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76화 (176/251)

176화- 환영신마(幻影神魔)(2)

환영신마의 물음에 검성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부딪친 환영신마는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검수와의 대결 경험이 많았던 환영신마는 늘 검수와의 싸움에 근접전을 벌이며 거리를 벌리며 발악하는 검수를 농락하며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겨왔다.

검성과의 대결도 그렇게 흘러갔고 처음 십여합에서 자신을 떼어내지 못한 채 발악하는 검성을 보며 자신의 실력이 녹슬지 않음을 과신했고 검성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십여합이 지나며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좁힌 거리만큼 자신이 유리한 싸움이었는데 그 좁은 거리에서 검성은 자신의 모든 공격을 회피하며 반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여합이 지났을 때 검성이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음을 알았다. 이 좁은 거리의 싸움을 검성은 즐기고 있었고 자신의 공격을 처음보다 더 쉽게 피해내는 그를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오십여합이 지났을 때 환영신마는 참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거리를 포기하며 물러났다.

“당신이 권왕보다 그리고 신투보다 강한 것은 확실한 듯 하군요. 하지만 지금 보여준 것이 당신의 실력을 다 보여준 것이라면 당신에게 기대한 것이 있었는데 실망스럽습니다.”

검성의 담담한 말에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놀라고 있었다.

‘검성이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환영신마 마저 검성에게 대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인가? 검성의 상대가 과연 무림에 존재하기나 할까...’

천통자는 검성에게 조금은 연민을 느꼈다. 검성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절대자로서 모두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저 무에 대한 갈구가 큰 사람이었고 그것이 현재 검성을 지금의 위치까지 이르렀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성취가 있다한들 자신의 맞상대가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전대의 거마인 환영신마 마저 저렇게 검성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 무림에 검성의 상대는 없다고 봐야했다.

‘불마사에 등장했다는 활불이나 마교의 천마라면 모를까... 그리고 흑월도존...’

천통자는 다시 한 번 어떻게든 흑월도존의 치료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성의 호적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검성이 언제든 떠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아기 때문이었다.

‘강자들이 고독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것은 무림의 역사만 보더라도 적지 않지. 자신의 제자가 있는 한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검성이 기대하고 있는 흑월도존을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겠어.’

천통자는 이 일이 끝나고 당장 비천의 모든 정보망과 비천 내의 의학서를 다 뒤져서라도 흑월도존의 치료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현 무림에서 검성과 의천문 그리고 이윤후는 꼭 있어야할 존재이고 그들이 없다면 현 무림은 미래가 없었다.

천통자가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환영신마가 서서히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쐐액-

환영신마의 탄지공(彈指功)이 검성의 요혈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성이 검기를 일으켜 그것들을 튕겨내자 환영신마는 어느새 다시 근접해있었다.

처척-

파바박-

환영신마는 권장술이 아닌 금나수(禽挐手)와 수도(手刀)를 이용한 공격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근접해 있기에 검성은 검을 휘두르기가 힘들었다.

검을 휘두르자 환영신마의 금나수가 뱀처럼 휘어져 들어와 검성의 팔 요혈들을 노려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뿌리친 검성은 정천검을 회수하여 검집에 넣었다.

파바박-

검성의 행동에 환영신마의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검성이 검을 넣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했기에 공격을 주도하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감히 나를 상대로 박투(搏鬪)를 하려하다니 후회할 것이다!”

퍼버벙-

환영신마는 다시 권장을 쓰기 시작했고 주먹과 장법 그리고 수도에 금나수까지 박투술의 모든 기예를 화려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자랑하던 보법을 이용해 검성의 공격은 적절히 회피하고 있었다.

촤라락-

“헛...”

검성이 환영신마의 장법을 피하고 반격을 하기 위해 주먹을 뻗은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환영신마의 금나수가 그의 손을 파고들어왔다.

요혈을 타격하며 들어오는 공격에 검성은 뒤로 뛰어 회피하려했으나 그것 또한 환영신마가 예상했다는 듯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콰과과광-

환영신마는 검성이 자신의 금나수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자 기회만 보고 있었고 성공하자마자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바로 환영파천장을 검성에게 펼쳤다.

환영신마의 한수를 계속 회피하고 있던 검성이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했고 환영신마의 공격이 제대로 먹힌 듯 싶었다.

“이럴수가...?”

하지만 장력을 뒤집어썼던 검성은 피어 오른 흙먼지만 뒤집어썼을 뿐 멀쩡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를 쓰는 상대보다 까다롭군요.”

검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환영신마에 대한 평가를 하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검성의 그런 담대함에 놀랐다.

누가 봐도 환영신마의 한수는 치명적이었고 모두가 검성이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성은 그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환영신마의 박투술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사실 검성은 이런 근접전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수많은 대결에서 자신의 검의 거리에서 늘 유리하게 싸워왔고 환영신마처럼 검성의 품으로 파고드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검성에게 파고들어 싸운 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었고 환영신마니까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그것마저 검성에겐 통하지 않았다.

‘윤후가 이번 대결을 보았다면 좋았으련만... 아쉽군.’

