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뻔히 보이는 계략
백화문의 멸문(滅門).
무림맹의 재건, 검성의 의천문 개파 그리고 약선과 이윤후의 승전 소식으로 이어지는 낭보(朗報)에 기뻐하던 정파에 뼈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안휘성의 거대 정파 중 하나인 백화문이 불마사의 환영신마 일인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무림은 큰 비극에 빠졌다.
무림에 백화문주 육소군의 희생이 알려지면서 모두 그의 죽음을 추모했고 무림맹에서도 백화문으로 지원을 보내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육소군의 가족을 지원해주었다.
***
남궁세가 창룡원(蒼龍院)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인의 거처인 이곳은 현재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남궁인이 무림맹에서 세가로 복귀하면서 각 문파에서 지원을 와있던 관계자들이 남궁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었다.
워낙 많은 문파에서 지원이 와 있다 보니 남궁인의 접객은 끝이 나질 않았고 결국 안명이 특단의 조치를 행하며 방문을 막고서 그 행렬이 끝이 났다.
저녁 즈음 또 한 무리의 일행이 창룡원을 방문하였는데 그들의 방문은 안명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직접 남궁인에게 안내를 하였다.
그 일행은 바로 검성과 이윤후 그리고 약선과 천통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너무 늦게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궁인은 이미 긴 여행과 도착하자마자 문파들의 방문을 맞이하느라 많이 지쳐 보이는 행색이었다.
“괜찮다. 네가 무림맹에서 고생이 많았음을 들어서 알고 있다. 진즉 남궁세가의 어려움을 알았다면 좋았으련만... 미안하구나.”
검성은 진심으로 말했고 그의 위로의 말에 남궁인은 피곤함에 찌든 얼굴에서 미소가 흘러 나왔다.
“아닙니다. 검성께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검성께서 보내주신 이 소협으로 남궁세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구나.”
“아버지의 말씀처럼 검성께서 이 소협을 보내주셔서 남궁세가는 큰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재도약의 기회까지 잡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남궁나연이 대화에 끼어들자 남궁인은 괜스레 검성이 혹시 기분나빠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검성의 표정에 가벼운 미소가 이는 걸 보고는 남궁나연의 말을 막지 않았다.
“너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들은 대로 당차고 예쁜 아이구나.”
검성은 이윤후와 다시 재회했을 때 그를 붙잡고 무림에 나가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들었고 남궁나연의 이야기도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소협이 제 이야기를 했나요?”
“그래. 무림에 나가 너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도 윤후와 서찰을 나누면서 알고 있었다.”
검성의 말에 남궁나연은 검성과 이윤후를 번갈아 보다가 얼굴을 붉힌 채 얼굴을 푹 숙였다. 자신이 이윤후를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버릇없고 철부지였는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흠... 인사는 이정도로 충분할 듯싶고 본론을 이야기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남궁나연의 모습을 지켜보던 안명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았기에 바로 화제를 돌리며 시선을 모았다.
‘이 소협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천방지축이고 억지를 쓰던 모습이 떠올랐나보군. 나도 아가씨가 이렇게 변한 것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때 처음보고 다시 만난 이 소협은 얼마나 놀랐을까?’
안명은 자신이 봐도 남궁나연의 변화가 놀라웠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남궁인은 그녀의 천방지축 행동에 두 손을 놓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껏 제멋대로이고 천방지축으로 자라왔는데 남궁인이 무림맹으로 간 사이 세가의 대소사를 맡으면서 장난기 사라진 어른스럽게 변한 남궁나연의 모습은 안명으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당시 남궁인이 대리가주 자리를 장로 중 한명에게 넘기지 않고 남궁나연에게 넘겼을 때도 안명은 반대했었다. 누구보다 남궁나연에 대해 잘 알았기에 반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궁나연은 대리가주로서 남궁세가를 잘 이끌었고 이윤후의 도움이 있었다하나 사왕련의 견제를 잘 막아내며 세가연합회의 탈퇴와 관련해서도 장로들을 설득하여 큰 불만없이 이끌어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신이 가르쳐온 남궁나연의 변화를 누구보다 반기는 게 안명이었다.
“신마가 움직였다고 들었다.”
“네. 백화문을 단신으로 쳐들어가 멸문시켰다고 합니다.”
검성의 물음에 안명이 답했다.
검성이 도착하자마자 천통자가 알려주었고 검성이 신마의 움직임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기에 비천도 그에 관련된 소식을 바로바로 전하고 있었다.
“백화문주의 희생으로 모두가 피해를 보지 않았으나 백화문은 사실상 멸문해 가까운 상황이라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다행히 저희 세가로 들어왔던 백화문의 지원 무사들은 사왕련과의 일정을 앞두고 끝까지 싸워서 백화문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하여 세가의 지원을 허락을 하였습니다.”
사실상 멸문과 다름없는 백화문이었지만 문주의 희생으로 많은 백화문도들이 살아남았고 그들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백화문주의 복수를 하겠다며 남궁세가로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남궁세가로 온 그 수가 적지 않아 남궁인의 명에 따라 먼저 와있던 백화문의 무사들과 함께 따로 부대를 편성한 상황이었다.
“애령, 그대의 말처럼 신마가 다른 뜻을 가지고 그대들을 놓아 준게 틀림없는 거 같군.”
“네. 신마가 일전의 대결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이 분명하군요. 그자가 벌써 저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확실한거 같네요.”
검성과 약선의 이야기에 남궁인과 안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약선과 이윤후가 사왕련을 빠져나오면서 환영신마와 사왕련의 수좌급을 쓰러뜨린 것에 크게 안도했는데 환영신마가 활동하고 있는 것은 남궁세가에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신마의 의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검성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천통자에게 물었고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부담스러운 듯 검성을 원망스러운 듯 보았다.
