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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53화 (153/251)

153화― 유형지의 방문(2)

유형지는 검성이 유인경을 물러나게 해주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말을 해 보아라. 네가 직접 이렇게 나타나는 것도 너한테도 부담이었을 텐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구나?”

검성은 유형지가 직접 나서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십인회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도후를 이어 십인회의 대모자리에 있고 그 세력을 이끄는 핵심임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인회는 기본적으로 비밀유지를 원칙으로 모두가 정체를 모르는 조직이라고 천통자에게 들었었다.

십인회의 대모인 그녀가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것은 검성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에 유인경을 물린 것이었다.

‘가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가영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곳이라면...’

검성이 생각에 빠질 찰나에 유형지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기습을 당하셨습니다.”

“무사한가?”

검성은 이미 예상했던 내용이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런 검성의 모습에 유형지는 검성이 야속한 듯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스승님의 거처인 왕옥산에 환영신마가 찾아왔고 그와 겨루다 상대가 되지 않음을 느낀 스승님은 환영신마의 눈을 교란하고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가영답지 않은 선택이군. 내가 아는 그녀라면 그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도주는 하지 않았을 텐데...”

“스승님께서 자신의 죽음이 무림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굴욕적이지만 도주를 선택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사부님에겐 무기가 없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지만 유형지는 검성이 도후를 평가절하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군. 현명한 선택이긴 하지만 그녀답진 않아. 내가 아는 가영은 후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녀도 많이 바뀌었나보군.”

검성은 도후를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권왕을 죽이고 난 후 자신을 죽여주길 바라며 찾아왔던 도후는 이미 늙고 노쇠한 몸이었다.

고강한 무공덕에 다른 이들보다 노화는 늦게 진행되었으나 몸은 이미 늙고 병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검성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고 그녀가 임소려에게 죽을 때까지 잘못을 빌고 뉘우치길 바라며 그녀를 살려주었다.

그런 그녀가 환영신마의 공격을 받았다면 견뎌낼 수 없음이 당연했고 그녀로선 도주가 최선이긴 했을 것이지만 검성의 입에선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유형지도 스승을 평가하는 검성의 말에 기분 나빴지만 속으로 삭히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스승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파급될 문제를 걱정하셨기에 자리를 피하신 겁니다.”

유형지가 다시 한 번 강조하자 그런 그녀가 귀여웠는지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사실 검성은 자꾸 유형지가 도후에 대한 변호를 하려고 하자 일부로 시비를 걸 듯 말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참지 못하고 답하자 도후가 좋은 제자를 두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가영이 죽음이 두려워 그 자릴 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의 말처럼 그녀가 환영신마의 손에 죽었다면 너희 십인회는 물론이고 화풍곡까지 나설 가능성이 높았겠지.”

“네, 그랬을 겁니다. 아마 그들이 바란 것도 그것일 듯 합니다.”

검성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그가 계속 자신이 도발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유형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나를 찾아온 것인가? 지금 나는 가영이 누구에게 죽든 상관이 없는데 말이야.”

“그런...”

검성의 차가운 말에 유형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내가 도후를 죽이지 못했다고 그녀의 죄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이기 힘들어 그러지 않은 것이지.”

유형지는 검성과 도후 간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검성이 하는 말을 모두 이해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스승인 도후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알았기에 검성의 말이 너무 야속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그저... 환영신마와 그 세력들이 이번 정사회담을 망치고자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러 온 것이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유형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고 적잖이 검성의 말에 화가 난 듯 보였다.

“가영은 많이 다쳤느냐?”

뒤 돌아서려던 유형지는 검성의 물음에 멈췄다.

“검성께서는 제 스승의 안위가 궁금하진 않으실 텐데요.”

유형지의 말에 검성은 그녀가 적잖이 화가 났음을 알고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보았고 그런 검성의 눈빛을 받자 유형지는 눈빛을 피했다.

‘스승님이 일평생을 잊지 못하고 따라다니셨을 만하네... 무슨 남자의 눈빛이 저렇게...’

검성의 눈빛을 피한 유형지는 다시 얼굴이 붉어져 검성이 눈치 챌까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은 생명까지는 지장은 없으시지만 내상이 심하여 치료를 하고 있어요. 환영신마가 쫓아오지 않아 안심하셨던 터에 다수에게 기습을 당하여 온전치 못한 내공 운용을 하셔서 내상을 크게 입으셨어요.”

“가영의 부상이 환영신마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에게 당한 것이라고?”

“네. 스승님은 환영신마를 교란시키고 빠져나왔지만 그곳을 빠져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살수들이 쫓아와서 며칠에 걸쳐 도주하며 그들과 싸웠다고 하셨어요.”

“그렇군. 환영신마가 도후를 그렇게 쉽게 놓칠 리가 없을 텐데 일부로 쫓지 않은 것인가?”

검성은 도후가 환영신마를 따돌린 것부터가 의아했었는데 또 다른 자객들이 있었다면 그가 추격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갔다. 하지만 여전히 도후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영을 보았을 때 이미 그는 이전의 힘을 잃은 듯 보였다. 아마... 너에게 힘을 전해주었겠지?”

검성은 유형지를 바라보곤 물었다. 일전에 만났던 도후는 약선과 권왕 신투에 비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무의 극의에 같이 도달해보았던 그들이라 세월도 그들을 비켜갔는데 도후만이 쇠약해진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네... 사부님은 저를 제자로 삼으시고 모든 것을 알려주셨고 십인회의 대모 자리에서 물러나시면서 내공도 전해주셨어요. 그 바람에 스승님이... 노화가 오기 시작하셨죠.”

