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암살(暗殺)(1)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마.”
검성은 흥분을 가라앉힌 두 사람을 앉히고는 다시 자리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내 뒤에 서 있던 자는 천통자라고 하는데, 잡학에 능한 자다. 그가 나의 제자인 이윤후를 보고 단명의 상이 보인다고 하더구나.”
검성의 이야기에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뛰어난 검성의 제자를 자신들이 호위하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윤후의 실력은 이미 현 무림에서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림은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암수와 계략 등 그 모든 변수를 너희가 감당해 주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소문주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일을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기하윤이 먼저 답했다. 그녀는 이미 이윤후를 소문주라 칭했다. 검성이 의천문이라는 세력의 이름을 정했기에 이윤후가 소문주가 맞긴 했다.
“너희를 이렇게 따로 보려 한 것은 너희에게 해 줄 것이 있어서다. 두 사람 다 돌아서서 운기를 하는 자세를 취해 보아라.”
검성의 말에 두 사람은 바로 그의 말대로 움직였고 돌아서 운기를 하는 자세를 취했다. 검성은 다가가 두 사람의 등에 양손을 하나씩 가져다 대었고, 기하윤은 검성의 손길에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창안한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이라는 무공으로, 너희의 기운을 한층 강하게 만들 것이니 내게 몸을 맡기고 편안하게 있어라.”
검성의 말에 기하윤과 철대호 두 사람 모두 기대감을 가지며 검성에게 몸을 맡겼다. 검성은 두 사람을 이윤후에게 보내기 전에 실력 향상을 시켜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기명현에게 두 사람을 먼저 데려오라고 말한 것이었다.
“대호는 금기(金氣)가 충만하고, 하윤이는 전체적으로 기운이 고르구나.”
천강공을 익힌 철대호는 그에 맞게 금기가 몸 안에 가득했고, 기하윤은 무공 자체가 높지 않았기에 전체적으로 뛰어난 기운이 없었다.
검성은 기하윤에게 손을 뗀 채 철대호에게 양손을 가져다 대었다. 자신의 등에서 검성의 손이 떼어지자 기하윤은 아쉬운 듯 두 사람을 보았다.
츠츠츠―
검성의 손에서 빛이 나며 철대호에게 기운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토기(土氣)와 수기(水氣)를 철대호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천천히 밀어 넣었고, 그렇게 일각의 시간이 흐르자 철대호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으음…….”
철대호는 내공을 천성적으로 익히기 어려운 몸이라 자신의 몸 안에 요동치는 기운을 스스로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검성이 직접 그 과정을 돕고 있었다.
검성이 요동치는 철대호 안의 기운을 잡아내자 괴로워하던 그의 표정이 풀어졌고 비 오듯 흐르던 땀도 멈췄다.
검성이 철대호의 등에서 손을 떼자 철대호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몸 안에 기운이…… 이 힘은 대체……?”
찌지직― 촤악―
철대호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듯 커졌다. 그 바람에 옷들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기하윤은 물론 검성도 놀라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철대호는 살짝 작은 체구에 단단해 보이는 체구였는데, 변화를 마친 그는 이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전체적으로 커져 있었다. 키의 변화는 없었지만, 근육의 크기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허억…… 헉…… 몸에 힘이 넘쳐…… 흐릅니다.”
철대호가 자신의 몸의 변화에 적응이 안 되는 듯 힘들어하자, 검성이 다시 한번 엎드린 철대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윤후나 빙궁의 녀석과는 다른 반응이라 신선하긴 하군.”
검성도 철대호의 변화가 흥미로웠기에 더욱 신경 쓰며 철대호를 봐주었다. 철대호는 내공 운용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황이라 자신에 요동치는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공 운용은 전혀 할 줄 모르느냐?”
“아닙니다. 방법은 알지만 내공이 늘지 않는 체질이라 천강공을 익힌 이후 전혀 내공 심법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검성이 손을 대고 기운을 다스려 주자 좀 편해진 듯 철대호의 말투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럼 내공 심법을 운용하듯이 몸 안의 기운을 다스려 보아라.”
“아…… 네.”
검성의 말에 엎드려 있던 철대호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정좌하고 언제 해 본지 모를 내공심법을 쓰기 시작했다. 내공법을 시작하자 철대호의 안색이 더욱 안정되었다.
