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사왕련(邪王聯)(2)
석실의 문이 열리자 거대한 침상에 누워있는 노인이 보였다.
“모두가 들어갈 필요는 없겠죠?”
“그래, 나와 보조를 해줄 윤후만 들어가마.”
윤엽은 방 안에 모두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약선이 이윤후에게 눈짓을 보내자 은위대가 메고 있던 짐 중에 약선의 진료도구가 든 상자를 찾아 들었다.
“나와 윤후만 들어가느냐?”
“네. 저도 석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받지 못해서요. 련주께서 출입을 허락하신 것은 약선님 뿐이긴 한데... 보조가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련주도 허락하실 겁니다.”
윤엽은 이윤후를 슬쩍 보곤 난감한 듯 표정을 지었다가 허락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대기하고 있어.”
약선이 먼저 석실에 들어 간 후 이윤후가 따라 들어가려 하자 철대호와 기하윤이 안절부절못해하자 이윤후는 두 사람에게 지시 한 후 석실로 따라 들어갔다.
석실 안에 들어선 약선은 곧바로 누워있는 흑월도존을 향해 다가갔고 이윤후는 방 한쪽에 있던 의자를 약선에게 가져다주었다.
“고맙다. 일단 너도 기다리거라.”
의자를 침상에 붙여 앉은 약선은 흑월도존의 숨소리를 들으려는 듯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가 이내 그의 손목을 잡아 진맥했다.
진맥을 하던 약선의 안색이 변하더니 흑월도존이 덥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었다.
“윤후야 상의를 벗겨다오.”
“네, 알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윤후는 약선의 명에 바로 흑월도존에게 다가가 그의 상의에 손을 가져갔다.
“아주 벗길 필요는 없고 가슴과 복부만 볼 수 있도록 풀어 놓으면 된다.”
“네.”
이윤후는 상의를 벗기려면 도존의 몸을 일으켜야 되나 잠시 고민했는데 약선은 그것을 알아챈 건지 바로 말했고 이윤후는 도존의 상의 앞섶을 풀어 제쳐 가슴과 복부의 피부를 드러내도록 했다.
“어르신!”
옷을 풀어 제치던 이윤후는 무언가를 보고 놀라 약선을 불렀다.
풀어 제친 상체의 피부는 나이든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육질이었는데 이윤후가 놀란 것은 그게 아니라 가슴과 복부 사이 붉은 반점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보았다. 도존이 독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그것도 지금까지 내가 손써보지 못한 절독(絶毒)이구나.”
약선은 다가가 붉은 반점들을 찬찬히 확인하며 직접 배와 가슴을 눌러보며 살피기 시작했다.
밖에선 이런 약선의 행동을 윤엽이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고 천통자는 그런 윤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수신의 조차 도존이 당한 독을 고칠 수 없다했는데 약선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환노 노마귀가 말했던 도존이 스스로 저 상태로 들어갔다는 말인데... 그의 말처럼 독기를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 가사(假死)상태로 들어갔다 한들... 결국 독을 해독하지 못하면 일어나지 못함이야...’
윤엽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안함을 느끼며 약선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여나 약선이 도존을 치료하거나 의식을 차리게 할 방법을 찾는다면 그들에겐 큰 낭패였다.
도존의 몸을 살피던 약선의 눈이 놀라며 잠깐 커졌다 이내 잠잠해졌는데 그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바로 옆에 있던 이윤후 뿐이었다.
‘무언가를 알아내신건가?’
이윤후도 자신들의 동태를 윤엽이 계속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고 이미 오기 전부터 치료를 할 수 있더라도 내색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들은 터라 이윤후도 최대한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윤후야, 옷을 다시 입히고 정리해다오.”
“네.”
약선은 진찰을 마친 듯 도존에게서 손을 떼며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했고 그 사이 이윤후는 도존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사이 약선은 밖으로 나가 윤엽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 더 안으로 들여도 되겠는가?”
