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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70화 (170/251)

170화- 수라마검(修羅魔劍)(2)

“제법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구나?”

검성은 수라마검의 물음을 무시 한 채 폐허처럼 변해버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성님... 저 말고 다른 이들도 위험합니다... 어??”

팽기찬은 수라마검의 검에 자신의 목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것에 감사하며 뒷덜미를 가볍게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는 검성을 보며 생각난 듯 천무단과 다른 생존자들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들 역시 탈진한 채 바닥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생존자들 주변으로 수라마검의 수하 수십 명이 쓰러져있었는데 검성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들부터 구해줬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잘 견뎌 주었다. 너도 저쪽에 가서 쉬도록 해.”

“네?? 으헉!”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고르고 있던 팽기찬의 거구를 검성이 뒷덜미를 낚아채 천무단이 있는 방향으로 내던졌다.

쿠당탕-

워낙 팽기찬이 거구인 탓에 여러 명의 사내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천무단원들도 워낙 지치고 탈진한 상태였기에 그를 받아내기 싶지 않았다.

“너흰 회복하면서 지켜보도록 해라. 저 녀석은 내가 처리하지.”

검성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라마검을 향해 다가섰다.

“반로환동하여 젊어졌다고는 들었지만... 네가 정말 검성이 맞는가?”

수라마검은 자신의 앞에 마주한 검성을 보며 믿을 수가 없는 듯 물었다.

팽기찬의 배후로 진입해 그의 목을 베려던 찰나 수라마검은 자신을 꿰뚫는 듯한 살기를 감지했다.

만약에 그가 팽기찬을 베려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린 것은 팽기찬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식은땀으로 젖어버린 옷과 얼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껏 수라마검은 검의 극의(極意)를 쫓아 수행해왔고 많은 검수들과 겨루며 성장해왔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상대를 찾기가 힘들어지면서부터 그는 사파제일검(邪波第一劍)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사파제일검이 아니었다.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검의 성취를 이루었고 검객으로 천하에 상대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세상은 수라마검에게 천하제일검의 이름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천하제일검 검성의 망령이 수라마검을 늘 따라다녔고 검성을 뛰어넘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에 원망하며 인정받길 원했다.

그렇기에 검성이 다시 무림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했던 것이 수라마검이었고 반드시 그와 겨루어 이겨내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마주하지 않고 그저 검성의 앞에 선 것 만으로도 수라마검은 세상이 그에게 천하제일검의 칭호를 허락하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검성이 자신을 압박한 기운만으로 생사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는데 직접 검을 부딪친다면 어떨지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라마검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심신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수많은 싸움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왔기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였다. 검성을 넘어서야 막혀버린 검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음을 확신했다.

“제법 기세가 매서운 녀석이구나.”

검성은 수라마검의 기세가 조금씩 회복되자 진심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는 수라마검이 사파제일검으로 불린다는 소리를 이전부터 들어왔기에 자신의 상대로 그를 택했다.

하지만 수라마검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신이 발산한 기운에 압도되어 기겁하며 도망치듯 물러난 수라마검에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강한 무인일수록 자존심이 강하여 자신감이 꺾이면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고 아예 회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라마검이 금세 회복하여 덤비려는 것을 보자 상대임에도 검성은 대견해보였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수라마검의 태도는 마치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는 제자의 모습 같았다.

스르릉-

검성은 대답 대신 정천검을 뽑아들었다.

“삼초(三招)를 양보하지.”

검성의 말에 수라마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마음을 다스리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후회 하실 겁니다.”

파박-

수라마검은 말과 함께 거리를 좁혀갔고 그의 신형은 마치 활에서 쏘아져나가는 화살과도 같이 빨랐다.

“수라난무(修羅亂舞)!”

촤자자작-

거리를 좁힌 수라마검의 검이 만 가지 변화를 일으키듯 어지럽게 검성의 전신을 베어왔다.

수라마검의 쾌(快)와 변(變)의 검식에 검성은 검을 반원을 그리듯 휘둘렀다.

콰과과광-

검성의 검에서 뇌정이 일었고 검기와 검기의 부딪침에 굉음이 울렸다.

둘의 대결장은 분진이 자욱하게 일며 시야를 가렸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의 행방을 찾느라 정신없었다. 한차례의 굉음 이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기에 어지러운 시야 속에 안력을 높여 결과를 알고 싶어 하고 있었다.

“수라섬멸(修羅殲滅)!”

콰과광-

수라마검의 외침과 함께 또 다시 굉음이 일어나자 결과를 궁금해 하기 이전에 이젠 자신들의 몸부터 살펴야했다.

검과 검의 부딪침에 주위가 휘말리기 시작했고 팽기찬과 천무단의 무인들은 안전거리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분진으로 시야가 불분명했지만 계속 공격을 하는 이는 수라마검임을 짐작케 했고 검성은 그의 공격을 받아주는 듯 보였다.

삼초만 양보하겠다던 검성은 벌써 십여초 이상을 받아주며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여초가 지나가고 분진이 가라앉으며 시야에 두 사람이 들어왔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라마검과 처음 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있는 검성이 있었다.

“그 나이에 성취가 제법 뛰어나군.”

