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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45화 (145/251)

145화― 차력(借力)(1)

남궁세가의 연무장(演武場).

해가 중천에 뜬 오후. 제법 더운 날씨라 무사들에게 휴식을 준 하루였지만 연무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정확히는 연무장 중앙이 아닌 구경을 하기위해 외곽에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윤후와 담석영의 비무가 있을 거란 소식에 다들 이렇게 모여든 것이었고 소문이 남궁세가 밖으로도 퍼져 많은 이들이 남궁세가에 방문요청을 했지만 남궁나연은 몇 명의 손님 외엔 다 거절하였다.

담석영은 이윤후에게 줄기차게 비무 요청을 해왔는데 그걸 이윤후는 단호하게 거절해왔었다. 담석영은 남궁나연이 이윤후에게 계속 관심을 보이자 결국 참지 못하고 이윤후에게 간곡하게 부탁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약선의 중재로 비무 자리가 마련되었다.

“오~ 저분이 약선 어르신인가? 세가에 방문하셨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처음 보는군.”

“아가씨 옆에 저 거한(巨漢)은 하북팽가의 팽기찬 대협이라더군. 우리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팽가에서 보내준 무사들과 어제 도착하신 분이야.”

마련된 좌대에 남궁나연과 약선이 앉아있었고 하북팽가의 팽기찬이 있었다. 그리고 팽기찬 옆에 또 한명의 중년인이 있었다.

“담 대협. 대결이 어떻게 될 듯 하십니까?”

팽기찬은 자신의 옆에 앉은 중년인을 잘 아는 듯 물었다. 담대협이라 불린 이는 담석영의 숙부인 담영성이었다.

“영이는 담가의 절기를 이미 스물 이전에 모두 익힌 아이입니다. 그 성취 또한 대단하고요. 비슷한 나이 대에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뇌절검룡이 상대라면 모르겠군요.”

담영성은 사실 이 비무를 말렸었다. 담가의 차기 후계자인 담석영이 혹시라도 이 비무에서 패배를 한다면 담가의 평가가 좋지 않게 내려질 것을 염려했다.

소문을 모두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윤후가 사왕련의 사왕 중 일인인 미후왕과 호각으로 겨루었다는 것이 사실이면 자신의 조카가 상대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저도 이곳으로 오는 중에 검성의 제자가 미후왕과 겨루어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남궁소저.”

팽기찬은 이번에는 남궁나연에게 물었다.

“네, 사실이랍니다. 미후왕의 수하들이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데려간 것도 이소협이 구해오셨고 그 후 찾아온 미후왕과 겨루고 물러나게 한 것도 이소협이었요.”

남궁나연은 마치 자신의 정인을 자랑하듯 신나서 이야기했고 그 모습에 담영성의 표정은 굳었고 팽기찬은 흥미롭다는 듯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이거 기대되는군요. 제가 하루만 늦게 도착했어도 후회했겠어요.”

팽기찬은 남궁나연이 한참 어렸지만 남궁세가주의 대리를 맡고 있는 만큼 대우를 해주고 있었고 그런 팽기찬이 남궁나연은 고마웠다.

담영성만 봐도 자신에게 예를 차리기 싫었는지 인사를 건넨 후 단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뇌절검룡(雷切劍龍) 등장!”

이윤후가 연마장에 나타나자 남궁세가의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고 모두 다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이윤후가 오기 전 남궁세가는 사왕련에 워낙 고생한터라 다들 이윤후를 크게 반겼다.

그리고 이윤후의 무위를 직접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 많았다.

이윤후에 이어 담석영도 연무장에 나타나자 환호성은 고조되었고 두 사람의 비무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함성에 시끌시끌해졌다.

“이거 너무 요란스러운 자리가 되었네요.”

이윤후는 다소 난처한 듯 담석영에게 말했다.

“남궁 소저에게 제가 부탁한 겁니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요.”

원래는 남궁세가의 직계들이 쓰는 연무장에서 조용히 치르려고 했지만 담석영이 많은 이들 앞에서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남궁나연도 그래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쓰는 이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연무장에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창룡대주 남궁염이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비무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전 준비 되었습니다.”

“저도.”

남궁염의 물음에 두 사람은 답했고 그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 본 후 소리쳤다.

“검성의 제자 이윤후와 담가의 소가주인 담석영의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둥둥둥-

남궁염의 외침이 끝나자 어디선가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던 좌중이 조용해졌고 두 사람은 서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이 소협이 어떤 류의 검법을 사용하는지 궁금하군요.”

팽기찬은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움직이지 않자 남궁나연에게 묻듯이 말을 건넸다.

“저도 이 소협이 검을 쓰는 걸 본건 두 번 밖에 없어서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제가 들은 바론 예전 검성께서는 자신의 검을 완성하신 후 대결에서 검성님의 검을 십초 넘게 받아낸 상대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런 검성의 완성된 검을 이 소협이 배웠다면 이 비무도 길게 가진 않겠군요.”

팽기찬은 그렇게 말한 후 담영성의 눈치를 보았고 담영성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것을 보고 슬며시 입을 닫았다.

스슥-

침묵을 깨고 먼저 움직인 이는 담석영이었다. 바닥을 박차고 단숨에 거리를 좁힌 담석영은 일검에 가슴을 베어갔다.

촤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고 이윤후는 물러나지 않고 검을 뽑아 담석영의 검을 막은 채 검을 부딪쳐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이 오고갔고 담석영이 주로 공세(攻勢)를 이윤후는 담석영을 받아내며 검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검을 쉽게 흘려내고 있는 이윤후의 모습에 살짝 화가 난 담석영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촤자작-

“팔방풍우(八方風雨)!”

