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남궁세가의 비로(秘路)
남궁세가의 입구에는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소란스러웠다.
남궁세가에 머물고 있는 약선과 이윤후의 일행이 사왕련으로 가는 날임을 알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남궁세가에서도 기밀유지를 했던 부분이지만 현재 남궁세가 안에 여타 문파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말이 새어나간 듯 했다.
“이거 어쩌죠?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남궁세가의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한 채로 있던 약선과 이윤후를 향해 남궁나연이 미안함을 표했다.
이미 출발했어야 했는데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입구에 멈춰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밖을 통제하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남궁소저가 미안해 할 것이 아니니 그리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조금 늦게 출발 하는 것뿐인데요.”
남궁나연은 이윤후의 말에 조금은 안도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세가의 문제였기 때문에 미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이윤후에게 출발 날짜를 전달 받고 남궁나연은 남궁세가의 장로들과 몇몇에게만 일정을 공유하고 준비를 지시했는데 이야기가 새어나가 이런 상황이 되었기에 남궁나연은 화가 나고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밖을 통제하러 나갔던 창연이 남궁나연을 부르며 달려왔다.
“밖은 정리가 좀 되었어?”
“통제가 어려울 듯합니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모여 있기도 하고 저희가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길을 연다고 한들 저들이 약선님과 이 소협을 따라갈 가능성도 있고요.”
“이렇게까지 지금 상황을 인지 못하다니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창연의 보고에 남궁나연은 화가나 말했다.
현재 무림의 중대사를 위해 떠나는 이들을 환대하고자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약선과 이윤후의 얼굴을 한번 보고자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라도 한 번 나누려는 목적을 가지고 온 이들이 훨씬 많았다.
“창룡대주께서 비로(秘路)를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여쭈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 비로를 사용하면 되겠구나.”
짝-
창연의 말에 난감해 하던 남궁나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는 자신이 놀라 민망한 듯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모여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남궁나연에게 쏠렸고 그녀는 머쓱해 하며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에 비상시에 세가 안에서 밖으로 통하는 비로가 있는데 그곳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가시면 될 듯해요.”
“남궁세가의 중요한 곳이 아닙니까? 저희에게 알려져도 괜찮을까요?”
이윤후의 말에 남궁나연은 미소를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약선 어르신과 검성의 제자분이신데요. 다른 사람들은... 입단속 해주실 거라 믿어요.”
남궁나연은 약선과 이윤후에 대해 걱정은 안했지만 천통자와 다른 일행들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눈길을 줬고 그녀가 입단속 해달라는 말에 천통자는 살짝 오싹함을 느껴야했다.
남궁나연이 창연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자 창연은 다시 밖으로 나가 밖을 통제 중이었던 창룡대주 남궁염을 데리고 왔고 그는 이미 창연에게 전달 받았는지 주위의 창룡대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수십의 창룡대는 주위의 사람들을 일제히 물리기 시작했고 남궁나연과 창연 그리고 약선과 이윤후 일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물러났다.
이윤후는 그런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고 천통자 역시 창룡대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비로라... 남궁세가 같은 곳에 비밀통로가 있는 것은 뭐 그리 비밀이랄 수는 없지만 남에게 그것을 허락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인데 남궁세가는 어지간히 이 소협을 믿고 있나보군.’
천통자는 남궁나연이 이윤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런 그녀가 이윤후를 배려하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자신들에게 비로를 내어 주라고 말한 자는 바로 남궁염이었다.
천통자가 아는 남궁염은 남궁세가에서 가장 고지식하고 남궁세가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새어나가면 안 될 남궁세가의 비로를 외부인에게 허락해달라고 제안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이 소협이 남궁세가의 무사들도 구해주고 미후왕과 일전에 담석영과의 비무를 보았다면 누구라도 이 소협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겠지. 그도 분명 남궁나연이 이윤후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 테고...’
