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적혈마원(赤血魔猿)(2)
투둑- 툭-
“끄으윽...”
미후왕의 전신의 근육이 점차 부풀어 오르고 근육의 혈관들이 튀어 오르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윤후는 공격을 할까 망설였지만 미후왕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강기에 공격을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후왕이 말한 혈왕마라공의 극성의 모습은 그냥 보기엔 흉측한 모습이었다. 변화를 마친 미후왕의 얼굴은 큰 혈관들이 드러나 있었고 그의 별칭처럼 붉은 피부에 붉은 머리 그리고 원숭이를 닮은 외모까지 딱 적혈마원의 모습이었다.
나이든 노인 치고 컸던 그의 덩치는 더욱 커져있었고 피가 흐르고 있던 그의 양손의 출혈은 어느새 멈춰있었다.
“금검보를 멸문시킬 때 이후 이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다. 너도 본 실력을 보여야 할 거야.”
미후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사원당의 무인들과 남궁근에게도 느껴질 만큼 위협적이었고 가까이 마주선 이윤후는 마치 수많은 검으로 찔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초절정 고수의 투기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윤후도 내력을 끌어올리며 대항했지만 압박감은 상당했다.
“선배님을 상대로 실력을 감추려한 적이 없습니다. 저를 인정해주셔서 감사하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윤후는 지금껏 싸워본 상대들에게 전력을 다해본 적이 없었기에 미후왕에게 자신의 전력을 가늠해볼 기회라 여겼다.
쩌정-
자세를 잡으려던 이윤후에게 일순간 거리를 좁힌 미후왕의 일권이 날아왔고 차마 피하지 못한 이윤후는 가까스로 상월을 고쳐 잡으며 검신으로 간신이 막아냈으나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그 충격으로 밀려났다.
“이런...”
이윤후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고 밀려난 이후에도 미후왕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광기어린 미후왕의 공세는 신속했고 파괴적이었다.
그의 주먹을 이윤후가 피하자 권풍이 주위를 부숴갔고 그의 장법을 피하면 바닥이 파이고 건물들이 부셔졌다.
미후왕의 공세에 이윤후는 막기 급급했고 이십여합이 지나고서야 공세에 익숙해진 이윤후가 공격을 시작했다.
극성의 혈왕마라수에 이윤후의 검이 이전과 같이 피부를 뚫지 못하자 점점 내력을 끌어올려 절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윤후의 검에 뇌정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고 검에 실린 기운이 강력해지자 미후왕도 혈왕수로 검을 막아내기 보단 피하기 시작했다.
수십여합이 지나도 공방이 거듭되자 이윤후는 마음을 먹은 듯 검을 잡은 손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피해내지 못할 속도의 쾌검을 보여주리라.’
파밧-
이윤후는 미후왕과 거리를 벌렸고 검을 고쳐 잡았다. 미후왕은 이윤후가 떨어져나가자 그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며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이윤후의 속도가 이미 혈왕마라공을 극성으로 펼치는 자신의 속도에 뒤지지 않았기에 경계하고 있었다.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냐?”
“......”
미후왕의 물음에 이윤후는 답하지 않았고 그의 눈빛이 달라지자 미후왕은 공격이 들어올 것을 짐작했다.
스걱-
이윤후의 검이 번쩍이며 파공음(破空音)이 들렸고 미후왕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펼친 검의 이름이 있느냐?”
미후왕의 물음에 이윤후는 검을 갈무리하여 검집에 넣으며 입을 떼었다.
“비뢰섬(飛雷閃)이라는 검법입니다. 극쾌(極快)의 초식이고 선배님을 꿰뚫은 검입니다.”
촤악-
이윤후의 말과 함께 미후왕의 왼쪽 어깻죽지에서 피 분수가 피어올랐고 지켜보던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이윤후였다.
“어찌...? 분명 목을 꿰뚫었다 생각했는데...?”
이윤후가 비뢰섬으로 노린 것은 미후왕의 목이었고 펼치고 그의 목을 꿰뚫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미후왕은 반응했고 완전회피를 하지 못한 미후왕은 자신의 어깨가 꿰뚫린 것이었다.
“이제 내 차례구나.”
미후왕의 안광이 폭사되었고 그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촤좡-
채쟁-
미후왕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지며 이윤후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그는 상월에 서려있던 뇌정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더 이상 검을 피하지 않고 부딪쳐오고 있었다.
비뢰섬을 시전하면서 끌어올렸던 내력이 소진되면서 비뢰검결의 뇌정의 기운도 사라진 상황이었는데 미후왕은 그것을 간파하고 이윤후가 재차 뇌정의 기운을 발현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었다.
콰광-
“크흑...”
이윤후는 갈수록 밀려나기 시작했다.
미후왕의 속도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그의 변화무쌍한 공격을 모두 피해내기는 힘들었다.
형식이 없는 공격이 들어오고 있었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곤 있었지만 예측이 안 되는 공격을 모두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밀리던 이윤후는 결심을 한 듯 물러서지 않고 달려들었다.
츠츠츠-
순간 이윤후의 검에 뇌정의 기운이 다시 서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미후왕이 놀라 뒤로 물러섰으나 이윤후의 검이 더 빨랐다.
“비뢰낙일(飛雷落日)!”
콰과과광-
솟아올랐던 이윤후의 검이 미후왕을 향해 내려치자 낙뢰가 떨어지듯 검기가 그대로 미후왕을 내리쳤다.
