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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52화 (152/251)

152화― 유형지의 방문(1)

정주.

정사회담이 열리는 날짜가 다가오면서 정주에는 무림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객잔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화경부(華景府).

정사 양도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 많지 않은 중도 문파 중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파였다.

오절의 시대 이전에 절대자로 불렸던 우내삼존(宇內三尊) 중 천안존자(天眼尊者)가 화경부 출신이라 당시 화경부는 나름 세를 크게 불렸으나 천안존자가 불교에 심취하여 화경부를 멀리하면서 세력이 약화된 곳이었다.

그래도 천안존자의 무공의 기틀이 화경부의 무공이었던 만큼 여전히 무림에서 인정받고 있는 문파였다.

“검성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경부의 부주인 양강 이라고 합니다.”

화경부를 찾은 검성을 환대한 양강은 예의를 차려 검성을 맞이했다. 양강은 오십이 가까운 나이라 반로환동으로 젊어진 검성 앞에서 깍듯이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여간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검성과 동행한 유인경도 근래에 자주 보는 모습인데도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양 부주의 환대에 감사하오. 아직 약속된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미리 오게 되었는데 신세를 져도 괜찮겠소?”

“물론, 괜찮습니다. 이미 무림맹에서도 도착한 이들도 있고 사왕련은 인원의 규모가 좀 되어 날짜를 맞춰서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이번 일로 화경부에서도 많이 바쁠 듯 한데 괜히 내가 이곳에 폐를 끼친 게 아닌가 모르겠군.”

화경부를 정사회담의 장소로 정한 것은 검성이었기에 그리 말했다.

“아닙니다. 나름 화경부가 강했던 때가 있었지만 현재는 무림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던 게 사실인데 이번 일로 인해 무림에 다시 한 번 화경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저희에겐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검성께서 저희를 생각하여 이곳을 회담의 장소로 정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양강은 진심을 담아 검성을 향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화경부의 세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이 화경부를 회담의 장소로 정해주면서 무림맹에서 화경부에 대한 지원을 해주었고 많은 무림인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정주는 물론 화경부도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내가 오래전에 만났었던 양찬은 그대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버지께 검성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전되었던 화경무록의 후반부를 검성께서 찾아주셨다고 늘 입버릇처럼 검성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무슨 나도 전해준 것뿐인데.”

검성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양강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검성이 기연을 통해 얻었던 그의 무공 비뢰검결은 우내삼존 중 일인인 비뢰검제의 무공이었고 비뢰검제의 남겨둔 안배 속에 그의 친우이자 같은 우내삼존 천안존자의 비급도 있었다.

천안존자는 중년 때 화경부에서 나와 불교의 뜻에 심취했고 그런 그가 새로이 창안한 것이 화경무록이었다.

화경무록은 전반부는 내공법과 권장법, 그리고 삼초식의 검법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천안존자가 화경부에 전해주었다.

하지만 후반부는 그의 친우인 비뢰검제에게 맡겼고 혹시나 자신의 후인들이 자신의 무공으로 어긋난 행동을 한다면 후반부를 전해주지 말고 태워달라는 유지를 남긴 채 비뢰검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천안존자가 화경무록을 비천에 남기지 않고 비뢰검제에게 맡겨 화경부에 전하게 한 것은 자신이 몸 담았던 문파에 대한 미안함의 뜻이 아닐까 검성은 생각했다.

비뢰검제는 화경부에 화경무록의 후반부를 전해주기 위해 나중에 화경부를 찾았으나 화경부엔 천안존자의 무공을 제대로 익힐 무재(武才)가 없었고 전반부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천안존자의 무공이 너무 심오한 탓도 있었지만 비뢰검제는 결국 후반부를 전해주어도 화경부의 누구도 익히지도 못할 것으로 판단했고 힘이 약해진 화경부에 이 무공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여겼다.

그래서 비뢰검제는 자신의 무공과 화경무록의 후반부를 같이 자신의 후인이 될 사람에게 남겼다. 비뢰검제 또한 자신의 안배를 찾는 이에게 유지를 남겼는데 화경부를 찾아 화경무록을 지킬 힘을 가지고 있다면 전해주고 아니면 봉인해달라는 뜻을 남겼고 이 후 비뢰검제의 유지를 받은 검성이 화경부를 찾아 현재 화경부의 부주인 양강의 아버지인 양찬에게 화경무록의 후반부를 전했다.

양찬은 그 당시 전반부의 무공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고 검성은 그가 후반부 또한 익힐 수 있는 무재라 여겨 전해주었지만 그의 아들인 양강은 전반부도 제대로 못 익힌 듯싶었다.

‘아깝군. 천안존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하여 무공을 만들었건만 그것을 이어줄 인재가 없다니...’

검성은 자신의 무공을 이어준 제자 이윤후가 얼마나 기특한지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었다. 비뢰검결은 물론이고 자신이 창안한 만상오행공까지 제대로 익혀준 것을 말이다.

“부주님.”

방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한 중년인이 들어와 방 안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느냐?”

양강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살짝 기분이 나쁜 듯 목소리에 노기(怒氣)가 실려 있었다. 검성이 방문한 지라 미리 방해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놓았는데 이렇게 자신을 찾자 조금 화가 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한 여인이 찾아와 검성을 뵙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검성께서는 이제 막 화경부에 오셨는데 어찌 알고? 그리고 누가 검성을 뵙겠다고 한단 말이냐?”

양강이 호통을 치자 보고를 하던 중년인이 주눅이 든 채 입을 다시 열었다.

“저도 일단 만류를 했지만 그 여인의 신분이 보통이 아닌지라... 검성께서 아셔야 할 듯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왔습니다.”