검성은 후에 이번 대결에 대한 이야기를 이윤후에게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이윤후가 환영신마와 먼저 만났다면 자신의 제자는 환영신마의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했고 이런 싸움에 대한 대응 방법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영신마는 자신의 모든 밑천이 드러냈는데도 검성에게 상처하나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믿을 수가 없는 듯 검성을 노려보았다. 이에 검성은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

“당신이 더 이상 보여줄 것이 남아있지 않다면... 여기서 끝을 내야겠습니다.”

“흥! 네 이놈. 네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이냐?”

검성의 말에 환영신마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비록 자신의 수들이 통하지 않았지만 검성의 공격도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성의 말은 너무 광오했다.

“저는 그저 즐겼을 뿐입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거리의 싸움을... 그리고 당신의 실력을 모두 보여주길 바랬을 뿐이랄까요?”

검성의 말에 환영신마의 얼굴은 이상한 모양새로 구겨졌다. 분노와 놀람...그리고 치욕적이게도 자신이 최선을 다해 펼쳤던 모든 수를 검성이 모두 파악하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는 말에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사실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환영신마는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쉬익-

파악-

갑자기 검은 인영이 환영신마에게 다가서며 동시에 회색 연무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연무는 시야를 가렸고 검성은 혹여나 독일 것을 대비하여 천통자와 은위단의 곁으로 가 연무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기막을 쳤다.

연무가 걷히자 환영신마와 접근했던 검은 인영이 사라지고 없었고 이미 예상했던 검성은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환영신마가 사라지자 이젠 남은 것은 독고진 뿐이었다.

검성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너도 물러나고 싶다면 물러나도 된다.”

“검성님... 그자를 그냥 놓아주면 안 됩니다.”

검성의 말에 놀라 입을 뗀 것은 천통자였다. 안 그래도 여기서 죽으리라 생각했던 환영신마가 도망간 마당에 사왕련의 련주인 독고진마저 여기서 살려 보낸다면 오늘 승리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었다.

독고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검성의 말에 조금은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전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물러나지 않겠다? 목숨을 버릴 생각이냐?”

검성은 독고진의 말에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듯 답했다.

“목숨을 버린다라... 저는 목숨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검성의 말처럼 이곳에서 제가 도망가서 살아남는다고 한들 사파의 사람들이 저를 따라와 줄까요?”

“목숨을 버리지 않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럼 네가 이곳에서 살아나갈 자신이 있다는 소리냐? 이미 밖의 소란은 잠잠해졌고 남궁세가와 정파의 무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모두를 상대하여 살아나갈 자신이 있다는 소리냐?”

사실 검성은 독고진의 목숨을 버린 적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독고진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이곳에서 싸우다 죽기를 각오한 것이었다.

독고진이 후퇴하여 사왕련을 다시 재건하여 싸울 수 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만 사왕련의 다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의 실패로 사왕련은 사분오열(四分五裂) 될 것이 분명했고 그동안 독고진에게 충성하는 척 했던 자들은 모두 떠나갈 것이 분명했다.

“사부의 뜻을 져버린 제자이긴 하나 전 사파의 지존 아니 천하제일인이셨던 흑월도존의 제자입니다. 사부님께서 무림에 이름을 떨치면서 정파인들은 늘 오절... 그 중에 검성의 이름을 대며 검성이 무림에 있었다면 도존이 활개 치지 못했을 거란 말을 해왔죠.”

“.....”

독고진은 말을 하며 검성을 보았다. 검성도 흑월도존에 대한 관심이 있어 알아봤을 때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자신과의 비교라는 것을 들었었다.

사파의 인물에게 패배한 정파인들의 마지막 자존심같은 말이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참 비겁한 말이라 생각했다.

한편 어느새 남궁세가의 인물들과 약선과 서문세가 그리고 무림맹의 인물들까지 밖의 소란을 모두 정리한 듯 모두들 모여 있었다.

독고진을 향해 움직이려던 모두를 약선이 중간에서 제지시켰고 검성과 독고진은 어수선했던 주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네 사부인 흑월도존에 대해 관심이 있어 알아보았다. 윤후와 겨루었던 미후왕이라는 자도 지금 너와 같이 말하더군. 자신이 존경하는 도존의 실력을 정파인들이 나와 비교하며 폄하했다고.”

“......”

“그건 정파인들의 비겁함이었다 생각해라.”

검성의 말에 주위를 둘러싼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독고진이었다.

“자신들의 패배와 굴욕을 남의 이름을 빌려 상대의 가치를 깎아내려 한 것은 무를 추구하는 자들이 할 행동이 아니다. 그저 편협한 협잡꾼일 뿐이지.”

검성의 적나라한 말에 독고진이 오히려 주위의 분위기를 살폈다. 검성의 말에 모두가 동요하고 있었다.

“네 사부의 업적과 실력을 나는 존중하고 있다. 그래서 네 사부와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독고진은 검성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에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검성의 말은 정파인들이 좋아할 말이 아니었다.

당장 도존의 건강히 쾌차한다면 어느 정파가 좋아할까.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다. 나는 네 사부는 물론 경이를 지켜줄 생각이다. 이번 일이 끝나고 아마도 정파 녀석들은 네 사부에 대한 처리를 논하겠지만 내가 있는 한 손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검성의 말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이미 검성의 뜻을 알고 있었던 약선과 남궁인등 남궁세가의 수뇌부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무인들은 검성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네가 이곳을 죽을 자리로 생각했다면 네 실력을 제대로 보여 다오.”

스르릉-

검성은 말을 마치며 검을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