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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43화 (143/251)

143화― 약선의 방문(2)

덜컥-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게 온 듯합니다.”

남궁세가에 찾아온 손님이 약선임을 알고는 남궁나연은 먼저 앞서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약선을 향해 예를 취했다.

“제가 연락도 않고 찾아온 것이니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되요. 접대를 잘 해주어 차를 즐기고 있었으니.”

약선은 남궁나연이 급하게 달려왔음을 알고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궁나연이 현재 대리가주의 신분이긴 하나 약선은 이미 전대의 가주였던 남궁학보다 어른이었기에 그녀가 약선을 대하는 건 한없이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오셨군요.”

뒤이어 이윤후가 들어와 약선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고 약선도 일어나 그를 반겼다.

“준비할 것이 있어 생각보다 조금 늦었구나. 이미 별호까지 생겼던데?”

약선은 흑월도존의 치료에 필요한 약재와 필요한 것들을 서문세가를 통해 수소문 해 구했고 몇 가지는 구하는데 시일이 걸려 이윤후보다 늦게 남궁세가로 오게 되었다.

“뭔가 더 훤칠해진 듯하구나?”

약선은 이윤후의 안색을 살피고는 팔과 어깨 등을 차례로 만져보더니 말했다.

“저희 이야기는 따로 하도록 하시죠. 먼저 앉으세요.”

이윤후는 자신을 챙기는 약선이 싫지는 않았으나 주위 시선에 살짝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래. 안 그래도 남궁세가와 상의할 부분이 있으니 그것부터 이야기를 해야지.”

약선도 자신이 살짝 과했음을 느끼고는 남궁나연을 바라보았다.

“손님으로 와서는 너무 주책을 부린 것이 아닌가싶구나.”

약선은 자신이 앉아야 모두가 앉을 수 있음을 알고는 천천히 자리에 돌아가 앉았고 남궁나연이 상석을 권하려고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 사레를 쳤다.

남궁나연도 더는 권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고 이윤후도 자리에 앉았다.

“먼저 윤후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나와 윤후는 사왕련으로 갈 것이다.”

“네. 검성과 약선님이 이번 일에 나서주셔서 저희 남궁가가 큰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크게 기뻐하셨고 꼭 나중에 은혜를 갚겠다고 하셨습니다.”

남궁나연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약선은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궁세가로서는 이번이 큰 위기였고 남궁세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적이기까지 했지만 이윤후가 나타나고 뒤이어 들려온 정사회담의 소식에 크게 기뻐하였다.

그렇기에 남궁나연은 약선에게 감사표시를 하였다.

“사실 난 남궁세가의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단다. 나는 검성이 이일에 나서는 것을 말렸었다.”

“네? 그럼... 왜?”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남궁세가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검성이 또 무림의 일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남궁학, 그와의 인연이 깊어 남궁세가의 일에 나서게 되었고 나도 검성과 윤후를 위해 마음을 먹은 거라 남궁세가의 감사를 받기엔 내가 부끄럽구나.”

약선의 말에 남궁나연은 이윤후를 보았고 그는 조금 민망한 듯 남궁나연의 눈길을 피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약선께서도 저희를 위해 나서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저희의 은인이시죠. 검성님도 꼭 한번 뵈었으면 좋겠네요. 아버지께서는 이미 만난 적이 있으시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임진후로 알려진 검성의 제자가 검성 본인이고 환골탈태하여 젊었을 때의 육체를 찾은 것이 알려져서 남궁인도 의천검을 찾으러 왔던 임진후가 검성임을 알고 있었다.

남궁인은 서안의 무림맹에서 남궁세가로 오진 못하고 있었지만 남궁나연과 계속 서찰을 주고 받으며 주요 소식을 남궁나연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도 정사회담과 별개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면전을 대비하여 각 문파의 정예들을 남궁세가로 차출하기로 결정을 내었다고 하더구나.”