또 다시 땅 바닥이 크게 파이면서 흙먼지가 일었고 시야가 가려지자 이윤후는 뒤로 거리를 벌리며 물러섰다.
“크흑... 내력을 억지로 끌어올렸더니 속이 진탕되는구나...”
이윤후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충분한 준비 없이 억지로 내력을 끌어올린 탓에 내기가 상한 것이었다.
이윤후가 실전 경험이 조금 더 있었다면 내력소모에 대한 조절을 했겠지만 자신이 펼칠 비뢰섬이 워낙 자신 있었던 탓에 모든 내력을 소모했고 그것이 상대에게 치명상을 주지 못한 채 밀리자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사부님과 약선 어르신이 아신다면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듣겠구나... 억지로 시전한 비뢰낙일이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진 못했을 텐데... 내력을 다스려야 한다.’
이윤후는 상황을 주시하며 내력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었고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미후왕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피칠갑을 한 듯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적혈마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윤후의 예상과 달리 이윤후가 급하게 펼쳤던 비뢰낙일의 검기가 미후왕의 전신에 상흔을 남겼고 그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미후왕의 얼굴은 큰 피해를 본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윤후는 긴장감을 놓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크학!”
미후왕은 포효하듯 하늘을 향해 외쳤고 그의 사자후에 공기가 떨리듯 진동했다. 미후왕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한층 더 강해졌고 이윤후는 이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해야 함을 직감했다.
미후왕도 자신의 내력을 억지로 쥐어짜고 있음을 이윤후는 알았고 다음 부딪침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시선이 부딪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혈왕마라인(血王魔羅印)!”
“비뢰창파(飛雷蒼波)!”
콰과과-
콰과과광-
미후왕이 내지른 쌍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운이 휘몰아치며 이윤후를 향해 펼쳐졌고 이윤후는 미후왕의 기운을 베려는 듯 날카로운 검기를 발산했다.
두 사람의 기운에 천지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지축이 진동했다.
“누가 이긴 것이지?”
“당주님은 무사합니까?”
지켜보던 사원당 무인들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두 사람의 싸움에 영향을 받아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상태였다.
“나도 아직 모르겠군. 분명 당주께서 더 유리해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사원당의 무인들은 서로에게 물었지만 대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이 소협의 실력이 사왕을 상대로 호각으로 싸울 정도라니... 경험을 쌓고 차근차근 성장한다면 누가 그를 상대한단 말인가...’
사원당의 대장인 강명은 이윤후의 실력을 보고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스물이 지난 청년이 자신의 주군인 미후왕과 호각으로 겨루는 모습을 보다니 믿기지 않았다.
모두가 자욱해진 흙먼지가 걷히기만을 기다렸고 두 사람이 부딪친 이후 싸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기에 마지막 일합으로 승부가 갈렸을 거라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사원당은 미후왕이 이겼기를 남궁근은 이윤후가 이겼기를 바라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휘잉-
새벽바람이 불자 자욱했던 흙먼지가 걷혔고 모두가 바라던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윤후와 미후왕 둘 다 쓰러져있었고 특히 이윤후의 모습은 심각해보였다.
이윤후는 정신을 잃은 듯 했고 옷이 거의 찢어져 알몸에 가까웠고 그의 전신에 상흔이 가득했다. 미후왕 역시 정신을 잃은 듯 해 보였는데 그의 가슴에 가로로 큰 검상이 나 피로 전신이 물들어 있었다.
사원당의 무인들이 미후왕 곁으로 다가섰고 남궁근도 이윤후에게 가려했으나 일부의 사원당의 무인들이 그들을 다시 포위해왔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을 죽여라. 죽이고 당주를 모시고 우린 후퇴한다.”
사원당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명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사원당과 남궁근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인원차도 심했고 이미 큰 상처를 입은 남궁근이었기에 그들의 합공을 견디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원당의 대장인 강명은 쓰러진 이윤후에게 다가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쓰러진 상대를 마무리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으나 이윤후가 살아나 회복한다면 그들에게 큰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검이 내려쳐지는 순간
스걱-
투둑-
“크아악!”
강명은 검을 내려친 순간 휘두른 검을 쥔 오른 팔이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아야했고 그의 앞엔 한 사내가 있었다.
“감히 누구에게 검을 들이대는 것이냐?”
나타난 이는 검성이었고 이윤후의 위기에도 하늘을 날던 백아가 나서지 않은 이유도 검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성의 검이 다시 한 번 번쩍이며 강명을 베었고 그는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이어 검성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백아는 그런 검성의 의도를 알았다는 듯 바로 하강하며 포위당한 남궁근에게 향했다.
빼액-
“크어헉...”
“크악...”
백아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사원당의 무인들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무리들이 백아에게 검을 휘둘러보았으나 단단하게 외피가 강화된 백아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백아의 그런 움직임에 남궁근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십의 사원당의 무인들은 백아의 발톱과 날갯짓에 모두 떨어져 나갔다.
모두 쓰러지자 백아는 유유히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남은 사원당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대장과 절반에 가까운 수가 백아에게 쓰러지자 미후왕을 데리고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고 검성은 이윤후를 살피느라 그들을 쫓는 것까지는 하지 않았다.
검성은 이윤후의 상처를 살피며 안타까운 듯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온 몸에 상처가 심하긴 했지만 외상이 있을 뿐이었고 내력 소모가 심하여 탈진으로 기절한 상황이라 딱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