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시작된 도발
무림은 정사회담의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정사회담과 별개로 사파의 움직임이 있었고 각 지역마다 정파의 문파들은 사파의 문파들에게 압박을 당하고 있었다.
무림맹엔 그런 정파들의 하소연이 날마다 쌓이고 있었고 무림맹은 그런 항의를 해결해줄 힘이 없었다.
정사회담으로 인해 전면적인 문파의 충돌은 서로 자제하고 있었으나 회담 자체에 불만인 사파들이 개인행동을 조금씩 하고 있었고 무림맹이 사왕련에게 직접 항의를 해도 사왕련은 세세한 부분까지 억제하긴 힘들다는 입장을 통보해오고 있었다.
이미 우금이 맹주이던 시절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던 무림맹이었고 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배척해왔기에 무림맹은 허울뿐인 이름뿐이었다.
무림맹의 핵심전력이라고 할 수 있던 사대무단 역시 우금이 개인적으로 휘둘러왔기에 우금이 사라지고난 후 모두 해체되다시피 한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다.
무림맹 맹주실.
“맹주님. 하남의 백천문과 산서의 호련장에서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늘고 있군요.”
무림맹주 남궁인은 서찰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크게 내려 쉬었다.
정사회담을 하게 된 것으로 한숨 돌리는 거 같았던 정파였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모양새일 뿐 사왕련은 휘하의 사파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파들도 회담이 발표되고 불만을 표출했지만 이전처럼 도발은 해오지 않아 한동안 잠잠해졌으나 백천문에 큰 원한이 있었던 혈천회에서 백천문의 무사 중 한 명을 불구로 만드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혈천회는 오절 시절 백천문의 허위조작으로 인해 무림맹에 멸문당했던 문파의 후인들이 만든 문파라 사왕련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부딪쳐 문제를 만든 것이었는데 문제는 사왕련이 이일에 대해 딱히 제재를 하지 않고 방관 한 것이었다.
눈치를 보던 사파들은 사왕련이 혈천회의 일에 반응하지 않자 다시금 정파들을 건들이기 시작했고 전면전으로 커질 정도가 아닌 행동을 조금씩 벌이고 있었다.
“백천문은 정말 위험한 지경입니다. 동서남북의 모든 사파들이 백천문의 이문이 되는 일은 모두 강탈하고 백천문의 무사들과 관련된 일은 모두 방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맹주님 어제 잠은 좀 주무신겁니까?”
보고를 하던 안명은 남궁인의 안색이 좋지 않자 놀라 물었다.
남궁인의 모습이 초췌하기도 했고 안색이 너무 나빠 보였다.
“괜찮습니다. 나도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하지만 걱정이 되어 도저히 잠이 쉽게 들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남궁인은 핏기 없는 입술로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안명은 그런 남궁인이 안타까웠다.
모두가 힘이 없기 때문에 추대한 남궁인이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들 알아줄 사람은 없었지만 남궁인은 묵묵하게 망가진 무림맹을 복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무림맹의 새로운 사람을 채우기 위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 문파들의 인재를 고르게 요직에 앉혔고 다행히 망가진 무림맹도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출 수가 있었다.
모두 남궁인의 공이었지만 그 누구도 남궁인을 칭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세가가 위험하니 무림맹을 등에 업고 남궁세가를 구하려 한다는 억측까지도 듣고 있었다.
“주군, 제발 몸을 챙기십시오. 현재 세가도 나연이가 잘 챙기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명은 다가가 남궁인이 보고 있던 서류들을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약선께서 남궁세가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행이군요. 안명이 큰 역할을 해주었어요. 검성과 약선이 전면에 나온 덕에 모든 것이 술술 풀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빼앗긴 서류를 다시 볼 생각을 접은 남궁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억지로 모든 업무를 해나가곤 있었지만 여력에 부쳐오던 참이었다.
“검성과 약선이 나서 준 것은 제 공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애초에 검성께서도 남궁세가의 일이 아니었다면 나서줄 거 같지도 않아보였습니다. 남궁세가의 일이라 힘을 보태주신거지요.”
안명은 어지럽던 책상위의 서류를 하나하나 분류하며 답했다.
“그래도 결국 답을 이끌어낸 것은 안명이지 않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남궁인이 재차 안명의 공을 이야기하자 안명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미련하신 분... 검성과 약선이 나서준 공로를 직접 가져가셔서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면 더 쉽게 일을 진행하실 수도 있을 텐데...’
남궁인은 의자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었고 어느새 잠이 든 듯 했다.
“이렇게 미련하게 일을 한다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몸까지 상해가면서 뭐 하려 하십니까?”
안명은 편하게 잠들지도 못하는 남궁인을 보며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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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융주
어둠이 짙게 깔리고 구름에 달이 가려 시야까지 어두운 때 몇 명의 사내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 중 한 명은 누군갈 둘러업고 있었는데 제압당해 있는 듯 보였다.
사내들은 한참을 달려 사람 인적이 닿지 않을 외곽의 강가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한 여인과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털썩-
“지존(地尊)을 뵙습니다.”
달려온 사내들은 여인 앞에 부복하였다.
여인은 불마사의 지존 사마령이었다.
그녀는 챙이 긴 모자에 검은 주렴이 쳐져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거지가 저희들을 쫓았던 거지의 우두머리로 보입니다.”
사내들은 둘러업고 왔던 거지를 사마령 앞으로 눕혔다.
그는 혈이 제압되어 정신은 온전했으나 움직이지 못한 채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나요?”
