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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49화 (149/251)

149화― 어긋난 계획

사실 천통자로서 이 일행의 동행에 따라다니면서 얻는 것도 많았지만 자신이 크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기에 몸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누가 봐도 약선은 걱정이 필요 없는 최절정의 고수이고 이윤후도 마찬가지, 거기에 이윤후를 지켜줄 철대호와 기하윤도 있었다.

하지만 천통자를 지켜 줄 사람은 없었다. 물론 약선과 이윤후가 자신을 버릴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은위단의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하고 있는 작전의 중요도 때문에 정예의 은위대가 천통자를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그들이라도 사왕련 안에까지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짐꾼과 일행으로 동행시켜 안전하게 들어가서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약선도 그런 천통자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너를 이곳에 보낸 이유를 아느냐?”

“저요? 정사회담에 저를 데려가게 되면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테고 이곳으로 보내는 편이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으면서 약선과 이소협을 도우라고 보낸 거 아닙니까?”

약선의 질문에 의아했던 천통자가 대답했다.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 사람은 흑월도존이 무사할거라 확신하더군.”

“아무리 흑월도존이 극강의 실력자라고해도 알려진 대로 우금이 장기간에 걸쳐 만독곡의 절독을 중독 시킨 것이라면 무사하진 못할 텐데요. 그래서 그렇게 강하던 흑월도존이 병상에 든 게 아닙니까?”

천통자는 약선이 말한 검성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의 말처럼 나도 흑월도존이 무사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치료보다는 다른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게 나와 그의 생각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천통자는 선뜻 그 의견을 동의하기 힘들어 물었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윤후도 마찬가지 생각이었기에 약선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흑월도존이 세간의 평가처럼 강자라면 만독곡의 절독에 당했더라도 무사했을 거라는 생각이지. 만독곡의 독은 특수해. 중독이 되면 해독조차 없고 전신이 부패되고 나중엔 한줌의 독수가 되어버리지.”

“그렇죠. 운남의 마을에서 행한 그들의 실험만 보더라도 독수가 되어 버린 시체만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 만독곡이 흑월도존에게 쓸 독을 허술한 것을 줬을 리는 만무하고 운남에서 행해진 그 실험의 독을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데 흑월도존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건 독을 억누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그 사람은 생각하더군.”

“독을 억누르고 있다고 하심은?”

“말 그대로야. 흑월도존은 중독된 사실을 나중에 알고 독을 억제하는데 모든 힘을 썼을 가능성이 높고 검성은 자신처럼 수면(睡眠) 상태로 모든 힘을 동원해 독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듯 해. 인경에게 이것저것 물으면서 들었던 상태를 보았을 때도 나도 그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되고 말이야.”

“흐음... 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긴 했죠. 화산의 최고 검객이라 불렸던 매화검존(梅花劍尊)이 절독에 중독되었을 때 스스로 가수면의 상태로 들어가 독을 억제하고 당시 신의께서 해독약을 만들 때까지 몇 년을 버티셨다는 기록이 있었으니까요.”

천통자도 가능성은 꽤 있다고 생각을 했다, 전례가 없던 것도 아니고 흑월도존 같은 강자가 긴 시간을 병상에 누워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여길만했다.

“검성과 같은 상태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 사람은 흑월도존이 자신과 같이 무의 극의(極意)에 도달한 자라면 자신이 해독할 수 없는 절독에 중독된 것을 알고 스스로 의식을 분리한 채 온몸의 기력으로 독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일거라 예상하고 있는 듯 해.”

“그렇게까지 높게 흑월도존을 평가하고 계시는군요.”

천통자는 검성의 생각에 조금은 놀랐다. 검성의 무위는 현재 무림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인데 복수를 위해 권왕과 신투를 상대하는 검성의 모습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경지의 무위였었다.

검성의 예상이 맞는다면 그런 경지의 인물이 한 명 더 그것도 사파에 있다는 것이니 천통자로서는 걱정도 앞섰다.

“그 사람과 내 생각처럼 그런 상황이 아닐 수도 있긴 하나 혹시나 그런 경우라면 네 재주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널 이곳에 보낸 것이지.”

“그렇군요. 이거 정말 그렇다면 나중에 검성에게 단단히 제 수고비를 받아야 될 듯 합니다.”

“너희가 오히려 반겨야 할 일이 아니냐? 흑월도존이 무사한 상태로 검성과 같이 의식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면 네가 깨우는 자체로 사파는 분열될 것이고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될 듯 한데 아니냐?”

천통자는 약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듯 찢어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사파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독고진과 그의 세력은 흑월도존이 깨어난 자체로 분열 될 게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사파는 사파끼리 다툼이 생길 테니 자연스럽게 정사대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는 건가? 거기다... 흑월도존의 알려진 인품이라면 도와준 은인에게 큰 보상을 해주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천통자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통제 못하고 있었다. 정사대전을 막는 동시에 사파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해내는 것이라 조직 내 자신의 입지와 성과는 분명히 많이 달라질 게 분명했다.

천통자가 실성한 듯 웃음을 흘리자 이윤후와 기하윤은 그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고 천통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예상하고 있는 약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밤늦은 시각인데 저희 거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천통자는 얼른 소식을 비천에 알려야겠다 생각했고 약선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저희도 이만 거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주군께서도 쉬셔야하니.”

“두 사람도 먼 길을 와서 여독(旅毒)이 남아있을 텐데 돌아가 쉬도록 해요.”

기하윤의 말에 이윤후가 허락하자 그녀와 철대호도 약선과 이윤후에게 예를 취하고는 물러났고 약선도 이윤후가 쉴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다.

