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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33화 (133/251)

133화― 암계(暗計)

“거기 있는 것이 누구시오?”

서안에서 한동안 머물렀던 도후는 제자인 유가영과 미홍을 두고 자신의 거처인 왕옥산으로 돌아와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온 도후는 누군가 자신의 오두막 앞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계를 하며 물었다.

무관한 사람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진법을 주위에 쳐두었음에도 그것을 뚫고 들어와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이거, 나를 잊은 건가? 섭섭하군.”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불청객이 돌아서자 도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청객은 그녀가 잊을 수 없던 인물이었다.

“살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도후 앞에 나타난 자는 바로 환영신마(幻影神魔)였다. 그는 화산에서 불마사 지존(地尊)의 명에 의해 이곳으로 와 있었다. 활불의 이름까지 빌려 그에게 지존이 내린 명은 바로 도후의 척살(刺殺)이었다.

“이전의 원한으로 날 찾은 건가요?”

도후는 자신의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음을 예감했다. 자신의 애도인 홍라염도(紅羅炎刀)는 제자인 유가영에게 물려주었기에 그녀에게는 무기로 사용할 도가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가 보통의 인물이라면 맨손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겠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자는 젊었을 적 자신과 검성이 동시에 덤벼서 겨우 패퇴시켰던 마인이었다.

“쿠쿡…… 원한이라…… 그런 것을 하고자 했다면 진작 찾았겠지. 그때 너희의 합공에 큰 피해를 본 것은 맞으나 난 살아 있으니 원한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지 않느냐?”

환영신마는 유들유들하게 도후를 바라본 채 웃으며 말했고, 그녀는 그런 환영신마가 꺼림칙했다.

“그럼, 왜 날 찾아온 것이지? 그 일 말고는 우리가 마주칠 일이 없는 걸로 아는데?”

“원래라면 야 마주칠 일이 없었으나…… 내가 속한 집단에서 너의 존재가 없어지길 바라니 어쩔 수가 없을 듯하군.”

환영신마는 말을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존의 지령이라면 거부했겠지만, 지존이 활불의 이름까지 빌려 자신에게 한 명령이었기에 환영신마에게는 거부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강자와의 싸움을 앞둔 그는 조금의 흥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림에서 사라진 후 환영신마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조직에 속해 요인 암살 임무는 계속 맡아 왔지만, 그와 겨룰 수 있을 만한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의 도후는 오랜만에 합을 겨루어 볼 만한 상대였고, 이는 환영신마의 잠자고 있던 혈기가 끓어오를 만한 일이었다.

“노마(老魔)가 속한 곳은 사패 중 한 곳이겠군? 불마사와 만독곡 어디지?”

도후는 환영신마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면 짚이는 곳은 두 곳 중 하나라고 의심했다. 북해빙궁은 무림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고, 뇌정궁 역시 무림보다는 빙궁과 치열한 싸움을 하는 곳이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나 보군. 우리가 대화를 많이 할 사이도 아니니, 이만 시작하지.”

환영신마는 도후의 물음에 답해 줄 생각이 없었고, 서서히 내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도후는 자신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기에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도후는 자신을 향해 투기를 뿜어내는 환영신마를 바라보며 살짝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무기가 없는 그녀로서는 환영신마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도후가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환영신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삭―

환영신마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도후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도후는 바로 움직였다.

퍼벙―

도후는 바로 뒤돌며 쌍장을 내질렀고, 사라졌던 환영신마는 어느새 그녀의 배후에서 덮치려 하고 있었다.

퍼버벙― 퍼벙―

두 사람은 순식간에 권과 장 그리고 수법을 교환하며 서로의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고, 어지럽게 어울리는 그들의 초식이 하늘에 수놓아졌다.

콰과과광―

도후와 환영신마의 격돌은 주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뻗은 일장(一掌)은 땅이 파이게 했고 어지럽게 교환한 수법(手法)은 주위 나무와 기물을 파괴했다.

“크크,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는구나! 어린년의 명령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이런 즐거움이 따를 줄이야!”

환영신마는 기분이 좋은지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그의 전신은 이곳저곳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후의 수법을 다 막아 내지 못해 생긴 상처들이었다.

도후에게 도가 없었지만, 이미 절정의 기량에 도달한 그녀에겐 두 팔이 두 자루의 도나 다름없었기에 도법을 수법으로 바꾸어 펼치고 있었다.

“나름 오절 중에 네가 가장 약하다고 생각을 했다만, 그건 내 오판이었던 것 같군.”

환영신마는 마음을 다잡듯이 이야기했다. 사실 불마사는 검성을 제외한 네 명의 오절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오절이 이용하려 했던 무림맹주 우금도 자신들이 섭외하여 그들의 지배하에 두었다.

환영신마는 불마사를 위해 무림에서 비밀리에 움직이는 와중에도 오절의 동향을 수시로 살피고 있었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도후가 그들 중엔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검성이 사라지고 오절의 전원이 다들 의욕을 잃긴 했지만, 권왕과 신투는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나가면서도 무공 수련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도후는 십인회주 자리에서 물러난 후 왕옥산에 은거하며 무공과는 담을 쌓고 있었기에 환영신마는 그녀를 어느 정도 얕보고 있었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도록 하지.”

