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34화 (134/251)

134화― 활불의 정체(正體)

서장 창도의 불마사.

최근 불마사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창도엔 불마사의 승려들이 외부로 자주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불마사의 행동을 살피려는 무림과 다른 세력들의 외부자들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불마사는 무림 침공 이후 몇 개의 종파로 갈라지면서 힘을 잃었으나, 최근 활불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서장에 돌고 갈라졌던 종파들이 다시 하나가 되면서 서장의 세력들이 불마사에 흡수당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불마사의 외곽.

사람의 인적이 거의 닿지도 않는 외곽의 작은 사당.

그곳에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궁장의를 곱게 입은 사십 대의 여인이었고, 고운 얼굴이었지만 표정이 없어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여인은 주위를 살피고는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주렴이 쳐져 있는 마루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를 확인한 여인은 엎드려 예를 취했다.

“사마령(司馬玲)이 활불을 뵙습니다.”

“오랜만이다. 왜 이리 발길이 뜸하였느냐?”

주렴 안의 인물은 바로 불마사의 활불이었고, 그의 앞에 엎드린 여인은 불마사의 쌍존(雙尊) 중 지존(地尊) 사마령이었다.

“그간 조금 바빴습니다. 활불께서 움직이실 때 조금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성취는 있으셨습니까?”

“내 목소리를 듣고도 모르겠느냐?”

사마령의 물음에 활불은 물음으로 답했다.

“아…… 젊음을 되찾으셨군요. 다행입니다…… 흐흑…….”

사마령은 그제야 활불의 목소리가 이전에 봤을 때보다 어려져 있음을 눈치채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주렴이 걷혔고 활불의 모습이 드러났다.

약간은 깡마른 듯한 체구에 큰 키에 얼굴 또한 말라서 광대가 튀어나와 있고, 눈도 돌출되어 조금은 보기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마령은 자신을 안아 주는 활불의 얼굴을 만지며 더욱 흐느꼈다.

“흐흑……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사마령은 자신보다 마른 체구의 활불에게 안긴 채 울음을 더욱 크게 터뜨렸다. 활불은 그런 그녀를 안아 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 너나 나나 그 사람에게 속은 것이 아니었어. 그가 이야기한 모든 무공을 체득하자 노화되었던 몸이 다시 젊어졌어.”

“정신 지배는……?”

사마령은 활불에게 떨어지며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 또한 혈천마경(血天魔經)을 대성하니 사라졌어. 이제는 온전히 나로 있을 수가 있게 되었어. 이제 그 사람이 약속을 지켰으니 우리도 지켜야겠지.”

“그래요. 안 그래도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있어요. 천존을 이용한 작전도 성공적으로 전개되고 있고요.”

사마령은 눈물을 닦아내며 활불에게 말했다.

“천존을 이용해? 천존이라면 환영신마?”

“네. 당신은 제정신으로 그를 만난 적이 없겠군요. 그는 내가 당신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다 생각하여 나를 싫어하죠. 그에게 당신의 이름을 빌려 지령을 내렸는데 그는 그것을 실패했어요. 그것이 정사대전의 시발점이 되어 줄 거예요.”

사마령은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사마령은 고의적으로 환영신마에게 활불의 이름까지 꺼내며 그의 성질을 건드린 채 임무를 보내었다.

환영신마가 강한 사람이긴 하나 도후가 만만할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도후의 치밀한 성격상 환영신마가 나타나면 자신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싸움보다는 도주를 택할 거라 사마령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냥 도후가 도주했다면 분명 환영신마가 추격했겠지만, 자신이 일부러 활불의 이름까지 꺼내며 천존을 자극하며 주었던 임무라 그는 사마령의 예상대로 추격을 포기했다.

도후가 도주해서 놓쳤다는 것은 사실 환영신마에게 큰 허물이 되지 못하는 일이었다. 오절의 일인이기도 하고 그만한 실력자가 도주를 한다는 생각은 못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사마령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환영신마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이었고 일부러 추격을 포기해 버렸다.