“죄송합니다. 전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수하로 보이는 거지들을 모조리 죽였음에도 저희가 묻는 것은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개방의 꽤나 높은 신분인가 보군요. 삼결인걸로 보아 이곳의 분타주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사마령은 거지가 삼결 제자임을 알아보곤 정체를 눈치 챘다.
“어차피 알아낼 것도 없으니 처리하도록 해요.”
사마령의 말이 떨어지자 거지의 눈이 한순간에 충혈되어 오르며 눈물이 흘렀다. 이미 생을 포기한 그였지만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협박하고 위협해도 죽이지 않겠다는 것을 알았던 그였기에 버티고 또 버티며 개방에서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을 기다렸는데 사마령의 차가운 한마디가 자신을 위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 죽음과 직면하고 있었다.
스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지의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사마령의 옆에 귀신같이 서있던 사내는 일을 마치고는 다시 검을 거두고는 처음처럼 사마령의 옆을 지켰다.
“이곳 융주는 불마사가 무림으로 진출할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걸 잊지 말고 일을 진행하도록 해요.”
“다시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마령의 차가운 음성에 사내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답했다.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개방이 냄새를 맡고 조사를 시작했다. 시작도 전에 일을 그르칠 뻔했기에 사마령이 자신들과 수하를 즉결처분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기회를 준 사마령을 향해 머리를 땅에 찢을 정도로 숙이고 감사를 표했다.
“그대들은 시신을 처리하고 물러나도록 해요. 개방이 아마 또 사람을 보낼 가능성이 높으니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하고요.”
“존명.”
촤악-
대장의 수신호와 함께 한 사내가 품에서 약통을 꺼내어 거지의 시신에 뿌렸고 시신은 타들어가며 금세 핏물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지존.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요. 문제가 생기면 즉시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사마령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내들은 순식간에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지존. 저들을 그냥 살려주어도 될까요?”
그들이 사라지자 침묵을 지켰던 사마령 옆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키가 칠 척에 달할 정도의 거구에 묵포를 둘러 더욱 신비스러우면서도 커 보이는 사내였다.
“나름대로 충심이 있는 자이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해주려고 해. 그리고 일이 생긴 것을 숨기지 않고 보고를 한 것만 봐도 한번은 봐주어야겠지.”
사마령은 녹아 흘러내린 거지의 흔적을 바라보곤 답했다.
“묵령(墨令). 너는 군랑... 아니 활불과 내가 어떻게 전대의 활불의 손에 이끌려 불마사에 정착한지를 잘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사마령은 묵령의 대답에 주렴을 젖히고는 그를 보았다.
“어렸던 우린 진천문이 불타던 날 탐욕스럽게 우릴 쫓던 자들을 두 눈으로 확인했어.”
사마령의 말에 묵령의 두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역시 진천문이 무너지던 날 모든 것을 잃은 자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도사복을 입은 도사. 승려복은 입은 승려. 개방의 거지. 정파와 사파 모두가 그날 밤에 한통속이었어. 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한 명의 거지 무리였어. 도망가던 우리를 끝까지 쫓아오면서 알지 못했던 봉황금시를 내놓으라고 했던 개방의 거지들...”
“......”
묵령은 사마령의 이야기에 가슴이 쓰렸다. 묵령의 가문은 대대로 진천문을 모셔왔던 가문이었으나 진천문이 일을 당했을 당시 그 자리에 없었기에 화를 피했다.
묵령의 아버지는 진천문이 멸겁을 당했지만 반드시 사마령과 사마군이 살아남았을 거라 믿고 수십 년을 사마령과 사마군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사마령이 다시 찾아온 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을 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한이었던 주군을 지키지 못한 일을 잘 알았던 묵령은 그 자리에서 사마령에게 맹세를 하고 그녀를 따라갔고 지금까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진천문을 지키며 드러나지 않았던 저희 가문을 찾아내 아버지를 괴롭혔던 자들도 개방의 거지들이었습니다.”
“개방의 거지들은 우리가 무림에 다시 나오는 날 가장 먼저 없애버릴 것들이지.”
사마령의 원한이 느껴지는 음성에 묵령도 움찔했다. 다소 감정을 억누르고 이제껏 지내왔던 사마령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거의 처음 보았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때는 무르익었어. 정파와 사파는 부딪칠 것이고 그들이 서로 상처 입을 때 우리는 조용히 움직일 거야. 우금을 더 활용 할 수 있었다면 더 쉽게 대의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지만 독고진과 도후가 무림에 소란을 일으켜 주겠지.”
“그런데 주군.”
“왜 무슨 할 말이 있어?”
묵령의 부름에 사마령이 반문했다.
“무림에 검성의 소문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는지요.”
묵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성이 나타난 시점에 이미 우리에겐 방해지. 검성이 우금을 쳐냈고 이용하려했던 권왕과 신투도 죽여 버렸어. 검성이 우리 일을 방해하려 한다면 치워버려야겠지.”
사마령도 가장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 검성이었다. 하지만 검성은 천존 환영신마에게 맡기면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크게 염려치 않고 있었다.
환영신마는 전성기 시절의 검성과 도후의 합격에도 견뎌내었던 마두였고 최근 환영신마가 도후를 처리하러 가서 그 싸움의 현황을 들었던 터라 사마령은 환영신마가 검성을 처리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후보단 검성이 강할 거라고 사마령은 생각했지만 본 실력을 보이지 않고 환영신마가 손쉽게 도후를 가지고 놀며 상대했다는 보고를 들은 터라 검성도 환영신마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큰 오판이 되어 돌아올 줄은 지금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