 없었고 무기가 없는 상대에게 마무리를 하지 않는 이윤후에게 비난을 가할 수 없었다.
“적이지만 너와 조금은 다른 상황에 만났다면 좋았을 뻔 했군.”
독고진은 이윤후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그도 이윤후가 자신이 무기가 없었을 때 공격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입장을 바꾸어 이윤후가 검을 잃었다면 자신은 이윤후에게 검을 새로 건네고 검이 없는 그 순간 공격을 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었을까 생각했을 때 절대 자신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흑월도존에게 상대를 존중하되 상대를 얕보지 말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이윤후가 검을 놓친 그 순간 독고진은 이윤후의 숨통을 끊어놨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상대를 얕보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 것이라 지금도 생각했다.
독고진은 상대가 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공격을 자만하여 빈틈을 주었고 그것이 무기를 잃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다시는 그런 실책을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당신과의 대결이 즐거워서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 생각해서 기다린 것이니 혹여나 제가 당신을 무시하여 그랬다고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크하하!”
이윤후의 말에 독고진은 크게 웃어 보였다. 이내 웃음을 그친 독고진은 이윤후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나는 너와 생사결(生死決)을 하고 있었는데 넌 이 대결이 즐거웠다하니 웃음이 났다. 너의 웃음기를 내가 없애주어야겠다.”
이윤후의 말은 듣기에 따라 조금은 오만하게 보일수도 있었으나 독고진은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윤후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려고 한 말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은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이 상황을 이윤후는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츠츠츠-
독고진은 다시 한 번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다시 그의 전신에 자주색 기운이 휘감기 시작했다.
웅웅웅-
독고진의 자뢰강기에 홍라염도가 공명하며 울기 시작하자 그 모습에 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홍라염도가 저렇게 재차 공명음을 내다니 가영조차 홍라염도와의 공명은 손에 꼽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홍라염도는 자신의 주인과 특별한 순간 공명하며 위력이 배가된다고 이전의 주인이었던 도후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검성은 재차 독고진과 공명하고 있는 홍라염도를 보며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