환영신마는 자신이 사마령에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모두 사마령의 생각대로 놀아난 일이었다.

사마령은 활불에게 설명을 해 주었고, 다 듣고 난 후 활불은 크게 웃었다.

“그래도 천존은 우리가 크게 쓸 사람인데 너무 사이가 틀어지게 하지 말아.”

“알고 있어요. 우리의 복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요. 적당히 그의 환심을 살 방법도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한데 최근 무림에 검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어요.”

“검성께서 살아 계셨던가?”

활불은 크게 놀라 물었고, 사마령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검성의 제자 입에서 나온 이야기니 살아 있는 거 같아요. 벌써 제자가 둘이나 무림에 나왔고요.”

“우리 일에 방해가 되겠군…….”

활불의 표정이 조금은 침울해졌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사마령은 그를 안아 주었다.

“우리의 일만 생각해요. 그 사람과 약속했던 일도요. 우리에겐 할 일이 있잖아요.”

사마령의 위로에도 활불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군랑(君郞)…… 가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우린 이곳까지 스스로 선택해서 왔어요. 이제 모든 일의 끝이 보이고 있으니 마음을 다잡으세요.”

활불은 사마령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떼어 내었다.

“령매(玲妹)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오랜만에 듣는군. 정신이 확 들었어.”

“이제 자주 불러 드릴게요.”

활불의 말에 사마령은 얼굴을 붉힌 채 이야기했고, 그녀의 반응에 활불은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사마군(司馬君)과 사마령(司馬玲).

이것이 두 사람의 본명이었고, 하남성 일대에서 큰 세력을 유지했던 진천문(震天門)의 혈족이었다.

진천문은 정파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오절의 시대에 큰 부흥을 했는데, 문주였던 사마운을 검성이 각별히 챙겼던 것으로 무림에 꽤 소문이 자자했었다.

검성이 진천문을 각별하게 생각했던 이유가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천문의 원류(原流)가 검성이 익힌 비뢰검결(飛雷劍訣)과 같은 뿌리였었다.

비뢰검제의 동생이 세운 문파가 바로 진천문이었고, 나중에 모든 것을 안 검성은 따로 진천문의 진천무결(震天武訣)을 직접 보완해 주기도 했다.

애초에 진천무결은 비뢰검결을 모방하여 만든 무공이었기에 비슷한 점이 많았고, 부족한 부분을 검성이 직접 고쳐 주었다.

그렇게 새로이 완성된 진천무결은 이전의 위력과 전혀 다른 무공이 되었고, 진천문은 하남에서 더욱 세력을 강성하게 불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진천문을 시기하는 자들이 있었고, 그것은 진천문에게 큰 화가 되어 돌아왔다.

봉황금시(鳳凰金翅)를 진천문주인 사마운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우내삼존(宇內三尊)의 모든 비전이 봉황금시에 담겨 있다는 소문이 무림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사마운은 거짓 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사마운의 무공이 급성장한 것을 두고 우내삼존의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나면서 세인들은 그의 해명을 더욱 믿지 않았다.

사마운은 검성이 진천무결을 손봐 준 것이라 말까지 했지만 이미 의심을 시작한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의 말을 증명해 줄 검성은 이미 무림에서 사라진 이후였고, 정파는 물론 사파들까지 진천문을 압박하면서 사마운은 고립되었다.

결국 사파의 천마련이 용병을 대거 데리고 진천문을 치면서 진천문은 무너졌고, 진천문의 화를 정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했다.

오히려 천마문 용병에 정파들의 인물이 대거 합류해 진천문이 무너질 때 비급을 찾아 헤맸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우선 체중부터 늘려야겠네요. 너무 말라서 뼈밖에 만져지지 않아요.”

사마령은 활불의 승복 사이로 언뜻 보이는 가슴뼈들이 안쓰러운지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령매의 음식이 먹고 싶군. 내가 언뜻 정신을 차릴 때마다 늘 그리웠어.”