“그건 곤란합니다. 치료를 위해 약선님만 허락한다고 분명 말씀 드렸습니다만... 약선님이 치료나 진단을 하지 못한다면 이중에 누가 더 들어간다고 답이 나오겠습니까?”
윤엽은 약선의 말에 곤란한 듯 답했다. 그도 이미 약선외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말을 이윤후를 들여보내면서 어긴 셈이라 더 인원이 들어가는 것은 곤란했다.
“내가 처음 보는 독이라 혹시나 잡학에 능한 천통자가 알까 해서 말이야.”
약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천통자에게 몰렸고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천통자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염소수염을 매만졌다.
“크흠, 제가 이름부터 하늘에 맞닿을 정도의 지식을 가졌다하여 천통자이지 않습니까? 독도 제가 아주 잘 알죠. 남만 일대는 물론 운남과 여러 지역을 다니다 얻은 지식도 있고 제가 나름 독학도 꽤 합니다.”
천통자는 약선이 자신을 왜 부르는지 알았기에 윤엽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허풍떨 듯이 이야기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듣던 윤엽이 미간을 찌푸리며 천통자를 쳐다봤다.
‘니미럴 매번 받는 취급이지만 짜증이 좀 나는군!’
천통자는 의도한대로 윤엽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속으로 삭히며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저도 저자의 소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본다고 한들 뭐라도 알아 낼 수 있겠습니까?”
윤엽은 천통자가 무당 출신으로 잡학에 능한 자라는 것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고 허풍이 심하고 스스로 천통자라고 부르는 것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자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약선이 이런 자리에 천통자를 데려오고 도존의 상태를 보이려 한다는 것은 분명 이자가 무슨 특별함이 있다는 것이었기에 윤엽으로서는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허풍선이에 능력 없어 보이는데 혹시 보이는 것과 달리 능력을 감추고 있는 것은...’
윤엽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했다.
이미 방문 명단을 미리 받아 천통자에 대한 조사를 마친 터라 그에 대한 정보는 잘 알고 있었다.
[무당 출신으로 잡학에 능하고 자신이 천기를 읽고 자신의 지식이 하늘에 닿아 있다하여 스스로 천통자라고 부르며 남들 점을 봐주고 지식을 팔며 생활하는 자.]
사왕련도 정보단을 따로 관리하고 있었고 흑월도존이 처음 사파일통을 하고 조직한 부대가 바로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는 월하단(月下團)이었다.
월하단의 정보이니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정확하다 윤엽은 생각했고 금방 의심을 거두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도존의 몸에 손을 데서는 안 됩니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윤엽의 허락이 떨어지자 약선은 천통자에게 눈치를 주어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그는 엉거주춤하며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윤엽과 그의 수하들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천통자는 약선과 바로 도존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보았다.
“안색만 보면 전혀 중독된 사람 같지는 않네요. 그저 잠이든 노인으로만 보입니다.”
천통자는 흑월도존을 보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도존은 평온하게 잠이 들어있는 듯해 보였다.
“윤후야 옷을 다시 좀 벗겨다오.”
“네.”
이윤후는 약선의 말이 떨어지자 바로 도존의 윗옷을 다시 벗겨 가슴을 열었다.
“중독된 것이 맞군요. 시독(屍毒)의 일종인 듯 한데 아닙니까?”
“그래. 시독의 일종인 듯 한데 처음 보는 독이다. 일전에 만독곡이 운남의 한 마을에서 실험했던 것도 시독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개량된 것으로 보이는구나.”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독의 이야기가 나오자 윤엽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윤엽 또한 도존이 만독곡의 독에 중독되어 있고 그것이 시독의 한 종류라는 것은 성수신의의 진료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성수신의 조차 도존의 몸을 몇 달을 붙잡고 살피고 나서야 그것에 대해 알아낸 것인데 약선과 천통자는 보자마자 알아낸 것이었다.
‘약선은 그렇다쳐도 성수신의 조차 몇 달이 지나서 알아낸 것을 저자는 어찌 한 눈에 알아본단 말인가?’
윤엽은 천통자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시했다.