환영신마는 말을 내뱉은 동시에 합장을 했고, 눈을 살짝 감은 채 내력을 다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쿠오오―

환영신마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이 엄청난 기운이 발산되었고, 도후는 갑자기 달라진 환영신마의 기도에 놀란 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저 노마두는 어찌 아직 저런 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환영신마의 엄청난 기운에 도후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도후와는 달리 환영신마는 여력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차이를 확인하자 도후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화풍곡의 후계자로서 오절에 이름을 올릴 때만 해도 최고의 여류 고수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검성과 마지막으로 겨룬 뒤 그가 사라지고 나서는 무공 수련을 하지 않았다.

제자에게 모든 것을 전수한 뒤 어린 나이에 십인회의 수장이 되어야 했던 유가영에게 내력까지 전수해 주었고, 그 탓에 도후의 현재 몸 상태는 전성기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무기가 없는 도후는 더욱 약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왜 굳이 나를 죽이러 온 것인지 몰라도, 내가 죽는다면 그 사람과 가영이에게 큰 해가 될 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도후는 환영신마가 속한 조직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자신을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아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도후는 결심하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고, 내력을 끌어 올려 환영신마의 공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잡념을 버린 건가?”

환영신마는 도후의 기백이 달라지자 조금 더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미 손속을 겨루면서 힘의 차이는 환영신마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을 수행과 담을 쌓은 도후가 환영신마와 실력 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환영신마는 오랜만의 대결이라 도후에게 맞춰 주면서 즐기고 있었고, 그렇기에 일방적인 대결이 되지 않았다.

결심을 한 도후의 기운은 잔잔해진 바다같이 고요했고, 반대로 환영신마의 기운은 맹렬하게 회오리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움직이며 강렬한 부딪침을 보여 주었다.

콰과과광―

퍼버버벙―

두 사람의 격돌은 주위의 기물을 다시 파괴하기 시작했다. 권풍(拳風)과 수강(手罡)이 난무하자 도후의 오두막은 어느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의 주위엔 커다란 구덩이가 군데군데 생겼고, 곱게 묶여 있던 도후의 머리는 장신구가 부서져 풀려 있었다.

도후는 살짝 물러나 자신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긴 머리를 옷자락을 찢어 질끈 묶었다.

“당신도 나이를 먹고 제법 바뀐 듯하군요?”

도후는 머리 정리를 마무리 지으며 자신을 기다려 주고 있는 환영신마를 향해 말했다.

“이렇게 제대로 겨루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 그것만으로 널 기다려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환영신마는 도후가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환영신마는 무림에서 활동할 시점에 악인(惡人)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상대가 허점을 보인 채 있는데도 공격하지 않은 채 기다려 주는 것을 믿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당신의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듯하군요.”

머리를 묶은 도후는 숨을 내리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도후의 말에 이상함을 느껴 되묻던 찰나

퍼벙― 퍼버버벙―

갑자기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무언가 날아들더니 연달아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뿌연 연무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이런…….”

환영신마는 연무가 시야를 가리자 바로 두 팔을 휘저어 바람을 일으켰다. 가벼운 팔의 휘저음이었지만 가득 찬 연무를 한 번에 날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밝혀진 시야엔 자신의 앞에 있었던 도후가 사라지고 없었다.

“허허…… 설마 내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환영신마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도후는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근처를 찾아볼까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포기한 채 공허한 하늘만 바라보았다.

“어차피 달갑지 않던 일이었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환영신마는 쉽게 포기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애초에 불마사의 지존의 명으로 도후를 죽이러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였기에 이 일의 크게 성공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은 도후를 죽이기 위해 찾아갔고 그녀는 도망갔다가 사실이고 그것을 전하면 될 일이었다.

“이리 나오너라.”

환영신마가 외치자 중년의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나 부복했다.

“천존을 뵙습니다.”

나타난 이는 불마사의 지령이었다. 그전에 화산에서 환영신마에게 지존의 지령을 전했던 인물이었다.

“그년의 명으로 날 따라다녔느냐?”

“아…… 아닙니다. 그저 전…… 천존께서 일을 마치시면 전령이 바로 필요하실 듯하여 따르고 있었습니다.”

천존의 말에 그는 긴장하며 말했다.

“뭐, 그렇다고 해 두지. 너도 봤겠지만 도후가 도망가 버렸으니 이번 일은 실패라고 그년에게 전하도록 해라.”

“네. 도후가 천존을 당해 내지 못해 얄팍한 수를 써서 도망간 것을 전하겠습니다.”

그 말에 환영신마는 웃어 보였고,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는 지존의 명을 받아 천존이 받은 지령을 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임무였다.

무슨 임무인지 몰랐던 그는 도후와 환영신마의 대화를 듣고서야 지령이 무엇인지 알았고,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자 최대한 싸움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으려 멀리 물러나 있었다가 나타난 것이었다.

“크큭, 그년이 어떤 이유로 도후를 죽이려 한지 몰라도 그 수가 실패했으니 제법 당황하겠구나?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쉽긴 하군. 크하하!”

환영신마는 도후를 놓친 것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고 지존의 수가 실패했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런 환영신마를 그는 살짝 불쌍한 듯 쳐다보았다.

‘이미 지존은 천존이 이 일에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

불마사의 지령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지존은 천존에게 지령을 내리면서 그에게 또 다른 지령을 주었는데, 천존이 임무를 실패할 테니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춰 주라는 것이었다.

지존은 애초에 천존이 도후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수를 위해 천존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는 환영신마는 그저 지존의 수가 실패했다는 것으로 알고 기뻐서 파안대소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용당한지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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