모두가 방에서 떠나자 이윤후는 침상에 누워 낮에 있었던 담석영과의 비무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담공자의 검은 유려하고 빨랐지만 힘이 부족했어. 마지막 한 수는 중검이었지만 그리 위협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예전에 잠시 검을 맞대었던 쌍사련의 지욱 쪽이 더 강했던 거 같은데...”

이윤후는 담석영의 검보다 이전에 겨루었던 쌍사련 지욱의 검이 오히려 강할 것이라고 느꼈다. 잠깐 검을 맞대었던 사이었지만 지욱은 본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가 보여줬던 변검과 빠른 검술은 담석영과 닮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리며 비교하게 되었다.

“조대주님은 안정을 찾고 몸을 추스렸을려나... 강인하신 분이니 금방 기운을 차리시겠지. 다음 겨룰 일이 생긴다면 더 강해지실 테니 나도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강해져야 해. 다시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윤후는 이전 내공이 부족했던 시절 지욱과 조준혁에게 밀렸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미 조준혁에게 설욕을 한 이윤후였지만 무림은 넓고 강자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검성의 제자로서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

융주의 한 저택.

불마사의 지존 사마령은 아직까지 융주에 머물고 있었다.

“천존(天尊)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묵령은 사마령에게 서찰 하나를 건네었다.

“그가 나에게 서찰을 보내 보고를 할 일은 없을거고 불마사로 보내는 서찰이었어?”

“네. 활불님에게 보고를 하고 명을 기다린다고 했다 합니다.”

“그래? 무슨 일이기에?”

묵령의 말에 궁금해진 사마령은 서찰을 열어 보았고 표정이 심각해졌다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천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흑월도존이 정신을 잃은 채 깨어나지 않고는 있지만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약선이 치료를 위해 사왕련으로 왔을 때 직접 처리하겠다고 하는군. 독고진도 그것을 허락했고 말이야.”

“흑월도존은 만독곡의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만독곡의 절독은 이미 여러 번 실험을 걸친 독이야. 해독약도 없고 체내를 녹이고 마지막엔 중독자를 한줌의 독수로 화하게 하는 절독인데 그런 독에 중독된 흑월도존이 몸 상태가 멀쩡하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군. 그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지에 오른 자라는 소리인데 혹여나 깨어난다면 우리 일에 방해가 될 듯 해.”

“처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처리해야지. 환영신마가 흑월도존을 처리하려는 것을 독고진이 막았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아직은 제 스승을 죽일 정도로 악독하진 못한 듯 해. 환영신마가 약선과 흑월도존을 같이 처리하겠다고 하는군.”

사마령은 읽던 서찰을 내려놓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마령이 무림 진출을 위해 가장 공 들이며 준비했던 부분이 바로 흑월도존의 처리였다.

당시 오절의 꼭두각시 인줄도 모르고 무림맹주의 자리에 만족하는 우금에게 접근해 모든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면서 만독곡의 절독으로 흑월도존의 처리를 맡겼고 성공적으로 결과가 나와 걱정하지 않았었다.

“독고진이 흑월도존을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는 바였어. 흑월도존이 중독된 상태로 결국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그에 대한 처리를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데... 묵령.”

“네. 하명하십시오.”

“네가 사왕련으로 가야될 듯 해. 환영신마를 도와 약선을 죽이고 환영신마까지 확실히 처리하도록 해.”

“존명(尊命)! 지존의 명을 따릅니다.”

묵령이 보통 때라면 사마령의 곁을 떠나는 명령을 듣지 않았겠지만 대사가 코앞인 상황에 변수가 너무 큰일이었기에 사마령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존이 네가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활불의 명이었다고 해. 나는 네가 떠난 후 바로 복귀 할 생각이니 내 걱정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떠나도록 해.”

사마령의 명이 떨어지자 묵령의 신형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더니 사라졌고 그가 사라지자 사마령은 또 하나의 서찰을 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후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사마령이 펴본 서찰에는 비밀리에 붙여두었던 도후를 미행하던 자가 도후를 놓쳤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사마령은 환영신마가 도후를 놓아줄 것을 예상하고 다수의 절정고수들을 이용해 도후를 제압한 후 그녀를 이용해 정사대전의 도화선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도후가 약해진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되어 있었고 그녀가 준비해 둔 절정고수들이라면 환영신마와 대결 후 지쳤을 그녀를 제압하기엔 충분한 수와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놓쳤고 이용할 패가 줄어든 것이었다. 원래라면 그녀를 제압하고 죽인 후 화풍곡에 던져줄 생각이었다.

환영신마의 짓이라는 흔적도 남겨두고 화풍곡이 사왕련과 부딪쳐서 정사회담 자체를 결렬시키고 더 빠르게 정사의 격돌을 유도할 생각이었는데 도후를 놓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것이었다.

“그래도 약선이 사왕련에서 죽는다면 도후를 이용하려했던 것만큼 파급력이 있겠지. 더 이상 변수가 나와서는 안 돼...”

사마령은 두 장의 서찰을 길게 접어 방을 밝히던 큰 초를 향해 밀어 넣었다.

화륵-

서찰이 초의 불꽃에 타올랐고 서서히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군랑이 무림에 돌아오는데 방해가 될 것은 내가 치워야 해. 우리의 복수를...위해...”

사마령은 스스로 다짐하듯 힘을 주어 말했다.

“군랑에게 돌아가야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구나.”

사마령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다시 무림에 나올 때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가 되겠구나. 우리의 비원(悲願)을 이루는 날이 멀지 않았다.”

사마령은 자신들의 가문을 멸문시킨 무림에 복수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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