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이윤후의 성취(成就)
약선과 이윤후 일행이 남궁세가로 돌아온 후 남궁세가의 정문은 또 다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남궁세가로 각 문파의 지원은 끊이지 않았고 지원을 빌미로 이윤후와 안면을 트려는 자들로 남궁세가는 골치를 앓고 있었다.
중소문파 뿐만 아니라 구파일방과 세가에서도 그런 행보를 보이고 있었으나 남궁나연은 단칼에 이러한 요청들을 묵살했다.
“남궁세가는 속셈이 있는 지원은 더 이상 받지 않을 겁니다. 지원을 빌미로 다른 것을 요구하는 세력은 필요 없으니 남궁세가를 떠나세요.”
남궁나연의 말에 쉴 새 없이 만남을 요구하던 각 문파의 요청은 잦아들었고 남궁세가는 차분히 사왕련과의 일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남궁세가와 사왕련의 다툼은 벌어지고 있었고 회담을 위해 떠났던 독고진과 일행이 사왕련에 복귀하지 않았기에 더 큰 다툼으로 번지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안휘성 일대 말고도 여러 곳에서 사파와 정파 간의 다툼이 일어나며 무림은 전운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윤후의 거처.
“상황은 어떠하냐?”
약선은 천통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습니다.”
“괜찮아? 내가 듣기론 크고 작은 다툼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약선은 천통자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각지의 다툼이야 예견된 사항이었고, 그 다툼도 생각보다 크게 번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마 회담을 위해 정주로 떠났던 사왕련의 주축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탓에 사왕련과 사파 모두 크게 싸움을 확대하지 않은 탓이겠지요.”
“그렇군. 사왕련이 너무 조용하긴 하구나.”
“서열 이십 위의 고수를 둘이나 잃고 한 명은 크게 다쳤을 것이니... 그들이 남궁세가로 직접적인 도발을 하는 것은 독고진이 돌아오고서야 가능할 겁니다.”
천통자는 말을 하며 벽에 기댄 채 서있는 이윤후를 보았다.
‘사왕련이 남궁세가로 도발을 해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 소협 때문이겠지. 사왕련에서 상대한 고수들이 사왕련의 남은 주축이었을 텐데 혼자 모두를 쓰러뜨렸으니 남아있는 사왕련의 인원들이 남궁세가로 도발을 할 수 없는 거겠지.’
천통자는 이윤후가 사왕련에서 보여준 무위는 다시 생각해봐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못했을 수준이기까지 했다. 약관을 이제 갓 지난 청년이 사파의 최고수들을 상대해 이긴 것을 누가 의심 없이 믿을 수가 있을까?
이윤후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가부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것도 천통자는 백번 이해가 갔다. 약선이 직접 나서서 공증을 해주었지만 여전히 의심하고 믿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 것도 천통자는 알았다.
“크흠... 이 소협은 이제 몸은 다 추스른 겁니까?”
이윤후를 빤히 바라보던 천통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계면쩍게 물었다.
이윤후가 남궁세가로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방에서 두문불출했기에 그 이후 처음 보는 거라 하는 질문이었다.
“네, 이제 괜찮습니다. 사왕련에서 약선 어르신과 신마와의 싸움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였는데 이리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습니다.”
이윤후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자신은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은지가 무려 일주일이었다.
남궁나연과 기하윤은 걱정되어 수시로 이윤후의 거처를 들렀으나 약선의 제지로 조용히 물러난 채 계속 기다리고만 있었다.
“너는 볼수록 그 사람과 닮았구나.”
“사부님과 요?”
“그래. 그 사람도 자신의 대결보다는 남의 대결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발전시켜나가 검의 정점에 올랐다. 그가 창안한 만상오행공도 무당의 장문인과 마교의 교주였던 천마와의 대결을 보고 창안한 것이니 말이다.”
약선은 말을 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녀에게도 이윤후가 이제는 자신의 제자마냥 모든 것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무엇보다 자신과 환영신마의 대결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그녀에게는 꽤 기뻤다.
“소문주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듣고 있던 기하윤과 철대호가 동시에 말했고 이윤후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 거창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절정의 고수들 간의 공방(攻防)에서 사부님이 말씀해주셨던 것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렇게 강한데도 더 깨달을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하긴... 이 소협의 나이를 보면 한참 배울 나이이긴 한데...”
천통자는 말을 하면서도 이윤후가 얼마만큼 강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검성은 혹시 현재 무림의 상황을 이용하여 이 소협을 수행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천통자는 검성이 말로만 무림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고 현 상황을 통해 이윤후에게 경험을 쌓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사왕련의 주력들은 언제쯤 도착할까요?”
생각에 빠진 천통자는 이윤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듯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현재 예상으로는 짧으면 오일, 길면 칠일 정도일 듯 합니다. 그들이 합류하고 나서는 일대가 전쟁터가 될 거라고 보셔야 할 겁니다.”
천통자의 말에 이윤후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뭐 그리 걱정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검성께서도 이곳으로 오신다하셨고 서문세가의 지원도 속속 도착하고 있어서... 오히려 무림맹 쪽이 걱정이죠.”
천통자는 이미 이윤후와 약선의 무위를 확인한 뒤로는 사실 사왕련과의 일전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약선의 강함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이윤후의 무위는 남궁세가로 모여든 많은 이들의 사기를 올려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검성이 도착하면 “그 방법” 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봐야겠지. 그 방법만 쓸 수 있다면 손쉽게 사왕련을 와해시킬 수 있을 터... 현재 사기가 떨어진 만큼...’
