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암살(暗殺)(2)
“고통이 길지 않도록 단숨에 끝내 드리겠습니다.”
홍예도를 잡은 윤엽의 양손에 힘이 가해질 때, 그의 손을 덥석 잡아채는 누군가가 있었다.
“헉…… 누구?”
윤엽은 놀라 자신의 손을 잡은 자를 보았다. 그는 바로 사왕련의 련주인 독고진이었다.
“련주님이 어떻게 여길……?”
윤엽은 독고진의 얼굴을 보고 파랗게 질린 채 물었다. 일부러 독고진이 자리 비운 틈을 타 유상휘를 해하려 했는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독고진이 믿기지 않았다.
“네가 이런 시기에 갑자기 외부 일정을 잡은 것이 신경 쓰여 돌아왔는데, 역시 다른 속셈이 있었구나?”
채쟁―
독고진이 손목을 비틀자, 윤엽은 자신이 들고 있던 홍예도를 떨어뜨리며 그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무고에 있던 홍예도까지? 정말로 사부님을 해하려고 제대로 준비를 했군.”
독고진은 떨어진 홍예도를 챙겨 도집을 받아 갈무리했다.
“지금 흑월도존의 존재는 사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존의 존재가 사파의 결속을 약하게 만들 겁니다.”
윤엽은 각오한 듯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고, 그의 말에 독고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독고진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돌아가라, 윤엽. 오늘 일은 불문에 부치겠지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라. 사부님이 돌아가신다면 그게 더 사파에 혼란을 가져올 뿐이다.”
독고진의 말에 윤엽은 반론하려 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야 했다. 윤엽으로선 독고진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윤엽에게 일을 도모하도록 한 것은 당신이었군?”
독고진의 공허한 말과 함께 어둠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환영신마였다.
“클클~ 알고 있었나?”
환영신마는 독고진에게 다가서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독고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환노. 아니, 환영신마가 정체라고 했나? 그대가 처음 나에게 접근한 것도 애초에 속셈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무슨 생각이지?”
독고진의 표정은 차가웠고, 그의 음성은 화가 난 듯 떨리고 있었다.
“뭐 그리 화를 낼 일인가? 처음부터 넌 날 속이지 않았나? 난 흑월도존의 죽음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널 돕겠다고 했고, 넌 나에게 도존이 죽었다고 속였어.”
환영신마의 눈빛도 달라지며 고압적인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환영신마가 불마사에서 무림으로 나오면서 받은 임무는 바로 흑월도존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불마사는 무림 장악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 흑월도존이라 생각했고, 우금을 통해 만독곡의 절독을 주어 중독시켰고, 환영신마를 통해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흑월도존이 중독된 이후 외부에 전혀 노출이 되지 않았기에 환영신마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쓴 방안이 독고진에게 접근하여 힘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환노로서 그를 도와오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진의 측근이 되어서도 흑월도존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독고진이 그를 신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월도존이 쓰러지고 오랜 기간 공백이 생기자, 사마련에선 독고진을 중심으로 강경파들이 결집하기 시작했고, 환노는 독고진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독고진은 사마련을 전복시키려는 결심을 먹지 않았다. 환영신마는 독고진이 생각 외로 생각 외로 독고진의 충심이 두텁다는 것을 알았다.
“난 처음에 네가 도존의 손녀까지 제거하려는 마음까지 먹었기에 소문대로 도존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지. 그런데도 넌 날 이용했어.”
“당신이 보시다시피 사부님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요. 숨만 쉬고 있을 뿐이요.”
“넌 저것이 죽은 것으로 보이느냐?”
환영신마는 유상휘를 가리키며 말했다. 환영신마는 유상휘가 살아 있음을 알고 계속 이곳에 들어올 방법을 찾았으나, 애초에 사마련의 각주였던 유상휘만이 드나들던 금지라 누구도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입구의 기관을 해체할 방법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환영신마는 윤엽을 자극했다. 무고에 있던 홍예도를 꺼내 준 것도 그였다. 혹시나 윤엽이 일을 그르칠 것을 염려해 그가 기관을 푸는 것을 확인하고 같이 잠입했는데, 독고진이 나타날 것은 생각지 못했었다.
“많은 이들이 흑월도존을 무림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 추켜세웠으나 난 그저 허언으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그게 무슨……?”
독고진은 갑자기 뜬금없는 환영신마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네 사부인 흑월도존은 지금 죽은 것도 중독되어 위험한 것도 아니다.”
“사실이요?”
환영신마의 말에 놀라 독고진이 되물었다.
“그렇다. 우금이 흑월도존에게 조금씩 먹인 독은 만독문의 새로운 절독(絶毒)이다. 해약조차 없는 극독이지.”
“…….”
“아마 흑월도존은 처음엔 자신이 중독된 것을 몰랐을 것이나 후에 몸의 이상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해독할 방법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해 이런 상태를 택한 것이다.”
환영신마의 말이 너무 놀라워 독고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만독문에서 흑월도존이 이미 독수가 되어 녹아 버렸을 것이라기에 죽었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환영신마가 흑월도존이 죽었으리라고 판단한 근거는 만독문이 만든 절독이라는 점이었다. 만독문의 독술이야 워낙 정평이 나 있는지라 환영신마도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약선이 흑월도존을 살핀다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을지 모르지. 그런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
츠츠츠츠―
환영신마의 전신에서 사나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좁은 석실을 떨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발산해 내었다.
“어차피 너도 도존이 정신 차린다면 곤란하지 않나? 그의 손녀를 죽이라는 명을 네가 내렸지 않느냐?”