천통자의 짐작처럼 남궁염은 남궁나연이 이윤후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미 남궁세가의 어른들은 남궁나연과 이윤후를 이어주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미 남궁세가에서는 검성의 제자인 이윤후를 반은 남궁세가의 사람으로 치고 있었다.
곧 준비를 마치자 남궁염과 창룡대의 안내 속에 모두 이동하기 시작했고 세가의 외곽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세가의 창고로 보이는 곳에 멈추어 섰다.
창연은 한쪽 외곽의 창고 건물로 향했고 안에 들어가 확인하더니 금세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 준비를 마쳐놓았습니다.”
“그래. 먼저 들어가 열어 두도록 해.”
남궁나연의 명을 받자 다시 창연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약선 어르신과 이소협과 일행 분들만 저를 따라 오시죠.”
남궁나연이 말을 하곤 앞서가자 이윤후는 약선과 눈을 마주치곤 함께 따라갔고 그 뒤를 철대호와 기하윤 그리고 천통자와 짐꾼으로 위장한 은위대 다섯이 따랐다.
창고 건물 안은 밖에서 보기보다 안이 컸고 한쪽에는 쌀부대가 가득 쌓여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술통으로 보이는 통들이 쌓여있었다.
“한기(寒氣)가 느껴지는 것이 창고 지하에 빙고(氷庫)가 있나보군요.”
천통자의 말처럼 안으로 들어서자 한기가 느껴짐을 모두가 느꼈고 그의 말처럼 창고 끝에 창연이 지하로 통하는 물을 열어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느껴지는 한기는 저 빙고의 입구가 열려있어 느껴지는 것이었구나?”
“네. 원래 빙고의 입구를 닫아놓으면 이곳은 그냥 창고로 그저 서늘한 정도라 세가에서 소비되는 곡식과 장들을 보관하기 최적의 장소랍니다.”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은 자랑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빙고는 나라에서 운영을 할 만큼 특별한 시설이었고 이렇게 집 안에 두기 어려운 시설이었다.
“아래로 내려가시죠.”
창연이 열어둔 아래로 통하는 문 아래를 보니 꽤 깊어 보였고 단단한 밧줄로 엮인 사다리가 늘어져있었다.
“사다리를 이용해 천천히 내려가 주십시오. 특별한 곳이다 보니 뛰어내렸다간 바닥에 충격이 갈수도 있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창연의 말에 이윤후가 먼저 나섰고 어렵지 않게 밧줄 사다리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고 한사람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약선과 남궁나연이 남자 약선은 남궁나연을 보았다.
“너도 내려갈 것이냐?”
“아니요. 저의 안내는 여기까지 인 듯합니다. 창연이 마지막까지 안내할겁니다.”
남궁나연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이미 이곳으로 오면서 남궁염에게 빙고 안까지 따라가지 말라고 한소리 들은 터라 참고 작별을 고했다.
“그래. 이렇게 남궁세가의 비로까지 안내해줘서 고맙구나. 검성이 남궁세가를 돕겠다고 이미 약조하였을 건데 나와 서문세가 역시 남궁세가를 끝까지 돕도록 하마.”
“감..감사합니다.”
생각지 못한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은 말까지 더듬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약선은 미소를 짓고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 모습에 남궁나연이 놀라 아래를 보았으나 약선의 신형은 천천히 아래로 낙하하고 있었고 바닥에 사뿐히 착지하였다.
“이정도면 문제없겠지?”
“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약선은 내려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창연에게 말했고 약선의 물음에 정신 차린 창연은 바로 답하였다.
“저를 따라오시죠.”
창연은 지하 빙고를 헤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빙고 안은 아주 넓고 컸고 잘라진 얼음 외에도 고기로 보이는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창연이 가고 있는 방향엔 이미 그가 미리 열어 둔 듯 막혀있던 벽이 뚫려있었다.
“기관이군요. 보통의 빙고와는 다르다 생각했지만 이방 전체가 거대한 기관으로 이루어져있는 듯합니다.”