상황이 정리된 듯하자 검성은 기하윤을 보았다.
“너도 오행상생법을 통해 기운을 상승시켜 주고 싶지만, 넌 이 방법과는 맞지 않는 듯하구나.”
검성의 말에 기하윤은 조금은 실망한 표정을 보였다. 철대호의 변화를 보고 검성이 자신들에게 해 주려고 한 대법이 얼마나 굉장한지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너에게는 대신 이걸 주마.”
검성은 자신의 오른손 손목에 끼워져 있던 묵환(墨環)을 빼서 기하윤에게 건네었다.
“제가 받아도 될는지요?”
검성이 건네는 묵환을 얼떨결에 바로 받긴 했지만 기하윤은 잠시 망설였다. 묵환에 음각된 문양이나 광채가 보통 물건은 아닌 거 같았다.
“예전에 광기자(狂技子)가 나에게 선물해 주었던 물건인데,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니 너에게 주마. 너에겐 필요한 물건일 거다.”
“광기자라면……? 서문세가의……?”
기하윤은 검성에게 말을 듣고 더욱 놀라 묵환을 받은 손을 떨었다.
광기자는 서문세가의 기재(奇才)라 불렸던 인물로, 원래라면 서문세가의 가주가 되었을 인물이었다. 워낙 손기술이 뛰어나 무공보다는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고 무기를 만드는 능력도 뛰어나 신장(神匠) 이후 최고의 기술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약선의 동생으로, 약선 대신 원래라면 광기자가 서문세가의 가주가 되었어야 했으나, 그의 기술을 탐낸 마교에서 광기자가 세가를 떠나 원행(遠行)을 나설 때를 노려 습격했고, 그 이후 그의 생사를 아는 이가 없었다.
광기자가 만든 물건이면 현재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게 거래가 되었고, 그가 사라지고 더욱 그 값이 폭등했다. 그렇기에 기하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자주 사용하는 손에 끼도록 해라.”
“네…….”
기하윤은 일단 검성이 시키는 대로 묵환을 자신의 왼손에 끼웠다. 남자의 손목에 있던 거라 그런지 조금은 헐겁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찰칵―
“어?”
찰칵 소리와 함께 묵환이 기하윤의 왼 손목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그녀는 신기해하며 묵환을 더듬어 보았다.
“나도 광기자에게 처음 받았을 땐 너처럼 놀랐었다. 네가 위험할 때 그 묵환에 기를 흘려 보내면 정면으로 세침(細針)들이 폭사될 것이니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어라. 세침은 상대가 금강불괴지신이라고 해도 꿰뚫는다고 광기자가 자랑했으니 아마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검성은 사실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에 확신은 못 했지만, 광기자가 그렇게 말했으나 분명 거짓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귀중한 것을 제가 받아도 될까요?”
“나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니, 너를 지키는 데 사용하여라.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파괴되는 물건이라고 했으니 신중하게 쓰도록 해라.”
“네. 감사합니다.”
기하윤은 자신들을 챙기는 검성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동하여 답했고 어느새 정신 차린 철대호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윤후는 계속 남궁세가에서 그곳을 지킬 예정이니 너희도 그쪽으로 이동하여라. 나는 정사회담을 위해 정주로 가야 하니…… 너희에게 윤후를 부탁하마.”
“맡겨 주십시오. 소문주는 저희가 목숨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우렁차게 답했고, 이에 검성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기명현에게 보고하고 움직이기 위해 방을 나섰다.
검성은 마음에 걸렸던 이윤후의 호위를 해결하고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해 보였다.
* * *
사왕련(邪王聯)의 심처,
원래부터 이 지하에 마련된 심처는 흑월도존 유상휘만이 드나들던 금지였다.
저벅― 저벅―
어둠이 깔려 있는 지하에 발소리가 들리자, 어두웠던 지하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걷던 사내의 손엔 등불이 들려 있었다. 등불의 불빛에 비친 중년인은 바로 사왕련의 참모인 윤엽이었다.
그는 눈치를 살피며 어느 곳으로 향했고, 구석의 석실(石室)로 들어갔다.
석실에 들어선 윤엽은 등불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석실 안에는 불빛이 있었기에 등불이 필요치 않았다.
