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군룡세가(群龍勢家)(1)
“정말로 장관(壯觀)이구나!”
이윤후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황산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고 탄성을 질렀다. 황산은 유난히도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많았는데, 그런 바위산 사이에 자란 소나무들의 녹음이 우거져 아름다웠다.
거기에 이른 아침의 여명과 운해(雲海)에 둘러싸인 기암괴석은 세상을 많이 둘러보지 못한 이윤후에게 감탄을 나오게 하기 충분했다.
타닷―
이윤후는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높고 가파른 바위 사이를 헤집어 다니기 시작했고, 눈으론 황산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반 시진을 넘게 뛰어다닌 이윤후는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폭포로 도착했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고여 있는 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탈의를 시작한 이윤후는 알몸이 된 채 폭포수 아래 몸을 담갔고, 깊게 잠수한 그는 한참이 돼서야 물 위로 올라왔다.
“역시, 이곳이 산의 정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군.”
이윤후는 눈을 감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대자로 물에 뜬 채 일각 가량을 그대로 있었다.
그가 황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이유는 만상오행공의 수련을 위해 산의 정기가 강한 위치를 찾는 행동들이였고, 바로 산의 중심이자 물이 모이는 이곳이 산의 정기가 가장 강했다.
이윤후는 몸에 힘을 뺀 채 물에 떠 있는 상태로 호흡을 하며 산의 정기를 마시고 뱉고를 거듭했고, 체내의 오행의 기운을 순환하며 독기를 빼내고 있었다.
만상오행공 수련의 깊이가 어느 정도 도달하면서 인위적으로도 체내의 독기를 태워 낼 수도 있었지만, 검성은 꼭 자연적으로 독기를 태우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다고 말했다.
검성의 그 말을 따르기 위해 이윤후도 이른 아침부터 나와 산을 둘러보며 산의 정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았던 것이었다.
이윤후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피부는 더욱 윤기가 나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그런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다.
츠츠츠―
체내에 화기를 일으켜 물기를 마르게 한 그는 한쪽에 벗어 두었던 옷을 챙겨 입었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은 후 남궁세가를 향해 움직였다.
* * *
“남궁 소저, 여긴 어쩐 일로……?”
산행을 다녀온 이윤후는 자신의 숙소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남궁나연이 언제 왔는지 자기 방인 양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표정 안 좋은 창연까지 뒤에 떡하니 있으니, 이윤후는 방에 들어서는 게 살짝 두려울 지경이었다.
“오늘 오찬에 함께하기로 했잖아요?”
“저기 지금 조식(朝食)도 못 먹었는데요.”
이제 진시(辰時)를 지난 시각이라 오찬을 이야기하기엔 이른 시간이었고, 일찍부터 명문가의 여인이 남자의 방에 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온 거랍니다. 오찬에는 식사를 즐기는 분위기가 아닐 듯하여 아침 식사는 편하게 먹고 싶어서요.”
“식사를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뇨?”
남궁나연의 말에 살짝 의문이 생긴 이윤후는 물었지만, 그녀는 답할 생각이 없는 듯 등을 돌리고 있었다.
“창연, 식사를 이쪽으로 들이라고 해 줘.”
“네. 알겠습니다.”
남궁나연의 말에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창연이 답하고는 방을 나섰고, 방에는 이윤후와 남궁나연 둘만 남게 되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려고요?”
“네. 매일 혼자만 먹어 와서. 저랑 같이 좀 먹어 주시면 안 되나요?”
남궁나연이 살짝 사정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이윤후는 결국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남궁세가는 현재 가주가 부재 중이었기에 많은 책임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터였다.
창연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네모반듯한 탁자를 먼저 가져와 놓아주었다. 이윤후의 방은 손님이 묵는 방이라 작은 탁자만이 있었기에 음식을 들이기 위한 탁자를 먼저 가져온 듯했다.
탁자가 방에 들어온 뒤 바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식으로는 조금 과한 듯한 음식들이었다.
“이거 잘 먹겠습니다.”
