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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63화 (163/251)

163화― 환영신마의 제안(1)

“일단 제가 본회(本會)에 그 정도의 잠행이 가능한 능력자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마 대충 추려지긴 할 겁니다.”

“그래. 아마 또 다시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 좋겠지.”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허락을 했다. 비천회의 방대한 기록이라면 분명 어렵지 않게 추려낼 것이라 생각했다.

“윤후도 그만 피곤할 것이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약선은 이윤후가 벽에 기댄 채 생각에 빠져있자 오랜만에 일어난 그를 너무 오래 붙잡아두고 있었다 생각하곤 다른 이들을 방 밖으로 이끌었다.

“전 괜찮습니다.”

“아니다. 오래도록 상념에 빠졌다 깨어나면 심력의 소모가 적지 않으니 푹 쉬도록 해라. 그리고 내가 주었던 향은 자기 전에 꼭 피우고 자거라.”

약선은 말을 하며 탁자 위에 놓아둔 향로를 가리켰다. 그것은 약선이 이윤후의 거처에 오자마자 건내 준 향로와 향초였다.

그것들은 지난 날 검성이 약선의 거처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가 검성에게 줬던 물건들이기도 했다. 약선은 이윤후에게도 똑같이 챙겨주기 위해 남궁세가를 올 때 따로 가져온 물건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윤후는 약선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천통자를 비롯하여 철대호와 기하윤도 이윤후에게 예를 취하고는 바로 자신의 숙소로 떠났다.

“혹여나 누군가 너를 찾아올 수도 있으니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라. 남궁세가에서 세가로 지원을 온 무림인들에게 너에게 접근하는 것을 경고했다고 하지만 포기 못하는 이들이 있는 거 같으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남궁세가는 이윤후와 약선의 일행에게 빈객들이 머무는 숙소들과 거리가 떨어진 남궁세가 내당의 별채를 내어주었는데 담벼락 너머에 시선들이 느껴졌기에 약선이 말한 것이었다.

이윤후도 이미 눈치 채고 있었기에 약선의 말에 바로 대답하였다.

“쉬어라. 나도 가보마.”

약선은 이윤후의 어깨를 토닥이곤 이윤후의 방 옆 건물인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고 이윤후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온 이윤후는 바로 탁자 위에 놓인 향로와 작은 주머니로 다가가 향로를 열어 숯을 확인했다.

그는 약선이 향로와 같이 놓고 간 화섭자(火攝子)에 불을 일으켜 숯으로 가져다 대었다.

작은 불꽃이라 숯에 불을 붙이기 힘든 화력이었지만 이윤후의 오행의 힘이 거들자 곧 숯에 불이 옮겨 붙었다.

“처음 화섭자를 사용할 줄 몰라 어르신에게 배우던 때가 생각나는군.”

이윤후는 화섭자를 닫고 탁자에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약선의 수련동에서 머물 당시 약선이 여러 가지 향을 피워줬는데 향로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보는지라 신기해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숯에 불이 잘 붙은 것을 확인한 이윤후는 주머니 안의 가루를 향로 안에 조심스레 털어 넣었고 숯에 가루들이 타들어가며 향이 방 안 가득 채워졌다.

“무엇이기에 사부님이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지?”

약선의 동굴에 머물 때 약선이 피워준 향은 단약의 효능을 배가시켜주는 향과 몸의 안정을 찾아주는 향들이었다.

이윤후는 약학과 더불어 단약 제조와 향까지 다루는 약선의 지식에 감탄을 했었다.

“이것을 사용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는 검성이 이유 없이 약선에게 부탁해 향로를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침상에 뉘였다.

이윤후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이 깨달았던 바를 천천히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최근 늘어난 실전 경험과 약선과 환영신마의 대결 속에서 깨달음으로 그는 검성에게 직접 배우지 못한 것들을 단기간에 습득하여 깨우쳤고 그것들을 생각으로 정리하다보니 수일이나 방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이윤훈는 검성이 경험을 쌓게 되면 자연스럽게 깨달을 날이 올 거라고 말했던 만상오행공의 이치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해나가고 있었다.