석실의 중앙엔 누군가 큰 침상 위에 누워 있었는데, 윤엽은 그에게 다가갔다.
“각주님…… 아니…… 이제는 각주도 아니시군요.”
윤엽은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침상에 미동조차 없이 누워 있는 노인은 바로 사파의 지존이었던 흑월도존 유상휘였다. 현재 그는 긴 잠을 자고 있는 듯 숨만 쉰 채 잠들어 있었다.
전 무림맹주 우금이 먹인 독에 의해 유상휘는 이 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잠들어 있었다.
처음엔 의식이 있는 상태였으나, 이 년 전부터는 의식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처음엔 다들 이렇게 흑월도존이 죽으리라 생각했지만, 무려 이 년의 시간 동안 먹지도 않고 잠만 자는데도 유상휘의 상태는 멀쩡했다.
유상휘가 이렇게 되자 윤엽을 포함한 사마련 내 강경파들은 독고진을 설득해 이 기회에 사마련을 장악해야 된다고 설득했다.
처음엔 독고진도 자신을 거두어 준 유상휘를 배신할 수가 없어 마음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성수신의(聖手神醫)조차 유상휘의 몸을 살피고는 고칠 방법이 없다고 하자, 독고진은 자신이 사파를 이끌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설득할 수 있는 자신의 사람들은 다 확보한 후 절대로 자신의 편으로 서지 않을 자들을 제거하고 현재의 사왕련을 세운 것이었다.
“도존, 현재 사파는 도존의 제자인 독고진에 의해 새로이 뭉쳤습니다. 도존께서 못해 내신 무림일통(武林一統)의 꿈을 이루려 하고 있죠.”
윤엽은 유상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파에 의해 억압받고 힘들었던 시절이 가고, 도존께서 사파의 세상을 만들어 주실 거라 생각했지만…… 도존은 그 뜻을 사파의 대업을 저버리셨죠. 이제는 도존의 제자가 그것을 해낼 것입니다. 하지만…….”
윤엽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작은 단도였다.
스르릉―
윤엽은 단도의 서슬 퍼런 날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보통의 단도와는 달라 보였다.
“제자가 큰 뜻을 펼치려는데 스승이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이제껏 도존의 생존에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 때문에 참아 왔지만…… 대업에 방해가 되신다면 어쩔 수가 없을 듯합니다.”
윤엽은 단도를 움켜쥐었고 유상휘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윤엽은 안휘성 일대를 시작으로 천천히 세력을 넓히며 정파들을 하나씩 굴복시켜 나가려 했고, 그 시작은 남궁세가부터였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유상휘의 치료를 약선이 봐주겠다고 하며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그것에 윤엽은 적극 반대했다. 사왕련 안에는 여전히 흑월도존을 존경하는 세력들이 존재했기에 최대한 그 조건이 알려지지 않도록 숨긴 채 회담을 거부했었다.
회담의 조건이 미후왕은 물론 무림에 알려지면서 윤엽은 곤란한 지경에 처했고, 많은 이들이 회담의 조건을 왜 숨겼냐고 항의를 해 오기 시작했다. 결국 사왕련은 정사회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도존의 제자인 우리 련주님은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니…… 결국 제가 해야겠지요.”
스윽―
윤엽은 손에 들린 단도를 천천히 움직여 잠들어 있는 유상휘의 심장 쪽을 향해 칼끝을 세웠다.
“도존께서 더 생존해 계신다면 또다시 사파의 대업이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한때는 주군으로 모셨지만…… 나중에 저승에서 만난다면 무릎 꿇고 사죄드리겠습니다.”
콰악―
윤엽은 낮은 음성으로 말을 내뱉고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유상휘의 몸에 평소라면 문인인 자신의 검이 생채기도 내기 힘들지 모르지만, 중독되어 약해져 있는 데다 그의 손에 들린 단도는 보통의 물건이 아니었다.
단도의 도신에는 홍예(虹蜺)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바로 신장의 무기 중 하나로, 원래는 유상휘의 딸이자 유인경의 어머니의 애도였다.
그녀가 마교의 손에 죽고 난 후 주인이 없이 사마련의 무고에 잠자고 있었고, 그것을 윤엽이 가져온 것이었다.
바로 전 주인의 아버지인 흑월도존의 숨을 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