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47화 (147/251)

147화― 호위를 얻다(1)

이윤후의 거처.

이윤후는 약선과 함께 돌아온 후 바로 운공에 들어갔고 약선은 그의 곁에서 호법을 서주며 이윤후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윤후가 운공을 시작하자 그의 검 상월(霜月)은 서릿발 같은 한기를 뿜어내며 방 가득 차가운 연무를 뿌렸다.

“자주 봤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구나.”

약선은 이윤후가 수련동에서 지낼 때 수시로 그의 몸 상태를 보기 위해 들렀었고, 이윤후 또한 복용하던 내단을 녹여내기 위해서 운기는 약선이 방문했을 때 주로 했었다.

“한층 성장했구나.”

이윤후는 단전에 축적한 기운을 회음혈을 거쳐 백회혈로 흘려보냈다. 그 기운은 임맥을 타고 다시 단전으로 이르며 소주천을 향하고 있었다. 현재 그의 몸 상태나 성취는 이미 약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수련동에서의 이윤후와는 크게 달랐다.

소주천을 마친 이윤후가 숨을 들이마시자 방 안 가득 차 있던 차가운 연무가 그의 호흡과 함께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상월은 빛을 잃으며 잠잠해져 갔다.

상월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이윤후는 눈을 떴고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상월이 기물(奇物)이긴 하구나 신장(神匠)이란 자는 어떤 자였기에 이런 물건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하구나.”

약선은 이윤후의 성장에 상월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단약이 이윤후가 비뢰검결을 펼치기에 부족한 내공을 보충해주긴 했지만 아무리 영약을 먹는다고 한들 그 기운을 온전히 녹여내기는 힘들었다.

이윤후처럼 무공의 경력이 짧을수록 더욱 영약의 효과를 온전히 보기 힘든데 이윤후는 영약의 효과를 거의 온전하게 녹여내고 내공으로 쌓아내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약선은 상월의 효과라 보고 있었다.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보거라.”

이윤후는 일어서려다가 약선의 말에 다시 앉았고 약선은 그의 뒤로 가 앉았다. 약선은 이윤후의 상체를 이끌어 바닥에 눕혔고 손목의 진맥을 시작으로 온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몸을 살피던 약선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보이자 이윤후는 조심스레 물었다.

“문제가 있을게 있느냐? 네 사부의 무공이 대단하긴 하구나. 몸의 불순물들이 전혀 없어. 이미 임맥과 독맥이 타통되어 기의 흐름이 원활하하구나. 이게, 네 나이에 가능한 성취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구나.”

약선은 이윤후를 일으켜주며 말했다.

“만상오행공의 대단함은 저도 매번 느끼고 있어요. 사부님께서 어떻게 이런 무공을 창안하셨는지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네 사부도 네 자랑만 하던데 넌 사부 자랑을 하는구나.”

“하하... 사부님은 저한테는 인색하신데 다른 사람에겐 제 칭찬을 하시나 봐요. 가끔 칭찬을 하시기는 한데 대부분 엄격하시고 조심할 점 만 이야기해주시는데...”

“그게 널 아끼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널 걱정하니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거지. 안 그래도 천통자가 네 관상을 보고 한 이야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사람인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짝-

약선은 이윤후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 검성의 관심을 전혀 못 받아봤던 그녀인데 이윤후가 투정을 하자 조금은 울컥한 것이었다.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이윤후는 몸을 일으키곤 창문을 열어 방 안을 환기시키며 말했다.

“그 사람 걱정이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오십여 년 전에 이미 상대가 없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더 상대가 없으니 말이다. 환영신마 그자라면 그 사람의 상대가 될 만할지도 모르겠네.”

“환영신마 그 사람도 사패의 소속으로 명령을 받는 자라고 예상하시던데 어떤 곳이 그런 자를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 걸까요?”

이윤후도 검성과 환영신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궁금해졌다.

“만독곡 같은 폐쇄적인 곳은 아닐 테고 불마사이지 않을까 싶구나. 천통자도 그렇게 의심하는 듯 하고 말이야. 활불이 나타났단 소문과 함께 그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도 하고...”

“네 사부가 혹시 환영신마에게 질 것 같아 그러느냐?”

“아니요. 그럴 리가요.”

이윤후가 펄쩍뛰며 부인하자 귀여운 듯 약선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환영신마는 그 사람의 상대가 되지 못 할거야. 그 사람과 가영... 아니 도후가 같이 상대했던 것도 두 사람의 무공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고 현재 그 사람의 무공은 그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네 사부는 흑월도존과 겨루고 싶은 모양이더구나.”

“사부님의 뜻이 궁금하긴 하네요.”

이윤후는 이미 약선에게서 들었던 내용이라 놀라진 않았지만 검성의 진의가 궁금하긴 했다.

“나도 흑월도존의 실력이 궁금하긴 하구나. 그가 활동할 시점엔 난 네 사부를 찾고 다니느라 무림의 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긴 했지만 소문은 늘 들어왔거든.”

“어르신은 흑월도존이 사부님과 상대가 되시리라 보시는 건가요?”

이윤후의 물음에 약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무림과 동 떨어져 살아오긴 했지만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라 그에 대한 소문과 실력은 가늠하고 있었다. 나 역시 사파가 힘을 합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고 불가능 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흑월도존은 그것을 해냈지.”

“......”

“사파에 무공이 뛰어난 절대자들은 무림의 역사 속에 많았다.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고 모두의 신뢰를 받는 절대자는 사파의 역사 속에 처음이었어. 물론 정파들이 우리 오절의 명성을 등에 업고 심한 짓을 한 탓에 사파들이 더 쉽게 뭉칠 수 있긴 했어도 흑월도존의 사파일통은 격이 다른 문제이긴 했었다.”