***

사왕련의 지하 석실.

이전에 흑월도존이 있었던 곳은 현재 사왕련의 금지(禁地)가 되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신의 흑포를 입은 사내와 환영신마가 그곳에 있었다.

“묵령. 계속 침묵을 지킨다면 널 이 자리에서 죽여 네 주군에게 보내주마.”

환영신마는 약선과 대결에서 패한 것치곤 다친 곳이 없어 보였고 자신의 앞에 줄곧 침묵으로 서있는 묵령을 향해 말했다.

“감히 활불의 이름을 빌려 내 일을 그르쳤으면 이제는 이유를 말해야 할 것이다.”

환영신마의 전신에서 무거운 기운이 발산되었고 위협적인 투기에 묵령은 전신이 찌릿거림을 느껴야했다.

“천존이 이 자리에서 날 죽인다고 해도 지금은 말 해줄 것이 없습니다. 전 지존에게 활불의 명이라고 전해 받았고 그것을 천존께 전했을 뿐입니다.”

콰앙-

“커헉...”

묵령의 태도에 환영신마는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힌 채 순간적으로 묵령을 향해 신형을 쏘아내며 그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몰아붙였다.

자신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묵령의 목을 잡은 채 몰아붙인 환영신마의 살벌한 기운이 묵령의 전신을 옥죄어갔다.

나름 진천문을 호위하는 가문의 묵령이었지만 거마(巨魔)의 기운에는 꼼짝 못한 채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년도 그렇지만 네놈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의 목을 그년에게 보내준다면 내가 좀 마음이 풀릴 듯 한데...”

환영신마는 입을 닫은 채 지금도 버티고 있는 묵령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환영신마는 약선의 사왕련 방문에 맞춰 그녀를 사로잡고 다른 일행들 모두를 죽이기 위해 윤엽과 미리 계획을 짜두었다.

그래서 묵령이 흑월도존의 처리를 위해 사왕련에 합류했을 때도 환영신마는 그의 존재를 윤엽에게 알리지 않고 숨긴 채 약선을 사로잡은 뒤에 그를 이용해 은밀히 뒷처리를 맡길 생각이었다.

이미 윤엽이 독고진의 뜻에 동조한 이상 그에게 흑월도존의 암살계획을 알려줄 순 없었고 그래서 윤엽에게는 묵령의 존재를 숨겼다.

하지만 묵령이 거사를 치르기 직전, 아침에 활불의 명이라며 흑월도존을 약선 일행에게 넘겨주고 그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안배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환영신마는 묵령의 말이 사뭇 의심스러웠으나 활불의 명이라는 말에 거부하지 못한 채 약선에게 밀리는 상황까지 만들어가며 모두를 놓아주어야했다.

이후에 환영신마는 이 모든 것이 활불의 명이 아니라 지존 사마령의 명임을 알았고 자신에게 거짓을 고한 묵령을 추궁하는 중이었다.

“너는 분명 처음에 환영신마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를 약선에게 놓아준 것이지? 사마령 그년의 생각이 도대체 무엇인 것이야?”

“크흑...”

환영신마의 손아귀에 다시 힘이 들어가자 묵령은 신음을 내뱉었다.

“마치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너의 꼴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미는군. 진정으로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버티는 것이냐?”

털썩-

환영신마는 멱을 잡던 손을 풀어 거구의 묵령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동시에 오른발로 묵령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지그시 밟기 시작했다.

“크아악!”

묵령은 환영신마의 내력이 깃든 발을 통해 극심한 통증으로 몸을 떨어야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지 지켜보마.”

콰드득-

“크학!”

내력이 흘러들어갈수록 묵령의 전신에서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묵령의 입에서 비명소리는 나올지언정 환영신마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진 않고 있었다.

결국 환영신마는 발을 떼었고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죽어도 대답을 하지 않을 모양이구나. 그년이 데리고 다닐만해.”

환영신마는 바닥에 널브러져 정신을 잃은 묵령을 바라본 채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오랜 무림생활동안 온갖 경험을 다한 그였다.