천통자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지 입 꼬리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소협이 수련을 하는 동안 남궁 소저가 아침저녁으로 들렀는데 연락은 해보셨습니까?”
천통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화제를 돌리며 이윤후를 보았다.
“이 소협이 깨어난 것을 알았다면 늦은 시간이라도 달려올 남궁 소저인데...?”
천통자는 이윤후의 눈치를 보아하니 자신이 상념에서 깨어난 것을 남궁세가에 먼저 알리지 않은 듯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남궁나연이 분명 수하들을 이윤후의 거처에 붙여놔서 이미 그가 거처를 나온 것을 알 터인데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 여겼다.
“남궁세가의 가주대리가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밤낮으로 각 문파의 지원세력과 손님들이 밀려드는데 그리 한가하게 움직이지 못하지.”
약선의 말에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사실 천통자도 남궁세가로 돌아온 이후 남궁세가로 밀려드는 지원물품과 사람들로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바쁜 것을 목격했기에 쉽게 수긍할 수가 있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남궁나연이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들렸던 탓에 천통자가 착각했던 것이었다.
“남궁 소저도 대단하군요. 대리가주로 엄청 바빴을 터인데... 그래도 남궁 가주께서 며칠 안에 도착하실 테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겠네요.”
“남궁 대협께서 무림맹에서 오십니까?”
이윤후는 천통자의 말에 놀라 물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검성과 남궁나연을 통해 남궁인의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이윤후는 방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무림의 소식을 전혀 몰랐기에 천통자의 말에 놀라 물었다.
“네. 남궁 가주는 무림맹의 맹주를 내려놓고 세가로 복귀하고 계십니다. 총관이었던 안명선생도 같이 복귀하시니 남궁 소저에게 큰 안심이 되겠죠.”
이윤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듣고 있자 약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단다. 무림맹은 소림과 무당의 주도하에 새로운 맹주를 세웠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방파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개편을 단행하였다.”
“소림과 무당이 나선 것은 잘된 일이군요. 남궁 소저의 아버지와 안명선생이 돌아오는 것도 잘되었고요.”
이윤후는 안명을 만난 적이 있었기에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만났을 때는 천방지축이던 남궁나연을 모시던 남궁세가의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수행 중에 천통자가 보라고 주었던 무림인명록을 통해 안명이 남궁세가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았기에 남궁나연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네 사부도 며칠 안에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경이와 함께.”
“백아를 통해 오시지 않고요?”
“일행이 있어서 같이 오고 있다더구나.”
“일행이요? 유 소저 말고도 일행이 있었나요? 아... 의천문의 사람들인가요?”
이윤후의 말에 약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누구?”
“의천문의 수하들도 일행에 있긴 하지만 화경부에 머문 동안 경이를 찾아 이전 사마련의 인물들이 찾아왔다더구나.”
“사마련의 사람들이라면...?”
이윤후는 사마련의 자객들이 유인경을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기에 걱정되어 되물었다.
“암살자들이 아니다. 같이 오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자신의 물음이 바보 같다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월랑(月狼)이라고 사마련에서 경이의 호위를 하던 인물이었다는데 경이가 사라지고 꽤 오랫동안 경이를 찾아다니다 정사회담에 경이가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네 사부를 찾아갔다더구나.”
“호위요? 유 소저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월랑이라면 송우기. 그자 일겁니다.”
약선과 이윤후의 이야기에 천통자가 답했다. 두 사람이 그를 쳐다보자 천통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마련이 생기고 흑월도존이 처음 사파 일통을 이루었을 때 사도천(邪道天)의 후계자가 흑월도존에게 도전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윤후가 사도천에 대해 모르는 것 같자 천통자는 그것부터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도천.
정파의 신비지문이 화풍곡이라면 사파의 신비지문은 사도천이었는데 화풍곡과 마찬가지로 차기 천주가 될 사람은 무림행을 떠나고 그 무림행의 성과를 통해 천주로서 자격을 얻게 되었다.
사도천은 사파이긴 했지만 무림맹과 실질적인 대립은 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정파에서도 당대 천주의 무림행에 도움을 주었고 비무에 협조적이었다.
천주 후보였던 송우기는 흑월도존에게 도전했고 도존은 흔쾌히 그의 도전을 받아주었다.
어렸던 송우기의 치기어린 도전이었지만 도존은 진지하게 비무에 임했고 송우기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드러내었음에도 도존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아내자 그 자리에서 사도천의 차기 천주자리를 내놓고 도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존은 송우기의 그런 복종을 처음엔 거부했으나 수일이 지나도 의견을 굽히지 않는 송우기의 모습에 그의 사마련 합류를 허락해주었다.
이후 송우기는 도존의 수족이 되어 모든 전장에 앞장섰고 도존의 명령만 따랐다.
도존이 무림일통의 꿈을 접었을 때 많은 사파인들이 반발했으나 송우기는 그런 도존의 결정을 이해하며 반발 세력들을 설득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은 줄만 알았는데 도존의 마지막 남은 혈육인 유인경을 지키고 있었나봅니다.”
“유 소저는 당시 기습을 받아 부상을 입은 채 백아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왔었는데 그때는 그가 없었던가요?”
“독고진도 일의 실행에 월랑이 방해됨을 알고 그에게 다른 임무를 강제적으로 맡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유인경의 소식을 알고 계속 사왕련으로 복귀하지 않고 유인경을 찾아 나섰다가 이제야 찾아왔던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