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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35화 (135/251)

135화― 검성의 결심(1)

화산 조양봉.

최근 조양봉을 오르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모두 약선의 거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무림맹의 사람과 화산의 인물 그리고 오늘은 서문세가의 사람들이 화산의 거처를 방문해 왔다.

“네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어찌 가주인 네가 여기까지 온 것이야?”

약선은 자신의 앞에 선 덩치가 큰 노인을 향해 서릿발 같은 호통을 쳤다. 약선에게 혼을 나고 있는 이는 바로 서문세가의 가주이자 약선의 막냇동생인 서문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조금 이상한 그림이긴 했다. 중년의 미부로 보이는 약선에게 백발(白髮) 백염(白髥)의 노인이 혼나는 모습이 말이다.

서문환도 서문세가의 후계자로서 약선에 의해 많은 영약을 먹은 덕에 이미 백 세가 넘은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이었지만, 약선처럼 젊음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누님, 제가 어떻게 찾아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조용히 살고 계시던 누님께서 무림의 중심에 뛰어들려고 하시는데요.”

약선이 정사회담에 나서는 일에 반대하기 위해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오히려 혼이 나는 것은 서문환 자신이었다.

“서문세가가 무림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채 살아왔지만, 지금은 우리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네가 가주로서 이제까지 세가를 잘 이끌어 주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서문세가도 나서야 할 때다.”

“나서야 한다면 제가 나설 테니 누님은 물러나십시오. 누님이 회담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

서문환이 마치 억지를 부리는 아이처럼 말했고, 그런 서문환이 약선은 부담스러웠다.

자신이 맡아야 했을 서문세가의 가주 자리였으나 서문환이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했다. 서문세가의 형제 중 가장 몸이 약했고 무공에 재능이 없던 그가 가주의 직을 잘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약선 덕분이었다.

자신이 거부했던 가주직을 맡게 된 서문환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많았던 막냇동생을 약선은 늘 아껴 왔었다.

현재 서문환의 손녀인 서문효인이 앓고 있는 병증을 서문환도 어릴 때 앓았고, 약선 덕에 현재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살펴준 약선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서문환은 서문애령이 밖으로 도는 이유가 가주의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자신을 위한 행동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공의 뛰어남은 서문환에게 없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과 세가를 운영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약선은 서문환의 능력과 야망을 알아보고는 가주의 직을 거부한 채 서문환이 세가에서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결국 그들의 아버지는 서문환에게 가주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것을 모두 알고 있는 서문환은 자신의 누이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누이가 검성을 그리워한 채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안타까워 검성을 늘 원망하며 살아왔기에 검성 때문에 정사회담에 나서겠다고 서찰을 보내온 약선을 말리려 한달음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남궁세가와 저희는 가문 간의 교류도 없고 그들을 위해 나서 줄 이유도 없습니다. 정말로 검성을 위해 이 일에 나서겠다는 말입니까?”

안 그래도 검성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서문환이었기에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약선은 난감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난 검성에게 큰 빚이 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난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도울 생각이야. 그러니 너도 내 결정을 도와주길 바란다.”

“하지만…… 누님. 이건 저희 서문세가에게도 아주 중요한 결정이 될지 모릅니다. 검성을 위해 세가를 끌어…….”

서문환은 화가 나서 말을 하다가 순간 약선의 기운이 달라짐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도와주지 않겠다면 그만 돌아가거라. 난 너에게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너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 아니야.”

“그게…… 그게 아니라 누님.”

서문환은 자신의 말실수를 했음을 느끼고는 약선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화가 난 약선은 등을 돌린 후였다.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너는 모두를 데리고 돌아가도록 해. 어차피 세가를 위험에 빠뜨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약선은 등을 돌린 채 서문환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고, 서문환은 안절부절하지못한 채 그녀의 등만 바라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세가에선 위엄 있는 가주인 서문환의 그런 모습에 서문세가 사람들은 신기한 듯 보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서문환을 따르는 자들은 자주 보는 모습인 듯 세가의 사람들의 동요를 살폈다.

서문환은 서문세가의 역사 속에서 유래가 없는 긴 시간 가주의 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 되지 않았을 때 장녀인 약선을 대신하여 가주의 직을 맡았고 지금까지 가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문환의 아들들은 관직에 들고 딸은 현재 왕의 후궁으로 간 탓이기도 했다. 서문환이 가주의 직을 유지하는 동안 서문세가는 무림의 일과 멀리했고, 사실상 서문세가를 무림의 세가로 보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문세가의 저력은 여전했다. 세인 중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보다는 서문세가가 무림의 최고의 세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서문세가가 무림맹 측에 힘을 실어 준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갖기도 했다.

“애령, 또 손님들이 찾아온 것이요?”

“누가 누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헉!!”

서문환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가 나 뒤를 돌아봤을 때 놀라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말도…… 안 되는……? 진하 형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검성이었다. 서문환은 검성을 알아보고는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먼발치에서 보았던 검성이 젊은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냐?”

검성은 자신을 바라본 채 넋을 잃은 노부가 서문환임을 약선의 전음으로 듣고서야 알았다.

처음 서문환은 어렸을 적부터 검성을 잘 따랐던 어린아이였지만, 자신의 누이가 검성을 연모하고 검성이 그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음을 알고는 나중엔 거리를 둔 채 지냈었다.

검성이 약선에게 말은 안 했지만 서문환이 직접 찾아와 약선에게 마음이 없냐고 다짜고짜 물어 온 적도 있었다.

