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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68화 (168/251)

168화― 후생가외(後生可畏)(3)

“보셨습니까?”

이윤후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고 그곳엔 검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건지 검성은 사파들에 포위당했던 천무단을 구해주었고 검성이 나타나자 혈수괴의와 백마곡의 무인들은 뒤로 후퇴한 채 도주했다.

그렇기에 검성과 천무단의 무인들은 이윤후와 흑천마군의 싸움을 온전히 다 지켜보았고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흑천마군을 몰아붙이는 이윤후의 무위에 놀라 지금까지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검성 또한 도망치던 자들을 쫓지 않았던 이유가 이윤후의 싸움을 지켜보기 위함이었고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모두 지켜보았다. 너 역시 이번 싸움이 만족스러운 모양이구나?”

“네. 상대가 뛰어나 제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펼쳐볼 수 있었습니다.”

“큰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느냐?”

검성은 이윤후가 사실 쉽게 이길 수도 있는 순간들이 꽤 존재했고 비뢰검결의 초식들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음에도 찌르기 베기 같은 단순한 공격들로만 상대를 압박한 것이 궁금하여 물었다.

“뭐야? 그러고 보니 뇌절검룡은 단순 초식만으로 흑천마군을 상대한 것이잖아?”

“말도 안 되는군. 현 무림에 누가 그렇게 흑천마군을 상대 할 수 있단 말인가?”

지켜보던 모두가 이윤후가 워낙 압도한 탓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검성이 묻자 그제야 그가 단순초식만으로 흑천마군을 상대한 것을 인지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부님이 제 수련을 봐주실 때 나뭇가지만으로 제가 펼치던 비뢰검결을 받아주시지 않았습니까. 사부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모습을 배우고자 비뢰검결에 의지하지 않고 그를 상대하였습니다. 사실 처음엔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공방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역시, 내가 제자를 잘 두었구나!”

검성은 이윤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파안대소했다.

이미 이윤후가 무림에 나와 펼친 비무 대결에 대한 보고를 받아왔던 검성은 자신의 제자가 자신을 흉내 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수련동의 수련을 봐주며 펼쳤던 오행상생의 차력을 담석영과의 비무에서 펼친 일과 무림행 시절 행했던 상대에게 삼초를 양보하는 일.

그런 모든 것들을 이윤후가 행해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검성은 이윤후의 방금 대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느 스승이 제자가 스승에게 배워 따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너는 글공부를 오래했었지?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아느냐?”

갑작스러운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당황했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공자의 말씀 아닙니까?”

“말해 보아라.”

검성의 물음에 이윤후는 멋쩍게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후생가(後生可) 외(畏)니 언지래자지불여금야(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사십오십이무문언(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사역불족외야(斯亦不足畏也)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제자를 잘 둔 듯 하구나. 나의 뒤를 따라와주는 제자가 있고 그 제자가 뛰어나 이렇게 모두를 경외케 하니 말이다.”

빼액-

검성은 말을 하곤 다시 한 번 크게 웃었고 그의 웃음에 하늘을 날던 백아가 답하듯 울고 있었다.

스승의 과한 칭찬에 이윤후는 부끄러웠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구에게보다 검성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자신을 인정해주는 검성의 말은 이윤후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도착했고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 된 듯 천무단은 안심하였다.

천무단의 단주인 모용연은 검성과 이윤후가 소소한 대화를 이어나가자 쭈뼛거리며 다가왔고 그의 접근을 눈치 챈 검성이 그를 보았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용기를 낸 모용연의 물음에 이윤후는 검성을 보았고 검성은 모용연을 이미 보자마자 알아보았기에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기억하고 있다. 모용가의 아이였지?”

검성은 은한과 만났던 모용연을 기억하고 있었고 다른 무엇보다 은한의 사연과 엮인 인물이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모용연은 낙양의 객잔에서 보았던 임진후가 검성이었음을 나중에 알고 크게 놀랐고 그가 검성과 만났었다는 사실을 본가에서 알고 그를 불러 혹시라도 실수한 것은 없는지 따로 들은 것은 없는지 낱낱이 되물었다.

이윤후에게서 검성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검성과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던 모용연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끼어들기 힘들었지만 이대로 세가에 돌아간다면 검성과 마주할 기회가 없음을 알았기에 용기를 내 나선 것이었다.

아마 천무단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문파와 집안을 통해 남궁세가에 가면 검성과 이윤후와 인연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었고 모용연 또한 그런 지시를 받았다.

“네가 이 무리의 대장인 것이냐?”

“네? 넵! 무림맹에서 새로이 편성된 천무단의 단주를 제가 맡아 남궁세가 지원을 위해 가고 있었습니다.”

검성의 물음에 모용연은 답했고 검성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기에 괜히 긴장하고 있었다.

무림맹은 새로이 편성된 천무단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이외의 문파들의 후기지수들을 차별하지 않고 실력대로 편성했고 가장 뛰어난 모용연이 단주의 자리를 맡게 되었었다.

“도망쳐 나온 녀석들이 너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더구나. 네가 죽음을 불사하고 퇴로를 열어주었기에 그들이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을 도망가게 해야 살길이 있었기에 사력을 다했을 뿐입니다.”