이윤후는 긴 수행으로 인해 이만한 진수성찬을 받아본 기억이 가물가물했기에 일단은 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많이 드세요. 오후에 식사하기 힘들 테니 배를 제대로 채워 두세요.”
남궁나연은 말을 하고는 젓가락을 들었고, 이윤후는 그녀의 말이 의문스러웠으나 그녀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기에 묻지도 않았다.
“오찬은 마을 객잔에 가서 할 거예요.”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이는 이윤후를 향해 남궁나연이 말했다.
“객잔이요?”
“네. 멀리서 오는 손님이긴 하나 저에겐 불청객이라 서요. 괜히 세가에 들이면 골치 아프기도 하고요.”
남궁나연의 말을 듣던 이윤후는 더욱 궁금해졌다.
“담가(譚家)를 아시나요?”
“담가라면 군룡세가(群龍勢家)를 말하는 것입니까?”
“네. 소주의 담가를 군룡세가라고 하죠.”
무림에 대한 것이 해박하지 못했던 이윤후였으나 천통자가 남기고 간 무림의 전반적인 기록이 담긴 책을 틈틈이 읽어 왔기에 이제는 무림의 일에 나름 모르는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군룡세가.
강소성 소주에 근거를 두고 있는 무가(武家)로서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최근엔 세력이 약해진 남궁세가보다는 군룡세가가 오대세가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무가였다.
“오찬을 함께한다는 게 군룡세가 사람들인가요?”
“네. 그러니까 지금 식사를 든든하게 해 두세요.”
남궁나연은 짧게 답하고는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윤후는 천통자가 주었던 책자에 적혀 있던 군룡세가와 남궁세가에 대한 글귀를 기억해 내었다.
[군룡세가는 오랜 기간 동안 오대세가에 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세가연합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현재, 가주 담영현은 비월검공 남궁학이 죽고 세가의 힘이 약해진 남궁세가를 밀어내고 오대세가에 들어갈 생각으로 남궁세가를 제외한 네 개의 세가와 친분을 두텁게 쌓고 있다.]
오대세가의 연합인 세가연합회는 무림맹을 제외하면 가장 크고 체계화된 세력화를 자랑하고 있는 연합체였다. 세가연합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연합의 명성을 등에 업을 수도 있다. 무림에서의 평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오대세가의 가문이 바뀌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디. 그동안 남궁세가와 모용세가, 하북팽가 세 곳만은 늘 자리했지만, 현재로선 가장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곳은 남궁세가였다.
“표정을 보니 저희와 담가와의 관계를 아시나 보네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세가연합회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남궁나연은 이윤후의 대답에 쓴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왕련이 안휘성 일대를 자신의 영역에 넣겠다는 선포를 한 후, 무림맹에서 모든 문파 수뇌부의 회의가 열렸는데도 지지부진한 회의가 길어졌던 이유 중에 담가의 영향도 적지 않을 거예요.”
“네? 설마 그렇게까지는…….”
남궁나연의 말에 이윤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고 생각은 들었다. 남궁세가와 정파 여럿의 문파가 위협에 놓여 있는데도 무림맹에 모인 수뇌부는 형식적인 이야기들만 주고받았다. 지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도 이미 이윤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담가와 만나는 것은 왜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협에게 동행을 부탁드리는 것이고요.”
남궁나연은 이런 부탁이 이윤후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현재 세가에는 남궁나연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인 남궁인이 무림맹의 임시 맹주가 되면서 남궁세가의 많은 사람이 무림맹으로 떠난 상황이었다.
“힘드시겠군요.”
“제가 힘든 만큼 아버지도 힘드셨겠죠.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힘을 낼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남궁나연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윤후는 그녀가 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가주가 되시고 남궁세가는 외부의 박한 평가를 많이 받아야 했어요.”
“…….”
이윤후도 비월검공이 죽고 난 후 남궁세가의 위세가 전에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남궁나연의 말에 맞장구치기도 힘들어 입을 닫고 듣기만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비교를 당하며 늘 세가를 책임지셔야 했는데, 제가 그런 아버지를 처음부터 돕지 못하고 철이 없이 굴었다는 게 지금 와서는 너무 죄송스러워요…….”