검성의 말에 수라마검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검성이 칭찬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에겐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수라마공의 절초를 모두 사용했음에도 검성은 모두 파훼시켰고 무엇보다 밑천을 모두 드러냈음에도 검성을 처음 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수라마검은 좌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극복하지 못할 상대라는 것은 이미 처음 마주했을 때 직감했지만 자신이 평생을 수행해온 검이 검성에게 닿지 못하자 극심한 회의감이 그를 휘감았다.

“평생을 검에 대한 수행을 하며 만족스러운 성취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검성을 만나니 제가 지금까지 얻은 성취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군요...”

수라마검의 말에 검성은 말이 없었다.

오히려 팽기찬과 천무단의 생존자들이 그 말에 놀라고 있었다. 사왕련의 사왕이자 검으로 패배를 해본 적이 없는 사파의 절대자였던 수라마검의 입에서 패배감이 섞인 말이 나오리라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수라마검 하나를 막지 못해 이곳이 폐허가 되었는데 그런 수라마검을 스스로 패배감에 휩싸이게 한 검성의 존재가 두렵기까지 했다.

‘본가에서 남궁세가를 돕겠다고 일찍 판단한 것이 다행이야... 끝까지 외면했다면 큰일 날 뻔했어.’

팽기찬은 다른 모든 문파들이 남궁세가의 지원을 꺼릴 때 일찍 지원 결정을 내린 본가의 결정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오늘 일이 마무리된다면 남궁세가는 다시 예전의 위세를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그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검성이 남궁세가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제 남궁세가를 건드릴 세력은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팽기찬의 생각이 거기까지 흘러갔을 무렵 검성은 이미 검을 놓아버린 수라마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네가 얻었다는 검의 성취란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좌절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긴 하구나. 난 네 나이 즈음에 마교의 혈천마검과 겨루어 반초식차이로 가까스로 이기며 이후 검성이라 불렸다. 그 후 사람들은 나에게 천하제일검의 칭호를 허락하더구나.”

“......”

검성의 말에 고개를 숙였던 수라마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 싸움 이후 난 공허했다. 천하제일검이란 말은 내가 넘어야할 존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지.”

“아...”

검성의 말에 수라마검은 무언가를 깨우친 듯 보였다.

“내가 너였다면 그렇게 스스로 검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넘어야 할 상대가 있음을 기뻐하고 차후를 위해 도망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넌 포기를 했고 나는 너를 살려둘 생각이 없구나.”

번쩍-

촤악-

“커헉...”

말을 마친 검성의 검이 움직였고 달빛에 반사된 그의 검은 무릎 꿇은 수라마검을 갈랐다.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수라마검의 신형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는 절명했다.

사파제일검의 죽음치곤 허무하다 할 정도였으나 그 상대가 검성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검성은 수라마검의 시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 녀석을 살려두었다면 자신이 마주한 벽을 넘어서고 한층 강해졌겠지? 이전의 나였다면 살려주었을지 모르겠지만... 윤후에게 위협이 될 상대를 살려둘 필요는 없지.’

검성은 자신의 말에 수라마검이 깨달음을 얻은 것을 알았기에 그를 살려두지 않았다.

무림인으로서 벽을 마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결국 그 벽을 뛰어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었다.

검성은 수많은 실전경험과 죽음의 고비를 넘고 상대에게서 배우며 그 모든 것을 깨우쳤고 현재에 이르렀다.

수라마검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검성과의 일전과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나 그가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한계를 뛰어넘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더냐?”

검성의 외침에 괜히 팽기찬이 놀라 움찔했으나 검성 앞에 나서는 이는 다름 아닌 천통자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천통자는 일이 벌어지고 누구를 쫓아갈까 고민하다 은위단과 검성에게 왔고 워낙 검성이 빨리 간 탓에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 싸움을 지켜보았다.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그걸 자꾸 묻는 것이냐?”

“검성님과 제자분인 이 소협의 무위는 제가 볼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네요. 사왕의 수좌(首座)인 수라마검이라면 검성의 본 실력을 끌어내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도 없다니...”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답하지 않고 싸움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애초에 검성이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통자는 잘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가 제법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나 검성이 있는 한 사왕련의 오늘 기습은 성공 할 수가 없어 보입니다.”

“윤후는 어디로 간지 아느냐?”

“여지없이 제자분을 물으시는군요.”

천통자는 검성이 자신을 찾은 이유가 이윤후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어서 임을 알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검성은 이윤후를 아끼고 있었고 더불어 걱정도 하고 있었다.

천통자는 그 이유가 자신이 말한 이윤후에게 보인다던 단명의 상이 원인임을 알았다.

“이 소협은 동문으로 갔습니다. 동문에 미후왕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간 듯합니다.”

천통자는 검성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눈치 채곤 곧장 대답했다.

“동문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여기서 더 할 것이 있느냐?”

“그건 아니지만... 저희도 따라가도 되겠죠?”

“알아서 하거라. 그리고 팽기찬이라고 했나?”

“네? 넵! 팽가의 팽기찬이라고 합니다.”

검성이 자신을 부르자 팽기찬은 얼른 검성의 곁으로 달려갔다.

“이곳의 처리는 네게 맡겨도 되겠지?”

“네. 천무단과 제가 부상자들을 돌보고 처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맡기마.”

검성은 팽기찬의 등을 한번 쳐주고는 이내 사라졌고 천통자도 동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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