검성의 말에 모용연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검성의 공치사를 모용연은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듯 말하자 검성은 더욱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너의 말처럼 너희가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해도 너희는 큰일을 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우선하기 마련인데 결국 너와 저들의 선택으로 모두가 살 길을 열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하다. 아주 잘 버텨내었다.”

검성의 담담한 칭찬에 모용연과 천무단원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남았음에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모용연이 살기위해 도망자들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했지만 사실 모용연은 죽기를 각오하고 천무단의 단주로서 가장 어린 천무단원들과 유일한 여성이었던 당혜를 도주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도망쳐 남궁세가로 가면서 전서구를 통해 지원을 요청하라고 지시는 했지만 도주를 성공해 지원 요청을 한다 해도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행했던 그 일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고 살았다는 실감이 들면서 모든 감정들이 검성의 칭찬을 들으니 새삼 다시금 몰려왔던 것이었다.

***

사왕련.

“표정을 보니 또 실패를 한 것인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윤엽은 이미 방 안에 머물고 있는 인물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바로 백화문을 무너뜨리겠다고 떠났던 환영신마였다.

“무림맹의 지원을 끊으러 몰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돌아오는 이는 고작 십여 명도 되지 않더군. 그래도 흑천마군과 혈수괴의 정도가 나갔는데 저런 초라한 복귀라면 검성이라도 만난 것 일거고.”

듣지도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환영신마의 모습에 윤엽은 화가 치솟았으나 상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흑천마군 그 아이는 죽은 것인가?”

“네. 검성에게 죽은 것도 아닌 검성의 제자에게 패하고 죽었다합니다.”

“검성의 제자? 그 아이의 실력이 흑천마군을 제압할 정도가 된다고?”

환영신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사실 흑천마군은 환영신마가 포섭한 사왕련의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그의 실력은 환영신마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혈수괴의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는 의심스럽지만... 그의 말로는 검성의 제자가 흑천마군을 마치 수련의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입니다. 처음 검성의 제자와 흑천마군이 어우러졌을 때는 서로 호각으로 보였으나 이내 흑천마군은 밑천을 다 드러내고 검성의 제자는 검성의 검결 하나 사용하지 않은 채 일반 검법만으로 흑천마군을 쓰러뜨렸다고 합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검성의 제자 나이가 이제 약관이 지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이 이룰 수 있는 경지란 말인가?”

환영신마는 윤엽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도망친 혈수괴의가 동료를 버리고 도망 친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혈수괴의는 원래 말이 없고 진중한 인물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윤엽도 그가 혼자 도망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고 무엇보다 검성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벌하기 힘들었다.

“혈수괴의는 자신이 살고자 거짓을 말할 자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검성의 이름만 대어도 자신이 도망친 것을 모두가 납득할 텐데 굳이 검성의 제자의 실력을 부풀리가요?”

“그럼 너는 흑천마군이 고작 약관의 애송이에게 단순 검초식에 패했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이냐?”

“끄응...”

환영신마의 말에 윤엽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을 말한 자는 혈수괴의 만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온 자들 중에 윤엽의 측근의 인물도 있었고 그가 혈수괴의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입증해주었다.

“검성의 제자가 정말 단순 검초식으로 흑천마군을 쓰러뜨렸다면 현재 그의 무공은 어느 정도라 봐야합니까?”

“흑천마군은 사파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실력자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왕련에선 사왕 네 사람을 제외하면 흑천마군과 구룡도문의 문주가 다음 실력자입니다. 사실상 사왕련만 따진다면 다섯 손가락에 드는 셈이죠.”

“내가 보기엔 흑천마군과 사왕 사이에 분명히 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검성의 제자가 흑천마군을 정말 들은 그대로 상대했다면 사왕급 아니 그이상일지도 모르겠군.”

“신마께서 듣고도 믿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군요. 하지만 정말 사실인 듯 합니다. 검성과 약선도 상대해야 하는데 검성의 제자가 그 정도의 실력이라니...”

윤엽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 한 착각마저 느껴졌다. 수적으로 사왕련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절정고수들도 자신들이 더 많다는 것이 모두의 평가였다.

검성과 약선만 어떻게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전 방위적으로 여러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싸움이 일어났을 때 사왕련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고 윤엽은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검성은 환영신마가 약선은 사왕 한 명이 안 된다면 두 명 또는 그 이상 붙여줘도 수적으로 사왕련이 우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윤후의 실력이 사왕급 이상으로까지 평가된다면 모든 계획을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윤엽이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자 환영신마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았다.

‘검성의 제자의 실력이 그 정도라면 지금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번 사왕련과 남궁세가의 싸움에서 제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무림에 들어왔을 때 방해가 될 터...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환영신마는 이윤후의 성장 속도가 분명 자신들에게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이윤후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때가 쌍사련의 지욱과 잠시나마 겨루었을 때 그에 관한 보고였다.

그리고 직접 본 것은 얼마 전 흑월도존을 치료하기 위해 약선과 사왕련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허점을 노출해 약선이 아니었다면 단칼에 목을 베어낼 기회까지 있을 정도로 실력에 비해 어설퍼보였던 이윤후가 흑천마군을 상대로 자신이 이끄는 싸움을 했다는 것은 단기간에 그만큼 성장했다고 봐야했다.

그런 만큼 환영신마는 이윤후의 존재를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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