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군룡세가(群龍勢家)(3)
남궁나연의 말에 뒤에 있던 창연이 깜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이윤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고 이 자리에 나왔군요?”
담수화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남궁나연이 녹록지 않은 상대임을 느끼고 있었고, 대화의 주도권도 그녀가 내내 쥔 채 자신을 흔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현재 담가와 남궁세가의 현재 상황은 친할 수가 없는 관계인데 굳이 이런 시기에 그쪽에서 우릴 찾아왔다면 뻔한 이유겠죠. 사실은 조금은 아니길 바랐지만 담 장로의 조금 전 이야기로 확신도 했고 실망도 같이 했어요.”
“실망이요? 그게 무슨 말일까요?”
담수화는 남궁나연의 말이 궁금하여 되물었다.
“전 무림맹의 회의에서 다들 저희들에게 지원을 미루는 것이 문파들의 이기적인 마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담 장로가 한 이야기를 들으니 군룡세가에서 몇몇 문파의 의견을 막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남궁나연의 말에 담수화를 허탈한 웃음을 보였고, 무표정으로 있던 담석영도 살짝 표정이 변하였다.
사실 군룡세가는 사왕련이 안휘성 일대를 자신들의 영역이라 선포한 이 시점이 남궁세가를 밀어내고 세가연합회에 들어갈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군룡세가는 친분이 있는 문파들을 설득해 남궁세가의 지원을 반대하도록 조율했다. 무림맹의 회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에는 군룡세가의 이런 의도 탓도 있었다.
남궁나연도 조금은 의심만 했던 부분이었지만 담수화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이야기를 해 버렸고, 그 발언에서 남궁나연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허허…… 그건 남궁 소저의 지나친 억측이군요. 저희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습니다.”
담수화는 발뺌을 하듯 이야기했고, 남궁나연도 저들이 순순히 인정할 리 없다 여겼기에 더는 추궁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군룡세가는 어지간히도 세가연합회에 들어가고 싶은가 보군요.”
“남궁세가도 세가연합회에 소속되어 있으니 그나마 이전의 위세를 뽐내는 것이지, 세가연합회의 그늘이 없다면 누가 남궁세가를 무서워하긴 하나요?”
남궁나연의 도발 섞인 말에 담가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고, 그녀의 말에 지금껏 평정심을 잘 유지하던 남궁나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궁세가는 비월검공이 죽고 난 후 별 볼 일 없는 문파가 아닌가요? 현재 남궁세가의 가주가 무림맹의 임시 맹주가 된 이유도 모든 문파들이 만만하게 생각하여 임시직을 맡긴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고요.”
“그 입을 닥치시오.”
촤장―
담가희의 말에 창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았고, 그와 동시에 담석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넣어라.”
담석영은 창연을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닥치시오. 아무리 군룡세가의 사람들이라고 하나 감히 남궁세가의 가주를 능멸하고 어디서 큰소리를 치시오.”
창연은 담석영의 기세를 이겨 내려는 듯 큰소리를 치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켜보던 담수화는 전혀 막을 의도가 없어 보였고, 이윤후는 중간에서 괜히 난감해하고 있었다.
‘말려야 하나…… 아니면…….’
이윤후는 살짝 남궁나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모욕을 당한 것에 격분하여 담가희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두 여인은 서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일단 다들 진정하시죠. 창연도 검을 거두세요.”
이윤후는 삭막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일어나 창연과 담석영을 말리려 들었고, 남궁나연도 그제야 담가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담가희는 남궁나연이 먼저 시선을 거두자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남궁나연은 그런 담가희를 보고 괜히 약올라 하고 있었다.
“창연, 검을 거두어. 우린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
“하지만…….”
창연은 남궁나연의 명령에 결국 어쩔 수 없이 검을 거두었고, 창연이 검을 거두자 담석영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담가에서 원하는 것은 세가연합회의 합류인가요?”
“처음부터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 모르는 듯하군.”
담수화는 남궁나연이 마치 세가연합회가 별것이 아니라는 양 이야기하자 조금은 빈정 상한 듯 말했다.
“남궁세가라는 현재 허울뿐인 이름을 빼고 나면 뭐가 남지?”
그 질문 뒤에 있는 의도가 정확히 읽히지 않았기에 남궁나연이 입을 열지 못하자, 담수화가 말을 이어 나갔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정파는 두 개의 큰 세력으로 분류되며 오랜 역사를 지내 왔지. 자연스럽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이름은 큰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정파를 대표하는 두 세력이 되어 왔지. 거대한 권력을 너희 남궁세가는 자연스럽게 누려 왔다는 것이다.”
담수화는 어느 순간부터 남궁나연에게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누려 왔기에 그것이 얼마나 큰 권력이었는지 모르고 마치 그것을 노리는 우리가 우습다는 듯 보는 네 알량한 시선이 정말 가소롭구나. 오대세가 연합회 소속이 아닌 남궁세가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그건…….”
“사왕련의 사왕 한 명인 미후왕을 당해 내지도 못했다지? 그것이 현재의 너희 남궁세가가 아니더냐? 비월검공이라는 뛰어난 수장을 잃어버린 남궁세가는 현재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합당하냐?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담수화의 호통에 남궁나연은 반박하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런 남궁나연을 바라보는 창연도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 담가가 세가연합회를 노리는 것이 부당한 것이냐? 아니면 너희 능력 없는 남궁세가가 어울리지 않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당하냐?”
