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의검단(義劍團)
[무림맹과 사왕련이 정사회담의 날짜를 정하였다.]
[말일에 하남성 정주(鄭州)의 화경부(華景府)에서 무림맹의 대표 다섯과 사왕련의 대표 다섯이 만나기로 정해졌다.]
정사회담의 성사에 대한 소문은 전 무림에 파다하게 퍼졌다.
사왕련이 안휘성 일대는 자신의 영역으로 넣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갔던 정사의 상황이 그나마 완화되는 듯했다.
처음 무림맹에서 회담 제의를 했을 때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다들 회의적으로 봤지만, 약선이 흑월도존의 병세를 봐주는 조건이 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담은 급진전되며 결국 성사가 되었다.
하지만 성사에 관해 다른 소문들도 퍼져 나갔다. 애초에 무림맹에서 흑월도존의 치료를 조건으로 내세웠음에도 사왕련이 그 내용을 감추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나가며 사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알력이 생겨나고 있었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산중(山中).
달빛만이 시야를 허락한 시간. 여러 명의 인원이 어둠을 뚫고 산을 가로질러 오르고 있었다.
한참 산을 오르던 그들은 불빛을 발견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불빛이 있는 곳에는 한 사내가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닥불 앞의 사내는 바로 검성 나진하였다. 그를 발견한 사내들은 모닥불 곁으로 다가섰다.
“단주(團主)님, 초상화의 그자가 맞습니다.”
한 명의 사내가 검성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에게 말했고, 중년인은 자신이 다가왔음에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불을 살피고 있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검성의 제자 임진후가 맞으시오?”
단주라 불린 중년인이 검성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제야 검성은 모닥불을 살피던 불쏘시개를 내려놓은 채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의검단(義劍團)의 단주가 직접 행차하셨나 보군요. 이리 앉으시죠.”
단주라 불린 중년인이 먼저 검성의 맞은편에 앉자, 남은 두 사람은 그의 뒤편에 섰고 검성은 자신의 앞에 앉은 자를 찬찬히 살피듯이 보았다.
‘기운을 잘 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공의 경지가 꽤 높군. 동하가 후계자들을 잘 키웠군.’
검성이 살짝 미소를 짓자 단주라 불린 중년인이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대가 우릴 이곳으로 부른 것이 맞소?”
“맞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고 싶어 표식과 서찰을 남겼습니다.”
“음…… 표식을 남기는 것은 검성 어르신에게 들은 것이요? 검성께서도 우리를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는데……?”
단주라 불린 중년인은 여러 가지 감정이 가슴속에서 북받치는 듯 말소리가 살짝 울컥해 보였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의검단.
무림의 누구도 알지 못하고, 단 검성만이 그 존재를 아는 무림 단체였다. 검성이 무림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의 손에 도움을 받거나 그를 존경했던 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룬 단체였으나, 단 한 번도 무림에 드러난 적이 없었다.
의검단의 초대 단주는 기동하라는 인물로, 이민족 출신이었다. 고려의 무인 가문이었던 기동하는 가문이 누명을 쓰고 대륙으로 도망쳐 나왔고, 그 과정에서 검성의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았던 검성이었지만, 기동하는 검성을 따르던 자들을 모아 의검단을 만들었고, 소수의 인물로 나중에라도 검성의 힘이 되기 위해 음지에서 힘을 모았다.
기동하는 검성을 찾아 혹시나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어떤 곳에 표식을 남겨 달라고 말했고, 검성이 찾는다면 자신들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검성을 지키는 검이 되겠다고 맹세를 했다.
하지만 검성이 그들을 찾는 일은 없었고, 의검단의 존재도 무림에 드러날 일이 없었다.
스르릉―
검성은 말없이 정천검을 뽑아 의검단의 단주 앞에 내밀었다. 검신(劍身)에 새겨진 정천(正天) 글자를 확인한 그는 몸을 떨었다.
“의검단의 단주 기명현. 주군을 뵙습니다.”
그는 검성의 애검인 정천검을 확인하자 바로 무릎을 꿇었고, 그의 뒤에 있던 두 사람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동하를 많이 닮았다고 했더니 그의 후손이었군.’
검성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기명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미련하게 자신을 따랐던 기동하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에 새삼 그와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단주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검성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기명현의 뒤의 두 사내는 바로 물러섰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의검단의 조직은 건재한가?”
검성의 짧은 질문에 기명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검성의 질문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이미 정천검까지 확인한 마당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묻지 않았다.
“의검단에 대해 알고 계신지 모르지만 두 개의 가문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던 조직입니다. 검성이 살아 계실 때야 다들 의검단으로서 조직을 지탱해 주었지만, 검성이 사라지고는 모두 흩어지고 말았지요. 현재로서는 저희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검성의 제자분이 의검단을 찾은 것을 안다면 힘이 되어 줄 사람들은 많을 것입니다.”
검성이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을 보이자 기명현은 발끈하며 말했다.
“검성이 저희를 찾아주시기를 오랫동안 바랐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림의 패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검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랬던 사람들입니다. 이미 의검단에 참여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들의 뜻은 이어지고 있을 겁니다.”
“미련한 사람들이군. 난 그들을 찾으려고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건만…… 아직까지 날 위해 모일 자들이 있다는 말인가?”
검성의 말에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던 기명현은 무언가를 깨닫고 몸을 떨었다.
“설마…… 검성 본인이십니까?”
기명현은 설마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최근 알려진 검성의 생존 소식과 검성이 보여 주는 어법 등 모든 것이 검성 본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기다린 것이지? 난 너희에게 해 줄 것도 없는데 말이야.”
검성은 대답 대신 물었고 자신을 미련하게도 기다려 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후회되기도 했다.
