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이윤후 대(對) 독고진(1)
검성이 독고진을 살려 보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지켜보던 정파인들 모두가 안도했지만 알려진 것보다 검성이 정파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것을 다같이 확인한 것이라 씁쓸했다.
의천문이 발호하고 정파의 많은 문파들이 축하사절을 보냈으나 검성은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고 이번 정사회담이나 사왕련과의 일도 남궁세가가 아니었다면 검성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란 게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독고진은 검성이 먼저 검을 뽑자 자신도 도를 뽑아 들었다.
독고진 역시 검성이 환영신마를 상대하는 실력을 보았기에 자신이 검성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이 이룬 월령무결의 경지를 시험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이런... 너와 겨룰 상대는 내가 아닌 듯 하군.”
긴장감이 감돌았던 두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검성이 검을 거두자 독고진은 물론 지켜보던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그때
빼액-
백아의 울음소리가 동이 터오는 하늘로부터 울리며 선회하던 백아의 등에서 누군가 뛰어내려 아래로 하강하고 있었다.
“이 소협?”
하늘에서 내려오는 인물을 확인한 남궁나연이 소리쳤고 이윤후라는 소리에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뇌절검룡이다!”
“엄청난 경공이 아닌가?”
이윤후가 백아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하강하며 가볍게 착지하자 그의 경공에 감탄하는 자들도 있었고 이윤후가 나타남에 모두가 환호하고 있었다.
정파인들은 이미 이윤후가 미후왕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상태라 더욱 그를 반기고 있었다.
검성은 안전하게 대피시켰던 이윤후가 나타나자 걱정스러웠으나 온전한 상태임을 확인하고 걱정을 거두었다.
“몸은 괜찮으냐?”
이윤후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자 검성은 그를 살피며 물었다.
“사부님께서 처치해주셔서 금세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집을 부려 돌아왔습니다.”
이윤후는 은위단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정신을 차렸고 은위단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바로 백아를 불러 남궁세가로 돌아온 것이었다.
미후왕과 일전 이후 정신을 잃은 이유가 내상이 있던 것이 아니라 내력소모에 의한 것이었기에 검성이 오행상생의 술로 기운을 다스려 준 탓에 정신을 차린 이윤후는 이전보다 몸 상태가 더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검성도 이윤후의 몸을 살펴보고는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는데 너와 겨루는 것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겠나?”
“검성의 제자와 싸우라는 것입니까?”
검성이 이윤후를 뒤로 한 채 독고진에게 말했고 독고진도 검성의 말의 뜻을 알아듣고 바로 물었다.
“네가 나와 겨루어보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그것보단 내 제자와 싸우는 것이 오히려 좋을거야.”
검성은 이윤후의 등을 떠밀었고 이윤후는 독고진과 마주서게 되었다.
“오~ 뇌절검룡 이윤후와 사왕련주가 대결하는 것인가?”
“더 재미있는 상황이긴 하군.”
검성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둘을 에워싸고 있던 정파인들이었다.
검성과 독고진이 싸운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거라 사실 다들 크게 흥미가 동하지 않았는데 이윤후와 독고진이 싸운다는 이야기에 다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는 뭐라 말할 입장이 되지 않는 군요. 검성과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이긴 하나...”
독고진은 말을 하며 이윤후를 슬쩍 보았다.
“상대가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독고진은 이윤후의 소식을 들어왔던 터라 이윤후가 상대인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검성의 제자를 이긴 후 검성에게 도전하는 모습이 더욱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윤후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검성이 독고진과 대결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사부님은 흑월도존에게 기대하고 계시다... 나 역시 마음만 먹었다면 무림일통이 가능했다던 흑월도존의 실력이 궁금했는데 그의 제자라면 흑월도존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겠지.’
이윤후는 독고진을 마주보았고 자신보다 큰 키의 독고진을 조금은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는 그저 운이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일 년 사이에 미후왕을 쓰러뜨릴 실력자가 되다니... 안 그래도 궁금했었는데 잘되었다.’
독고진은 유인경을 잡으러 추격했던 장명에게서 이윤후에 대한 보고를 처음 들었었고 이후 비밀리에 이윤후에 대한 보고를 계속 받았었다.
자신의 대의를 위해 유인경을 제거하리라 마음먹었었지만 그녀가 이윤후에게 몸을 의탁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자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조사였다.
하지만 이윤후가 검성의 제자임이 밝혀지고는 관심이 더욱 커졌고 이후 모든 행보를 파악해왔었다.
독고진은 검성이 다시 강호로 나오기 전에는 천하제일인으로 불린 흑월도존의 제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지만 벽에 부딪쳐 몇 년의 세월을 허비하고 폐관수련 끝에 가까스로 그 벽을 넘어섰는데 자신이 파악한 이윤후의 행보에는 그런 벽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고 조금의 질투심도 있었다. 괜히 자신이 미욱하여 검성의 제자에 비해 성장이 더디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마저 있었다.
자신과 마주한 이윤후의 실력을 직접 보고 검성의 무공을 가늠해본다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독고진은 묵색대도를 뽑아들며 자세를 잡았다. 흑월도존의 애도였던 흑월로 현재는 독고진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지켜보던 유인경과 월랑의 눈빛이 달라졌고 독고진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애초에 도존이 직접 물려주지 않은 흑월이었기에 도존이 병상에 든 동안 독고진이 그냥 사용하고 있었다.
이윤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사부님이 나를 통해 저자의 실력을 가늠해고 싶으신 것이겠지?’
