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분란의 시작
무림은 정사회담의 소식으로 소란스러웠고 정파는 안도하고 있었지만 사파는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현재 사왕련의 주인인 독고진이 전체 사파를 아우르는 장악력이 없다보니 현재의 소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파들 간에도 각자의 입장이 달랐기에 정사회담의 소식은 각 파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사왕련의 대회의실.
각 사파의 수장들과 대표의 대리인들이 참석한 회의는 한시진이 넘게 의견이 오가고 있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각자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었다.
“또 다시 이렇게 사파일통의 기회를 놓칠 것인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지 않소?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오?”
좌중을 압도하는 음성으로 이야기한 인물은 바로 흑마궁의 궁주인 노평회였다.
“지금 노 궁주의 말씀은 흑월도존의 치료 기회를 져버리고 정파와 싸우기라도 하자는 것이오?”
노평회의 외침에 반발한 이는 바로 적하문의 문주인 이황이었다.
이황은 지금껏 좌중의 이야기를 계속 듣기만 한 채 조용히 있었는데 노평회가 나서자 처음 발언을 하였다.
“끄응...”
이황의 언급에 노평회는 화를 누그러뜨린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마궁과 적하문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거기에 적하문은 선대에 흑월도존의 도움을 크게 받은 곳이었다.
적하문이 독고진이 전권을 잡은 사왕련에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또한 현 적하문주인 이황은 흑월도존의 며느리였던 이소하의 동생이었다.
이황은 흑룡창제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사왕련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현 사왕련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미 정해진 회담을 가지고 우리들이 이렇게 찾아와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요?”
이황의 말에 찬동하는 이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듯 몸을 들썩거리는 노평회 같은 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황의 말처럼 이미 정사회담은 날짜까지 고지되어 모두에게 알려졌고 자신들이 이렇게 찾아와 백날 이야기한들 바뀔 리 만무했다.
노평회를 비롯한 반대파의 수장들이 갑작스레 만든 이 자리를 찬성파인 이황 같은 수장들이 내막을 알고 함께 참석하면서 지금처럼 규모가 커진 회의가 되긴 했지만 애초에 사왕련에선 반대를 허용하지않겠다고 선포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회의장엔 사왕련의 주축은 아무도 참석해있지 않았다.
“이 문주의 말도 맞으나 노 궁주의 말처럼 현재 우리에겐 최고의 기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무림 일에 몇 십 년 째 관여하지 않던 약선이 이번 일에 나선 것도 의심해봐야 되지 않겠소?”
발언을 하며 일어선 이는 혈사문의 문주인 오병우였다. 혈사문은 현재 사왕련의 가장 지척에 있는 문파로 위치적으로 남궁세가에게 늘 압박을 당해왔던 터라 이번 사왕련의 안휘성 일대를 장악한다는 소식을 가장 반겼던 자였다.
“그렇소. 약선이 도대체 언제 적 인물이요? 약선이 흑월도존을 치료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요? 감히 사파 지존의 몸을 정파의 인물에게 맡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약선과 정파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병우의 말에 조용했던 반대파 인물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황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금 회의장의 분위기는 반대파와 찬성파의 의견과 고성이 오가며 어지럽게 불붙기 시작했다.
***
“회의장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늬읏늬읏 해가 지고 있는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독고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서로 의견이 충돌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투는 상황입니다.”
고개를 쉬이 들지 못한 채 부복하고 있는 자는 사왕련의 참모인 윤엽이었다. 흑월도존을 암살하려다 독고진에게 저지당한 이후 그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독고진은 윤엽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독고진이 자신을 불렀고, 반시진이 넘게 머리를 조아리고 부복해있던 자신을 향해 물은 첫마디가 바로 저 물음이었다.
“저들을 불러들인 것은 자네인가?”
독고진의 목소리에선 살짝 노기(怒氣)가 느껴졌고 그것을 느낀 윤엽이 몸을 떨었다.
“제가... 아닙니다. 제가 회담 자체를 반대한 것은 사실이나... 저들을 불러들인 것은 제가 아니라...”
윤엽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몸을 떨며 말했다. 독고진의 분노가 온몸으로 느껴졌기에 윤엽은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네가 아니라면 흑룡창제 그자의 짓이겠군?”
“아마도...그렇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독고진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회담 제의가 오고 당시 련 내에 있던 주축은 독고진과 윤엽 그리고 흑룡창제였다.
두 사람, 윤엽과 흑룡창제는 반대를 했지만 독고진은 이 제안을 거절한 순간 사왕련의 존속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윤엽 또한 그 사실을 짐작했기에 그 자리에서 독고진의 결정 이후 반대를 하진 않았지만 결국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사파일통의 꿈을 접어야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흑월도존을 죽이러 찾아갔었다.
그것이 큰 문제가 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만큼 현재 사파가 주도권을 잡은 이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윤엽이었다.
“흑룡창제 그자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번거로운 일을 만드는 군.”
독고진은 한숨을 내쉬며 어느새 어둠이 깔려버린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현재 사왕련은 사상누각의 형세와 다름없었다. 애초에 흑월도존의 기치(旗幟)아래 모였던 자들이었고 현재 독고진 자신을 성심을 다해 주군으로 생각하는 이는 없다고 봐야했다.