“예전에 저희 아버지께서 찾아가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명현은 살짝 검성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검성 본인이라고 확답한 것은 아니었지만, 맞다고 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무림을 떠나기 전 즈음에 찾아왔었지.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늘 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검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거라고. 늘 검성의 은혜를 감사하며 도움이 되기 위해 무림인이 되셨다 했습니다. 절대자였던 검성이었지만 세력을 갖지 않으셨기에 혹시나 나중에 세력 간의 다툼에 휘말렸을 때 도움이 되고자 직접 지금의 의검단을 결성하셨죠.”
“…….”
검성도 예전에 기동하가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이윤후가 무림에 나갔을 때 의검단이 이윤후를 찾아올 수도 있다 여겨 충고를 했던 부분이었는데, 이윤후가 만나지 못했다 했기에 지금 와서는 검성이 직접 찾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쫓기듯이 이곳으로 올 때, 검성께서 구명해 주신 덕에 어머니를 만났고 저를 만날 수 있다고 늘 자랑하듯이 이야기하셨습니다. 검성의 검과 방패가 되길 원하시며 의검단을 만드셨지만, 검성이 그저 무림의 일에 휘말리시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돌아가셨던 분입니다. 의검단의 대부분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
“검성이 무림에서 사라지고 의검단의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기에 다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검성이 나타난 것을 알면 다시 의검단이 되어 줄 이들이 많을 겁니다.”
“이미 처음 뜻을 모은 자들은 죽고 난 후일 텐데. 다시금 세력을 모아 줄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검성의 말에 기명현은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검성이 자신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자 그것에 감격한 것이었다.
“의검단을 결성했던 분들은 대부분 검성께 큰 은혜를 입은 분들입니다. 그 후손들도 그 은혜를 알고 검성을 도와줄 분들이 많을 겁니다. 검성께서 원하신다면 바로 모아 보겠습니다.”
“세력을 모으되 당장 필요한 것은 한두 명 정도의 호위라네. 믿을 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로 빨리 붙여 줄 수 있는가?”
“호위요?”
기명현은 살짝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검성의 실력에 호위가 필요할 리는 없었기에 검성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내 제자를 호위할 자가 필요하네. 실력이 뛰어난 아이지만 무림의 경험이 적어 그 아이 곁을 지켜 줄 자들이 좀 필요해.”
“아…… 혹시 남궁세가에 있는 뇌절검룡(雷切劍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뇌절검룡? 그 아이가 그렇게 불리는가?”
검성은 이윤후를 칭하는 명호임을 눈치채고는 물었다.
“네. 남궁세가에서 사왕련의 사왕 중 일인인 미후왕과 호각으로 싸운 것이 소문나서 다들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미후왕과 싸울 때 마치 번개를 자르는 듯한 검 솜씨를 보여 주었다 하여 소문이 자자합니다.”
“허허~ 녀석 멋진 명호를 처음부터 얻었군.”
검성은 이윤후의 이야기에 괜히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었고, 기명현도 그런 검성의 모습을 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사실 기명현은 이윤후가 처음 무림에 나타났을 때 만나 보려 했으나, 이윤후가 워낙 신출귀몰하게 백아를 타고 이동했기에 나타난 곳에 가면 사라지고 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궁세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로 이동하려던 차에 검성의 표식을 보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기명현도 워낙 어릴 때부터 자신의 아버지에게 검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 자연스럽게 검성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가득했다. 지금도 검성을 직접 마주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을 겨우 참아 내고 있었다.
“혹시 호위를 붙이는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요?”
기명현은 검성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심장에 위험했기에 살짝 눈을 마주치는 것은 피한 채 물었다.
“미후왕과 호각으로 싸웠다고 하는 검성의 제자분을 호위할 만한 인물이 현 무림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검성께서 제자분의 실력을 가장 잘아실 텐데 저희까지 찾아 맡기시려는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듯하여…….”
기명현은 검성이 대답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다시 말했고, 검성은 살짝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 아이는 무림의 일에 어둡다. 무림은 간계(奸計)가 가득한 곳이라 걱정스러운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검성은 말을 하다가 살짝 뜸을 들였고, 기명현도 두 번째 이유가 검성이 자신을 찾은 진짜 이유일 것이라 생각해 검성의 말에 집중하였다.
“윤후 그 아이가 위험에 빠질지 몰라 그것을 지켜 줄 자들이 필요하다. 너희를 찾아 이런 부탁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믿을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해 너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검성은 천통자가 이윤후에게서 단명(短命)의 상(像)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최대한 지금같이 어지러울 때 이윤후를 무림에 내놓고 싶지 않았으나 현재 상황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윤후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기에 천통자를 통해 의검단이 현재까지 존재하는지 알아보았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표식을 남기고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호위에 적합한 자들이 있습니다. 검성께서 명만 내려 주신다면 남궁세가로 보내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게. 의검단의 세력을 모으는 것은 시간을 두고 하도록 해. 당장 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검성은 정사대전이 혹시나 벌어졌을 때나 사패 및 마교와의 싸움이 일어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세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자네는 먼저 일을 마치고 나를 다시 찾아오도록 해. 괜찮다면 나와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그렇게 해도 됩니까?”
기명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검성을 따를 기회가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큰 영광이자 기회였다.
“그럼, 당장 일을 처리하고 다시 찾도록 하겠습니다.”
“일을 마치면 화산으로 오게. 약선의 거처에 있을 것이니.”
“알겠습니다.”
기명현은 기쁜 마음에 일어나 검성에게 예를 취하며 멀리 물러나 있는 자신들의 수하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검성은 모닥불을 꺼뜨린 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