“네. 저도 어제 늦게 무림맹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방관하고 있던 문파들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고 아버지도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검성과 내가 이일의 전면에 나선이상 그들도 남궁세가를 방패삼아 뒤에만 있기엔 뒤가 구렸던 탓이겠지.”

“......”

약선의 말에 할 말이 많았던 남궁나연이었지만 말을 아꼈다. 남궁나연도 무림맹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회의를 잘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서찰을 매번 받아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었던 안명은 무림맹에도 첩자들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더구나. 검성과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야.”

“역시. 그랬군요.”

남궁나연은 세가연합회가 무림맹의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은 해왔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세력이 관련돼 있음에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일단 남궁세가에 머물면서 사왕련과 연락을 한 후 가게 될 날짜를 잡으려하는데 며칠 신세를 져야할 거 같구나.”

“계시는 동안 불편한 점 없도록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따로 도와야 할 일은 언제든지 말씀 해주세요.”

이윤후는 남궁나연의 의욕 넘치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났는지 그녀를 보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곧 그녀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는 슬며시 미소를 거두었다.

“흠... 어르신. 벌써 사왕련에 연락을 하신 것은 아니지요?”

“이제 연락을 해서 방문 일을 조율 해봐야겠지. 그 사람이 나에게 꼭 당부하더구나.”

“사부님께서 무엇을요?”

“흑월도존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말이야.”

“아... 무슨 의미인지 알거 같네요.”

이윤후는 약선의 말을 듣자마자 검성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소릴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이윤후가 처음 흑월도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림에 대해 잘 몰랐을 때라 그가 어떠한 존재이고 얼마나 강한 무림인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흑월도존이 누구도 가능하지 못했던 사파의 세력을 규합하고 사파의 지존으로 무림일통(武林一統)에 가장 가까웠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한 마디로 그는 존재 자체로 그의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흑월도존을 검성은 그의 강함에 관심을 가지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일거라 이윤후는 생각했다.

“그 사람은 젊었을 적에도 강자들을 찾아다니며 검을 겨루고 자신의 무예를 증명하고 또 증명해왔었다. 다시 젊어지니 그런 마음이 살아나는 거겠지. 현 무림에 그 사람의 상대가 없기도 하고 말이야.”

강자존의 무림에서 호적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것임은 직접 느끼지 않아도 알았기에 약선의 말을 들은 이윤후와 남궁나연의 마음까지도 숙연해졌다.

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무림제일의 자리에 올랐지만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유소저는 사부님과 함께 화경부로 가기로 한건가요?”

잠시 침묵을 지켰던 이윤후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질문을 바꾸었다.

“그래. 안 그래도 경이가 너에게 전해달라고 한 것이 있었는데 내가 깜박했구나.”

약선은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어 이윤후에게 건네었다.

“경이가 네 걱정이 많더구나. 남궁세가에 가자마자 싸움에 휘말렸다는 소식에 놀라기도 했고 말이야.”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얼굴을 붉히며 서찰을 받아 품에 갈무리했다.

“경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게다. 네 사부란 사람과 있는데 누가 그 아이를 위협할 수 있겠느냐.”

약선은 서로를 걱정하는 두 사람이 예뻐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한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나연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약선이 말하는 경이가 이윤후와 같이 예전에 보았던 흑월도존의 손녀인 유인경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안명이 이윤후와 유인경의 내력을 알려주었고 두 사람의 관계가 특이해 그녀는 신기해했었다. 정사의 극단을 달리는 지존의 후인들이 동행하였고 그것을 자신이 만났던 것이 말이다.

이윤후에게 조금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남궁나연인지라 유인경과 서찰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가 아직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선은 그런 남궁나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윤후와 인경이가 서로 각별해보이던데... 남궁가의 여식까지 윤후에게 마음이 있는 건가? 윤후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아 보이는데...’