이미 보고를 통해 천통자가 검성과 약선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남궁인과 안명에겐 무당에서 파문당한 점쟁이에게 중대한 문제를 묻는 검성의 모습을 직접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통자는 의천문의 사람이다.”
검성도 남궁인과 안명의 의아한 눈빛을 느꼈기에 그들을 바라보곤 갑자기 말했다.
“제가요?”
검성의 말에 남궁인과 안명이 놀랐지만 놀란 것은 천통자도 마찬가지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싫으냐? 의천문의 총관을 너에게 맡길까 하는데.”
“아니요, 싫을 리가요.”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놀라면서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미소를 참아내지 못했다. 비천의 소속이긴 하나 검성도 이미 아는 사실이고 검성이 자신에게 총관의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쓰겠다는 의미였다.
모두가 줄을 대지 못해 환장하고 있는 의천문의 총관 자리라면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경멸하던 다른 이들에게 힘을 과시할만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비천의 소속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만한 자리였다.
“의천문의 총관인 제 의견은...”
바로 태세 돌변한 천통자의 모습에 검성은 물론 약선과 이윤후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고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영문을 모른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단 신마의 행동은 사왕련의 뜻을 반했다고 봐야겠죠.”
“계속 말하거라.”
“네. 신마가 고의로 약선과 이 소협을 놓아주기위해 자신이 당한 것처럼 꾸미고 흑월도존을 내어준 것이라면 그것은 사왕련의 뜻은 아닐 겁니다. 아마 불마사의 천존으로서 그쪽의 명에 따른 것이라 봐야겠죠.”
“불마사의 천존? 그것은 무엇입니까? 신마가 불마사의 소속이라는 이야깁니까?”
천통자의 말에 놀란 안명이 물었다.
아직 무림에 알려진 내용이 아닌지라 사실을 모르던 이들에겐 놀라운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신마가 사왕련의 소속이 아니라 사패 중 한 곳의 소속이라는 것은 모두가 의심하고 있던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곳이 바로 불마사이고 이전 무림혈사 때 불마사의 활불이 죽고 불마사가 여러 종파로 갈라졌는데 그것을 다시 합친 것이 불마사의 쌍존. 즉 천존이라 불리는 환영신마와 지존 사마령이라고 합니다.”
“환영신마가 불마사의 명을 받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들이 이번 일로 원하는 바는 정사의 격돌인 것이 확실하군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통자는 안명이 자신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약선과 이 소협의 생존은 물론이고 흑월도존까지 남궁세가로 데려온 이상 사왕련은 독고진이 복귀를 한다면 결전을 불사 할 것입니다. 아마 싸움에 미온적이었던 적하문조차 흑월도존이 걸린 이상 사활을 걸겠죠.”
“사왕련의 강경파들에게는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군요.”
“네. 그렇기에 아마 독고진도 이 일에 어느 정도 동조하지 않았나 하는 게 제 생각인데 월령대부나 암천마군 그리고 혈천도객까지 모두 수라마도와 흑룡창제 등 강경파에 속하는 자들의 소속인데 그들이 저희를 끝까지 막아서려 했다는 것을 보면 독고진이나 강경파가 이일에 연관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좀 애매합니다.”
천통자가 머리가 복잡한 이유도 자신이 말한 그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정사대전은 불가피해졌고 이미 여러 곳에서 정사파가 부딪치고 있었다.
결전에 미온적이던 사파들이 이번 일로 결전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 할게 분명했지만 수라마도와 흑룡창제는 자신들의 수하를 셋이나 잃은 셈이었다.
“사왕련주의 뜻은 아닐 듯 하네요.”
묵묵히 천통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윤후의 말에 모두 그를 보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유 소저에게 들었던 독고진은 흑월도존을 아버지처럼 여겼다더군요.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에 방해가 되었던 흑월도존의 존재를 지금까지 살려둔 것은 이미 그가 흑월도존을 완전히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마사가 독단으로 벌인 행동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파가 온전히 힘을 합쳐서 정파와 부딪치길 원하는 것이겠죠. 천통자가 이전에 이야기해주었듯 사파는 현재 무림일통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왕련의 이름아래 힘을 합친 것으로 보이나 사상누각과 같다고 말해 준적이 있죠.”
“......”
“아마 불마사가 원하는 것은 사파가 총 전력으로 정파와 부딪치고 서로 큰 피해를 입는 것을 원하는 거겠죠. 그렇기에 우리를 그곳에서 놓아주고 흑월도존을 저희가 데려가게 함으로 사왕련의 온건파들이 이 싸움에 미온적인 태도로 나올 수 없도록 한 것이고요.”
“흐음... 일리 있는 말입니다.”
이윤후의 이야기에 안명은 머리가 트인 듯 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간 막혀있던 생각들이 천통자와 이윤후의 이야기를 듣자 술술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사가 총력전을 벌인다면 결국 무림 진출을 원하는 불마사는 어부지리의 상황이나 다름없죠. 그들이 원하는 바가 그것일 겁니다. 이미 오랜 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자주 일어났던 상황이고요.”
안명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통자는 자신이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바를 이윤후와 안명에게 발언권을 뺏긴 탓에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한 이야기를 토대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었기에 자신의 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파는 이미 흑월도존이 마교 때문에 무림일통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적이 있어서 사파는 불마사의 계략임을 안다고 한들 멈추지 않겠구나.”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짜낸 자도 그것을 알았기에 대놓고 이번 일을 벌인 것이겠지요.”
검성의 말에 천통자가 답했다.
천통자는 아마 사왕련도 이 모든 상황을 강경파들도 온건파들도 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전례가 있었던 일이 있었기에 또 다시 사파일통을 포기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정사대전으로 인해 정사가 공멸(共滅)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사파는 정파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