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호위를 얻다(2)
“이것은 묵룡환(墨龍環)인데? 이것을 그 사람이 주었다고?”
“네... 저에게 저의 재주로 소문주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몸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묵환을 주셨습니다. 광기자(狂技子)에게 받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기하윤은 갑작스런 약선의 반응에 놀라 모든 것을 말하였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 약선이 그녀의 팔을 놔주었다.
“약선 어르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약선 어르신의 동생인 광기자의 물건이라며 저 아이에게 직접 채워주셨습니다.”
천통자는 약선의 반응으로 보아 묵룡환이 검성에게 있었다는 것을 약선이 몰랐던 듯 하여 자신이 나서서 말해주었다.
“영이가 이것을 그 사람에게 주었었구나... 미안하다. 그 묵환은 동생이 만든 것인데 이렇게 보니 나도 놀라서 손이 먼저 나갔구나.”
약선은 자신의 행동에 놀란 기하윤을 토닥여주고는 이윤후의 곁으로 물러섰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하윤도 광기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았기에 약선의 행동을 이해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윤후만 상황에 대한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광기자는 신장(神匠) 이후 최고의 장인이었던 서문세가의 서문영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윤후가 궁금해도 약선의 반응을 보고 묻지 못하고 있자 천통자가 먼저 말을 꺼내었고 약선의 눈치를 살짝 살폈는데 따로 반응을 안보이자 더 이야기해도 되는 것이라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광기자는 약선의 동생이셨는데 서문세가의 인물답게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데 특별한 재능을 보였는데 무기를 만드는 재주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었죠. 저기 기하윤이 차고 있는 묵룡환도 그 중 하나이고 광기자는 저런 암기를 만드는데 특히 대단했는데 사천당가에서 조차 광기자의 기물을 가지기 위해 수만금을 가져와 의뢰할 정도였으니까요.”
“대단하군요.”
“대단하죠. 나름 당가에서도 암기를 만들고 다루는데 특출한 사람들인데 자존심을 굽히고 광기자에게 암기를 의뢰할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광기자의 재능을 마교에서도 탐을 냈다는 겁니다. 마교에서 광기자가 당가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납치를 시도했고 그 후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듣고 있던 약선은 그때의 생각이 났는지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당시 광기자의 납치사건으로 인해 서문세가는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마교를 추적했는데 사천에서 납치된 만큼 마교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길었기에 온 무림이 추적자가 되어 그들을 쫓았었다.
하지만 번번이 마교는 추적자를 따돌리고 도망을 갔고 약선이 동생을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나는 괜찮으니 계속 이야기를 나누거라. 그냥 오랜만에 동생의 물건을 보았더니 조금 흥분하게 된 듯 하구나.”
약선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곤 한쪽 의자로 가 앉았다. 다들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어 조금은 불편했기에 모두가 편하게 대화하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윤은 무공에 재주가 없다고 했는데 내 호위로 온 건가요?”
“제가 무공의 재주는 없지만 다른 재주가 있어 아버지께서 검성님께 추천했고 검성께서 소문주에게 보내셨습니다. 저는 남만의 진하족의 후손입니다.”
기하윤의 말하는 진하족을 잘 몰랐던 이윤후는 천통자를 보았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남만 진하족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는 소수민족인데 그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괜찮았으나 우연히 남만을 지나던 상인이 그들의 능력을 듣고는 당시 황제에게 고했고 황제는 진하족의 여인들을 곁에 두었습니다. 그들의 재주는 황제에게 필요한 재주었거든요.”
“그 재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위험을 감지하고 미래를 보는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죠. 황제라면 탐낼 만한 재주지요.”
“그렇군요. 그럼 하윤도?”
“네. 저는 어머니가 진하족의 생존자라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생존자라고요?”
이윤후는 기하윤의 말이 이상함을 느꼈고 그의 궁금점은 천통자가 풀어주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과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타고나는 종족이라고 모두가 그 능력을 타고나진 않지만 특별히 그 능력을 타고 나는 아이들이 많았고 황제는 그런 아이들을 곁에 두었지만 능력에 대한 욕심과 혹시나 다른 이도 이 능력을 활용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진하족을 몰살하라는 명을 내렸죠.”
“그런...”
참혹했던 진하족의 역사를 듣자 이윤후의 인상이 찌푸려졌고 오히려 기하윤은 담담하게 듣고 있었다.
“저희 할머니께서도 능력을 타고 태어나셔서 황제가 군대를 보냈다는 것을 마을에 알렸는데 마을의 사람들은 할머니와 몇 명의 아이들만 피난시키고 황제가 보낸 군대에 모두 죽었습니다.”
“아니... 왜? 위험을 알았다면 다 같이 도망을 갔어야... 아... 그렇군요.”
이윤후는 기하윤의 말에 답답함을 느끼고 말했으나 이내 자신도 그 이유를 깨달았다.
“도망을 갔다면 황제가 모두 몰살시킬 때까지 쫓아왔겠군요...”
“맞습니다. 진하족은 후세를 살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하였고 그들의 희생으로 그들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천통자도 진하족에 대해 궁금했기에 같이 오는 길에 기하윤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미리 들었던 것을 이렇게 아는 척 이야기할 수 있었다.
“소문주께서 가슴 아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기하윤의 담담함이 이윤후는 더욱 가슴 아팠지만 내색치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천통자가 참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확실히 단명(短命)의 상이 옅어지긴 했네요.”
천통자는 갑자기 생각난 듯 이윤후에게 다가와 뚫어져라 보곤 말했다.
