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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36화 (136/251)

136화― 검성의 결심(2)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전에도 느꼈지만, 난 소려를 잃고 무림에 미련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력을 만들라고 권유해도 동조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뀐 겁니까? 그것도 지금에서?”

서문환은 검성의 생각이 진심으로 궁금해 따지듯이 물었다.

“내 생각을 말한다면 도와줄 것이냐?”

“흠…… 들어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서문환의 대답에 검성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약선의 말에 거부하지도 못할 서문환이 자신의 앞에서 센 척하는 모습이 예전 어렸을 적 그를 떠올리게 해 귀엽기도 했다.

“제자를 위해 세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궁세가에 있는 이윤후인가 그 녀석 말입니까?”

“그래. 검성의 제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이상 그 아이도 많은 무림 세력들이 이용하려고 들 것이다. 나 역시 홀로 무림을 주유할 시절 많은 세력들의 회유를 받았고, 내 이름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존재했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를 다른 이들이 흔들지 못하도록 윤후를 위한 세력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서문환은 검성이 제자를 생각해 세력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에 조금은 놀라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검성의 이름값이라면 사람을 모으고 자금을 모으는 것은 쉬울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자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세력의 주축이 될 자들을 이미 만나 보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차차 진행하려고 한다.”

“그게 누굽니까?”

서문환은 검성이 자신 있게 이야기하자 궁금해져 물었다.

“의검단의 수장을 만났고 그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만들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서문세가에서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의검단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문환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서문환은 검성이 사라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의검단을 지원하고 있었다.

“의검단이 아직도 존재합니까? 무려 오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검성이 자취를 감춘 지가…….”

“나도 그들이 지금까지 존재할지는 몰랐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찾았는데 아직도 존재하더군. 작은 세력이나마 말이야.”

“으흠…….”

검성의 말에 서문환은 살짝 당황했다. 검성의 입에서 의검단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은 검성이 사라지자마자 그들에 대한 지원을 끊었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검성을 위해 세력을 존재시켜 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저희가 무엇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검성은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서문환의 모습에 이유가 궁금했으나 따로 묻지는 않았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세력을 위한 자리는 다른 곳에서 마련해 주기로 했고, 서문세가에서 가능하다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좀 빌려줬으면 한다.”

“사람들이라고 함은?”

“당장 세력을 꾸려 갈 인원이 의검단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사람들을 구하기 전까지 전반적인 것을 담당하고 도와줄 인원들을 서문세가에서 대어 줬으면 해.”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최대한 믿을 만한 자들로 보내 드리죠. 그리고 정사회담에 서문세가의 이름도 올려 드리겠습니다.”

“고마운 일이군. 이 은혜는 나중에 갚지.”

검성은 서문환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자 조금은 의문을 가졌으나 묻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물을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이지?”

“세력을 만들고 모든 일이 해결된 후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서문환이 갑자기 진지해지자, 검성은 그가 묻고자 하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번 일이 해결된 후에 난 무림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차피 난 지금의 세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또다시 무책임하게 사라지실 예정입니까?”

서문환의 말에 검성은 그가 말하는 무책임이라는 것이 약선에 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에게 약선은 그저 여동생 그 이상 그 이하가 아니었다. 차라리 임소려가 죽고 나서 알았으면 모르지만, 약선은 전혀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무공이 등선(登仙)의 경지에 오른 뒤로는 안 그래도 없던 욕심이 더욱 없어져 물욕은 물론 색욕(色慾)도 아예 없었다. 그저 욕심이 있다면 제자인 이윤후에게 한 가지라도 더 남겨 주고 싶은 마음과 서문효인 같은 핏줄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뿐이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애령과 난 그런 사이가 아니다.”

“또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당신은 그럴지 몰라도 제 누이는 언제나 당신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이죠. 알면서도 외면하시려는 겁니까?”

검성의 형식적인 말에 서문환은 살짝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오래전에도 검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검성의 태도에 화가 나 있었다.

“애령의 마음은 받아 줄 수가 없다. 이미 살 만큼 산 우리다. 그리고 내가 여인을 만난다면 애령이 아닌 다른 여인일 것이다.”

꽈득―

검성의 말에 서문환은 자신도 모르게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여인을 만난다면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내 아이가 갖고 싶어서일 거다. 그렇기에…… 약선은 나의 짝은 아닐 것이야.”

검성은 솔직하게 답을 했고 서문환도 그의 대답에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약선이 젊음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나 이미 세수 백 세가 넘은 지 오래였다.

여인으로서 특히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은 아니었기에 검성의 말에 남자로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생각만 있다 뿐이지, 내가 여인을 품겠다는 생각은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도 이 생각은 최근에야 든 거니까 말이야.”

검성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괜히 서문환에게 이야기했다 싶었다. 서문효인을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이라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한 것을 후회했다.

“누이에게는 절대 그런 말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건 내가 부탁할 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특히 서문환은 혹여나 검성의 이런 생각을 약선이 안다면 얼마나 상심할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새로 만들 세력의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서문환은 생각을 털어 버리고는 검성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의검단의 수장이 곧 찾아올 예정이니 그들과 상의를 해 봐야겠지. 사실은 아직 내 뜻을 그들에게도 정확히 전하지 못했으니 말이야.”