남궁나연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윤후는 순간 당황했다.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남궁나연에게 다가가 보듬어 주었지만, 그녀는 이윤후의 위로 속에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무림맹의 임시 맹주가 된 것은 허수아비로 삼기에 그만한 인물이 없없기 때문이라 했지. 아무리 세가 기울었다 하나, 남궁세가가 이렇게까지 박한 평가를 받게 되다니…….’
이윤후는 흐느끼는 남궁나연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그녀를 떼어 놓았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네…… 무엇이죠?”
남궁나연은 그동안 마음에 쌓아 두었던 감정을 터뜨리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진 듯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채 물었다.
“남궁세가가 굳이 세가연합회에 미련을 가지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 그건…….”
남궁나연은 생각하지 못했던 이윤후의 물음에 살짝 말문이 막혔다. 오대세가의 세가연합회는 남궁세가가 처음부터 이제까지 참여해 왔다. 하여 그냥 당연히 남궁세가가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할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세가연합회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모르는 탓도 있겠지만 굳이 이문제로 남궁세가가 곤궁한 위치에 놓여 있다면 과감하게 놓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먼저 놔 버리면 되는 일이었어요.”
남궁나연은 이윤후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활짝 웃었고, 자신의 말을 너무 빨리 받아들여 버린 그녀의 모습에 이윤후는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창연, 밖에 있어?”
“네. 들어가겠습니다.”
남궁나연의 부름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창연이 바로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윤후를 한 번 힐끔 보았다.
그는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듣고 있었고, 남궁나연이 울음을 터뜨린 것과 이윤후가 그런 그녀를 위로해 준 것도 모두 보고 있었다.
“오늘 밤에 긴급회의를 소집하도록 해. 현재 무림맹에 가 있는 사람들 외엔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알려.”
“아가씨…… 아닙니다. 바로 모두에게 전하겠습니다.”
창연은 이미 남궁나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를 말리려다가 자신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란 것을 인지하고는 물러났다.
창연은 바로 방을 나섰고, 그가 나가자 남궁나연은 미소를 보이며 이윤후를 보았다.
“이 소협의 말 덕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어요. 이게 옳은 결정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 모든 것을 걸고 남궁세가를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겠어요.”
이윤후는 살짝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이거 내가 잘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는 자신이 오지랖 넓게 괜한 일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남궁나연이 그렇게 쉽게 판단해 버릴 줄은 알지 못했다.
“오후에 담가와 만나는 것은 그럼……?”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 결단을 늦춰야죠. 우선 세가의 어른들을 설득하는 게 먼저니까요.”
남궁나연은 이윤후의 말을 듣고 확실한 결단을 해 버린 듯했다. 괜히 이윤후는 자신이 못할 짓을 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졌다. 남궁세가의 어른들이라면 분명 남궁나연의 말에 반발할 것이 분명했다.
“사부님과 비월검공의 사이는 아십니까?”
“물론이죠.”
“사부님께서는 남궁세가가 어떤 위협에 놓일지라도 남궁세가를 도울 것이라 이야기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한 말로 인해 남궁 소저가 곤란한 지경에 놓인다면 사부님과 제가 돕겠습니다.”
이윤후의 말에 남궁나연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고, 큰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윤후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그 말만으로도 기쁘네요. 하지만 이번 일은 저와 세가가 해결해야 될 문제랍니다. 일단 좀 쉬세요. 마을로 나갈 때는 말을 준비할 테니 준비해 주시고요.”
남궁나연은 말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고, 이윤후도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다.
“조금 이따 뵙기로 해요.”
“네.”
남궁나연은 이윤후와의 이야기로 많은 짐을 덜어 버린 듯 표정이 밝아져 있었고, 그녀가 나서자 밖에는 창연이 어느새 다시 대기하고 있었다.
“후압……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하군.”
남궁나연과 창연이 사라지자 남궁세가의 하인들이 들어와 비워진 그릇들과 음식들을 내어 가기 시작했고, 이윤후는 혼자 남게 되자 침상에 몸을 뉘었다.