담수화의 거듭된 호통에 남궁나연은 결국 눈물이 흘렸다. 담수화의 이야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옳았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담수화가 이야기한 모든 내용이 남궁세가의 현실이었다. 비월검공이 갑자기 죽고 그녀의 아버지인 남궁인이 갑작스레 가주가 되었다.
남궁인은 애초에 무림에 뜻이 없는 인물이었고 무공의 수준 또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인 말고 세가주가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정사대전과 마교와의 거듭된 싸움으로 남궁세가의 혈족들이 많은 수가 죽었기에 남궁인을 대신할 만한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남궁세가의 큰 비극이었다.
“어르신도 이제 그만하시죠.”
울고 있는 남궁나연의 앞으로 이윤후가 나서며 말했고, 담수화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닫았다.
“남궁세가가 아무리 예전의 영화를 잃었다고 한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그쪽이 비난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
“군룡세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얻으십시오. 이렇게 한참 어린 여인을 겁박하지 마시고요.”
이윤후는 살짝 흥분하여 이야기했다. 남궁나연이 꽤 충격을 받은 듯하자 조금은 그도 화가 난 상태였다.
자신도 군룡세가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담수화가 남궁나연을 호통 치듯이 이야기한 부분은 너무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한참 어린 연배라고 하나 남궁 소저는 남궁세가의 가주 대리의 입장입니다. 일개 장로인 그쪽이 함부로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사과부터 하십시오.”
“뭐라고요? 그게 무슨…….”
이윤후의 말에 담가희가 발끈하며 나서려 했으나 담석영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오라버니, 저자가 숙부님에게 함부로…….”
“너는 더 이상 나서지 말도록 해라.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담석영은 담담하게 담가희에게 충고했고, 그녀도 더 이상은 왈가왈부하지 않은 채 물러섰다.
“저희 숙부님께서 먼저 실례를 했으니 사과를 하겠습니다. 남궁 소저에게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남궁 소저에게는 이 노부가 실례를 범했소이다. 용서를 해 주길 바라오.”
담석영이 먼저 고개를 숙이자 담수화도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예상치 못하게 숙이고 들어오자 오히려 이윤후가 살짝 당황해했다.
“사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저들은 아가씨를 우습게 본 것은 물론 가주님까지 폄하했습니다. 이렇게 넘어간다면 저희 남궁세가를 더욱 우습게 볼 것입니다.”
창연은 직접적으로 막말을 했던 담가희를 향해 소리쳤고, 그런 창연의 말에 담수화는 곤란한 듯 담석영을 바라보았다.
창연의 말처럼 담수화가 남궁나연에게 하대를 하며 호통을 친 정도는 어느 정도 이해를 구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담가희가 남궁세가의 가주를 상대로 한 말은 도저히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담석영이 먼저 굽히고 나선 것이었는데 창연이 다시 그 문제를 말하자 담수화나 담석영 모두 곤란한 듯 표정을 보였다.
담가희도 그제야 자신의 발언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는지 안절부절하지못하고 있었다.
“담가의 발언은 일단 여기서 다툴 문제는 아닐 듯하네요.”
남궁나연은 마음을 추스른 듯 입을 떼었고,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담 소저가 어떠한 위치기에 감히 남궁세가의 가주를 입으로 저렇게 능멸을 할 수가 있는지. 이 부분은 남궁세가의 모든 힘을 빌어서라도 문제 삼도록 하겠습니다.”
“남궁 소저…… 그것이…….”
남궁나연 역시 담수화의 말에 큰 상처를 입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으나, 이윤후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니 담수화의 발언보다 담가희의 발언이 더 큰 무례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이는 분명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였다.
담가희가 아무리 어리다 한들 담가의 가주의 딸인 담가희가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막말을 한 것이 무림에 알려진다면 담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를 것이 분명했다.
남궁세가가 아무리 약해졌다고 하나 여전히 명문세가였다. 구파일방과 다른 문파 중엔 남궁세가에게 여전히 호의적인 문파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담가에서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현재 무림맹의 맹주인 남궁인에게 막말을 한 것이 알려진다면 세가연합회에 남궁세가를 밀어내는 것은 물론 여론적으로도 담가는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았다.
담가로서는 염원하던 세가연합회의 합류를 위해서 명분이 확실해야 하는데, 가장 보기 좋은 모양새는 남궁세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담가는 일부러 무림맹의 남궁세가 지원을 발목 잡고 있었고, 오늘 자리에서 지원을 대가로 남궁세가 스스로 세가연합회를 내려오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주한 남궁나연은 만만치가 않았고, 오히려 데려온 담가희가 말실수를 한 탓에 담가로서는 난감했다.
“남궁 소저가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일은 우리 선에서 마무리 지어 주시죠.”
담석영은 정중하게 남궁나연을 향해 다시 머리를 숙였고, 그 모습에 담가희는 더욱 울상이 되어 갔다.
“제가 원하는 대로요?”
남궁나연은 확실히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느꼈고, 이윤후를 살짝 바라보더니 이내 담석영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남궁 소저께서 이 자리에서 가희의 목을 원하신다면 제가 바로 베어서 드리겠습니다.”
“오라버니…….”
담석영은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랐고, 당사자인 담가희는 더욱 놀라 몸까지 떨고 있었다.
담석영이 허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담가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닥친 이 상황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남궁나연도 처음엔 담석영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담가희나 담수화의 반응을 보아 그가 진심임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넘길 수는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지만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럼…….”
남궁나연은 뜸을 들이면서 담가의 모두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시선이 담석영에게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