이윤후는 눈앞의 상대인 독고진을 찬찬히 살피며 생각했다.
검성은 도존을 자신의 상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독고진의 실력을 본다면 그것이 명확해 질 것이라 생각했다.
‘느껴지는 기세는 미후왕이나 다른 이들이 비해 압도적인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인가?’
이윤후는 더욱 긴장하며 상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성은 고수일수록 자신의 기를 더욱 잘 갈무리하여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말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윤후는 만상오행공을 익힌 터라 남들보다 더욱 감각이 뛰어나 만물의 기운을 느끼고 파악하고 있었는데 상대인 독고진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독고진이 미후왕보다 더 뛰어난 고수라는 것이었다.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사부님과 약선 어르신 둘 뿐이었는데 그 정도의 고수라는 것인가?’
이윤후가 지금껏 기운을 읽지 못한 이는 자신의 사부인 검성과 약선 뿐이었다. 미후왕조차 은은하게 기운이 새어나왔었는데 최소한 미후왕보다 위이고 검성과 약선 사이의 고수라는 의미였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
독고진은 이윤후가 먼저 움직이지 않자 입을 떼고는 흑월을 가볍게 휘두르며 움직였다.
촤좡-
“으윽...”
독고진이 가볍게 휘두른 일도에 이윤후가 상월을 들어 막아내었으나 조금 밀려났다. 이내 상념에 빠졌던 자신을 추스르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샤샤샥-
이윤후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며 독고진의 목 가슴 배를 동시에 노리며 찔러갔고 독고진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회피하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두 사람이 어우러지며 검과 도가 부딪치기 시작했는데 빠르고 유려한 이윤후의 검법과 묵직한 독고진의 도법이 교환되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윤후는 잘 해낼 것이다.”
약선은 자신의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남궁나연을 보고는 말했다.
“이 소협이 밀리는 것이 아닌가요?”
남궁나연이 보기엔 이윤후의 검은 가벼웠고 독고진의 묵직한 도에 모든 것이 막히고 튕겨져나가는 듯 보였다. 그래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윤후의 검을 너는 본 적이 있지 않느냐?”
“네... 연회 때 미후왕이 남궁세가로 쳐들어왔을 때 보았어요.”
“그때 윤후의 검이 가볍더냐?”
“아...!”
남궁나연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음을 알았다.
“윤후의 검은 저런 빠르고 유려한 검이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상대를 시험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하여간 너도 알다시피 윤후가 배운 그 사람의 검은 패도적인 검이지.”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은 안심을 했고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남궁나연처럼 이윤후가 밀리고 있다 느꼈기에 약선의 말에 같이 안심하고 있었다.
파지직-
이윤후의 검에서 뇌정이 서리기 시작했고 독고진은 이윤후를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이제 본 실력을 보여주는 것인가?”
독고진은 진즉에 이윤후가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독고진도 그저 휘두르고 베고 내려치는 단순한 도식만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저 빠르기만 한 이윤후의 검은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듯 귀찮긴 했지만 위력적이지 않았다.
츠츠츠-
독고진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전신은 자주빛 기운으로 휘감겼다.
“자뢰강기(紫雷剛氣)? 정말로 월령무결을 팔성이상 달성 한 것인가?”
독고진을 휘감는 기운을 알아본 월랑이 말했고 유인경도 월령무결을 익히고 있었기에 자뢰강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흑월도존이 남궁세가에서 쫓기다 시피 도망쳐 나온 이후 배웠던 남궁세가의 무공과 천하를 둘러보며 익히고 깨달았던 다른 무공들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고 그것이 월령무결이었다.
하지만 흑월도존의 모든 정수를 모아 만든 무공답게 월령무결은 배우기가 극악했고 그의 아들조차 육성의 벽에 막혀 그 윗 단계를 넘지 못했다.
독고진도 육성의 벽에서 오랫동안 좌절하다 폐관수련에서야 그 벽을 넘어섰고 월령무결을 팔성이상 넘어서야 발현한다는 자뢰강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월령무결을 극성까지 익힌 것인가? 그렇다며 검성의 제자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월랑은 독고진의 성취에 놀라며 이윤후를 슬쩍 보았다.
월랑은 흑월도존이 육성의 성취를 처음 이루었을 때 그와 겨뤄 가까스로 이긴 적이 있었다.
그때 흑월도존은 월령무결의 성취가 칠성이 넘어 팔성이 되면 자뢰강기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무공이 두 배 이상 강해진다고 이야기했었다.
흑월도존이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었고 현재 독고진의 수준은 자신을 분명히 뛰어넘었다 봐야했다.
‘검성은 나서지 않을 생각인가?’
월랑은 독고진이 뿜어내는 기운이 더욱 강맹해지고 지켜보는 무인들 전원이 느낄 만큼 강력해지자 검성을 쳐다보았으나 그저 자신의 제자를 바라볼 뿐 딱히 걱정스러운 모습도 없이 편안해보였다.
‘자신의 제자를 믿는다는 것인가? 내가 느끼는 것을 검성이 느끼지 못할 리는 없고...’
월랑은 검성이 저렇게 믿고 있는 이윤후의 실력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윤후가 일으키던 뇌정은 이윤후에게 다시 흡수되듯 사라져갔고 마찬가지로 독고진의 자뢰강기도 미친 듯이 휘몰아치더니 독고진의 체내로 흡수되어 사라져 주변이 잠잠해졌다.
두 사람은 준비가 끝이 난 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