담석영의 검이 마치 갈라지듯 전 방위로 펼쳐진 검기가 이윤후의 전신을 압박해왔다.

휘릭-

이윤후는 당황하지 않고 검을 한차례 허공을 향해 그었다.

그 순간.

파바밧-

콰과과광-

이윤후의 검이 빛이 나며 검기가 폭사되었고 사방을 포위해오던 담석영의 검기와 부딪치며 굉음이 일었다.

비뢰검결의 유일한 방어초식인 비뢰광망(飛雷光網)을 펼친 것이었고 전 방위를 방어하는 비뢰광망이었기에 쾌와 변에 힘이 실린 담석영의 검을 쉽게 파훼시켰다.

“이럴 수가...”

자신있게 펼쳤던 팔방풍우가 막히자 담석영은 허탈한 표정을 보였다. 자신의 전력을 다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윤후가 펼친 비뢰광망의 초식을 뚫을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허탈한 웃음이 난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격차가 나는 것인가?’

담석영은 이윤후가 미후왕을 상대한 것은 어느 정도 부풀려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대는 영웅을 원한다고 위기였던 남궁세가에서 부풀려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고 미후왕도 검성의 제자인 이윤후를 상대함이 부담스러워 물러났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이윤후의 소문을 의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심이었다.

약관을 조금 넘은 이윤후가 사파의 최강자 중 한 명인 미후왕과 겨루어 호각을 이루어 물러나게 했다면 누가 그걸 있는 대로 믿겠는 가 그만큼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검을 겨루어 본 담석영은 이윤후의 강함을 알 수가 있었다.

‘이 소협의 일초라도 내가 받아낼 수가 있을까?’

담석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졌다. 담가에서 그는 최고의 기대를 받고 자랐고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지원받았다.

그런 그가 이윤후의 일초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패한다면 자신의 평가는 물론 담가에 대한 평가도 바뀔게 분명했다.

“후웁~”

담석영은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고 마음을 새로 다잡으며 이윤후를 보았다.

“이 소협이 저를 봐주고 있음을 잘 압니다.”

담석영의 말에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놀랐다. 얼핏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 호각으로 잘 겨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담석영의 말처럼 이윤후가 담석영의 공세를 일방적으로 쉽게 흘려내며 상대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담석영의 말에 특히 담영성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팽기찬이 놀라 그의 눈치를 보았다. 덩치 큰 팽기찬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약선은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연무장 아래를 보았다.

“이 소협과 검을 맞대보고 알았습니다. 저는 상대가 되지 않음을... 하지만 이 소협과의 이 비무로 인해 제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

이윤후는 담석영의 갑작스러운 말에 조금 당황하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보여드릴 것이 남았으니 이 비무를 포기하진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담석영은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담영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석영이가 그 검을 완성하였는가?”

“그 검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담영성의 반응에 궁금해진 팽기찬이 물었지만 담영성은 그런 팽기찬의 대답을 뒤로한 채 서서 연무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반응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남궁나연도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담가의 검은 쾌 와 변을 중시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윤후는 무림으로 다시 나오기 전에 천통자가 주었던 무림정보가 적힌 책을 틈틈이 읽어 모든 문파의 정보를 알고 있었고 담가에 대한 것도 알았다.

“하지만 단 한 초식 중검(重劍). 위력을 중시한 검초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담석영의 말에 크게 분노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지켜보고 있던 담영성이었다.

‘이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주절주절 다 말하고 있는 것이냐?’

담영성은 자세를 보고 담석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한다면 이윤후에게 통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석영은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펼칠지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 담영성이 화가 난 것이었다.

“그것을 말 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윤후는 담석영의 태도에 조금은 의아함을 느껴 물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이검을 펼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검을 온전히 받아드리면 됩니까?”

“제가 펼친 일검을 이 소협이 막아낸다면 제가 패배한 것으로 하지요.”

“그렇게 합시다. 나도 궁금하군요. 담가의 중검이 어떠한 모습일지.”

이윤후는 담석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담석영의 검에 강대한 기운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숙하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군.’

이윤후는 담석영이 펼치려는 검이 준비가 필요하고 사실상 담석영이 저러고 있는 동안 이윤후가 공격하면 쉽게 끝이 날 비무였다.

하지만 이윤후는 검을 받아주겠노라 약속을 했고 담석영이 무엇을 펼치려는지 몰라도 비뢰광망의 초식으로 막아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윤후의 생각이 바뀌었다.

콰콰콰-

강맹한 기운이 담석영의 검에서 느껴졌고 준비를 마쳤는지 담석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풍파천(狂風破天)!”

담석영의 일검이 이윤후를 향해 펼쳐졌고 지켜보던 모두가 강맹한 기운에 놀랐을 때 이윤후는 담담하게 검을 갈무리 한 후 양손을 휘저었다.

콰콰콰-

휘몰아치며 날카롭게 날아드는 검기가 당장이라도 이윤후를 찢어발길 듯 했지만 검을 검집에 꽂은 채 양손을 휘젖는 그의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랐고 남궁나연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촤악-

이윤후를 덮쳐가던 검기가 그의 팔 휘저음 몇 번에 사라져버렸고 그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한 채 소리도 내지 못했다.

털석-

“이럴 수가... 믿을 수가...”

자신이 전력을 다해 펼친 일검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마주한 담석영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좌대에서 지켜보던 담영성 또한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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