그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앞세워 현재 사왕련으로 이름을 바꾸고 충성을 다하는 척 하는 자들이란 것은 독고진이 가장 잘 알았다.
“윤엽은 아직도 사부님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하는가?”
깊게 생각에 빠졌던 독고진의 물음에 윤엽은 머리를 세차게 굴려야했다. 윤엽은 여전히 흑월도존이 없어져야 독고진이 사파의 지존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독고진이 원하는 답이 이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전... 련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래?”
윤엽의 대답에 독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이미 윤엽이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답 자체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윤엽.”
“네. 련주님.”
윤엽은 자신을 부르는 독고진의 음성이 바뀌었기에 긴장하며 답했다.
“내 뜻을 반하는 행동에 대한 용서는 이번 한 번뿐이다.”
“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윤엽은 답하면서 독고진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등이 흥건히 젖었다.
‘련주의 월령무결(月靈武訣)에 대한 성취가 대단하구나...’
월령무결은 흑월도존 유상휘가 창안한 무공의 집대성이었는데 워낙 익히기가 극악하여 흑월도존의 아들이자 첫째 제자였던 유대안조차 오성의 성취만 이루었다 알려져 있었다.
둘째 제자인 독고진도 유대안이 마주했던 오성의 성취만을 이룬 채 육성의 단계를 넘지 못했고 폐관수련을 통해 그 벽을 넘고자했던 것인데 윤엽은 독고진이 그 벽을 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유대안이 단 오성의 성취만으로 당시 수라마검과 흑룡창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사파의 기대주였기에 오성의 벽을 넘는 강함은 어느 정도인지 윤엽으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흑월도존을 져버리고 독고진을 택한 선택은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한 자리였기에 자신을 향한 이 기운은 웃으며 참아낼 수가 있었다.
“약선이 사부님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 올 것이니 준비를 해놓도록 해. 상대측의 일정과 우리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실수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환노가 내가 정주의 화경부로 회담을 위해 떠나면 이곳에 남을 거야. 모든 사항은 환노에게 보고하고 의논하도록 해.”
“네? 환노와 상의 하라고 하심은?”
윤엽은 독고진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되물었고 이미 자신을 바라보지 않은 채 다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독고진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약선이 사왕련을 방문하여 사부님을 치료하도록 한 후...”
“...”
“그녀를 사왕련 내에 잡아둔다. 그것을 환노가 맡을 거야.”
“그렇게 되면 정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서문세가에서도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독고진의 대답에 윤엽이 놀라 답했다. 약선을 겁박한다니 정파는 물론이고 무림에 그 힘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서문세가가 당장 어떤 행동을 해올지는 뻔한 일이었다.
“서문세가를 이일에서 빠지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약선이 이번 일에 나선 이상 우린 서문세가와 연이 닿아있는 황실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건 이미 네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네. 서문세가가 이번 일에 나선 것도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약선이 이번 회담의 주체나 다름이 없어서 서문세가가 나선 것이 이해가 갔었죠. 서문세가는 그 힘도 무섭지만 현재 황실과 연이 닿은 곳이라 잘못 건드렸다가는...”
윤엽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현재 황실은 몽고를 몰아내기 위해 무림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후 황제가 바뀌는 동안도 무림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해주었다.
그들은 무림을 배려하고 있지만 언제고 심사가 뒤틀리면 무림을 압박할 수 있는 곳이 황실이었다. 무림의 역사 속에 황실이 직접적으로 무림을 배척한 때도 존재했고 그 역사는 참혹했다.
“약선을 겁박하여 서문세가를 이번 일에서 빠지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약선이라는 칭호 덕에 많은 무림인들이 오절 중에 가장 약할 것이라 착각하지만 약선은 기인이사들이 가득한 서문세가의 최고 인재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환노. 환영신마 그자가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자신이 있겠지.”
“음... 환영신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엽은 전대의 마두인 환영신마라면 약선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변수를 생각해야했다.
무엇보다 약선을 끔찍이 챙기는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환이 약선에게 혹여 일이라도 생긴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게 분명했다.
“환영신마가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했으니 그자에게 맡기도록 해. 그자 또한 약선이 크게 다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환영신마... 환노와 따로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약선을 겁박하게 되면 회담에 가시게 될 련주님은...?”
윤엽은 독고진이 위험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그 말은 속으로 삼켜야했다. 어느새 돌아선 독고진이 윤엽을 무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현재 무림에 나를 제압 할 이는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이번 회담에 사왕을 모두 데려갈 생각이니 더욱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군요. 그들이 모두 련주님 곁을 지킨다면 안심할 수가 있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윤엽은 독고진의 말에 속으로 안심하였다. 무엇보다 사왕 중 미후왕을 데려간다는 것은 아주 다행이었다. 미후왕은 특히나 흑월도존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인물이었고 회담의 조건에 흑월도존의 치료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와서는 자신을 닦달 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했다.
‘련주님이 약선을 이용해 서문세가를 이번 일에 빠지도록 하겠다는 것은 사파일통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군. 다행이야’
윤엽은 자신이 걱정했던 부분이 해결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만 물러가도록 해.”
“네.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환영신마와 이야기를 한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윤엽이 물러나자 독고진은 다시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을 바라보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 제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습니다. 저를 멈추시게 하려면 얼른 일어나셔야 할 겁니다.”
독고진은 낮게 읊조렸고 이내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