“알겠어요. 제가 음식을 준비해서 올게요. 그 후에 모든 일에 대해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그래. 이제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야 천마련을 부추겨 우리 진천문을 치게 만들었던 정파들을…… 아니, 무림인들을 쓸어 버릴 때가 왔어.”

활불의 눈빛이 바뀌자 사마령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마치 사당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조금 기다리세요. 다녀올게요.”

사마령은 정신을 차리고는 활불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일어섰다. 활불은 오랜 시간 전대 활불에게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간간이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불안정했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사마군의 정신이 아예 사라질까 봐 노심초사했었던 사마령이 활불이자 사마군인 그의 얼굴을 눈에 새기고 있는 것이었다.

활불도 자신을 위해 음식을 하러 가는 사마령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응시했다. 그 역시 사마령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진천문이 세상에서 사라지던 날, 그는 진천문의 모두가 죽어 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우내삼존의 비급을 찾겠다며 진천문을 헤집고 다니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천마련의 인원들 외에 진천문에 자주 찾아왔던 화산의 검수, 도움을 요청하러 왔었던 개방의 거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무림맹의 일을 도와 달라며 찾아왔던 무림맹의 인물도 있었다.

우내삼존의 비급에 눈이 어두워 정파의 무인들이 천마련을 등에 업은 채 진천문을 습격한 것이었다. 사마군은 그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에 새겼다.

그 난리 속에 사마군과 사마령은 진천문의 많은 사람의 희생 덕에 탈출할 수가 있었지만, 추격자들에 의해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은 천마련의 인물들이 아닌 개방과 무림맹의 정파인들이었고, 두 사람에게 우내삼존의 비급을 내놓으라고 회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내삼존의 비급을 본 적이 없었고, 없다고 이야기하자 그들은 본색을 드러낸 채 사마령을 겁탈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사마령이 개방의 거지와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치욕을 당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들을 구했다.

그가 바로 환영신마였다.

그들을 구해 준 환영신마는 누군가의 명에 의해 자신들을 찾아왔다고 했고, 두 사람을 그에게 데려갔다. 환영신마가 데려간 곳에 있던 인물은 깡마른 채 반송장과 다름없는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활불이라 말했다.

활불은 사마군이 자신의 후계를 이어 줄 적임자라고 이야기했고, 복수를 위해 불마사의 활불이 되라고 말했다.

활불의 이야기에 사마군은 하겠다고 했지만, 활불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여 모든 무공을 익혀야 한다 했고, 그것은 긴 고뇌와 시련의 시간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진천문의 혈사를 두 눈으로 확인한 사마군은 망설임 없이 활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마령의 반대 속에서도 강행했다.

전대 활불에게 전이대법을 받아 활불의 정신과 내력을 모두 받은 사마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활불의 설명대로 몸의 지배권이 활불에게 긴 시간 있었으나, 사마군의 몸이 활불의 무공을 익혀 가면서 주도권이 사마군에게 점차 넘어갔고, 다시 이십 년 만에 드디어 사마군에게 자신의 몸의 지배권이 완전히 넘어온 상태였다.

활불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신의 몸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사마군은 사마령과 함께 복수를 할 힘과 세력을 얻었다.

사마령은 외부 사람이었기에 불마사에서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지만, 그녀도 사마군의 돕겠다는 일념으로 불마사를 점차 개선시켜 나갔고, 현재는 불마사의 쌍존으로 불마사의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군사로서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사마령은 기지를 발휘해 무림 침공 이후 갈라졌던 불마사의 많은 종파들을 다시 통합시켰고, 사패 중 한곳인 만독곡과 불완전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한 동맹도 맺어 무림을 다시 침공할 준비를 단단히 해 둔 상황이었다.

사마군과 사마령의 원한과 전대 활불의 무림일통을 원하는 염원.

이 두 가지가 얽히면서 무림에는 큰 전운(戰雲)이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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