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의천(義天)
“저 아이들이 내가 부탁한 이들인가?”
“네.”
기명현은 검성의 물음에 짧게 답하고는 뒤에 두 사람을 보았다.
“기하윤이라 합니다.”
“철대호입니다.”
두 사람은 기명현의 눈짓에 바로 자신의 소개를 했고, 검성은 두 사람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대호는 외공을 극한까지 익힌 아이입니다. 천성적으로 내공을 쌓기 힘든 체질이라 무공을 익히는 것을 포기하도록 권했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이겨 냈습니다. 검성께서 말씀하신 호위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철대호는 기명현이 자신을 이야기하자 한 발짝 앞으로 나서 검성의 앞에 섰다. 외공을 익힌 것치고는 몸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의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로 드러난 근육은 탄탄해 보였다.
“천강공(天鋼功)을 익힌 아이인가?”
“맞습니다. 기억하시는군요.”
검성이 철대호가 익힌 외공을 단숨에 알아보자 기명현은 자신이 더욱 기뻐했다. 천강공은 의검단이 만들어질 때 자신의 아버지 기동하와 같이했던 정산이라는 인물의 무공이었다.
후인 없이 죽은 정산은 기동하에게 자신의 무공서를 남겼고, 기명현이 내공을 늘리지 못하는 철대호에게 가장 알맞은 무공이라 여겨 그에게 배우도록 했다.
검성이 천강공을 기억하는 이유는 일인전승(一人傳承)의 무공인 천강공을 마교에서 노렸고, 마교의 마인들에게 죽을 뻔한 정산을 자신이 구해 준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교에서 탐내는 천강공이라는 무공이 궁금했던 검성은 정산이 몸을 회복한 이후 그 무공을 경험해 봤기에 천강공에 대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천강공에 대해서 잊을 수가 없지. 당시 내가 베지 못한 것은 없다고 자신하던 때였는데, 나의 검을 막아 낸 무공이니까 말이야.”
검성은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이야기를 들은 천통자와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천강공을 배운 철대호까지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천강공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긴 합니다. 극성으로 익히면 신병이기도 튕겨 낸다는 극한의 외공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검성도 베지 못했습니까?”
천통자는 사실 철대호가 천강공의 후계자라고 했을 때도 조금 놀랐는데, 검성의 말은 더욱 놀라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얼마나 대단한 무공이기에 마교에서까지 욕심을 내나 해서 약선에게 그를 치료하게 하고 몸이 멀쩡해졌을 때 겨룬 적이 있었지. 내가 작정하고 베고자 마음먹었는데도 베어지지 않더군.”
검성의 말에 철대호는 자신이 배운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고, 천통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 검성은 정산을 상대할 때 삼 할의 힘으로 검을 썼고 초식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름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한 배려였으나 천강공을 쓰는 정산의 몸은 검성의 검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에 놀라 검성이 오 할의 힘까지 사용했으나 그것 또한 튕겨 내었다. 결국 약선이 막아서서 거기까지 하긴 했으나 검성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력을 다하거나 초식을 사용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이미 검성의 칭호를 받은 후의 자신의 검을 그렇게 막아 내는 이는 무림에도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성의 뇌리에 천강공은 잊을 수가 없는 무공 중 하나였다.
“그대의 말처럼 내가 말한 호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군.”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검성은 천강공을 익힌 철대호가 마음에 들었고 이윤후 곁에서 호위를 해 주기엔 최적의 인물이라 생각했다. 기명현은 검성의 칭찬에 괜히 자신의 마음이 들떠 이어서 남은 여인의 소개를 하려 했다.
“이 아이는 제 여식입니다.”
“기하윤입니다.”
기하윤은 작은 키에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회색 옷을 입은 것이 조금은 눈에 띄었다. 오밀조밀하니 귀여운 인상이긴 했지만, 검성은 조금은 못마땅한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가?”
기하윤을 살핀 검성은 그녀가 무공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란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 물음의 뜻을 알고 있는 기명현은 얼른 답했다.
“제 딸이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고…… 하윤이는 무공이 뛰어나진 않으나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른 재주가 있다는 뜻이겠군?”
“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될까요? 통찰력(洞察力)이 뛰어나고 감각이 여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예지몽(叡智夢)을 꾸기도 하고요.”
“혹시 진하족(袗夏族)의 핏줄입니까?”
기명현의 말에 검성의 뒤에 있던 천통자가 말했고, 기명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진하족을 아시는군요. 제 아내가 진하족 출신입니다. 아내보다는 딸 쪽이 능력을 더 진하게 타고난 듯합니다.”
기명현의 말에 검성은 궁금하여 천통자를 보았고, 오랜만에 검성의 그런 눈빛을 받은 천통자는 기분 좋은지 천천히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흠…… 진하족은 신기(神技)를 타고나는 종족으로, 예전에 황가에서는 진하족의 여인을 꼭 곁에 두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비밀리에요. 아까 말을 들었듯이 진하족 중에도 능력을 타고나는 여인들이 있는데, 예지몽을 꿔 미래를 예측한다거나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실에서 가까이 둘 만한 능력이군. 그런 종족이 있단 말인가?”
천통자의 이야기에 검성은 흥미로운 듯 기하윤을 바라보았다.
“남만의 오지에 모여 산다는 일족인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죠. 그들의 능력을 교역 떠났던 사신이 듣고 황제에게 말했고, 흥미가 동한 황제는 진하족 여인들을 잡아 와 곁에 두었습니다. 황제란 늘 암살의 위험을 안고 사는지라 진하족 여인의 능력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예지몽도 물론이고요. 미래를 예측하니까요.”