“기막(氣幕)을 미리 칠 것을 그랬구나. 기막을 쳤으니 저쪽을 등지고 서서 이야기해라.”
약선은 자신과 천통자가 한 이야기를 듣고 윤엽이 더욱 경계를 하는 듯 하자 기막을 쳐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했다.
“네. 안 그래도 너무 주목을 받게 되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입니다. 이번 일 지나면 이제 적지 않은 주목을 받을 듯 싶어서...”
천통자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미 검성과 동행을 하고 이번 약선과 동행까지 하며 무림의 원치 않은 주목을 받고 있었기에 천통자라는 신분으로 무림을 활보하기 어려울 듯 싶었다.
“시독 같지만 도존의 피부는 너무 멀쩡한 거 아닙니까? 시독에 중독되면 피부가 벗겨지고...”
“그래. 시독에 중독되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벗겨지며 붉은 피부빛을 띄게 되지. 하지만 도존은 피부에 붉은 반점만 존재하지. 그 사람의 예상이 맞는 듯 해.”
“검성의 예상이요?”
“그래. 그는 흑월도존이 사파를 일통할 정도의 무위를 지녔고 이미 죽은 것이 아니라면 독을 억제하고 있을 거라 추측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듯 해.”
약선의 말에 천통자와 이윤후가 동시에 다시 누워있는 도존을 살폈다.
“그렇군요. 만독곡이 도존에게 쓸 독을 어설픈 것을 썼을 리 만무하고 운남의 마을의 사람들에게 실험했던 독을 썼을 테니... 마을의 사람들처럼 이미 독수(毒水)로 변해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존은 독의 효력을 누르고 있는 게 확실하군요.”
천통자는 말을 하면서도 놀라고 있었다. 만독곡이 운남의 한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자신들의 독의 시험무대로 삼으며 마을 전체 사람을 독수로 만들어 버린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처음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옷자락만 남았을 때 조사하러 온 모두가 기이함을 느꼈지만 옷에 묻어있던 독수를 발견하고 독에 중독되어 한줌의 독수로 화해 버린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워낙 유명하고 충격적인 사건이라 당시 황궁에서까지 이 일에 대한 조사를 했고 황궁에서 수배령까지 내렸었다.
만독곡이 사람이 녹아버릴 정도의 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무림은 경악했고 사천당문에서 옷자락을 가져가 조사를 했는데도 독의 조합을 밝혀내지 못했었다.
도존에게 쓴 독은 아마 그 당시의 독보다 더 개량된 독일게 분명했는데 도존은 그런 절독을 견디고 억제하고 있으니 약선이나 천통자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태로 보아 모든 힘을 다해 독을 억제하고 있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된 것이 아닌가 싶구나.”
“전신의 힘을 모두 독의 억제에 쏟다보니 가사상태로 스스로 빠져있다는 건가요?”
“그래.”
듣고만 있던 이윤후의 물음에 약선이 답했다.
“그럼 사부님의 상태와 비슷한 거 아닌가요?”
“......”
“사부님은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가사상태로 들어가셔서 내면세계에 빠지신 거지만 도존의 상태도 그와 비슷하다고 봐야하지 않나요?”
“그래. 네 사부란 사람은 아마 이럴 것을 예상하고 천통자를 이곳으로 보낸 거지.”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천통자를 보았고 그는 피곤하다는 듯 손 사례를 쳤다.
“어차피 독을 해독하기 전엔 검성에게 행했던 몽환대법을 이용해 깨운다 한들 의미가 없을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문제는 독의 해독이지. 현재 여기선 치료가 힘들어. 공기가 깨끗하고 환기가 잘되는 곳으로 옮겨 치료를 해야 하는데 여긴 치료를 하기 적합하지도 않은데... 저들이 허락하지 않겠지?”
약선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윤엽과 수하들을 보곤 말했다. 그들은 약선이 기막을 쳐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 것을 눈치 챘다. 이에 윤엽이 독고진의 명도 잊은 채 석실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