한사람을 오래 짝사랑을 해왔던 약선인지라 남의 호감도 쉽게 알아채었고 남궁나연의 마음이 더 큰 것을 눈치 채고는 안타까운 듯 그녀를 바라 보았다.

“사부님께서 따로 말씀은 없으셨나요?”

“천통자와 몇 사람을 이곳으로 보낸다고 하였다. 천통자가 도착하면 우리와 동행하게 될 거 같구나.”

“천통자라면 무당에서 쫓겨난 자가 아닙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나연이 놀라 물었다. 두 사람이야 천통자가 비천회의 소속임을 알기에 상관없었지만 남궁세가의 명운에 걸린 일에 돌팔이 취급당하고 있는 천통자의 이름이 불리자 남궁나연이 놀라 물은 것이었다.

“네가 천통자에 대해 마땅치 않아 할 수도 있음을 안다. 세간의 평가론 그가 허풍이 심하고 잡학에 능한 괴짜로 알려져 있지만 꽤나 쓸 만한 재주도 많은 자다 그렇기에 검성이 그를 믿고 일을 맡기는 것이고 나 또한 그를 신뢰하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그런가요...?”

약선이 진중하게 말하자 남궁나연은 찝찝함을 거둘 수는 없었지만 더는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다.

약선과 이윤후도 남궁나연의 의심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비천회의 신분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헌데 천통자와 같이 온다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사부님이 만드셨다는 의천문의 사람들인가요?”

이윤후는 다시 한 번 화제를 돌리며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나도 자세한 내용을 들은 것은 아니나, 너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천통자와 같이 보냈다고 하더구나. 네 사부가 너에 대한 걱정이 많음이야.”

“아마 약선 어르신이 사왕련으로 가셔야하니 걱정되어 인원을 더 보내시는 거겠죠. 저만 걱정하는 건 아닐 거에요.”

“제법 입에 바른 소리도 이제 잘하는구나.”

약선은 이윤후가 자신을 생각해서 이야기해주는 것을 알았기에 미소를 지었다. 검성이 자신을 걱정하여 인원을 보내준 것이 아니란 건 그녀가 가장 잘 알았지만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이윤후의 말이 듣기 나쁘지는 않았다.

‘녀석. 네 사부는 외모와 고고한 분위기로 인해 여인들이 맘고생 했는데 너는 천성 자체가 남을 배려하고 신경 써서 여인들을 빠지게 만드는구나. 인경이도 마음고생 꽤 심하게 하겠군.’

약선은 이윤후와 유인경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분 상 어려울 것이고 안 그래도 어려운 사정에 이윤후가 명성을 점점 얻어갈수록 둘은 더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윤후가 그 사람의 후인인 이상 좋던 싫던 정파의 얼굴이 될 텐데 그런 윤후가 사파의 여인과 그것도 흑월도존의 손녀와 만나는 것을 정파에서는 두고 보지는 않겠지. 회담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기만 해도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약선은 그래서인지 남궁나연을 눈으로 계속 살피고 있었다. 마치 이윤후의 어머니가 되어 며느릿감을 고르는 마음이 되어서 말이다.

‘그 사람이 윤후에게 애틋한 마음이 되어 달라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어. 나 또한 저 아이가 걱정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신경써주고 싶은데... 그 사람은 더하겠지.’

그런 약선의 마음도 모른 채 이윤후는 남궁나연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이 귀여워 약선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쉴 곳을 좀 마련해 줄 수 있겠느냐? 윤후의 거처와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네. 현재 빈객들이 머무는 곳이 거의 비어있어서 바로 옆방으로 마련해두겠습니다.”

약선이 생각에 빠진듯하여 이윤후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궁나연은 약선의 물음에 놀라며 금세 답했다. 현재 남궁세가는 사왕련과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지면서 세가의 빈객들이 각자 핑계를 대며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하여 그들이 머물던 처소는 거의 비어있는 상황이라 약선의 요구는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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