그의 별호에 신마가 붙은 만큼 무림인들에게 환영신마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그의 손속은 잔혹했고 고문에 익숙했다. 내력을 불어넣어 가하는 는 그의 고문을 참는 무림인은 결단코 지금까지 그는 본적이 없었다.

“사마령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환영신마는 이미 여러 번 그녀에게 당해왔던 터라 지금의 상황에 더욱 약이 올랐고 울분을 풀 곳이 없는 것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묵령을 그냥 죽여서 사마령에게 보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현재 활불은 사마령의 정인이었다. 그것은 차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활불이 진정한 부활을 하실 때까지는 참아야한다. 그때까지는 그년을 건드려서는 안 돼...”

환영신마는 속으로 간신히 화를 누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켜보고 있음을 안다 나오너라.”

환영신마의 말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사왕련의 총관, 윤엽이었다.

“역시 이 모든 것이 그대들의 농간이었군요.”

윤엽은 노기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새삼스럽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 아닌가?”

“당신이 계획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지요. 산공독을 이용한 후 쉽게 그들을 사로잡으려했는데 환영신마, 당신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틀어졌을 때 곧바로 의심했어야했는데...”

원래의 계획은 약선의 흑월도존 진찰 이후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산공독을 이용해 그들의 무공에 제약을 걸어 쉽게 사로잡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환영신마로 일이 틀어졌고 그가 약선에게 패배하고 이윤후에게 사왕련의 수좌들이 패배하면서 사왕련은 그들에게 흑월도존을 내어줌과 동시에 큰 치욕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오?”

“나도 그걸 몰라 이렇게 답답하군.”

“지금 말장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련주님과 사왕이 돌아오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윤엽은 환영신마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현 상황이 너무나 골치 아팠다. 이미 이일로 인해 사파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있었다.

정사회담을 위해 나갔던 독고진이 복귀한다면 또 이 일들을 어떻게 보고해야할지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독고진에게는 내가 말하마. 아마 네 주군은 지금 의 상황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을게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윤엽은 생뚱맞은 환영신마의 말에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여 더욱 화가나 물었다.

“독고진의 성정을 잘 알지 않느냐? 그는 흑월도존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 않아. 자신의 스승이 약선에게 간 것을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르겠군.”

“......”

“대외적으로 정파에서 흑월도존을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좋은 명분이지 않겠느냐?”

“그것은...”

환영신마의 말에 윤엽은 답하지 못했다. 사실 이미 그도 일정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고 독고진이 복귀한다면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흑월도존을 지지했던 문파들은 여전히 사왕련 내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는데 현재 흑월도존이 남궁세가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찾아와야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사대전이 벌어질 상황에서도 미온적이었던 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윤엽의 생각이었는데 환영신마가 그 점을 지적하자 입을 닫은 것이었다.

“독고진은 언제 돌아오느냐?”

“열흘 안에 도착할 듯 합니다.”

“그래. 그럼 그가 돌아오기 전 내가 사과의 의미로 백화문을 처리해주마. 어떠냐?”

“백화문을 말입니까?”

“그래. 네가 예전에 백화문이 골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 내가 너희와 남궁세가와 일전을 앞두고 정리해주마.”

환영신마의 제안에 윤엽은 마음이 동한 듯 잠시 생각에 빠졌고 그런 그의 모습에 환영신마는 미소를 지었다.

‘노괴의 속셈은 이일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입을 닫으려는 속셈이겠지? 그는 불마사의 소속이고 우리와 정파간의 격돌 속에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 그가 어차피 입을 닫으려하면 억지로 알아낼 것이 없을 터... 이득을 취하는 편이 좋겠군.’

윤엽은 이미 환영신마나 불마사의 속셈은 알고 있었기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독고진이 복귀하면 분명 사왕련과 남궁세가를 주축으로 안휘성 일대의 정파 간에 큰 격돌이 일어날 텐데 남궁세가 다음의 세력을 자랑하는 백화문을 사왕련 수하들의 소모 없이 정리할 수 있다면 큰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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