“지금까지 의검단을 유지하고 있다면…… 검성이 세력을 만들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겠죠. 애초에 의검단은 검성에게 음지에서 도움이 되려고 만들어진 조직이니까요. 검성께서 모르시겠지만 알게 모르게 의검단이 많은 활동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지?”

“그건…… 서문세가도 나름 정보력이 좋은 곳이니 자연스럽게 알죠.”

검성의 물음에 서문환은 당황하여 얼버무렸다. 사실은 그도 의검단의 일원이기도 했으니 그쪽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검성은 몰랐으나 의검단은 검성에게 해를 가하려는 문파나 원한을 가진 이들의 처리를 행해 왔다. 검성이 무림에서 명성을 날린 만큼 적도 많았기에 의검단도 음지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검성의 세력이라? 생각도 못 해 본 이야기라 정말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하군요. 누님은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작은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데 가장 필요한 그녀에게 논의하지 않았으려고…….”

“그럼 다행이고요.”

서문환은 혹시나 약선이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고 실망을 할까 봐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성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검성에게 약선은 가장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 줄 사람이지만, 결국 함께할 반려자(伴侶者)가 되긴 힘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서문환은 더욱 자신의 누이의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만 전 누님과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시면 한번 세가로 찾아오시죠.”

“서문세가로? 하긴 서문세가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

“형님께서 좋아하셨던 검남소춘(劍南燒春)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서문환이 자신을 형님이라 칭하자 검성의 눈빛이 달라졌는데, 그가 언급한 술에 의해 눈은 더욱 반짝거렸다.

“이거…… 꼭 가야겠군. 의검단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마치고 바로 가도록 하지. 정사회담 이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할 테니까 말이야.”

서문환은 검성을 서문세가로 꼭 오게 하고 싶었기에 검성이 좋아하는 술로 그를 유인하듯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내었다.

“그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문환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그 자리를 떴고, 남겨진 검성은 따라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남매간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검성이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또 있었다.

“기척을 숨기고 다가오는 것도 할 줄 아느냐?”

검성의 말에 누군가 큰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바로 천통자였다. 특유의 염소수염을 만지고는 검성에게 깍듯이 예를 취했다.

“검성 혼자 계셨다면 저도 그냥 나타났겠지만, 동행과 이야기 나누고 계시기에 숨어 있었죠.”

천통자는 검성을 만나러 왔다가 서문세가 사람들이 대규모로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잠시 물러나 있었고, 검성과 서문환이 둘이서 사라지자 따라나선 것이었다.

천통자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검성에게 불벼락을 맞기 싫었기에 최대한 떨어져 있었고, 서문환이 자리를 뜨자 기척을 숨긴 채 검성에게 다가왔다가 걸린 것이었다.

“서문가주에게 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기척을 숨긴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고 있다. 네가 산을 올라온 것은 그들이 찾아왔다는 거겠지?”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통자는 이미 비천에 정사회담에 관련한 모든 준비를 하도록 전한 후, 검성의 계획을 돕기 위해 산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안 그래도 검성께서 말하신 것이 마무리되어 찾아뵐까 했는데…… 그들도 마침 찾아왔더군요. 같이 올라오려다가 서문세가의 인원들이 산을 오르기에 객잔에 기다리라 해 두었습니다.”

“잘했구나. 안 그래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장서도록 해.”

두 사람은 바로 산을 내려가 천통자가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 * *

덜컥―

방문이 열리자 안에는 긴장한 듯한 세 명의 남녀가 벌떡 일어나 경계를 했고, 검성을 확인하고는 중년 사내가 무기에 간 손을 거둔 채 예를 취했다.

“검성을 뵙습니다.”

중년인은 바로 의검단의 단주인 기명현이었다. 그가 깍듯이 예를 취하자 뒤에 서 있던 젊은 남녀도 바로 무기에 갔던 손을 거둔 채 바로 부복하며 예를 취했다.

“거…… 검성을 뵙습니다.”

천통자는 소리가 새어 나갈까 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황급히 닫았으나 이미 검성이 기막(氣幕)을 쳐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방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더 빨리 찾아뵙고 싶었지만, 이전의 정보망을 다시 가동하는 것이 늦어져 시일이 좀 더 걸렸습니다.”

“아니야.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다행히 아직은 시간이 충분할 듯싶군.”

기명현과 두 사람은 검성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이미 모든 것을 들은 천통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검성이 세력을 만든다고 하자 가장 반긴 것은 비천회였다. 검성이 세력을 만든다면 절대 정사의 문제나 사패의 위협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니 비천회로서는 검성의 세력 창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오죽하면 정사회담으로 인해 가장 바빠야 할 천통자가 아예 그의 주위에 머물며 검성의 일만 봐주고 있었다.

“일단 일어나 자리에 앉도록 해.”

검성은 구석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고, 남은 한 개의 의자에 기명현이 천통자의 눈치를 보고는 앉았다.

천통자는 검성의 뒤에 섰고, 기명현이 데려온 남녀는 기명현의 뒤에 선 채 검성을 신기한 듯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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