환영신마의 말에 독고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차피 네가 스승을 죽이지는 못할 터…… 내가 할 테니 비켜서도록 해라.”
환영신마는 말을 하고는 흑월도존의 곁으로 다가서려 했지만, 독고진이 바로 막아섰다.
“무슨 짓이지?”
“어차피 정사의 부딪침은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 그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 푸하하하~”
환영신마는 독고진이 흑월도존에게 사부가 아닌 남 부르듯이 ‘그’라는 호칭을 쓰자 크게 웃었다.
“그럼 네 생각을 들어 보지.”
“무림맹에서 회담의 조건으로 내세운 치료는 회담과 별개로 진행이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약선은 이곳으로 오고, 회담은 정주에서 열린다는 것이지.”
“들어서 알고 있다.”
“약선이 이번 일에 끼어들면서 서문세가까지 무림의 일에 나서려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문제지. 약선이 치료를 위해 이곳으로 온다면 그녀를 사로잡아 서문세가를 겁박하는 목적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독고진의 말에 환영신마는 그를 살폈다.
‘아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환영신마는 독고진이 도존을 죽이는 것을 망설여 내놓은 소리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생각 자체는 괜찮다고 여겼다.
어차피 약선이 도존을 치료하는 것만 막으면 환영신마로서는 임무를 다한 것이었다. 사왕련으로서도 약선을 인질 삼아 서문세가를 이 일에서 빠지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서문세가는 황실과도 인연이 닿아 있는 곳이라 사왕련이 최대한 격돌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황실이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현 황제의 측실로 서문세가의 여식이 들어가 있고 서문세가의 가주 자식들이 관직에도 있었다.
환영신마도 독고진에게 정체를 드러낸 이상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가야 했지만, 지금 이곳에서 독고진을 제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아직 독고진은 이용 가치가 더 있었다. 불마사가 원하는 그림은 정사간의 격돌이 벌어지는 것이라 독고진을 제거하기엔 일렀다.
“좋다. 네 제안을 따르도록 하지. 하지만 남아서 약선을 잡는 것은 내가 하지.”
“죽이는 것은 안 돼. 그것은 알고 있겠지?”
“물론. 황실과 부딪치는 것은 우리도 원하지 않아.”
환영신마의 말에 독고진은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고, 누워 있는 흑월도존을 잠깐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너도 도존이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인데…… 스스로 문제를 키우는 것이 아니냐?”
환영신마의 말에 독고진은 답이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기에 환영신마는 몸을 돌렸다.
도존의 제거는 실패했지만 원하는 것은 이루었다. 방금 있었던 이야기를 불마사에 전해야 했기에 서둘러 빠져나갔다.
“사부님, 진정 살아 계신 것입니까?”
환영신마가 사라지자 독고진은 도존의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 독고진은 자신의 스승이 이미 숨만 쉬고 있지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수신의가 진료를 포기했을 때 차라리 잘되었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유인경을 제거하면서 사마련을 장악할 마음까지 먹을 수 있었다.
사파의 염원인 무림일통을 위한 내부 장악이 끝났고, 이제 그 시작을 하려는 시점에 자기 스승의 존재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사마련에서 사왕련으로 이름도 바뀌고, 자신이 수장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흑월도존을 따르는 무리는 존재하고 있었다.
사왕련의 주축인 사왕(四王) 중 두 명이 흑월도존을 존경해 애초에 사마련에 있던 자들이었다. 정사회담도 결국 그들이 약선의 치료가 걸려 있음을 알고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사왕련 아래 사파의 모든 문파가 모여 있는 모양새였지만, 흑월도존이 혹시라도 깨어난다면 이 결속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 뻔했다. 그것을 알기에 참모인 윤엽이 나서서 흑월도존을 제거하려 했다.
자신이 선택한 주군인 독고진이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어나셔서…… 제가 경이를 제거하려 했다는 것을 아신다면,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시겠죠?”
독고진은 흑월도존을 내려다보며 힘없이 말했다. 독고진이 이 자리에 오르면서 가장 힘든 결정을 해야 했던 것이 유인경의 죽이는 일이었다.
그녀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제거해야 했다. 독고진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지만 그를 따르기로 한 자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힘든 결정을 해야 했고, 경혼에게 유인경을 외부로 데려가라고 지시했었다. 하지만 경혼은 독고진의 명령과 달리 그녀를 해하려 했고, 그녀는 상처 입은 채 백아에 의해 구해져 이윤후를 만나게 되었다.
독고진은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어 그녀의 추적을 하지 말라 명했다. 그녀가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 왔었다.
“경이는 아직은 무사한 듯합니다. 저에게 도전을 해 왔더군요. 사부님께서 정말로 멀쩡하시다면 얼른 일어나셔야 할 겁니다. 제가 경이를 정말로 죽여 버리기 전에…….”
말을 잇는 독고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정사 회담 제의와 별개로 독고진에게 전해진 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인경이 이번 회담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저를 지금이라도 말리실 수 있는 자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독고진은 마치 흑월도존이 자신을 말려 주길 바라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시작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스승이 포기했던 무림일통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파를 다시 한번 규합했다. 흑월도존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사파는 다신 뭉칠 수가 없을 게 뻔했다.
독고진은 슬픈 표정으로 흑월도존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흑월도존의 차가워진 손을 매만지고는 등을 돌렸다.
“이제 찾아오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렇게 제자가 무림의 지존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때가 되면…… 모든 죄를 받겠습니다.”
등을 돌린 채 독고진은 낮게 읊조리고는 석실을 나섰다.
그가 나간 후, 흑월도존의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