“정말 윤후에게 단명의 상이 보이긴 하는 것이냐?”
“네. 처음 봤을 때는 제대로 보지 않았음에도 느껴질 만큼 단명의 상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많이 옅어졌네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조심할 필요는 있을 듯 합니다.”
“윤후가 혹시나 변고를 당하면 그 사람이 너를 가만히 두진 않을 듯 하구나.”
약선의 말에 천통자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을 흘렀다.
“아니 제가 뭘 했다고 그저 단명의 상이 보여서 이야기했을 뿐인데... 단명의 상이란 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변하기도 하고... 이소협.”
천통자는 갑자기 이윤후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오래 사셔야합니다. 이소협이 장수(長壽)해야 저도 명대로 살 수 있습니다.”
“하하~ 전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천통자 때문이라도 오래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고~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제가 잡기를 괜히 배우는 게 아닙니다. 혹여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도망부터 가세요. 제발~”
천통자는 약선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정말 이윤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부터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갑자기 체감되었다.
일전에 객잔에서 이윤후에게 단명의 상이 보인다고 처음 이야기해 줬을 때도 자신을 죽일 만큼 노려보았던 검성을 기억하고 있었고 검성이 지금 이윤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천통자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 소협이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검성은 나를 어떻게 할 정도로 끝이 나지 않을 거야. 전 무림을...’
천통자는 이윤후가 죽게 되었을 때 검성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저 두 사람을 어딜 가든 꼭 데리고 다니십시오. 너희도 절대 이 소협 곁을 떠나지 말고.”
철대호와 기하윤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천통자의 말에 대답할 이유는 없었기에 가볍게 미소로 대신했다.
“흠... 그런데 약선님은 언제 사왕련으로 가실 예정이신지요? 오는 길에 보니 사왕련의 련주와 사천왕 모두가 정사회담을 위해 정주로 가는 행렬을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어제 사왕련에서 연락이 왔었다. 너희의 도착일을 정확히 몰라서 조금 기다렸는데 오늘 도착한다고 연락받아서 삼일 뒤에 가겠다고 답신을 해놓았다.”
“그렇군요. 이제 정사의 명운이 걸린 일이 드디어...”
천통자는 약선의 답변에 이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사왕련이 정사회담을 거부하지 못한 이유는 약선의 흑월도존에 대한 치료를 거부할 입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 사왕련의 주축 중 미후왕 만이 흑월도존에 강한 충성심을 가진 자이고 나머진 련주인 독고진과 같은 정파에 원한을 가진 정사회담에 불만인 자들이었다.
“약선이 사왕련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천통자의 말에 다들 침묵을 지켰고 천통자가 그런 질문을 한 이유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약선을 바라보았다.
사왕련은 현재 전력으로 정파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런 연유로 이번 정사회담에서 웬만해선 정파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사파는 싸움과 이전의 역사에 대한 복수를 원할 테고 정파는 적당한 선에서 양보와 피를 보지 않길 원할게 분명했다.
정파가 내어줄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고 사파는 작은 것을 받고 물러서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정사회담은 결렬될 것이 분명했다.
“사왕련이 흑월도존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나를 위협할 것이라 보는 것이냐?”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약선의 차분한 음성에 천통자는 움찔 했으나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흑월도존에 대한 치료는 정사회담 성사의 조건일 뿐이었다. 정사회담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이 받을 보상 같은 것인데 그걸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약선께서는 사파를 너무 모르십니다.”
“내가 사파를 모른다고?”
“네, 정확히는 현재 사왕련의 상황을 보았을 때 사왕련의 주축은 이전 흑월도존의 반대파들입니다. 평화를 원치 않는 자들이란 소리죠. 그런 자들이 흑월도존이 깨어나길 원할까요?”
“아니겠구나.”
“네. 절대 그들은 약선이 흑월도존을 온전히 치료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넌 우리가 사왕련에 들어갔을 때 방해가 있을 것이라 보는 것이구나?”
천통자는 자신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묻는 약선의 반응을 보아 약선도 이미 예상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이미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천통자의 물음에 약선은 대답치 않고 웃어 보였다.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약선이시죠. 오절의 일인이시고...”
“그래. 사왕련에선 분명히 흑월도존이 온전히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보는 것이냐?”
“음... 사왕(四王)은 독고진과 동행하여 정주의 화경부로 출발했고 사왕련에 약선을 위협할 자는 환노라고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환영신마가 있겠네요. 아무래도 적진이고 저희는 소수로 가야하는 만큼 준비를 제대로 하고 가는 것이...”
“윤후가 있고 너도 있는데 더 준비가 필요할까? 그리고 진하족의 아이도 있으니 괜찮을 거 같은데?”
“그거야...”
약선이 천통자를 인정해주는 듯 말해주자 살짝 기분이 좋아진 천통자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저희만으로 가는 것은 위험 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일행을 추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네가 이미 생각한 사람이 있는 듯 하구나. 시간 끌지 말고 말해보아라.”
천통자는 이미 약선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있음을 알고는 더는 시간 끌지 않고 말했다.
“비천의 은위대(隱衛隊)에서 다섯 정도를 짐꾼과 일행으로 위장시켜 데려가시면 어떨까요? 저희 인원이 현재 다섯이니 다섯 더 추가해도 열이니 사왕련도 크게 신경 쓰진 않을 겁니다.”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이윤후를 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전 천통자의 말대로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정말 위험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면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윤후의 말에 약선이 고개를 끄덕였고 허락이 떨어지자 천통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