천통자의 말에 창연은 그를 노려보았고 천통자는 그의 눈을 슬쩍 피하였다.
‘대단하군. 남궁세가 내에 이런 기관진식을 갖춘 공간이 있다니... 저 창연이라는 아이가 길잡이를 하지 않았다면 기관들이 작동했겠지.’
천통자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며 걷고 있었고 그가 나름 기관진식에 대한 조예도 깊은 편이었지만 이곳에 설치된 기관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호기심이 일어 기관이 작동하는 것이 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꾹 참고 있었다.
빙고 안에 열린 통로는 사람이 몇 명이 지나갈 정도로 컸고 창연이 앞장서가고 그 뒤를 일렬로 따라가도 충분했다.
“외벽을 절대 만지셔서는 안 됩니다. 저를 따라서 걷기만 해주십시오.”
창연의 말에 모두 정신 차린 채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일각이 조금 넘게 걸었을까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척을 죽이시고 보폭을 좁혀 걸어 주십시오.”
창연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먼저 앞서 나갔고 모두 창연의 말대로 보폭을 줄여 걷기 시작했다.
“동굴인 듯하다.”
천통자는 빙고와 이어진 곳이 동굴 안임을 알았고 비로의 기관의 거의 끝 지점에 도달했음을 눈치 채고 입을 열었다.
드드드-
그들이 모두 지나온 뒤 통로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모두 뒤를 보았을 때 지나온 통로가 감쪽같이 거대한 석벽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천통자는 눈을 반짝이며 눈을 떼지 못했고 약선이 눈치를 주고 나서야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동굴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신 탓에 밖의 상황과 적응해야했다.
“모두 괜찮으십니까?”
창연은 모두가 쉬는 동안 밖의 동태를 살피러 다녀온 터였다.
“이곳은 남궁세가에서 남서쪽 방향이니 사왕련으로 가는 길은 조금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
“길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창연의 말에 천통자가 대답했다.
“그래. 안내는 여기까지 했으면 되었다. 네 할 일이 있으니 돌아가 보도록 해라. 이후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마.”
“네.”
약선의 말에 창연은 답하고는 이윤후를 돌아보았다.
“다시 남궁세가에 꼭 다시 들러 주십시오.”
“그러죠. 남궁소저를 잘 지켜주세요. 일을 마치고 남궁세가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윤후의 답에 창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세가의 종자로 남궁인의 눈에 들어 신분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고 배웠으나 자신은 남궁세가의 시종이었다.
그러나 이윤후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줄곧 자신에게 하대를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으로서 남궁나연에 대한 연심(戀心)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남궁나연이 이윤후에 대한 호감을 잘 알고 있는 창연이었기에 이윤후가 자신을 향해 남궁나연을 지켜달라고 하자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창연은 속이 쓰렸다.
“이 소협 출발하시죠.”
천통자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소리쳤다.
“그럼, 이만 가봐야 될 듯 하네요.”
이윤후는 창연에게 작별을 고하고 약선과 천통자의 곁으로 달려왔고 창연은 약선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는 남궁세가로 돌아갔다.
“남궁세가가 위험하진 않겠죠?”
“위험 할 일이 있겠습니까? 사왕련의 주축들이 정주로 정사회담을 위해 출발했고 사왕련도 총관인 윤엽과 몇몇 인물들 외에 없으니 딱히 위협적이진 않을 겁니다. 남궁세가에 이미 적지 않은 지원이 와있고 말이죠.”
천통자의 말에 이윤후는 안심한 듯 했고 약선이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남궁세가는 오랜 역사와 저력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 네 스승이란 사람이 이미 무림에 공표하듯 남궁세가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는데 누가 함부로 건들겠느냐?”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걱정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출발하시죠. 천통자가 안내 해주세요.”
이윤후의 말에 천통자가 앞장서기 시작했고 모두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