“유소저가 들었다면 정말 좋아했겠어요.”

이윤후는 갑자기 안명이 유인경의 정체를 모르고 흑월도존에 대한 높은 평가를 할 때 흐뭇해하던 유인경의 생각이 불현 듯 났다. 그녀가 옆에 있었다면 약선의 이런 말에 엄청 뿌듯해하며 좋아했을 거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했다.

“이야기를 이어하자면 마교의 준동마저 흑월도존이 막아낸 셈이라 그에 대한 평가가 높을 수밖에 없구나. 마교는 우리도 힘겹게 상대했고 당시 최고의 검수라 평가받던 마교의 혈천마검(血天魔劍)을 그 사람이 이기면서 마교가 물러났지만 그 사람도 그 대결에서 엄청난 희생을 했었거든 그러니 사파를 일통하고 마교마저 막아낸 흑월도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약선의 이야기에 이윤후는 자신도 모르게 설득 당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네 사부는 이미 무공의 최고 경지에 오르고 선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고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지. 하지만 고독할거야. 그래서 흑월도존이 자신의 상대가 되는 자였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을 거다.”

“그렇군요. 제가 사부님 생각을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이윤후는 약선의 이야기에 자책하며 말했다. 이제 무림에 첫 발을 내딛은 이윤후로서는 강자의 고독을 잘 알지 못했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윤후의 반응에 약선이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너무 걱정 말거라. 그는 강한 사람이야. 그런 고독함 따위에 질 사람이 아니지. 그리고 그는 너를 가르치고 네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배웠어. 전혀 고독하지 않을 거야.”

“......”

“네가 그 사람이 기뻐할 수 있게 이번 일에 성과를 보여주렴. 이미 네가 별호를 얻고 활약하고 있음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걸.”

약선의 말에 조금은 안심한 이윤후는 그녀의 품을 벗어나 웃었다.

“누가 오고 있는 듯 하구나.”

약선은 누군가 다가옴을 느끼곤 말했고 이윤후도 기척을 느꼈기에 놀라진 않았다.

“창연과 천통자 같아요. 그 외에 두 명의 기척이 더 느껴지는걸 봐선 이야기하셨던 사부님이 보내주신다던 사람들 같네요.”

이윤후의 말에 약선은 놀란 표정을 보였다. 자신도 기척은 느꼈지만 누구인지 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윤후가 모두를 파악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소협 계십니까? 손님들이 찾아와서 늦은 시각이지만 데려왔습니다.”

이들 일행은 창연이 지금은 다소 늦은 시각이라 빈객들이 묵는 숙소에 묵고 아침에 이윤후에게 안내해준다고 말했으나 천통자가 계속 지금 만나겠다고 우겨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이었다.

창연은 방 안의 대답이 늦어지자 잠이 든 것인가 했는데 천통자가 이를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덜컹-

“어?”

문을 열던 천통자는 자신이 힘주기 전에 열리는 문에 놀라 손을 떼었고 열린 문 앞에는 이윤후가 있었다.

“이소협 내가 이소협 보고 싶어서 먼 길을 쉬지 않고 왔습니다. 하하~”

천통자의 요란스러운 등장에 이윤후와 약선이 미소를 지었고 창연은 황당한 듯 천통자를 노려보았으나 이윤후가 괘념치 않아하자 다행이라 생각했다.

“창연. 제가 기다렸던 손님들이니 괜찮습니다. 늦은 시각인데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창연은 예를 차리고는 물러났고 천통자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떠들자 약선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좀 조용하여라. 너희도 방 안으로 들어오고.”

약선의 말에 천통자는 기죽지 않고 기하윤과 철대호에게 들어오라 손짓하고는 자신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사부님에게 이쪽으로 올 거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천통자가 들어오라고 손짓했음에도 자신들의 주군이 될 이윤후의 명이 있기 전에 움직이지 않던 두 사람은 이윤후가 다가가 안으로 이끌자 그제야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대호라고 합니다. 외공을 익혔고 검성께 소문주를 호위하라고 명을 받았습니다.”

철대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윤후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어 기하윤도 무릎을 꿇었다.

“기하윤입니다. 마찬가지로 검성께 소문주를 위협에서 지키라고 명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일단 일어나세요.”

두 사람의 과한 예의에 부담스러웠던 이윤후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소문주라는 칭호도 조금은 듣기 어색했었다.

“말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소문주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철대호의 대답에 이윤후는 곤란한 듯 약선을 보았다. 자신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철대호와 기하윤에게 하대하기가 이윤후는 어려웠다.

“이 소협도 이제 한 문파의 소문주의 위치에 있는 만큼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윤후야. 그 사람이 너를 위해 세력을 만든 만큼 천통자의 말처럼 위치에 맞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천통자의 말에 약선이 찬동하자 이윤후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습니다. 철대호와 기하윤이라고 했나?”

“말씀하십시오.”

“네.”

이윤후의 대답에 우렁찬 철대호의 대답과 다소곳한 기하윤의 대답이 나왔고 그들은 이윤후를 바라보며 그의 명을 기다렸다.

“대호라고 부를게. 넌 이미 사부님에게 오행상생의 기(技)를 받았구나?”

“네. 문주님께서 제 기운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윤후는 한눈에 철대호의 몸과 상태를 보고 오행상생으로 인해 변화한 기운을 알아보고 물었다.

“너는 받지 않은 거 같은데? 왜지?”

이윤후는 기하윤에게서 오행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물었다.

“저는 따로 경공과 기본적인 권장법 밖에 배우지 않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이것을 주셨습니다.”

기하윤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묵환을 내보였고 그것을 본 약선이 놀라 그녀의 손을 낚아채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