검성의 정혼자가 살아 있을 때야 서문환도 이해하고 지냈지만, 죽은 후 한참을 곁에 있는 자신의 누이를 봐주지 않자 화가 나 따진 것이었다.

검성은 죽은 임소려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서문환은 약선이 평생을 검성을 바라본다 한들 검성이 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고, 약선을 설득해 보기도 했지만 그녀 역시 일편단심이었다.

이후 서문환은 검성에게 자신의 누이를 여자로 봐주지 않을 것이라면 곁을 주지도 말라고 말했고, 더는 검성을 보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처음 만난 것이었다. 무려 육십 년의 시간이 지나서 말이다.

“흠…… 검성이 살아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전의 젊은 모습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군요. 반로환동이라도 하신 겁니까?”

서문환이 예의를 차려 오자 검성은 실소를 머금고는 이내 약선의 곁으로 갔다. 이미 주위의 서문세가의 사람들은 서문환의 말에 놀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서문세가의 인원 중에도 검성의 제자가 절세미남이라는 소리에 천통자가 유통시킨 초상화를 산 여성들도 있었다. 검성이 나타나자 임진후라는 검성의 제자인 줄 알았는데, 서문환이 검성이라 말하자 다들 놀란 것이었다.

“애령, 괜찮소? 괜히 나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니에요. 어차피 사왕련으로 정사대전이 벌어진다면 서문세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거예요. 이미 이야기했었잖아요. 하지만…….”

검성의 따뜻한 말에 약선은 답하다가 서문환을 보았다.

“세가의 도움을 받긴 어려울 듯하네요. 미안해요.”

약선은 서문환에게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했고, 그녀의 말에 서문환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 검성은 서문세가의 인물들 사이에 누군가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검성에게 시선을 못 떼고 있던 서문세가의 여인들은 그 웃음에 탄성을 터트리기도 했다.

검성이 미소를 짓고 바라보는 곳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도 검성을 발견하고는 앙증맞은 걸음으로 검성의 곁으로 뛰어왔다.

“꼬마 아가씨, 오랜만이네요?”

한달음에 달려와 검성의 품에 안긴 소녀는 바로 서문환의 손녀인 서문효인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검성을 알아보고는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피, 꼬마라니요. 제 이름은 효인이에요.”

서문효인은 검성을 밀어내며 투정을 부렸고, 그 모습까지 귀여워서 검성은 미소를 거두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잘못했네요.”

검성은 서문효인은 안아 올렸고, 서문효인은 어리둥절하며 검성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예요? 아버지보다 어린데?”

서문효인은 스스로 할아버지라고 말한 검성의 말에 어리둥절했고, 검성은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럼 아저씨라고 불러 줄래? 그 이하는 너무한 것 같고…….”

검성은 등 뒤에서 약선의 시선을 느끼고는 웃음을 멈추었고, 약선은 서문효인에게 다정한 검성의 모습에 왠지 모를 질투심이 일어 다가갔다.

“효인이 이리 주세요.”

약선은 검성에게 안겨 있는 서문효인을 받아 안았다. 서문효인은 가기 싫어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약선 말고도 서문환 역시 눈에 불을 켜고 검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서문환은 검성에게 대뜸 이야기하곤 등을 돌려 걸어 나갔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한 모양새에 검성도 따라나섰다.

약선이 그를 말리려고 하다가 차라리 검성이 서문환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리지 않았다.

“예전엔 환이가 검성을 나보다도 더 좋아하고 따랐었지.”

약선은 이전의 생각에 빠졌다. 서문환은 무공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무림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특히 검성을 존경했고 서문세가에 가끔 들를 때마다 검성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검성이 약선의 마음을 오랫동안 받아 주지 않자 안 그래도 약선에 대한 미안함이 있던 서문환은 검성에 대한 마음이 원망으로 바뀌었고, 관계 자체도 소원해졌었다.

말없이 걷던 서문환은 한참을 가서야 발을 멈추었다.

“왜 이렇게 다시 나타나신 겁니까?”

서문환의 목소리는 차분해져 있었고 뒤 돌아 검성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 물었다.

“자세한 사정은 애령에게 듣도록 해. 지금은 그것보다는 가능하다면 서문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문환은 검성의 말에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자세한 이야기도 해 주지 않은 채 무작정 도움을 달라는 검성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정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면 절대 서문세가는 이번 일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서문환은 단호하게 말하고 검성을 노려보았으나 검성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문환의 마음은 검성도 이해하고는 있었기에 그의 억지스러운 말도 화가 나지 않았다.

“남궁세가를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까?”

“아니.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서문환의 물음에 검성은 살짝 뜸을 들였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이번을 기회로 세력을 만들어 볼까 한다. 나만의 세력을 말이지.”

검성의 답에 서문환은 살짝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와서 세력을 만든다는 말입니까? 당신을 따르던 그 많던 무리들을 내쳤던 것이 당신 아닙니까?”

검성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오자 서문환은 놀라서 다시 물었다. 검성이 무림의 활동할 시점에 그를 추종하던 인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의검단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검성을 돕기 위한 집단도 있었지만, 검성에게 세력을 만들자고 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요청을 거부한 채 사라질 때까지 혼자 무림을 주유한 검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검성이 세력을 만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변되는 정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세력의 탄생을 모두가 기다려 왔기에, 그 구심점이 검성이 되길 바라는 무림인들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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