“누가 날 찾아온 것이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성이 물었고 중년인은 검성을 향해 예를 차리곤 입을 열었다.

“자신이 도후의 제자라고 밝힌 여인이 검성을 꼭 만나야 한다고 찾아왔습니다.”

“가영의 제자라고?”

“네. 저도 처음엔 여인의 말을 믿지 못했으나 도후의 신물이었던 홍라염도(紅羅炎刀)를 그녀가 지니고 있었습니다.”

중년인은 바로 화경부의 총관인 지현무였는데 입구를 지키던 무사들의 보고를 받고 직접 찾아갔고 그녀가 지닌 홍라염도를 보고 기겁하여 이곳까지 직접 달려 온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지현무는 검성과 양강의 눈치를 번갈아 보았고 검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만나 보도록 하지. 우리가 묵을 숙소로 데려다 주겠나 여긴 이야기가 끝난 듯 하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지현무는 검성의 말과 함께 부주인 양강의 허락을 구하는 듯 그를 보았다. 양강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검성과 양강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곧바로 입구로 향했다.

“제가 머무실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도 이곳의 주인인데 자네에게 안내를 받는 것은 부담스럽군. 바쁠 터이니 일을 보도록 해. 너무 자네를 잡아두는 것은 내가 부담스러워.”

양강은 검성을 안내하며 도후의 제자까지 보고 싶은 마음에 안내를 하려했지만 검성이 거부하자 더는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럼 머무시는 동안 필요한 것은 바로 이야기해주십시오. 무림맹에는 제가 따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해주게. 경아. 우린 이동을 하자.”

검성은 안내를 해줄 시비가 오자 말없이 앉아 있던 유인경을 불렀고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검성과 함께 시비를 따라 숙소로 이동했다.

“정말 도후의 제자가 맞을까요?”

유인경은 검성에게 다가가 물었고 검성은 그녀를 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홍라염도를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지만 홍라염도는 워낙 무림에 잘 알려져 있어 보는 순간 그것이 홍라염도임을 모두가 알 수 있지. 거짓은 아닐 게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체도 보통의 인물은 아닐 거란 이야기이고 말이야.”

검성의 말에 유인경도 더는 묻지 않았다. 유인경은 자신이 들고 있는 천에 둘둘 말린 도를 힐끗 보았다.

‘장가철장의 장주님은 홍라염도를 바탕으로 적풍도를 만들었다고 하였지. 어떤 신물일지 궁금하네.’

유인경은 장가철장의 장주 장운호에게 받은 적풍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안내를 하던 시비는 두 사람이 숙소에 도착하자 물러났다.

그러나 도후의 제자가 궁금했던 유인경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지 않은 채 검성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일각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총관 지현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성 어르신. 지 총관입니다.”

“들어오게.”

덜컹-

문이 열리고 지현무와 백의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대단한 미인임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여성들에 비해 큰 키에 면사로 가렸음에도 느껴지는 신비한 분위기는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유형지는 문이 열리고 검성을 보고는 조금 놀라 눈빛이 흔들렸고 그 모습을 보자 유인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검성 어르신을 처음 본 여인들은 다 저런 반응이네.’

검성을 처음 보았을 때 유인경도 검성의 모습에 눈을 떼기 힘들었는데 대부분 여인들이 검성을 본 후의 반응이 지금의 유형지와 같이 한결 같았다.

유형지는 이미 검성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음에도 검성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도후의 제자인 유형지. 검성을 뵙습니다.”

유형지는 정신을 차리고 검성께 예를 취했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구나. 도후는 화풍곡과 연을 끊은 것으로 아는데 너는 화풍곡의 제자가 아닌 것이냐?”

유형지는 검성의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노인네 같은 말투가 적응이 되지 않는 듯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네. 스승님께서는 화풍곡과 연을 끊으셨습니다. 정확히는 화풍곡에서 사부님과 연을 끊었다는 게 정확하지만 하여간 저는 화풍곡 사람이 아닌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유형지의 대답에 검성은 지현무에게 나가라는 듯 손짓했고 그는 입맛을 다시며 검성에게 예를 취하곤 방을 나섰다.

지현무가 나가자 검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십인회의 수장이냐?”

검성의 말에 유형지는 잠깐 놀란 표정을 보였고 유인경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너도 이미 누군지 알고 있겠지.”

검성의 입에서 십인회 이야기가 나오자 유형지는 경계를 한 것이었고 자신의 신분이 검성에게는 알려져도 상관이 없지만 유인경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검성이 괜찮다고 말한 이상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십인회에 대해 잘 아시나요?”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다.”

검성의 대답에 유형지는 대답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내 입을 열었다.

“네. 현재 십인회의 수장을 맡고 있고 스승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거기까진 말하지 않아도 된다.”

도후는 유형지가 어떤 말을 할지 알았기에 그녀의 말을 잘랐고 유형지는 아쉬운 듯 검성을 바라보았다.

‘이미 십인회를 스승님이 어떤 뜻으로 만드신지 아시는구나. 두 분의 오해를 풀어드렸으면 했는데...’

유형지는 검성의 단호함에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십인회가 가영, 그 사람이 왜 만들었는지는 알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말이야. 지금은 그걸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날 왜 찾아온 것인지 궁금하구나?”

검성의 물음에 유형지는 다시 한 번 유인경을 보았고 검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떤 일이기에 신중하게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경아. 네 방으로 가 있거라.”

“네.”

유형지가 자꾸 유인경이 자리에 있음을 불편해 하자 검성은 그녀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자신이 이미 한번 괜찮다고 한 부분인데도 유형지가 말을 꺼내기 어려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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