천통자의 이야기에 검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힘은 분란을 야기하기 마련이죠. 황제는 그 힘을 혼자만 가지고 싶어 했고, 군대를 보내 진하족을 몰살시켰습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몇 명만 빼고 말이죠.”
천통자의 이야기에 기하윤은 눈을 감은 채 찡그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는 어머니 대의 역사지만,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렇군. 사람의 욕심이란…….”
천통자의 이야기에 검성은 안쓰러운 듯 눈을 감고 있는 기하윤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희에게 부탁할 일은 너희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
검성은 기하윤과 철대호를 번갈아 보며 말했고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검성은 마음이 조금은 불편했다. 두 사람 모두 이윤후의 방패막이로 보내는 것이기에 자신의 이기심으로 두 사람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검성이 근심하는 와중에도 천통자는 그 속을 모른 채 뒤에서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검성은 나중에 천통자를 더 심하게 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검성은 이윤후에게 보였다던 단명의 상을 천통자가 잘못 본 거나, 이윤후가 무위가 높아지면서 바뀌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를 대비를 하기 위해 이 두 사람을 이윤후의 곁으로 보내려 하고 있었고, 능력 또한 호위를 위해 아주 적절했다.
“그 전에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
검성은 몸을 일으켜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의 입에 모두가 집중했다.
“나만의 세력을 만드려 하는데, 의검단이 그 주축이 되어 줄 수 있겠느냐?”
검성은 말을 하며 기명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하느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하겠느냐?”
“아…… 아닙니다. 의검단의 애초에 검성의 힘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검성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명현은 검성의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오절의 시대, 검성에게 많은 이들이 세력을 만들기를 조언했지만 거부했던 그가 스스로 세력을 만든다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의검단은 현재 인원이 어떻게 되느냐?”
“현재 단주인 저와 믿을 만하고 검성을 위해 움직여 줄 인물은 당장 스무 명 남짓입니다. 하지만 예전 의검단이었던 가문들과 인물들에게 연락을 취해 두었으니, 그들까지 가세한다면 적지 않은 수가 될 것입니다.”
기명현의 말에 검성은 천통자와 서로 바라보았다. 애초에 검성과 천통자는 의검단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원의 수를 열 명 남짓으로 보았기에 스무 명이란 말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충분하겠군요. 세력의 중심이 될 곳은 강소성 소주(蘇州)에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 두었기에 당장이라도 사용하시면 됩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검성도 이미 비천이나 천통자가 자신의 일에 왜 이리 적극적으로 돕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은 채 받고 있었다.
검성이 복수를 하면서 권왕과 신투가 벌여 온 일들을 모두 비천에서 흡수했고 그 수익은 막대했다. 특히 수도 이전 사업 중이었던 신투의 사업들은 비천이 생각지 못한 규모였고, 막대한 수익으로 천통자는 비천 내의 입지가 아주 탄탄해진 상황이었다.
“세력의 이름은 생각해 두셨습니까?”
천통자의 말에 기명현과 모두가 관심 있는 듯 검성을 보았다. 안 그래도 서문환에게도 들었던 질문이라 검성도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은 식상할지 모르지만, 의천문(義天門)이 어떨까 하는데 어떤가?”
검성이 이전에 입버릇처럼 말하던 의자제세의 한 글자와 애검인 정천검의 한 글자씩 딴 이름이었다. 흔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검성에게는 의미가 있는 단어들이었다.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천통자는 그런 검성의 마음을 아는지 바로 답해 주었다. 의천문의 의는 의검단에게도 의미가 있는 글자였기에 기명현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럼 대충 준비를 마친 듯하군. 나머지는 기 단주와 천통자가 이야기해서 마무리 짓도록 해.”
검성은 말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
“검성께서는 무얼 하시려고요?”
천통자는 검성이 갑자기 자리를 뜨려 하자 놀라 물었다. 아직 문파의 준비와 다른 여타의 것들을 논의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에 검성과 더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기 단주가 그래도 이제껏 의검단을 이끌어 왔으니 문파의 준비나 운영은 이쪽이랑 이야기하도록 해. 난 이 아이들과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검성은 철대호와 기하윤을 보고 이야기했고, 천통자는 체념한 듯 기명현에게 다가갔다.
“옆방으로 가시죠? 검성께서 따로 하실 일이 있으신 듯합니다.”
“네…… 그러죠.”
기명현은 두 아이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천통자와 방을 나섰고, 그렇게 검성과 철대호 기하윤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방은 적막이 가득했다. 검성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부복하고 있는 두 사람 곁으로 다시 다가왔다.
“너희가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들었느냐?”
“검성 어르신의 제자 호위 임무라고 들었습니다.”
그 물음에 철대호가 답했고, 검성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희에게 내 제자의 호위를 맡길 것이다. 무공 자체는 나의 모든 것을 배운 녀석이나, 무림의 경험이 아직 부족해. 너희 도움이 필요하단다.”
“명을 내려 주신다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해내겠습니다.”
검성의 말에 철대호가 자신 있게 답했고 그 대답이 검성은 마음이 들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하윤은 가까이 다가선 검성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내가 만들 문파는 제자인 윤후를 위한 문파가 될 것이다. 그 초석을 내가 닦아 줄 것이나 중심은 윤후와 너희들이 되어야 한다.”
검성은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고 그의 말에 철대호와 기하윤은 고개를 들어 검성을 동시에 보았다.
의검단에 자의든 타의든 몸을 의탁하면서 음지에서만 늘 존재했던 그들이었기에, 검성의 말은 그들에게 달콤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