유형지의 가려진 면사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유형지는 도후가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에게 내공을 주려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텐데 무공에 무지했던 그녀는 도후가 알려준 모든 것을 행했고 그녀의 말이라면 모든 것을 따랐다.

격체전공으로 내공을 전수해주었지만 그것을 절반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미욱한 제자를 위해 그녀는 큰 희생을 했고 그 후 그녀는 급속도로 쇠약해져갔다.

모든 것을 알고는 도후를 원망했던 유형지였지만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었던 도후는 가만히 그녀의 원망을 들어줬고 우는 그녀를 안아줄 뿐이었다.

유형지의 이야기를 들은 검성은 도후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 나름의 선택이었겠지. 소려를 죽이고 그 미안함에 내 곁에 남아 나의 수행을 도왔고 내가 떠난 이후 내 뜻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제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죽고 싶었던 것인가? 가영. 미련하군.’

유형지는 검성이 말이 없자 마음을 추스르며 검성의 말을 기다렸다.

“네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가영의 뜻인 건가?”

“네, 스승님이 검성님께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검성께서는 남궁세가가 휘말린 이 일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할 텐데 내 죽음으로 인해 정사회담이 깨어진다면 죽어서도 두 사람을 볼 수가 없다면서요.”

“여전히 미련하군. 초형에게 속아 소려를 죽이는 미련함을 보여 놓고 아직도 그렇게까지 미련하다니...”

유형지는 처음과 달리 검성의 말에 이번에는 화가 나지 않았다. 말과는 달리 자신의 스승을 걱정하는 검성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처음부터 모진 말을 했지만 그것도 검성의 본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유형지는 생각했다.

“너희의 정보로는 누구의 짓이라 생각하느냐?”

“환영신마는 현재 사왕련의 환노라는 이름으로 독고진을 도와 그의 반대세력들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패 중 한 곳인 불마사의 천존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존?”

“네. 오절이 사라지고 무림진출 야욕을 보였던 불마사가 소림과 무당에 의해 활불이 큰 부상을 당한 후 패퇴했었죠. 불마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후 다시는 회생이 불가능 할 것 같았던 명맥을 유지시킨 게 불마사의 천존과 지존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 천존이 환영신마라는 것인가?”

“네. 저희 정보로는 환영신마가 검성과 도후에게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였을 때 그를 거두어 준 것이 불마사인 듯합니다.”

“새로운 활불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지만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불마사라는 소리군.”

검성의 말에 유형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만독곡 역시 불마사와 공조하여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행보 또한 감시하고 있으나 워낙 은밀한 곳이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 알겠다. 가영에게 몸을 잘 추스르라고 하려무나. 일은 내가 마무리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그리고 스승님께서 이것을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유형지는 자신이 들고 있던 홍라염도를 두 손으로 검성에게 내밀었다.

붉고 화려한 문양으로 꾸며진 도집에 손잡이 역시 붉은색 일색에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도후가 지니고 다니면서 도후의 신물이 되었던 홍라염도였고 붉은색은 도후의 색이라고 말할 만큼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것을 왜 나에게 주느냐?”

유형지가 내민 홍라염도에 받지 않은 채 검성이 물었다.

“스승님께서 검성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고요.”

검성은 유형지의 대답에 홍라염도를 받아 들었다.

스르릉-

도집에서 도가 드러났고 매끈한 도신이 드러나며 홍라(紅羅)라고 음각된 글자가 보였다.

탁-

검성은 바로 홍라염도를 다시 갈무리하곤 탁자에 내려놓았다.

“알겠다. 도후가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나에게 주었는지 알았으니 너는 돌아가 보아라.”

검성의 음성이 조금은 차갑게 변하자 유형지는 더는 말하지 않고 예를 차린 후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고 방에 혼자 남자 검성은 다시 홍라염도를 들어 보았다.

검성은 도후가 제자를 보내 홍라염도를 왜 자신에게 보냈지 짐작하고 있었다.

홍라염도와 신월검, 진천궁 세 가지의 신기는 신장의 무기로 원래 검성의 약혼녀인 임소려의 집안의 보물이었고 그것을 탐낸 신투가 권왕과 도후를 속여 임소려를 죽이게 하고 그녀의 가문을 멸문시키고 빼앗은 무기들이었다.

이미 무림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소문이고 홍라염도가 아무리 신기라고 한들 그녀나 제자인 유형지가 가지고 있기에 부끄러운 물건이라 도후는 검성에게 주고자 한 것이었다.

검성도 굳이 이것을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도후가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돌려주고자 하는지 알았기에 말없이 받았다.

홍라염도가 검성의 수중에 들어오면서 임소려의 집에서 탈취 당했던 신장의 무기가 모두 검성이 회수한 셈이 되었다.

신월검은 신투를 죽이고 얻었고 진천궁은 천통자가 비천회에서 권왕의 거처에서 찾았다면서 그에게 건네주었었다.

“초형. 이까지 무기가 뭐라고 그렇게 욕심을 내었소?”

검성은 신투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졌고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그의 욕심을 원망했다. 그가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건 핑계일 뿐이고 의식에 갇혀있는 동안 계속 자신을 원망했었다.

내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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